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유럽을 밝히다, 헨리 8세

앤드루 벤슨 브라운 (Andrew Benson Brown)
2023년 11월 2일 오전 11:34 업데이트: 2024년 02월 5일 오전 11:28

19세에 즉위해 38년간 재위한 잉글랜드 국왕, 헨리 8세
음악과 시, 예술에 대한 열정과 재능으로 르네상스 사조 성장의 발판이 되다

1509년부터 38년간 잉글랜드의 국왕으로 재위했던 헨리 8세는 복잡한 여성 편력으로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영국 역사상 음악적으로 가장 재능 있는 통치자였다.

헨리 8세(1491~1547)는 많은 여성과의 일화와 여섯 번의 결혼으로 좋은 통치자가 아니었다는 저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재위 기간 중 종교 개혁, 정치적 중앙집권화, 영국 국교회 수립 등의 성과를 거둔 인물이다. 또한 음악적 재능을 발휘해 그가 작곡한 곡은 현대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르네상스를 구현한 왕

헨리 8세는 예술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통치자였다. 그의 왕실에는 학구적이며 예술적 혁신을 위한 연구가 매일 진행되었고, 많은 자금과 시간을 투자해 예술가들을 독려했다. 더불어 헨리 8세는 스스로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고, 시와 노래를 썼다. 그의 열정을 밑거름으로 한 르네상스 사조는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었고, 당시 사람들은 그를 예술과 교양을 대표하는 이상적 인물로 칭송했다.

음악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왕

‘하프를 든 헨리 8세’(1530~1547), 작자 미상 | 공개 도메인

헨리는 7살 때 아버지 헨리 7세(1457~1509)가 선물한 류트를 연주하며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후 플루트, 리코더, 오르간, 하프 등 여러 악기를 능숙하게 연주하며 국정뿐만 아니라 음악 연습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가 가진 악기는 대부분 금과 은,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악기들은 장부에 기록되어 특별히 관리되었는데, 그 장부는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지만 아쉽게도 그의 악기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헨리의 작곡 실력은 악기 연주 실력만큼이나 뛰어났다. 영국의 민속 음악이자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진 곡인 ‘그린 슬리브스(Greensleeves)’가 바로 헨리 8세가 작곡한 곡이다. 이탈리아에서 영감을 받아 쓴 이 곡은 우아하고 귀족적인 특징이 돋보인다. 이 곡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사랑받으며 여러 작곡가에 의해 가사가 붙거나 편곡되기도 하며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헨리가 만든 곡 중 세속적인 주제를 담은 곡은 노래책으로 보존되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헨리 8세 노래집’이라 알려진 16세기 초에 만들어진 이 책은 초기 튜더 왕조 예술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이다. 이 책에 수록된 노래는 총 100곡으로, 그중 3분의 1에는 작곡가 명에 헨리 8세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다. 이 책은 헨리 8세의 재위 초기에 편찬된 것으로, 당시 나이가 20대에 불과했지만, 그럼에도 많은 곡을 작곡했음을 알 수 있다.

왕의 노래

‘헨리 8세의 노래집’에 수록된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흥시간’의 악보. 런던 대영 도서관 | 공개 도메인

그가 작곡한 곡들은 당대에 큰 인기를 얻으며 왕국 전역에서 널리 연주되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곡은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흥시간’이다. 이 곡은 헨리가 쓴 시를 가사로 붙인 곡으로, 교회에서 설교 때 활용되기도 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곡이다.

이 곡에는 어린 시절 헨리의 인생관이 담겨있다. 그는 사냥과 음악, 춤을 좋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흥시간’이라는 제목은 단순한 쾌락만을 추구한 것은 아니다. 곡의 두 번째 연에는 ‘게으름은 모든 악덕의 주인이다’는 구절이 있다. 이는 항상 여러 일에 몰두하고 활발한 자신의 성격이 나태라는 큰 죄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한 마지막 연에서 그는 진정한 친구를 사귀는 것은 정신 건강에 유익하다며 좋은 이들에게 둘러싸여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부분을 피력한다.

‘정직한 벗은 미덕이요, 악한 벗은 피하는 것이니
벗이 좋든 나쁘든 모든 사람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네.
가장 좋은 것은 따르고, 가장 나쁜 것은 피하고,
내 마음은 사용하는 것이 미덕이요, 거부하는 것이 악이니
내가 나를 사용하리라.’

헨리가 이 곡을 쓰던 당시, 그의 나이는 20대 초반이었다. 그렇기에 아첨을 통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고 그를 이용하려는 이들이 궁 내부에 항상 있었다. 그렇기에 헨리는 ‘정직한 벗’을 찾기 위해 사람을 바르게 보려고 항상 노력했고, 이는 좋은 통치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유능한 참모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자신의 기준을 엄격하게 지키며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유지했다.

재능을 알아보는 능력

‘추도경의 무도회에서 안나 볼린과 함께 있는 헨리 8세’(1872), 칼 테오도르 폰 필로티. 캔버스에 오일 | 공개 도메인

헨리는 어린 나이에 재위해 교활한 관료들과 음모에 시달려 왔다. 그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켜온 헨리는 관료들에게 휘둘려 인재를 채용하기보다는 자신이 직접 겪어보고 판단한 후 인재를 등용하는 것을 선호했다.

헨리는 순수성과 예술적 감각을 지닌 음악인들을 각별히 아끼며 정치적 임무를 맡기기도 했다. 외교관의 자리에 오르간 제작자를 등용시키기도 했고, 재능있는 음악가들을 궁정 직원으로 고용하기도 했다. 그는 측근으로 고용할 인물을 결정할 때 고귀한 혈통이나 사회적 관계보다는 예술적 재능과 순수성을 결정 요인으로 삼았다.

헨리 8세의 미덕

헨리 8세의 문화에 대한 탐구와 재능과 노력, 그가 이룩한 문화적 발전 및 다양한 성과는 재위 후반에 보인 여러 행동과 편집증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악덕에 가려진 미덕을 없는 것으로 치부하기보다는, 그가 세운 업적과 재능은 인정하고 칭송받아야 할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은 말한다. 헨리 8세 왕실의 화려함은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그의 재능과 음악은 지금까지 남아있다.

앤드루 벤슨 브라운은 미국 미주리주에 거주하는 시인이자 저널리스트, 글쓰기 교사입니다. 그는 잡지의 편집자로 활동하며 미국 혁명에 관한 서사시인 ‘자유의 전설’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기사화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