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감 반영? 鄧 시절 ‘경제건설’ 구호 다시 들고 나온 리커창

2021년 12월 30일
업데이트: 2021년 12월 30일

리커창(李克强) 중국 국무원 총리가 공식석상에서 연이어 덩샤오핑 시절의 경제건설 표어를 언급해 배경에 관심이 몰린다. 중국 경제상황이 생각보다 많이 어둡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지난 24일 리 총리는 국무원 참사관 등 실무진 간담회를 주최하고 이 자리에서, 이른바 현대화를 실현하기 위해 “경제건설을 중심으로 견지해야 한다”며 “장기적인 고난 감수”를 언급했다.

‘경제건설을 중심으로 한다'(以經濟建設為中心)는 말은 마오쩌둥이 일으킨 문화·경제 대참사인 문화대혁명 이후 덩샤오핑이 제시한 노선이다. 공산당의 영원한 생존수단인 ‘계급투쟁’ 노선과 대척점에 있는, ‘먹고사는 문제부터 해결하겠다’는 노선이다.

리 총리는 이달 15일 열린 ‘글로벌 최고 경영자 위원회’ 화상 대담에서도 “경제건설을 중심으로 견지한다”고 말했다.

그는 폭스바겐, 스타벅스, 파나소닉 등 세계 500대 기업 수장들이 참석한 이 대담에서 “새로운 하방 압력에 직면해 안정적 성장을 우선순위에 놓겠다”며 이같이 전했다.

외국 주요기업 총수들에게 비즈니스 환경을 보장하고 안정적 성장을 위해 구조조정을 할 테니 중국에 계속 투자해달라는 맥락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통상적인 발언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하방 압력’은 지난 11월 초부터 리 총리의 입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한 말이다. 리 총리는 새로운 하방 압력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인 정도와 원인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지만, 같은 달에만 이 표현을 세 차례 사용했다.

중국 정부는 최근 몇 개월간 뚜렷한 경기 둔화세가 나타나는 중에도 “경제 상황이 양호하다”, “안정 속 성장(安中進)”이라며 반대되는 말을 해왔다. 그러나 리 총리의 발언을 필두로 차츰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베이징 당국이 12월 초에 개최한 비공개 중앙경제 공작회의에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리 총리에게서 “낙관하지 못한다”, “어려운 국면”, “도전” 같은 표현들이 등장했다.

추후 발표된 이 회의 보고서에는 ‘안정(穩)’이란 단어가 25회 등장했다.

중국문제 평론가 하오핑은 에포크타임스에 “경제 발전은 중국 공산당의 집권 정통성이 달린 사안이다. 중국 공산당은 빈곤을 탈출해 경제 성장을 거뒀으니, 계속 집권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역으로 ‘경기 하방’은 집권해야 할 이유의 뿌리를 흔드는 요소가 된다. 회의에서 안정이라는 단어가 쏟아진 이유”라고 지적했다.

리 총리의 “경제건설을 중심으로 한다”는 말은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한 일종의 다짐으로도 여겨진다.

중국 당국은 최근 교육·게임·핀테크 분야에서 반독점 혹은 데이터 보안을 이유로 각종 규제를 도입했다. 식료품 분야에서도 ‘업계 정비’를 내세워 강력한 규제를 휘두르고 있다.

경기 하방 상황에서도 규제를 확대하는 것은 정치적 판단이 개입됐음을 보여준다. 리 총리의 “경제건설 중심” 노선이 이념과 투쟁을 앞세우고 당이 모든 것을 장악하는 마오쩌둥 노선으로 회귀하려는 시 주석과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왕쥔(王軍) 베이징 톈쩌(天則)경제연구소 국제부 주임은 “내년 중국 경제는 올해보다 나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은행 역시 최근 전망에서 내년 중국 경제 성장 예상치를 하향 조정했다.

왕 주임은 중국 안팎 상황이 복잡하고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며 “리 총리 발표에 획기적인 방안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경기 둔화로 일자리가 줄어들면 사회적 불안이 커진다. 취업하지 못한 청년들이 거리로 나가 난동을 부리고 항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고용은 중국 경제에서 매우 중요한 지표다. 왕 주임은 “올해 대학원 지원자 수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그만큼 취업난이 심각하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올해 대학원 지원자는 지난해보다 80만명 늘어난 457만명으로 사상 최대였다. 한 조사에서는 지원자 10명 중 6명이 대학원 진학 이유로 “취업난”을 꼽았다.

왕 주임은 “사실 국영기업은 돈도 안 벌고 적자도 많이 나고 비효율적”이라며 “천변경제연구소는 이런 보고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한 중앙 고위 관료는 미래에 공기업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했다. 물론 그는 이 말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좀 절대적이다.

홍콩 언론은 리 총리의 발언을 정치적 판단 중심에서 경제적 판단으로 경제 정책을 수정하려는 시도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얼마만큼 수정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리 총리의 힘이 세지 않기 때문이다.

왕 주임은 “리 총리의 영향력은 사실 매우 약하다. 그는 경제를 총괄하는 자리에 있지만, 지금 별다른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경제에 대해서는 시 주석이 더 많이 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리 총리는 지난해 5월 노점경제를 제시했다.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서민들은 거의 생활을 유지할 수 없었기에 노점상이라도 허용해서 먹고살게 하라는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이는 당시 “먹고살 만해졌다”며 경제 성과를 자부하던 시 주석의 발언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지시였다. 이후 시 주석과 리 총리 사이 갈등설이 불거졌다.

헝다 그룹으로 대표되는 중국 부동산 위기가 전반적인 정부 재정위기로 번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공산당 체제에 비판적인 대만 경제학자 우자룽(吳嘉隆)은 “빚내서 개발하는 부동산 업계에 위기가 찾아오면서, 개발업체에 거액을 대출해준 중국 지방정부의 재정위기가 임계점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다.

우자룽은 “각종 규제 강화, 공동부유는 실상 민간 자금을 긁어모으겠다는 의도다. 일반인 은행 계좌 예금이 10만위안(약 1870만원)이 넘으면 자금 출처를 조사한다. 마카오의 카지노 거물들도 돈주머니를 털렸다. 그만큼 재정에 위기가 닥쳤다는 증거다”라고 말했다.

그는 헝다 사태 이후 외국 기업과 자본이 중국 경제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이 부정적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중국이 발표하는 각종 통계수치에 대한 불신감이 깊어진 것도 그중 하나다.

지난 11일 한원슈(韓文秀) 중국 재경위 판공실 부주임은 한 회의에서 “중국 경제는 수요 감소, 공급 충격, 약세 전망의 3중 압력으로 소비와 투자 증가세가 꺾이고 공급 사슬이 막혔다”고 말했다.

여기에 웨이퍼 부족, 전력 부족 등 기업의 생산력 감소도 심각하지만, 당국 공식 통계에서는 이런 상황을 제대로 포착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이날 회의에 참가한 러우지웨이(樓繼偉) 전 국무원 재정부장은 “하방 압력이 지표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발표된 지표들은 오히려 매우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우자룽은 “서방 기업과 경제기관들이 중국 경제에 대한 비관 전망을 잘 내지 않는 것은 친중 인사들이 포진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들은 중국 공산당에 협조해 돈을 번 인사들”이라며 “그러나 앞으로도 같은 기대를 하면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이다. 서서히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만의 경제전문가인 황스총(黃世總)은 “중국 정권은 경제 파장이 집권에 미칠 영향을 가장 두려워한다”며 “그래서 ‘안정’을 말하고, ‘경제성장 중심’으로 가겠다고 말하는 것”이라며 “그러나 하방 압력을 돌파할 동력원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뤄야 기자가 기여했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