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크라이나 전쟁과 푸틴 대통령의 위험한 도박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2022년 02월 28일 오후 4:17 업데이트: 2022년 03월 1일 오후 2:18

  2월 24일 우크라이나 국경지대에 집결해 있던 러시아군이 침공을 개시함으로써 그 끝이 어디일지 모르는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도박’이 시작되었다. 현재 미국과 나토의 직접적인 참전 가능성은 희박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군사력 격차도 현격하며, 침공에 앞서 러시아가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 차단 등 금융제재에 대비하여 수천억 달러의 현금을 비축했다는 소문도 있다. 그럼에도 푸틴의 목표가 어디까지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크리미아 반도 합병 때와 같이 돈바스(Donbas) 지역에서 친러 반군이 선포한 도네츠크공화국과 루한스크공화국을 승인한 뒤 러시아로 합병할 수도 있고, 우크라이나 영토의 일부 또는 전부를 합병하려 할 수도 있다. 어떤 결말로 가든 이번 전쟁은 푸틴 대통령 스스로를 포함하여 미국, 나토, 중국 등 많은 나라와 지도자들을 시험대에 올릴 것이며, 한반도에도 교훈점을 제공할 것이다. 

   다시 내려지는 ‘철의 장막’ 

  2월 4일 중·러가 공동성명을 통해 ‘나토확장 반대’와 ‘대만독립 반대’를 표방한 데서 보듯 일단 중·러 협력이 강화될 것이며, 중·러·북 블록의 전략적 결속도 강화되어 ‘전체주의 대 민주주의(autocracies vs. democracies)’ 또는 ‘대륙세력 대 해양세력’ 대결구도가 더욱 선명해질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나토가 푸틴의 군사행동을 중단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제재 카드만을 만지작거리는 유약한 인상을 남긴다면 ‘대만 침공’을 저울질하는 중국과 핵무력 고도화와 한미동맹 무력화를 원하는 북한을 고무하는 효과를 촉발할 수 있으며, 바이든 대통령의 국내 정치기반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대부분의 서방국들이 미국의 대러 경제제재에 동참 의사를 밝히고 있다는 점과 세계 곳곳에서 ‘살인자 푸틴’ 피켓을 내건 시위가 발생하고 있음도 주목할 만하다. 2014년 크리미아반도 합병으로 G-8에서 추방되어 제재를 받아온 러시아는 더 심한 제재를 받을 것이며, 냉전의 산물인 ‘철의 장막’이 다시 내려질 가능성도 있다. 지금은 시진핑 주석 이후 중화(中華) 패권을 향한 팽창주의가 본격화되면서 중국이 서방세계의 공적(共敵)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중·러 결속은 서방세계의 단결을 촉발하고 냉전 시절의 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COCOM)와 유사한 수출통제 체제의 부활이나 바세나르체제(Wassenaar Arrangement)의 재정비를 촉발할 수도 있다. 요컨대,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세계는 ‘죽의 장막(bamboo curtain)과 ‘철의 장막(iron curtain)’이 함께 내려진 본격적인 신냉전(Neo-Cold War) 시대를 맞이할 수 있으며, 그 경우 역사는 푸틴의 도박을 ‘본격적인 신냉전 시대를 개막한 사건’으로 기록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 시험대에 오른 푸틴의 러시아 

 이번 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관건은 푸틴이 자신이 시작한 도박에 대해 어디까지 뒷감당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가 전쟁을 시작한 가장 큰 명분은 나토의 동진(東進)과 우크라이나의 독립성 문제다. 1991년 소련연방 해체와 함께 공산진영의 동맹체인 바르샤바조약기구(WTO)가 와해된 것과는 달리 1949년 12개국으로 출발했던 나토(NATO)는 30개 나라로 확대되었다. 푸틴은 구소련에서 분리 독립한 신생국들이 나토에 가입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분노를 표출하면서 나토와 러시아 사이 완충지대의 필요성을 역설해왔고,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일부였음을 강조하면서 젤렌스키 정부의 나토 가입 시도에 대해 불용 의지를 표방해왔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 침공을 나토의 동진에 대한 방어적 행동으로만 볼 수는 없다. 푸틴 대통령은 메드베데프 총리 시절(2008~2012) 상왕(上王) 역할을 했던 것을 포함하면 사실상 5선 대통령이며, 2020년 개헌으로 3연임 재임을 금지하는 조항을 폐기함으로써 영구집권의 길을 터놓은 절대적 권력자다. 따라서, 이번 전쟁이 내셔널리스트이자 범슬라브 민족주의자인 푸틴이 소련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벌인 공세적 행동이라는 측면도 부인할 수 없다.

  이 도박이 푸틴이 원하는 만큼의 결실을 얻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현 러시아는 세계의 절반을 호령했던 과거의 소련이 아니다. 러시아의 GDP(2021)는 한국(약 1조 8,600억 달러)과 비슷한 1조 6,500억 달러로 세계 11위며, 중국의 1/10 그리고 미국의 1/14에 지나지 않는다. 1인당 GDP도 한국의 1/3 수준이다. 물론, 루블화 경제권이고 모든 무기들을 자국산으로 사용하는 러시아의 경제력이나 국방비를 달러화로 환산해서 단순 비교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으며, 구매력(PPP)으로 따진다면 러시아의 순위는 더 높아진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소비에트 시절에 비해 현저하게 축소된 경제력과 영향력을 바탕으로 미국과 대등한 핵군사력을 유지하는 무리수를 고수하면서 ‘유럽의 작은 신냉전’을 주도하고 있다. 러시아 내에서도 반전 시위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 이번 전쟁으로 푸틴 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입지는 약화될 전망이며 서방의 제재로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면 더욱 그럴 것이다. 구소련은 1979년 아프간을 침공했다가 7만여 명의 사상자를 기록하고 1989년 철수했고, 1980년대 동안 레이건 대통령이 구축하는 우주방어계획(SDI)을 무력화하는 신무기 개발에 막대한 국력을 쏟아부었다. 이것이 소련 경제의 파탄과 1991년 소련연방 해체에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요컨대, 푸틴 대통령이 많은 경제적·정치적 압박을 느끼면서 시작한 도박이 언제까지 그리고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이 사태의 최대 관전포인트다.

  부패와 정치무능으로 약빈(弱貧)국으로 전락한 우크라이나

  현 사태를 내부에서 바라본다면 우크라이나의 자업자득인 측면도 적지 않다. 1991년 독립 후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권고로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통해 미국의 재정지원과 함께 미·러·영으로부터 주권과 국경선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자국에 남겨진 2,000여 기의 소련 핵무기를 러시아에 반납하고 비핵국으로 출발했지만, 부강한 국가로 성장할 수 있는 조건들을 갖추고 있었다. 4천만 명이 넘는 인구에 한반도의 3배에 이르는 비옥한 국토를 가진 우크라이나는 국토의 3/4이 경작 가능한 농업대국이며, 전 세계 광물자원의 5%를 차지할 정도로 석탄, 석유, 천연가스, 철광석, 망간, 티타늄, 우라늄, 흑연 등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고 수력 자원도 많다. 병력 78만 명, 전차 6,500대, 항공기 2,000대 등을 보유한 군사 강국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문서로 약속된 평화를 믿고 무분별한 감군을 반복했으며, 부패와 정치적 혼란을 반복했다. 2010년에 집권한 빅토로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전임 티모셴코 총리를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하고, 유럽연합과의 통합 계획을 백지화하는 등 강력한 친러 정책을 펼쳐 친서방 지역과 친러 지역 간 내전을 촉발했고, 그 연장선에서 우크라이나는 크리미아 반도를 러시아에 빼앗겼다. 결국, 야누코비치는 친러 노선에 반대하는 친서방 반정부 시위를 강경 진압하여 인권침해, 직무유기, 공금횡령 등의 혐의로 탄핵되어 러시아로 망명했다.

  야누코비치에 이어 2014년에 집권한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은 ‘초콜릿 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제과업계 출신으로 친서방 정책을 펼쳤으나 부강한 우크라이나를 건설하는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분리주의자들이 5,500만 달러 규모의 석탄을 판매할 수 있도록 도운 ‘반역’ 혐의로 기소되어 폴란드로 피신했었다. 현 대통령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는 코미디언 시절 얻은 국민적 인기로 41세 나이로 최연소 대통령이 되었지만 안보, 경제 등에서 문외한이었고 정부 요직에 동료 코미디언, 방송인, 일가친척 등을 포진시킴으로써 ‘전문성 없는 정부’를 자초했다. 이렇듯 친러 정부와 친서방 정부가 번갈아 집권하면서 정쟁을 이어가는 중에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을 위한 동력을 만들지 못했다. 그렇다고 경제적 부를 이룬 것도 아니었다. 우크라이나의 GDP는 1,600억 달러로 세계 55위이며 일인당 GDP는 4천 달러로 세계 100위 내에도 들지 못한다.

  군사력도 상당 부분 붕괴되었다. 유럽 최강을 자랑하던 우크라이나군은 정규병력 20만 명에 예비군 90만 명 수준의 소군으로 전락했고, 대부분의 군사장비들도 노후화된 구소련제로 기동이 불가능한 것들이 많다. 안보 수요를 무시한 채 2013년에는 모병제로 전환했다가 2014년에 크리미아반도를 빼앗기자 징병제를 부활시키는 등 혼선을 반복했고, 러시아군의 침공이 언제 개시될지 모르는 2022년 2월 1일 젤렌스키 대통령은 2024년초까지 징병제를 폐지하도록 준비할 것을 내각에 지시했다. 안보 문외한이 아니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렇듯, 독립 이후 우크라이나가 걸어온 길을 반추해보면, 2014년에 이어 지금 또다시 러시아에 의해 유린당하는 것에는 자업자득인 측면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한국에 주는 교훈 

  우크라이나 사태가 한국에 주는 최대 교훈은 힘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평화, 즉 상대의 선의(善意)에만 의존하는 평화를 믿는 나라는 반드시 패망하거나 수모를 겪는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국경선을 보장해주기로 약속한 부다페스트각서를 믿고 인기영합식 공약을 남발하면서 군사력을 축소했는데, 정치인들이 인기영합 구호들을 외치는 가운데 축소지향적으로 변모하고 있는 한국군의 모습과 닮은 점이 없지 않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 크리미아 반도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한 이후에도 ‘돈바스 지역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조건으로 국경선을 존중받기로 한 민스크협정(2014, 2015)을 믿었다. 이 협정들은 준수되지 않았고, 그것을 믿고 안보를 방기한 우크라이나는 다시 한번 망국의 위기를 맞았다. 북한이 핵무력을 고도화하고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면서 미사일을 쏘고 있는 중에도 이를 외면하면서 종전선언에 올인했던 한국이 교훈으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동맹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계기이기도 하며, 국가안보의 지고적 가치와 동맹의 필요성을 인지하는 정치 지도자들의 유무가 국가생존과 직결된다는 교훈도 제공하고 있다. 체코, 헝가리, 폴란드, 발트3국, 루마니아 등 구소련의 영토였거나 구소련 위성국들이 서둘러 나토에 가입한 것은 유사시 함께 싸워줄 동맹을 구함으로써 유사 상태의 발생을 억제하기 위함이었지만, 우크라이나는 그러지 못했다. 우크라이나는 새로이 집권한 정치세력이 전임 정부 지도자들을 박해하는 전통 속에 정치인들의 기회주의적 처세와 정쟁이 국가를 부국강병으로 이끌 전략과 소신을 가진 지도자들의 배출을 막아왔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요컨대,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고 누구든 막대한 희생을 치르지 않고는 범접할 수 없는 군사력과 국가수호 의지를 가진 나라였다면 푸틴이 도박을 감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지도자들은 뒤늦게 미국과 나토가 참전해 줄 것을 원하지만, 미국이 친서방과 친러를 오가면서 혼란을 거듭하는 우크라이나를 위해 피를 흘려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래서 요즘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이 쏟아내는 말들을 보면 걱정스러운 대목이 많다. 어제는 “대한민국은 친일파와 미군 점령군이 세운 나라, 사드는 호전적 의지의 발로”라고 해놓고 오늘은 “한국은 우크라이나와 달리 미국의 동맹국이므로 전쟁이 나면 미군이 달려올 것”이라고 말하는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을 보고 미국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