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시진핑만? ‘각하’ 아닌 ‘전하’로 표기한 유엔 홈페이지 화제

한동훈
2020년 9월 28일
업데이트: 2020년 9월 28일

유엔 홈페이지가 최근 중국 공산당 총서기 시진핑을 국가원수가 아닌 ‘왕세자’로 표시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21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제75차 유엔총회가 사상 최초로 화상으로 열렸다. 중공 폐렴(코로나19) 확산을 우려한 조치였다.

이 회의에 170개국 정상과 정부 수뇌들이 화상으로 참석한 가운데, 유엔 홈페이지는 총회 의제와 연설 일정이 올려졌다.

일정에는 발언자 명단과 순서가 적혀 있었는데, 이 명단에는 시진핑을 ‘각하’(His Excellency)’가 아닌 ‘전하’(His Highness)로 표시했다.

유엔 홈페이지에서 전하는 군주제 시행 국가의 왕세자에 붙는 칭호다.

이에 따르면, 해당 홈페이지에서는 중국을 대통령제가 아닌 군주제로, 시진핑은 왕세자로 분류한 것이다.

눈치 빠른 누리꾼들은 이를 포착해 퍼 나르며 온라인 공간에서 무성한 화제를 꽃피웠다.

시진핑의 칭호가 전하(His Highness)로 표시된 유엔 홈페이지 | 화면 캡처

‘전하’(His Highness)는 유엔 공인 군주제 지도자 호칭

유엔 홈페이지는 총회 연설자 명단에서 각국 지도자들에게 주로 3가지 칭호를 사용해왔다.

‘폐하’(His Majesty), ‘전하’(His Highness) 그리고 ‘각하’(His Excellency)다.

이 가운데 폐하와 전하는 왕실 제도를 유지하거나 군주제를 시행하는 국가에 적용되는 표현이다.

국왕과 왕비에게는 폐하, 왕세자에게는 전하라는 칭호가 이름 뒤에 붙여진다.

반면, 각하는 대통령제나 내각제 등을 시행하는 국가에서 대통령이나 총리 등 국가원수 혹은 행정부 수반에게 붙여지는 칭호이다.

그러나 유엔 홈페이지 연설자 명단에서는 다른 지도자와 달리 시진핑만 존칭이 ‘전하’(His Highness)였다.

그 앞 순서였던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브라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미국),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터키) 등 군주제가 아닌 나라의 국가원수나 지도자들은 모두 ‘각하’(His Excellency)로 표시돼 있었다.

여섯 번째였던 시진핑의 다음 순서였던 일곱 번째 발표자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칠레) 역시 각하로 표시됐다.

공교롭게도 중국어, 프랑스러, 러시아어, 스페인어, 아랍어 등 다른 언어 버전 페이지에서도 시진핑은 모두 존칭이 ‘전하’(Son Altesse、Его Высочество、Su Alteza el)로 통일돼 있었다.

시진핑의 칭호가 전하(His Highness)로 표시된 유엔 홈페이지. 중국어 버전 | 화면 캡처

유엔 홈페이지는 한국 시각으로 지난 23일 오후 9시가 훌쩍 넘은 뒤에야 시진핑에 대한 칭호를 ‘각하’로 변경했다.

이번 사건이 유엔 사무국 직원의 실수에 의한 단순한 헤프닝인지, 시진핑에 대한 풍자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중화권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다양한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홍콩 누리꾼들은 “전하는 왕세자나 왕족에 대한 존칭이고, 국왕이나 황제에 대한 존칭은 폐하인데, 유엔이 시진핑을 전하라고 칭한 것은 격을 낮춘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원본격인 영어 버전에 아무런 오류가 없었기에 다른 언어 버전으로도 그대로 번역된 것”이라며 유엔 사무국이 명단 검수 과정에서 문제가 없다고 통과시켰을 것이라고 분석도 제기됐다.

중국 누리꾼들은 “유엔이 아부하나” “내부에 아는 사람이 있는 듯”이라며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누리꾼은 “됐네! 이건 유엔이 시 주석에게 정식으로 황제에 등극할 것을 권하는 거 아니냐? 시 주석이 이렇게나 국제적으로 지지를 받으니, 새로 나라를 세워 정식 황제에 즉위하라는 메시지”라고 꼬집었다.

중국에서는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집권 후 개헌을 통해 국가주석 임기제를 없애며 장기집권 기반을 닦자 “황제가 되려 한다”는 비판이 체제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올해 유엔 총회에는 중공 바이러스 감염증(중공 폐렴, 우한 폐렴)의 확산으로 인해 드리워진 어두운 그늘이 역력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총회 연단에 오른 국가지도자 가운데 가장 처음으로 중공 바이러스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중국 공산당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 최대의 위기를 초래한 것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촉구하고 세계보건기구(WHO)가 중국 공산당에 잠식됐다고 비판했다.

시진핑 총서기는 “미국이 세계에서 패권을 휘두르고 있다”며 “누군가의 주먹이 크다고 그 사람의 말만 들어서는 안 된다”는 말로 제도와 규칙을 강조했다.

중국 문제 전문가 리린이(李林一)는 “시진핑의 유엔 연설은 모순된다”며 “중국 공산당은 대만이나 홍콩 문제에서 제도와 규칙 대신 힘의 논리를 내세운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제정세에 밝은 사람은 시진핑의 유엔 총회 연설을 듣고 모순과 자가당착에 빠져있음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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