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여인들은 어떻게 모발을 관리했을까?

Lan Yin
2019년 4월 6일 업데이트: 2019년 10월 24일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마음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어느 여인인들 검고 무성한 머리카락을 갖고 싶어 하지 않겠는가? 한의학에서는 두발은 ‘혈지여(血之余) 신지화(肾之華)’라 해서 혈(血) 및 신장과 관련성을 중시한다. 즉 두발에 아름다움을 더해줄 뿐만 아니라 건강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고대 여인들은 귀밑까지 드리워진 탐스러운 머리와 폭포처럼 길고 검은 머리를 지녔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두발을 관리했을까?

사실 옛날 사람들의 모발 관리는 ‘청결 유지’라는 점에서 오늘날과 아주 흡사하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한 가지를 더 중시했다는 점이다. 신체 청결에 대해 현대인들은 전부 ‘씻는다(洗)’는 말을 쓰지만, 선인들은 두발을 씻을 때는 따로 쓰는 용어가 있었다. 즉 두발을 씻을 때는 ‘목(沐)’이라 했고, 발을 씻는 것은 ‘세(洗)’, 손을 씻는 것은 ‘관(盥)’, 몸을 씻는 것은 ‘욕(浴)’이라 했다. 이 용어들을 잘못 쓰면 웃음거리가 됐다.

이처럼 단순히 씻는 동작 하나에도 다양한 표현이 존재했다. 그뿐만 아니라 진한(秦漢) 때의 군자들은 모두 ‘사흘에 한 번 두발을 씻고, 닷새에 한 번 몸을 씻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다 한나라 때 이르러 관원들은 닷새에 한 번씩 ‘휴목(休沐‧두발을 씻으며 쉬는 날)’이란 휴가를 줬으니 용모를 얼마나 중시했는지 알 수 있다. 즉 두발 청결을 아주 중요하게 보았다.

동진의 고개지(顾恺之)가 그린 ‘여사잠도(女史箴图)’의 일부. 고대 여인들의 정돈된 두발을 볼 수 있다. | 퍼블릭 도메인

유교 경전인 <예기(禮記)>에는 군자가 두발을 씻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한다. “기장 삶은 물에 목욕하고 낯을 씻으며(沐稷而靧粱), 빗은 전질을 쓰고(櫛用樿櫛), 머리를 말릴 때는 상아빗을 쓴다(髮晞用象櫛).”

남자들이 머리를 씻는 데도 이렇게 다양한 도구가 필요했으니 용모를 중시하는 여인들은 오죽했으랴. 더 기발한 방법들이 있었음이 틀림없다.

여기서 일단 <홍루몽> 제58회에 나오는 이야기를 한번 보자. 일찍이 연극에서 노래를 부른 적이 있는 방관(芳官)이 보옥 처소의 하인이 됐다. 그녀의 계모는 시기심이 많아서 늘 자기 친딸이 머리를 씻고 남은 물로 그녀의 머리를 씻게 해서 다툼을 유발했다. 이를 보다 못한 보옥 거처의 여자 하인들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다.

이때 조용히 있던 한 사람이 화로유(花露油) 1병에 계란, 화장비누(香皂), 머리끈 등을 가져다 방관에게 주고 따로 씻게 했다. 그 후 청문(晴雯)이 방관을 도와 두발을 씻기고 말린 후 머리끈으로 머리를 단장했다.

이 일화는 청나라 때 일반 여인들의 세발용품과 대략적인 과정을 보여준다. 옛날에 유행했던 두발용품은 화로유, 계란, 화장비누 등인데, 이 중 화장비누는 요즘의 샴푸처럼 두발을 청결히하는 데 사용했다. 그렇다면 화로유와 계란은 대체 어떤 용도로 썼을까?

고대 여인들은 두발을 청결히한 후 귀밑머리를 부드럽게 잡아당겼다. 사녀잠화도의 일부. | 퍼블릭 도메인

화로유(花露油)

화로유는 <홍루몽>에 나오는 계화유(桂花油)의 일종으로, 머리를 씻은 후 발라주는 일종의 모발 자양제이자 천연 향수다. 당시 여인들은 대부분 타래머리를 올려야 했는데, 기름을 뿌려 두발을 부드럽게 해주면 예쁘고 정교한 모양을 만들기에 편리했다.

일찍이 <시경>에도 “어찌 머릿기름으로 치장할 수 없으랴마는 누굴 위해 그러리오(豈無膏沐  誰適爲容)”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고목(膏沐)이란 기름을 써서 두발을 매끄럽게 하는 것을 말한다. 중국에서는 이처럼 3천 년 전에도 이미 머릿기름을 사용했다. 초기에는 동물성지방을 이용했지만, 한나라 때 서역에서 참기름이 들어왔다. 송나라 때는 각종 꽃의 진액을 추출해 기름에 넣었는데, 이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향발목서유(香发木樨油)’였다. 이는 목서(계수나무) 꽃으로 만든 기름, 즉 계화유(桂花油)를 운치 있게 표현한 말이다. 이시진의 <본초강목>에서는 “(목서를) 들기름과 함께 쪄 익혀서 쓰면 모발을 윤기 나게 할 수도 있고 화장품을 만들 수도 있다”고 했다.

남송의 <사림광기(事林廣記)>에는 계화유를 만드는 방법이 상세히 기재돼 있다. “이른 새벽 반쯤 핀 계수나무꽃을 잘라 깨끗이 씻은 후 생화 1말에 들기름 1근 비율로 섞어 자기항아리에 담고 기름종이로 밀봉한다. 이 항아리를 무쇠솥에 넣고 한 식경 정도 찐 후 불을 끄고 건조한 곳에 열흘간 둔다. 마지막에 계수나무꽃을 꺼낸 후 손으로 짜면 맑은 향기가 널리 퍼지는 계화유가 나온다. 여기에 밀랍을 넣고 졸이면 천연 화장품이 된다.”

청나라 때 주본(朱本)이 그린 ‘대경사녀도(對鏡仕女圖)’ 일부. | 퍼블릭 도메인

계란 흰자위

그렇다면 계란은 대체 어디에 사용했을까? 사실 옛날 사람들이 진짜 원했던 것은 계란 흰자위다. 계화유는 가격이 비싸 쉽게 구할 수 없었던 반면 계란은 흔했기 때문에 보통 여인들의 모발 관리에 필수품이 됐다. 청나라 때의 <염사(奁史)>란 책에는 도처에서 여자들이 계란 흰자위를 이용해 머리를 관리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여자들은 머릿기름이 더러워지면 두발을 적신 후 계란 흰자위를 바르고 잠시 후 씻어냈다. 이렇게 하면 머리카락이 산뜻하고 깨끗해진다. 또 장시간 계란 흰자위를 사용하면 머리카락이 검어지고 윤기가 흐른다. 그야말로 천연 모발 보호제였다.

앞에서 언급한 몇몇 세발용품 외에도 고대 여인들은 일상생활에서 모발을 세척하고 보호하기 위해 사용한 천연 재료들이 매우 많았다. 가장 널리 쓰인 것이 조각(皁角)이다. 강남콩 모양으로 생겼는데, 강력한 세척력을 지닌 식물이다. 껍질을 벗기면 안에 매끄럽고 부드러운 즙이 나오는데, 이것을 빨래하는 데 썼다. 또 물에 담가 찧은 후 거른 액은 샴푸가 됐다.

선인들은 천연을 귀히 여겼으며, 대자연에는 모발을 세척하고 보호하는 기능을 가진 나무가 많았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참깻잎은 모발을 씻는 샴푸로 썼고 이를 퇴치하는 데도 썼다. <가숙사친(家塾事親>에는 “깻잎 달인 물로 부인의 머리를 빗으면 이를 없앤다”는 기록이 있다. 이 외에도 사람들은 무궁화잎, 측백잎, 복숭아나무 가지, 뽕나무 껍질 등을 사용했다.

지금까지 설명한 방향성 계화유에서부터 천연식물에 이르기까지 모두 어느 정도 가공이 필요한데, 일상적으로 쓰는 물품 중에서 별다른 가공 없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 가장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쌀뜨물이다. 쌀뜨물에는 풍부한 비타민이 함유돼 있어 머리카락이 세지 않게 예방할 수 있다.

고대에는 머리를 장식하기 위해 빗을 타래머리 위에 꽂아두곤 했다. 그림은 당나라 화가 장훤이 그린 <도련도(搗練圖)>의 일부(원본이 아니고 송나라 화가가 후대에 모사한 것)  | 퍼블릭 도메인

이렇게 두발을 청결하게 관리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고대 여인들은 머릿결 관리를 아주 중요시해 매일 빗질을 했다. 홍루몽에는 두 여인이 머리를 빗질하는 내용이 아주 상세히 묘사돼 있다. 20회에서, 가보옥은 여자 하인 사월(麝月)의 머리가 가렵다는 말을 듣고는 비녀를 빼고 머리를 풀게 한다. 그러고는 참빗으로 빗질을 해준다. 또 42회에는 대옥이 여러 사람과 담소를 나누다 하인의 머리카락이 풀어지자 급히 화장대로 달려가 민자(抿子‧머릿기름을 바르는 작은 솔)를 꺼내 머릿결을 정리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고대 여인들이 머릿결 관리에 사용하던 도구들은 지금 것보다 더 복잡했다. 고대에는 두 가지 종류의 빗이 있었는데, 빗살 간격이 넓은 것을 ‘소(梳)’라 하고 좁은 것을 ‘비(篦)’라 했다. 역사적으로 석기시대까지 소급할 수 있다. 비자(篦子‧참빗)는 대나무로 만드는데,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나무 띠 위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이 띠 양쪽으로 각각 촘촘한 빗살이 나있어 비듬이나 이를 제거할 수 있었다. 또 민자(抿子)라는 작은 솔이 있었는데, 머리 장식을 할 때 기름을 발라 빗으면 타래머리를 고정하는 효과가 있었다.

비자를 사용한 기록을 보면 고대 여인들의 빗은 단지 아름다움뿐 아니라 보건과 양생을 위해서도 필요했음을 알 수 있다. <황제내경>에는 “하루에 세 번 빗질을 하면 머리카락과 수염이 촘촘해진다”는 기록이 있다. <제병원후론(諸病源候論)>에서도 “빗질을 천 번 하면 흰머리가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귀이집(貴耳集)>에서는 “양생에 중요한 두 가지가 있으니 바로 빗질과 족욕이다”라고 했다. 고대 여인들은 이렇게 천연 물품으로 두발을 청결히하고 매일 빗질을 했기 때문에 매끄럽고 검은 모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어쩌면 빗을 너무 편애했기 때문이겠지만, 고대 여인들은 타래머리 위에 장식으로 빗을 꽂아두기도 했다. <도련도(搗練圖)>에 나오는 당나라 때 여인의 모습을 보면 거의 모든 사람이 머리에 빗을 꼽고 있다. 생각해 보면 꽤 일리가 있다. 머리를 손질할 때 타래머리에 장식용으로 꽂아둔 빗을 바로 뽑아 쓰면 일거양득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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