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 “옛날 옛적에”…아이에게 동화 들려줘야 할 이유

제프 미닉, 이혜영
2020년 3월 24일
업데이트: 2020년 3월 28일

나는 외할머니를 거의 모른다. 2학년 때 돌아가셨지만, 오늘날까지 외할머니의 표정 하나가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돌아가시기 3년 전, 할머니와 나는 위층 방에 있었는데, 할머니가 나에게 ‘빨간 모자’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할머니는 빨간 모자가 늑대한테 “할머니는 이빨이 정말 크네요”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얘야, 클수록 너를 잡아먹기 좋단다” 하며 무섭게 “으르렁~”하며 나를 향해 잡아먹는 연기를 했다. 그때 할머니의 크고 두드러진 앞니는 두고두고 기억이 난다.

이제 내가 아이들과 손자 손녀에게 읽어준다. 그 대목에 이를 때면 내 머릿 속에는 늑대 대신 할머니가 보인다.

 

캠프파이어에서 영화관까지

모닥불을 피워 놓고 둘러 앉아 놀던 시절부터 대대로 사람들은 요정과 도깨비, 곤경에 처한 공주, 마녀, 주문, 인간이 된 동물, 동물이 된 사람 등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구전돼 온 이야기를 수집하고 기록한 민속학자들도 있고,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처럼 직접 동화를 창작한 사람도 있었다.

오늘날에도 옛날 이야기를 리메이크한다.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이 영화관에서 대흥행을 이룬 것은 동화가 지닌 이야기의 힘이 통했다는 증거다.

‘신데렐라’ ‘잠자는 미녀’ ‘미녀와 야수’ ‘인어공주’ 등 디즈니는 친숙한 동화를 영화로 만들어 흥행에 성공했다.

1950년대 ‘셜리 템플의 스토리북’에서 최근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동화는 텔레비전에도 자주 등장했다.

 

동화는 해롭다는 주장

모든 사람이 이 옛날이야기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아니다.

올리비아 페터는 ‘아이들이 동화 읽기를 당장 그만두어야 하는 5가지 이유’에서 동화가 “편견과 낡은 고정관념으로 가득 차 있다”고 공격하며 “여성 혐오적인 등장인물, 격이 떨어지는 줄거리, 인종적 획일성”을 계속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특히 동화 속에서 집에만 있는 여자들, 누가 구하러 오기를 기다리는 공주들, 사악한 계모, 마녀 등을 성차별이라 보며 비판한다.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도 결혼이 늦어지고, 많은 사람이 비혼을 선택하는 문화에서, 의무적으로 ‘결혼해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자’고 강요하는 이야기는 사실 중세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많은 여성이 결혼과 가정을 바라고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 비판에는 묘한 아이러니가 있다. 어린 시절 동화를 듣고 영화를 관람하며 자랐던 여성 대부분은 세계에서 가장 독립적인 세대다. 그러므로, 동화가 여성 정신에 해를 끼친다고 볼 수 없을 것 같다.

요즘 흔히 회자하는 ‘정치적 올바름’이 우리 삶의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비판을 던지는데, 그로 인해 더 큰 그림을 놓치고 있다. 특히 어린이들에게 동화의 중요성을 뒷전으로 밀려나게 했다.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줘야 할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하나, 동화는 선악을 뚜렷하게 묘사하고 구별한다

‘신데렐라’의 그림 형제 버전을 생각해 보자. 디즈니 만화와 달리, 죽음을 앞둔 신데렐라의 어머니는 딸에게 “착하고 경건하게” 살라고 한다. 신데렐라의 언니들은 ’외모가 아름답고 훌륭했지만, 마음속은 검고 추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선과 악의 진정한 갈등을 보게 된다. (원래 이야기 마지막에서는 비둘기 두 마리가 사악한 언니들의 눈을 뽑는다. 동화는 폭력적일 수 있다.)

동화는 선과 악의 협곡을 묘사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악을 물리칠 수 있고, 선이 결국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은 손자들이 상상의 적을 향해 칼자루를 휘두르는 것을 보고, 내가 상대가 누구냐고 물으면, 그들은 항상 “나쁜 놈들(The bad guys)”이라고 대답했다.

아이들이 나이가 들면 도덕적 모호성을 분석할 수 있게 되겠지만, 우선 ‘좋은 놈’과 ‘나쁜 놈’의 기본적 구분을 배워야 한다.

영국 작가 G.K.체스터턴이 말했다. 체스터턴의 생각은 이랬다. “동화에서는 아이들에게 용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아이들은 용이 존재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동화는 아이들에게 용을 죽일 수 있다고 말해준다.” 잭이 콩 나무를 도끼로 잘라 거인을 죽일 때, 그레텔이 마녀를 오븐에 밀어 넣을 때, 적십자 기사가 용을 해치울 때, 아이들은 선이 악을 이겨내는 것을 보게 된다.

 

둘, 동화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우리는 모두 상상의 나래를 펴기 좋아한다. 지난 20년간 스타워즈 영화나 많은 수퍼히어로 영화의 인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아이들도 이런 욕구가 있다. 동화의 환상은 어린이의 현실 이해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상상력을 넓혀준다. 어린이가 놀이를 통해 근육, 균형, 운동 기술을 키우듯이, 동화 역시 마음속에 상상력과 창조적인 놀이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셋, 동화는 어린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삶의 교훈을 준다

‘벌거숭이 임금님’은 인간이 자신을 속일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는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지 말라고 경고한다. ‘아기 돼지 세 마리’는 일이 잘 마무리돼야 함을 강조한다. ‘피노키오’는 거짓말이 나쁘다고 일깨워 준다.

동화는 직설적이지 않으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로 도덕을 전달한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으며 아이는 이러한 교훈을 흡수한다.

‘누군가가 와서 내 죽을 다 먹어 치웠다!’ 영국 삽화가 아서 래컴이 그린 플로라 애니 스틸의 ‘영어동화’ (1918) | Public domain

 

넷, 동화는 인류보편의 문화이자 전통의 일부다.

전통(Tradition)은 라틴어 ‘tradere’서 유래했다. ‘전하다, 넘겨주다’는 뜻이다.

동화는 앞 사람들이 구축했던 문화의 일부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수단이자 행위이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은 문화와 전통의 가치를 잘 느끼지 못한다.

문화와 전통은 그 당시 사람들이 앞 세대에게 물려받은 것을 직접 경험하고 몸으로 부딪혀가면서 다시 정련해 응축한 지혜의 체현이다.

동화도 그 중 하나다.  아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어 문화적 소양을 키워주면 좋겠다.

오늘 하루종일 스마트폰과 함께한 아이에게 동화책을 들고 다가가서 이렇게 말해주자.

“옛날 옛적에…”

아이에게 평생 남을 기억과 추억을 선사하는 일이다.

 

제프 미닉(JeffMinick.com) 은 자녀가 네 명이고 손자 손녀도 많다. 20년 동안 뉴욕주 애쉬빌 홈스쿨링 학생들을 위한 세미나에서 역사, 문학, 라틴어를 가르쳤다. 현재 버지니아주 프런트 로얄에 살며 글을 쓴다. 원 기사는 인텔리전트 테이크아웃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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