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중국고전무용의 ‘진짜’ 이야기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중국고전무용의 ‘진짜’ 이야기

중국 고전무용을 선보이고 있는 션윈 무용수들 | ©Shen Yun Performing Arts

2020년 1월 4일

클래식 발레는 모호함이 없다. 그 기원과 발전 과정, 뛰어난 안무가와 무용수들, 그들이 활약한 시대에 대한 기록이 명확하다.

영원한 레퍼토리인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등은 지금도 무대에 오르며 관객의 사랑을 받는다. 발레와 관련된 전통은 수 세기에 걸쳐 이어진다.

동양에도 클래식 발레와 견줄만한 무용이 있다.

영미권에서 ‘차이니즈 클래시컬 발레’(chinese classical ballet)로 불리는 중국고전무용(中國古典舞)이다. 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시작됐는지 아는 이가 없고 발전과정도 복잡하다.

그러다 보니 ‘썰’도 많다. 중국 공산 정부에서 후원하는 베이징무도학원(北京舞蹈學院)에서는 자신들이 중국고전무용을 ‘발명했다’고 주장한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베이징무도학원에서 온갖 무용을 다 가르치다 보니 젊고 재능있는 무용수와 학자들이 혼동을 일으켜서 잘못된 결론을 내린 것이다.

중국 고전무용 복원에 노력해 온 무용연구가 궈화핑(郭華平)은 “베이징 무용학원에 보유한 것은 고전무용을 재편집한 동작과 교수법, 프로그램이다”며 “5천년 역사를 지닌 고전이 어떻게 현대의 교육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번영했던 중국 전통극

1935년 중국에서 태어나 베이징에서 자란 궈화핑은 고전무용이 어떻게 발전하고 대중의 사랑을 받았으며 그 후 사회변동에 따라 전혀 다른 것으로 변모했는지를 목격했다.

궈화핑 | ©Shen Yun Performing Arts

궈화핑은 “열세 살쯤 되었을 때 춤을 시작했고, 지금껏 다른 일을 해 본 적이 없다. 춤은 내게 운명이었다”며 새해가 되면 절에서 춤과 무술 공연이 열렸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 중국은 문화대혁명이 발생하기 전 초기 공산주의 국가였다.

“어렸을 때 살던 곳 근처에 절이 2곳 있었다. 그곳은 경건한 장소였는데 옛 황제들이 하늘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세운 큰 건물이 있었다. 명절 때면 사람들이 찾아와 신에게 기도하고 향을 피우고 공연을 관람하는 축제의 장이 됐다.”

“경극(京劇) 공연도 열렸다. 경극 배우들은 화려한 의상과 연기, 춤, 다양한 소품과 동작을 보여줬다. 어린 나는 집에서 그런 동작을 따라 하며 놀았다.”

궈화핑은 철들고 나서야 어릴 적 봤던 경극이 오랜 세월 계승된 진정한 전통 공연예술임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게 진짜 중국 춤이었다.”

어릴 적 경험은 훗날 그녀의 삶에 중요한 초석이 됐다. 중국무용은 곤극(崑劇·곤산 지방의 전통연극), 경극 등 300여 종에 달하는 전통극 속 춤에 기원을 두고 있다.

궈화핑은 공연예술군사연구소에 입학했고 경극과 단편극에 재능을 보였다. 연구소의 학생들은 모두 경극 수업을 들었는데, 경극은 전통 공연예술을 위한 기본과정이었다.

경극 수업은 이론 교육이나 발성훈련이 따로 없이 교사의 시연으로 진행됐다. 경극 전승자였던 교사들은 유명한 경극의 한 장면을 보여준 다음 학생들에게 스텝, 동작, 노래, 무대매너를 가르쳤다. 일종의 도제식 수업이었다.

궈화핑은 “당시 여러 예술단에서 경극이나 곤극 같은 전통극 속의 무용을 통해 고전무용의 기법을 익히고 편집했다”고 설명하며 머리의 회전, 손의 움직임, 손가락 자세 등 몇 가지 기법을 명칭과 함께 선보였다.

그녀는 또한 캐릭터들이 무대에 등장하는 방식과 소품 사용법을 알려줬다. 그녀는 이런 시연을 통해 중국의 고전예술이 오늘날 서양 클래식 발레처럼 동작과 기법에 대한 용어, 레퍼토리가 정립된 체계적인 예술임을 알리려 했다.

궈화핑이 연구소에 입학하고 몇 년 뒤인 1954년 중국 정부는 베이징무도학교(베이징무도학원의 전신)를 설립했다. 이를 계기로 중국무용은 큰 변화를 맞게 됐다.

베이징무도학교는 중국무용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려 했다. 우선 경극 교사들을 면담하고 구소련에서 발레 강사를 초빙해 수업을 지도하도록 했다. 발레 강사들은 경극 등 전통극에 클래식 발레의 교수법을 도입해 중국무용을 재구성했다.

궈화핑은 “소련 무용수들이 중국무용과 발레를 혼합한 형태의 무용을 만들었다”고 했다. 오늘날 여러 무용수들이 중국 고전무용에 대해 “경극의 손동작에 발레의 발동작을 합쳐서 만든 무용”이라고 여기게 된 이유다.

베이징무도학교의 무용교사들은 수천 년에 걸쳐 발전해 온 무용기법은 적게 가르치고, 발레 강사들이 개발한 새로운 기법을 가르쳐야 했다. 이 과정에서 적잖은 교사가 따라가지 못했다. 기존에 쓰던 어휘들은 발레 용어로 대체됐다. 쿵후와 비슷한 공중제비 동작 같은 몇몇 주요기법은 아예 사라졌다.

션윈 소속 무용수 카이디 우(Kaidi Wu)가 2016 NTD 국제 중국고전무용 경연대회에서 공중회전을 선보이고 있다. 이런 고난도 도약기술은 발레가 중국 고전무용에 섞여들면서 사라졌다. | Larry Dai

교습방식에도 구소련의 교수법이 도입되면서 중국 전통무용의 근본적인 부분들에도 변형이 가해졌다.

궈화핑과 함께 중국 고전무용 보급에 힘써온 무용 전문가 비나 리(Vina Lee)는 “발레와 중국무용은 차이가 매우 많다”고 말했다.

뉴욕 페이톈 칼리지의 총장인 비나 리는 “발레는 아름답고 긴 선, 깨끗한 도약과 착지에 관한 것이다. 반면 중국무용은 동작이 둥글고 원형적이다. 움직임은 폭발적으로 시작되고 끝난다”라고 말했다.

비나 리(Vina Lee) | ©Shen Yun Performing Arts

비나 리는 중국무용과 발레가 한창 혼합되던 시기 중국에서 무용 훈련을 받고 성장했다. 그녀는 “중국무용과 발레가 이미 너무 많이 섞여버려, 어느 게 발레에서 유래되고 어느 게 전통무용에서 유래됐는지 구분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녀는 “베이징무도학원에서 중국무용과 발레를 섞은 무용을 내세우자 온 나라가 따라 했다”며 “무용수는 모두 토슈즈를 신어야 했다”고 했다. 토슈즈는 발끝으로 설 수 있게 만들어진 발레 전용 신발이다.

이어 “중국적인 것을 발레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베이징무도학원에서는) 서양 언어로 전통문화를 전하고 있다”고 했다.

일상회화를 다른 언어로 번역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무용은 문화적 배경에 깊게 뿌리내린 예술이다. 예를 들어 동양에서는 서양 예술의 ‘피에타’(Pietà, 성모마리아가 죽은 그리스도를 안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 자비·연민을 표현)라는 개념이 없다. 마찬가지로 서양에서는 동양예술의 주요 주제인 정신수양 문화가 낯설다.

비나 리는 “몸짓 하나하나에 문화적 차이가 있다. 이런 작은 차이가 모이면 큰 격차가 생긴다”며 “상체는 중국무용인데 발에는 토슈즈를 신고 있으면 그건 무엇을 전달하는 무용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동양과 서양은 문화적 배경에서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동양에는 서양 예술 주제의 하나인 ‘피에타’(Pietà)라는 개념이 없다. 서양에서는 정신수양을 위한 명확한 모델이 없다. 사진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바티칸 미술관. | CC-BY-SA 3.0

그녀는 “발레가 아름답지 않거나 완전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중국무용과 발레는 완전히 다른 장르라는 이야기다”라며 “게다가 중국 공산당에서 추진한 ‘혁명 발레’는 체제 선전을 위한 것으로 클래식 발레와도 매우 달랐다”고 했다.

중국무용의 재난은 발레와의 퓨전에만 그치지 않았다.

중국 공산당은 체재 선전을 위해서는 대중의 인기를 끄는 중국무용이 필요했다. 그러나 무용에 담긴 전통문화는 방해요소였다. 그래서 전통적인 중국무용 공연을 억제했다. 사람들은 주요 작품과 소재, 동작을 잊어버리거나 잊도록 강요당했다. 그 대신 발레와 섞인 ‘새로운’ 중국무용은 대규모로 공연됐다. 사람들은 점차 전통적인 무용공연을 찾지 않게 됐다.

구소련을 통해 들어온 발레와 섞인 중국무용은 다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문화대혁명이다.

1960년대 중국과 소련이 결별하면서 발레 교사들은 중국을 떠났다. 그리고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고 무용계에도 그 여파가 찾아왔다.

중국 전통문화의 대재난 문화대혁명

비나 리는 문화대혁명 당시의 잔인했던 폭력을 언급하면서 “사람들은 중국공산당을 따르거나 아니면 수용소에서 일해야 했다”며 “그래서 일정 기간 중국의 예술적 발전이 중단됐었다”고 말했다.

1966년 말 베이징에 전시된 이 포스터는 문화대혁명 당시 홍위병이 ‘인민의 적’을 대하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암흑기에 예술은 사람들을 ‘재교육’하는 데 사용됐다. | Jean Vincent/AFP/Getty Images

이 시기에 양반시(樣板戲, 혁명모범극)라는 작품이 만들어졌다. 양반시는 마오쩌둥(毛澤東) 공산당 주석의 세 번째 부인 장칭(江青)이 고안한 무용극으로 공산주의 혁명을 미화하고 마오쩌둥을 숭배하는 내용이었다. 인민들에게 허용된 몇 안 되는 볼거리였다.

궈화핑은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그때에는 누구도 감히 다른 극을 공연하지 못했다. 마오쩌둥은 옛것을 자신이 만든 새것으로 바꾸려 했다. 그는 위대한 성인인 공자마저 내팽개쳤다. 누가 전통적인 콘텐츠를 만들려 했겠나?”

그녀는 양반시에서 등장했던 동작을 해 보였다. 어린아이가 몹쓸 악당을 비웃을 때나 보일만한 표정과 모습이었다. 오늘날 중국의 대표적 ‘민족 발레’ 작품인 ‘홍색 낭자군’(紅色娘子軍)’에서는 실제로 그런 동작을 볼 수 있다. 법도를 지키며 우아하게 움직이는 클래식 발레로 폭력적인 마르크스적 주제를 표현한 공연은 무용계의 프랑켄슈타인과 같다.

문화대혁명 이후 중국 곳곳의 무용학교는 공연단으로 바뀌었고, 행정단위가 바뀌면서 다시 여러 차례 이름을 바꿨다. 궈화핑은 “발레학교는 남아있었지만 ‘중국전통무용’ 혹은 ‘중국고전무용’을 명칭으로 하는 학교는 없었다”고 했다.

과거 중국무용에서 사용했던 공중회전이나 발차기 동작 같은 전통무용의 기술들은 체조와 곡예에서 흡수했다. 당시의 무용은 철학이 거의 없는, 마치 여러 가지 물건을 한꺼번에 집어넣은 가방 같았다. 문화를 버린 사회에서 예술가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없었다.

궈화핑은 “매우 난잡한 시기였다”고 당시를 평가했다. 그녀는 “가장 나빴던 것은 중국인이 무엇이 중국의 것이었는지 알아볼 수 없게 된 것”이라며 “우리는 자신의 전통마저 알아볼 수 없게 됐다”고 했다.

비나 리 역시 중국인으로서 특별히 자신을 자랑스러워한 적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중국고전무용과 중국 전통문화를 배우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녀는 “전에는 중국 예술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고, 솔직히 관심도 없었다.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몰랐다”며 “나는 뉴욕에 와서야 중국 문화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정신과 신체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배움의 과정이었다”고 했다.

클래식 발레가 수세기 동안 서양 문화의 한 얼굴이었다면 중국 고전무용은 미적인 움직임으로 중국 전통문화를 나타내는 얼굴이었다.

나는 먼저 문화가 무엇인지 깨달아야만 했다. – 비나 리

전통문화의 가치에는 그 문화가 성장해 온 시간의 가치도 함께 담겨 있다. 중국의 전통문화에는 공자나 노자의 시대를 거쳐 5천년 세월이 함축됐다.

명나라 후기 풍경화 화가 장로(張路, 1464~1538)의 노자기우도(老子騎牛圖). 대만 국립고궁박물관. | Public Domain

그러나 1969년 집권 이후 70년 사이 공산주의자들은 중국 전통문화를 거리낌 없이 파괴했다.

비나 리는 중국고전무용을 제대로 추려면 무용수가 중국 전통문화를 깊이 이해하는 것이 필수라고 했다.

“중국 고전무용은 전형적인 스토리텔링 예술이다. 강희(康熙) 황제, 악비(岳飛) 장군, 시인 이백(李白) 같은 중국의 역사적 인물을 연기하려면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전체 스토리의 문화적 맥락도 알아야 한다.”

중국의 전통문화는 하늘과 땅의 조화, 신에 대한 경외심을 바탕으로 한다. 삼황오제로 불리는 고대의 황제들은 신과 소통하거나 신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역사책에서는 기록했다. 고대 중국에서는 농업, 의학, 문자, 의복 같은 생활양식과 사회제도, 통치방식까지 신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었다.

다시말해, 문화전반에 영적인 흐름이 내재됐다. 그래서 내면의 순수와 고요함이 없다면 중국고전무용을 오롯이 추기 어렵다.

무용수 토니 쉐(Tony Xue)가 중국의 역사적 장군에 대한 경의를 담은 작품 ‘젊은 한신’을 연기하고 있다. 토니는 이 작품으로 2009년 NTD 국제중국고전무용 경연대회 주니어 남성 부문 1등상을 받았다. | 에포크타임스

잃어버린 고전무용을 되찾다

공산주의 운동은 무신론을 표방하며 전통문화를 황폐화했기 때문에, 오늘날 중국의 예술가들은 전통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어도 쉽지 않다고 비나 리는 지적했다.

“중국문화에는 여성스러움과 남자다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이 있기에 무용이 그것을 표현하는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리는 중국 전통예술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에 잘 맞지 않는 작품이 있을 때 구분할 수 있게 됐다.”

중국고전무용의 복원에 기여하는 또 다른 문화요소가 있다. 지난 5천년 동안 계승된 중국의 각종 무술들이다.

중국고전무용의 몇몇 동작은 무술 동작과 흡사하다. 중국어에서 춤을 뜻하는 ‘舞(무)’자와 무술을 뜻하는 ‘武(무)’는 발음도 비슷하다.

NTD 국제 중국고전무용 경연대회에 참가한 한 무용수의 경연 장면 | 에포크타임스

실제로 무용과 무술은 같은 동작을 공유한다. 비나 리는 주먹을 내지르는 무술 동작을 보이고 다시 같은 동작을 무용으로 해 보였다. 그녀는 “춤에 사용할 때 동작은 더 아름답게 표현된다”고 했다.

중국고전무용은 수천 년 동안 황실과 장원, 절에서 전통극 공연으로 혹은 거리 민초들의 놀이를 통해 이어져 왔으나 근대에 들어와 다른 장르의 무용과 섞이며 그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다.

그러나 다행히 무술은 그런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무술은 사회의 관심 밖으로 멀어지고 정신적인 면이 희석되었어도 동작 자체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산속에서 수행하는 무술가들 역시 원래의 동작을 그대로 보존해왔다.

비나 리는 “무술 동작은 기능이 분명하기에 쉽게 바꿀 수 없다. 만약 동작을 바꾸면 기능을 잃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로 인해 중국무술은 고유의 다양한 동작과 그 흐름이 보존됐다. 이제 그것은 고전 예술가들에게 축복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고전무용을 표현력이 풍부하다고 평가한다. 무술과 경극을 통해 보존되어 온 고전무용의 동작들은 매우 생생한 몸짓 언어다. 각각의 동작에 모두 의미가 담겨 있다. 이를 ‘윈(韻·운치)’이라 한다.

전설적인 황제나 영웅에서부터 평범한 선비나 청나라 궁정의 공주를 우리가 무대에서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의상과 분장 때문만은 아니다. 무용수가 내적으로 캐릭터를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무용에서 가리키는 ‘윈’이다.

고전무용에서 전통문화의 중요성

이는 무용이 기교만으로 충분할 수 없는 이유다. 무용수는 훈련을 통해 놀라운 신체능력을 선보일 수 있지만, 무대에서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는 ‘어휘’를 지니고 있지 않다면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제한적일 것이다.

클래식 발레 학위와 함께 중국고전무용 학사·석사 학위를 제공하는 미국 내 유일한 대학인 페이톈 칼리지의 드레스 리허설 장면. | © Fei Tian College Middletown

비나 리는 “중국고전무용을 완전히 이해하면 그것이 ‘풍부하고 정교한 언어’임을 느끼게 된다”고 했다.

“중국고전무용수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많은 무용수가 중국고전무용을 배우는 과정을 ‘사람됨의 의미를 배우는 과정’이라고 한다. 공연 예술가로서 인간의 경험, 깊이, 위대함을 번역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천재적인 작곡가들과 중국고전무용수들이 이제 신의 영감이 깃든 옛 중국의 문화와 역사를 해석해 내고 있다.”

“도덕적이고 문화적인 토대가 있어야 한다. 이는 사람들이 중국고전무용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다. 관객들에게서 ‘공연이 아주 아름답다, 천상에서 온 것 같다’는 소감을 종종 듣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왜 그런 고요함을 느끼는지는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비결은 단순한 데 있다. 무대에 오르는 예술가들이 아름다움, 진실, 선과 같은 보편적이면서도 초월적인 그래서 자연스러운 미덕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전통무용은 뜻(意)이 동작을 이끈다. 숙련된 무용수는 풍부하고도 정교한 몸짓언어로 표현하기에 관객은 그의 뜻을 접수할 수 있다.

비나 리는 “형태 자체가 무한하지는 않지만 무한한 것을 전달할 수는 있다”며 “이는 우리의 영혼에서 뿜어져 나오는 표현”이라고 덧붙였다.

전통으로 돌아가다

궈화핑과 비나 리는 중국고전무용단인 션윈(Shenyun)의 단장과 예술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제무대에서 거둔 션윈의 성공은 중국 본토 예술그룹에도 자극이 됐다. 중국의 몇몇 예술학교와 공연단에서는 나름의 스타일을 살린 공연 프로그램을 내놓았지만 큰 반향을 얻지는 못했다. 중국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다.

션윈은 세계 정상급 중국고전무용단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여전히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5천년 전통은 매우 소중하며 소중히 여겨져야 한다 — 궈화핑

궈화핑은 “5천년 전통은 매우 소중하고 소중히 해야 할만하다”고 말했다. “전통은 우리의 책임과 분리될 수 없다. 우리 예술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

그는 “우리는 전통과 전통적 가치로 회귀하고 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현대적 가치관을 지닌 관객에게 우리의 공연은 멀게 느껴질 수 있다. 옛 영웅들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하고 자문했다.

이어 “우리가 청중들에게 전달하려는 것은 의미와 가치다. 표를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객들에게 최고의 것, 인간이 구축한 최고의 문화와 지혜를 전하려 여기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고전무용은 발레와 달리 고전적인 레퍼토리가 없다. 교수법은 지난 수십 년간 여러 예술학교에 의해 변경점이 가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몸짓, 움직임의 체계, 기교, 스토리, 내면에서 우러나는 표현은 신성함이 깃든 5천년 문명에서 탄생한 것이 틀림없다.

중국 본토 무용계에서는 유구한 전통을 외면하고, 중국고전무용을 채 100년이 못미치는 짧은 역사의 공산주의 중국에서 폭력 혁명에 의해 변질된 문화에 접목시키려 하고 있다.

궈화핑이 본토에서 목격했던 중국무용의 ‘발전’은 예술가들이 스스로의 고민과 노력, 해답찾기를 통해 쌓아온 발전이 아니다. 정권에 의해 지시된, 마르크스 이데올로기 추진의 결과일 뿐이다. 이는 오늘까지도 진정한 중국무용의 전통 계승을 방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