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취에 숨 막혀” 토요일마다 울리는 베이징 공중전화

정향선 인턴기자
2022년 10월 7일 오후 8:26 업데이트: 2022년 10월 7일 오후 11:11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아진 이후로 베이징의 공중전화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런데 올해 7월의 어느 토요일, 베이징의 한 공중전화에서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이 공중전화는 토요일 오후만 되면 계속 벨이 울렸다. 공중전화로 전화를 건 사람들은 하나같이 랴오닝(遼寧)성 후루다오(葫蘆島)시의 시민들이었다. 그들은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후루다오 시민 훙위씨 “성·시 당국이 심각한 환경 오염 민원을 무마” 

10월 3일(현지시간) 미 공영 라디오 방송 NPR이 전한 이야기는 이렇다. 지난 7월 어느 날 NPR 기자는 벨이 울리는 공중전화를 받았다. 랴오닝성 후루다오시에 사는 훙위(Hong Yu)씨는 “공기에서 코를 찌르는 아몬드 향 비슷한 냄새가 난다. 집에서도 숨이 막힌다”며 “누가 목구멍을 움켜쥐고 있는 것처럼 아프다”고 호소했다. 

후루다오 시민들이 지난 몇 년 동안 아연(Zn) 제련공장을 비롯해 여러 농약·화공약품 업체가 배출한 오염물질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고 훙위 씨는 주장했다. 후루다오에는 271만 명이 살고 있다.

후루다오 시민들은 자신들이 측정한 공기오염도를 기록한 청원의 글을 올렸다. 하지만 이런 글은 인터넷에 공개되자마자 삭제됐다. 훙위씨와 이웃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랴오닝 성 환경보호청과 후루다오 시청에 수십 회 민원을 제기했지만 모두 처리되지 않았다. 

훙위씨는 “지역 정부가 경제 발전을 핑계로 우리의 건강을 희생하라고 강요하고 있다”며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도움을 청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후루다오 시민들 “정치 중심인 베이징의 공중전화로 목소리를 내”

‘넛츠브라더’라는 중국 행위예술가 겸 시민운동가는 후루다오 시민들의 고충을 접한 뒤 그들에게 다른 방법으로 목소리를 내라고 충고했다. 그는 온라인에 올린 글을 통해 “(후루다오) 시장 사무실 핫라인 대신 매주 토요일 오후 3~5시 사이 베이징의 공중전화에 전화를 걸어 민원을 제기하자”고 제안하고 이를 실행할 지원자를 모집했다. 후루다오시 공중전화 부스에 이런 제안을 담은 포스터도 붙였다. 

그러자 후루다오 시민들은 너도나도 정해진 시간에 베이징의 공중전화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NPR은 “그들(후루다오 시민들)은 중국의 정치 중심인 베이징의 공중전화에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후루다오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리고 대중의 관심을 끌려고 온갖 힘을 썼다”고 설명했다

훙위씨, 더우인에 ‘거짓 정보 전파’ 사과영상 게시 

그런데 몇 주 뒤 훙위씨는 후루다오 시당국에 구금됐다. 24시간 뒤 풀려난 훙위씨는 ‘더우인(틱톡의 중국 버전)’에 사과 영상을 올렸다. 그는 영상에서 “일전에 네티즌들의 ‘좋아요’ 영상 반응을 노리고 거짓 영상을 제작했다”며 아연 공장의 오염에 대한 ‘거짓 정보’를 공유한 것을 사과한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사실 후루다오에서 잘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NPR는 이를 두고 “훙위씨가 위협을 받고 해당 영상을 촬영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방송은 중국 당국의 디지털 세계 통제는 외부 사람들이 후루다오 시민들을 돕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피해자 증언을 수집하는 자 VS 도움 요청 전화를 말리는 ‘베이징 시민’

그럼에도 베이징의 자원봉사자들은 ‘넛츠브라더’와 함께 당국의 감시를 피해 베이징 공중전화를 받고 그 내용을 기록해 전파하고 있다. 

후루다오 시민들의 도움 요청을 하는 공중전화 | 인터넷 사진

후루다오 시민들의 노력을 방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공중전화 도움 요청’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한 달 후 해당 공중전화에서 ‘핫라인’을 받는 사람은 화난 인근 주민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후루다오 시민들에게 “다시는 이 번호로 전화를 하지 마라. 아무도 관심 없다”고 답했다.  

NPR은 “9월 말 기자가 과거 벨이 울렸던 공중전화에 전화를 걸었으나 벨이 울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中 매체, 유독가스 배출 공장 21 곳 운영 중단·조사…시민들 “안 믿어” 

후루다오시는 항만도시로 발해만에서 동중국해로 출발하는 국제항구다. 베이징과 선양(瀋陽)의 중간에 있는 교통 요충지로, 중국 동북부와 화북을 연결하는 전략 거점도시이기도 하다. 후루다오는 또한 풍부한 광물과 천연가스 자원을 갖고 있다. 

이곳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아연제련 공장이 있다. 방송은 ‘2022년 후루다오시 공장 오염물질 배출 현황 리스트’를 인용해 시내 공장 194곳이 기준치를 넘는 오염물질을 배출해 시 환경보호청의 제재를 받았다고 전했다. 리스트에 오른 공장 약 4분의 3이 금속 및 화학 공장이었다. 

지난 7월 22일 중국 매체 펑황왕(鳳凰網)은 후루다오 시 당국이 제한치를 초과한 유독가스를 배출한 공장 12곳을 조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해당 공장들은 조사받는 동안 운영을 중단해야 한다고 매체는 설명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대중의 관심이 사라지면 공장들은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작업을 재개할 것”이라며 “지금은 해당 공장들이 정부 조사가 느슨한 밤 시간에 비밀리에 가동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우려했다.   

오세훈 서울 시장 “중국, 서울 대기질 영향 요소의 40% 차지…마땅한 대화 창구 없어”

후루다오시의 환경오염은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끼친다. 지난달 28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대기질 개선 기자설명회에서 서울의 대기오염 원인 가운데 40%가 중국의 영향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오 시장에 따르면 현재는 중국과의 대화 창구가 마땅치 않다. 10여 년 전에는 서울, 도쿄, 베이징 시장이 정기적으로 만나 여러 문제를 논의하는 협의체가 있었지만 지금은 가동되지 않는다. 

오 시장은 “서울 베이징 통합위원회 환경팀이 꾸려져 대기질 관련 협조를 논의하기도 했지만 실효성 있게 작동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상황은 아니다”면서 “임기 중 (협의체를) 되살릴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 진전을 만들 수 있도록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