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서방에 침투하다 (하)

9평 편집부
2018년 7월 11일 업데이트: 2019년 7월 21일

목차

6. 사탄을 숭배하는 신(新)마르크스주의자들
7. 좌파가 체제 내에서 장정(長征)을 개시하다
8. 정치적 올바름, 악마의 사상경찰
9. 유럽에 만연한 사회주의
10. 우리는 왜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나

 

* * *

 
6. 사탄을 숭배하는 신(新)마르크스주의자들

1960년대 서양 청년들의 길거리 혁명이 한창이었을 때 그들의 유치함과 진지함, 그리고 이상주의를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진정한 급진주의자는 긴 머리카락이 의사소통과 조직에 심리적 장애가 된다고 판단하면 그의 머리카락을 잘라 버린다”고 말했다. 이 사람은 바로 사울 알린스키(Saul Alinsky)다. 그는 책을 저술하고 이론을 만들고 학생을 가르치고 몸소 실천하는 일을 통해 최근 수십 년간 가장 영향력이 크고 가장 악질적인 변종 공산주의자가 됐다.

알린스키는 레닌과 카스트로 등 공산주의 독재자들을 숭배했을 뿐만 아니라 마귀 사탄에 대해서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의 가장 널리 알려진 저서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Rules for Radicals),(1971)>의 서문에서 알린스키는 루시퍼(사탄)에게 경의를 표했다. 죽기 얼마 전 성인잡지 ‘플레이보이’와의 인터뷰에서 알린스키는 “만약 죽은 후에도 지각(知)이 있다면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지옥을 택할 것이며, 그곳의 무산자들을 조직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나의 동류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1]

알린스키를 ‘변종 공산주의자’라고 칭하는 이유는 그가 1930년대의 ‘구좌파(정치 좌파)’나 1960년대 ‘신좌파(문화 좌파)’와 달리 정치적 이상을 정면으로 설명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에는 유산자, 소산자, 무산자가 존재한다고 애매 모호하게 표현했다. 그는 무산자가 유산자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어떤 수단으로든 재산과 권력을 강탈해 절대적으로 공평한 사회를 실현할 것을 호소했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빼앗고, 동시에 현존 사회제도를 파괴할 것을 강조했다. 일부 학자는 그를 ‘포스트 공산주의 좌파의 레닌’ 혹은 ‘군사(軍師)’라고 불렀다.[2]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에서 알린스키는 ‘지역사회 조직화’ 이론과 방법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했다. 규칙에는 ‘속전속결, 적에 대해 강한 압력을 유지할 것, 위협은 공격보다 더 무섭다(협박은 전술 행동 자체보다 더 위협적이다), 비웃음은 가장 강력한 무기다, 적을 분열시키고, 목표를 고립시키며 인신공격을 한다’ 등이 포함된다.[3] 규칙의 핵심은 바로 목표를 달성하고 권력을 탈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보기에도 메마른 지역사회 조직 규칙은 실제 운용 중에서 그 흉악한 몰골을 드러냈다. 베트남 전쟁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던 1972년 당시 유엔 주재 미국 대사였던 조지 W부시 전 대통령은 툴레인대(Tulane University)에서 연설을 했다. 반전 학생들은 알린스키에게 조언을 구했다. 알린스키는 공개적으로 항의를 하기에는 새로운 내용이 부족하고 효과가 적으며, 항의자들이 제적을 당할 수도 있다고 답했다. 대신 알린스키는 KKK단의 옷차림을 하고, 부시가 베트남 전쟁을 위해 대변할 때마다 일어서서 갈채를 보내며, ‘KKK단은 부시를 지지한다’고 적힌 피켓을 흔들어 보라고 제안했다. 학생들이 계략대로 움직였더니, 역시 대단한 형세를 만들어 냈다.[4]

알린스키와 그의 추종자들이 흥미진진하게 계획한 두 가지 시위가 더 있었다. 1964년 시카고시 당국을 협박해 그들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알린스키는 음흉한 시위 계획을 세웠다. 시카고의 오헤어 국제공항은 세계에서 가장 분주히 돌아가는 공항의 하나였다. 알린스키는 만약 공항 밖에서 시위를 하면 수천 명을 동원하더라도 큰 관심을 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 공항 내 화장실을 장시간 점거하면 극도의 혼란이 조성될 것이며, 시카고시 당국은 국제적 스캔들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알린스키는 사람을 보내 현지답사를 한 결과,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대략 2500명이 필요함을 알게 됐다. 실행에 앞서 그는 고의로 이 소식을 시카고시 당국에 흘렸고, 당국은 어쩔수 없이 그들에게 협상하자고 요청해야 했다.[5]

알린스키는 뉴욕주 로체스터시 당국을 협박해 흑인 고용을 늘리려고 비슷한 수법을 구상해냈다. 로체스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은 현지의 중요한 문화행사였으며, 시 정부도 이 전통을 매우 소중히 여겼다. 만약 공연을 망쳐 버린다면 로체스터시는 전국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기에 그들이 제시하는 조건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것으로 봤다. 알린스키가 기획한 행동은 이러했다. 흑인 100명을 고용해 음악회 티켓을 한 장씩 사 주고는 공연 직전에 무료 만찬을 제공하는 것인데, 음식은 오직 구운 콩 한 가지뿐이다. 콩을 먹고 난 후, 그들은 분명 끊임없이 방귀를 뀔 것이고, 그러면 우아한 문화행사는 망쳐 버릴 것이다. 이 계획이 전해지자 시 당국은 부득이 요구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6]

알린스키의 책을 읽어보면 음험하고 냉혹한 인상에 섬뜩함을 느끼게 된다. 그가 주창한 소위 ‘지역사회 조직’은 일종의 점진적이고 변칙적인 혁명이었다. 그의 혁명 이론과 실천은 이러한 특징을 갖고 있다.[7]

첫째, 신구 좌파들은 적어도 수사(修辭)에서 여전히 이상주의 색채를 띠고 있지만, 알린스키는 모든 이상주의 옷을 벗겨 내고 혁명을 노골적인 권력투쟁으로 바꾸었다. 그가 지역사회 조직 훈련을 할 때, 관례대로 수강생들에게 “당신들은 왜 지역사회 조직을 진행하는가?”라고 묻는다. 어떤 사람이 타인을 돕기 위해서라고 대답하자, 알린스키는 그들을 향해 “너희들은 권력을 위해 조직한다!”라고 소리쳤다. 그의 훈련 지침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우리는 권력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미덕이 넘치지 않고, 오히려 권력을 원하지 않아서 겁쟁이가 된다.” “권력이 있는 것은 좋은 것이고, 권력이 없는 것은 나쁜 것이다.” 그의 추종자 훈련 지침서에는 놀랍게도 “너희 교회와 단체에서 좋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제거하라”고 했다.

둘째, 알린스키는 정부와 사회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1960년대 반항적인 젊은이들에 대해서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는 가능하면 체재 내에 진입해야 하고, 심지어 협력하는 자세를 보여 주면서 기회를 기다리거나 전복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셋째, 알린스키의 궁극적인 목표는 파멸과 전복이지, 누군가에게 이득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가 계획을 실행할 때는 반드시 진짜 목적을 숨기고 국부적이거나 단계적인, 그리고 합리적이거나 무해한 것 같은 목표로 대규모 군중을 동원해 행동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이러한 변동에 적응했을 때, 그들을 더욱 급진적인 목표를 위해 행동하게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워진다. 알린스키는 “그 어떤 혁명적인 변혁이 일어나기 전에, 변혁 자체에 대한 군중의 태도는 반드시 피동적이고 긍정적이어야 하며, 대립적이지 않아야 한다. 기억하라. 일단 군중이 오염과 같은 쟁점이 없는 문제를 위해 조직하기 시작하면, 조직된 군중은 행동을 개시할 것이다. 오염에서 정치 오염에 이르기까지, 다시 펜타곤의 오염에 이르기까지는 단지 자연스러운 한 걸음일 뿐이다”라고 했다. 알린스키의 영향을 깊이 받은 민주사회학생회(SDS)의 지도자는 급진적인 시위의 본질에 대해 한마디로 설파했다. “문제의 의의는 문제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문제는 영원히 혁명이다.” 60년대 후의 급진적 좌파들은 알린스키의 영향을 깊이 받아 창조적으로 모든 사회 문제를 당국과 체제에 대한 불만으로 이끌었고, 그 어떤 사회적 이슈도 그들의 손에서 모두 혁명을 추진하는 디딤돌로 변했다.

넷째, 알린스키는 정치를 하나의 아무런 도덕적 마지노선이 없는 게릴라 전쟁과 전면 전쟁으로 몰아갔다. 그의 지역사회 조직 책략을 설명할 때, 알린스키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항의 행동은 적들의 눈, 귀, 코에 작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알려 줬다. ▲만약 한 조직의 인원수가 충분하면, 백주 대낮에 기세 높은 행진을 해 적들이 볼 수 있게 한다. ▲인원수가 충분하지 않으면 어두운 곳에 숨어 요란하게 떠들어서 적들이 듣고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만약 사람이 너무 적어 떠들어대는 것도 할 수 없다면 그곳을 악취가 풍기도록 더럽힌다.

다섯째, 알린스키는 정치 행동에서 나태, 탐욕, 시기, 증오 등 인간성의 가장 사악한 부분을 이용할 것을 강조했다. 때로는 그가 이끄는 행동이 참가자들에게 파리 대가리만 한 작은 이익을 쟁취해주기도 하는데, 이는 그들을 더욱 사리사욕에 눈멀게 하고 파렴치하게 만든다. 자유국가의 정치제도와 사회질서를 전복하기 위해 알린스키는 도덕을 타락시키는 것도 불사했다. 따라서 일단 권력을 장악하면 옛 동지의 생명과 복지를 결코 소중히 여기지 않을 것인데, 이는 간단한 추론이다.

수십 년 후에 미국 정계의 거물 두 명이 알린스키의 영향을 깊이 받아, 미국과 문명 및 전통적 가치관을 뒤엎는 조용한 혁명을 체제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와 동시에, 알린스키가 주창한 마지노선이 없는 게릴라전과 무제한 전쟁 방식의 시위가 1970년대 이후 미국에서 크게 성행했다. 1999년에 시애틀에서 세계무역기구(WTO)를 반대하는 자들이 구토를 유발하는 약물을 먹고 광장이나 회의장에서 구토를 하는 집단 시위, ‘월가 점거(OWS)’ ‘안티파(AntiFa, 반파시즘)’ 운동 등이 모두 그 명백한 사례들이다.

7. 좌파가 체제 내에서 장정(長征)을 개시하다

‘체제 내의 장정’을 처음 제기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저명한 공산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였다. 그람시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선동해 혁명을 일으키고 정부를 전복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발견했다. 따라서 혁명을 일으키려면 반드시 신을 믿지 않고 전통을 반대하는 부도덕한 깡패들을 대량으로 만들어 내야 했다.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반드시 종교와 도덕 그리고 문명을 전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돼야 했다. 1960년대의 가두 투쟁이 실패한 이후, 많은 반란군들은 학계로 들어갔다. 그들은 학위를 취득한 후 학자, 교수, 관료, 기자 등의 신분으로 사회 주류에 진입해 체제 내의 장정을 개시했고, 침투 방식으로 사회 도덕을 유지하는 중요한 기구인 교회, 정부, 교육기관, 입법과 사법기관, 예술 단체, 언론 매체와 다양한 민간 단체를 침식했다. 1960년대 이후의 미국은 중증 감염 환자처럼 병이 난 곳이 어딘지 구체적으로 짚어낼 방법이 없었다. 각종 마르크스주의의 변종이 미국 사회의 유기체 내에 깊숙이 침투했고, 자생 번식 능력까지 갖추게 됐다.

수많은 혁명 이론과 혁명 전략 중에서 컬럼비아대학의 두 사회학자가 제시한 클로와드-피븐 전략(Cloward–Piven strategy)이 나름대로 체계를 이룬 데다 운용 가능성이 높아 성공적으로 시범 채용됐다.

클로와드-피븐 전략의 핵심은 공공복지 시스템을 이용해 정부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미국 정부의 정책에 따르면, 복지 혜택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실제로 혜택을 받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다. 이 사람들을 찾아내 혜택을 받도록 부추기거나 조직한다면, 그들은 곧 정부 재정을 다 써버릴 것이고, 따라서 정부는 수지를 맞출 수 없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 전략을 시행한 것은 한 흑인 운동가가 창립한 ‘전국복지권기구’다. 통계에 의하면, 1965년에서 1974년까지 복지 혜택을 받은 한부모 가정은 430만 가구에서 1080만 가구로 두 배 이상 늘었다. 1970년 뉴욕시 연간 예산의 28%가 복지비로 쓰였다. 평균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두 명이면 그중 한 사람이 혜택을 받았다. 1960년에서 1970년까지, 뉴욕시에서 복지 혜택을 받은 사람은 20만 명에서 110만 명으로 늘었다. 1975년 뉴욕시는 파산 직전에 이르렀다.[8]

클로와드-피븐 전략은 일종의 위기를 만드는 전략이자 알린스키 이론을 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알린스키의 규칙 중 하나는 바로 “적을 그들 자신의 규칙대로 살게 한다”는 것이다.[9]

공산당은 레닌이 이끈 볼셰비키 쿠데타를 시작으로 음모와 계략에 능숙해 극소수의 사람만으로 대단한 기세의 ‘혁명’ 또는 ‘위기’를 만들어 냈다. 미국 정치로 예를 들어보자. 현재 미국의 일부 좌익 정당 강령의 급진 정도는 많은 사람의 이해 범위를 넘어섰다. 예를 들어, 선출직 관료와 의원들이 성전환자와 같은 극소수자의 목소리만 대변하면서 다수의 생계에 대한 중요한 문제를 무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답은 간단하다. 그들은 결코 진정한 민의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레닌은 노동조합이 “공산당과 군중 사이의 컨베이어 벨트”라고 말한 적이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노조만 장악하면 많은 표를 확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들이 투표를 장악하기만 하면, 선출직 관료와 의원들을 그들의 말에 따르게 할 수 있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은 노조 통제권을 장악하고, 나아가 수많은 의원과 관료를 장악해 그들의 반동적인 정치 강령을 좌익 정당의 정치 강령으로 만들었다.

클리온 스카우슨은 자신의 저서 <벌거벗은 공산주의자(The Naked Communist)>를 통해 공산당의 45개 목표 중 하나가 “미국의 1개 혹은 2개 정당을 장악하는 것”이라고 밝히면서,[10] 이러한 복잡한 작업을 통해 이뤄진다고 언급했다. 일반 근로자는 기본적인 권익을 수호하기 위해 부득이 노조에 가입해 그들의 볼모가 되는데, 이것은 조직 폭력배에게 보호비를 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공산당이 민주 국가의 정책 시스템을 인질로 잡는 메커니즘에 대한 트레버 루돈의 분석은 정곡을 찌른다. 루돈은 이 과정을 세 단계로 나누었다.

첫 번째 단계는 정책 수립이다. 냉전 기간 동안 소련과 동맹국들은 민주 국가들을 표적으로 정책을 수립했다. 그 목적은 민주 국가에 침투하고 와해시키며 변형을 가져오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주입과 교육이다. 냉전 시기, 매년 세계 각지에서 온 공산주의자 수천 명이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에서 교육을 받았다. 교육은 자국의 노동 운동, 평화 운동, 교회 및 민간단체를 어떻게 활용해 자국의 좌익 정당에 영향을 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세 번째 단계는 실시이다.[11] 냉전이 종식된 후, 서방에서는 자국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단체들이 더욱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70~80년대 이후, 대량의 공산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미국인이 사회 주류에 진입했다. 그들은 정치를 하거나 교육 및 학술 연구에 종사하거나 언론 매체에 들어가거나 수백 개에 달하는 민간단체에 들어갔다. 그들이 몇 세대에 걸쳐 축적한 ‘노하우’로 미국을 개조함으로써 미국은 거의 전면적으로 함락됐다.

민주국가의 제도는 본래 일정한 도덕적 기준을 갖춘 사람들을 위해 설계한 것이고, 별의별 궁리를 다 해 나쁜 짓을 하려는 사람에게는 이 제도가 허점이 많다. 만약 자유사회 제도를 뒤집어엎으려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다. 중국에는 ‘도둑이 훔쳐 가는 건 두렵지 않은데, 도둑이 항상 노리고 있는 것이 두렵다’는 속담이 있다. 공산주의자들과 그들에게 속아 넘어간 무지한 대리인들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자유사회 제도를 전복하려 했다. 수십 년의 계획과 운영을 거쳐, 미국·서구의 정부와 사회는 이미 만신창이가 됐고, 공산주의 사상과 요소는 이미 미국의 몸에 깊숙이 침투했다.

8. 정치적 올바름, 악마의 사상경찰

공산당 국가가 국민의 사상과 언론을 가장 엄격히 통제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서방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언론과 사상 통제가 출현했다. ‘정치적 올바름’의 기치를 내건 ‘사상경찰’은 버젓이 교육과 언론 등 사회 각계에서 횡행하며 사람들의 사상과 언론을 견제하는 도구가 됐다. 비록 많은 사람이 이미 그것의 사악한 통제력을 감지했지만, 이데올로기의 근원을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다.

정치적 올바름이란 표현은 진보, 단결과 같은 표현처럼 모두 공산당의 용어이고, 그것의 가장 표면적인 의미는 소수 인종·여성·장애인과 일부 특수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차별적인 언사를 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면 흑인을 ‘아프리카계 미국인’, 인디언들을 ‘원주민’, 불법 이민자를 ‘신분증이 없는 노동자’라 등으로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올바름 뒤에 숨겨진 의미는 집단을 억압받는 정도에 따라 등급을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억압받는 사람들이 가장 존중과 예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품행과 재능에 상관없이, 이러한 판단은 오직 개인의 정체성에 의해서만 이뤄지기 때문에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라고도 부른다.

이런 사고방식은 현재 미국과 서방에서 크게 성행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흑인 여성 동성애자는 인종 억압, 성별 억압, 성적 취향 억압이란 3중의 신분 요인에 의해 정치적 올바름의 순위에서 맨 앞에 서고, 반면에 성적 취향이 정상적인 백인 남성은 오히려 역차별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분류 방식은 공산당 국가에서 사람들을 재산에 따라 ‘홍오류(紅五類: 노동자, 빈농, 혁명 간부, 혁명군인, 혁명열사)’ ‘흑오류(黑五類: 지주, 부농, 반혁명분자, 악질분자, 우파분자)’ 등 계급으로 나누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중국 공산당은 지주와 자본가를 소멸하고, 지식인들을 ‘구린내 나는 아홉 번째(臭老九)’라 부르며, ‘가난한 자가 가장 똑똑하고 고귀한 자가 가장 멍청하다’고 외쳤다.

사회적, 개인적 이유를 포함한 복잡한 역사적 이유로 일부 그룹의 사람들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지위가 낮은데, 이를 단순히 억압받는 것으로 설명할 수 없다. 정치적 올바름은 인위적으로 사상에 한계를 정해 ‘나를 따르는 자는 창성하고, 거역하는 자는 망한다’는 식으로 독단적으로 사람들에게 ‘인종차별주의자’ ‘성차별주의자’ ‘동성애 혐오자’ ‘반이슬람주의자’라는 모자를 씌운다. 자유롭게 연구 토론하는 기풍을 북돋워야 하는 대학은 사상을 속박하는 장소가 됐고, 사회 전체에 재갈을 물려 정치, 경제, 문화 분야에서 많은 과제를 진지하게 토론할 수 없게 했다. 일부 단체는 정치적 올바름이란 이름으로 전통 종교의 공간을 한층 더 쪼그라뜨렸다. 심지어 많은 국가에서는 혐오 발언을 금지하거나 그 개념을 확대해 언론의 자유를 법률적으로 제한함으로써 학교, 언론, 인터넷 업체와 개인을 옥죄었다. 이는 공산당 국가처럼 엄격한 언론 통제를 향해 큰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2016년 대통령 대선 이후, 미국 사회는 더욱 분열됐다. 주요 도시에서 시위대가 행진했고,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현상은 빈번하게 나타났다. 2017년 9월 한 보수 성향의 작가가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의 초청을 받아 열기로 한 강연은 안티파 조직이 폭력 충돌을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무산됐다. 버클리 경찰은 경찰 헬리콥터 3대를 출동시켰는데, 안보 비용만 60만 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12] 기자가 한 젊은 학생 시위자에게 “수정 헌법 제1조를 어떻게 이해하느냐(미국 수정 헌법 제1조는 언론의 자유를 보호한다)”고 물었다. 이 학생은 “수정 헌법 제1조는 이미 시대에 뒤처졌다”라고 대답했다. 아이러니하게도 1964년 학생 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한 가지 상징적인 사건이 바로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에서 벌어진 언론 자유를 쟁취하는 운동이었다. 오늘날 좌파는 다른 사람의 합법적인 목소리를 막기 위해 발언권을 강점한다.

2017년 3월 미국의 정치학자 찰스 머레이가 버몬트 주 미들버리대학(Middlebury College)에서 초청 강연을 하던 도중 폭행을 당했고, 그를 수행한 다른 교수 한 명도 부상을 입었다. 2018년 3월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로스쿨의 종신 교수 에이미 왁스가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에 부합하지 않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정직 처분을 받았다.[13] 그리고 법을 내세운 단체들이 혐오 발언을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정상적인 사회 조직에 혐오 조직 딱지를 붙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밖에 보수파 학자들과 작가들이 참석한 행사가 위협을 받고 중단된 사례도 여러 번 발생했다.[14]

좌파의 언론 자유 침해는 결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일반적인 논쟁이 아니다. 그것은 공산사령(邪靈)이 나쁜 사상을 가진 사람을 이용하고 진상을 모르는 사람을 선동해 정의롭고 정상적인 목소리를 말살하는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은 본질적으로 변이된 정치 잣대로 올바른 도덕 표준을 대체하는 것이다. 그것은 악마의 사상경찰이다.

9. 유럽에 만연한 사회주의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이하 SI) 조직은 1889년에 엥겔스가 창립한 제2인터내셔널에서 출발했다. 제2인터내셔널 설립 당시, 전 세계에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정당이 100개가 넘었고, 그중 집권 여당으로서 사회주의를 고수하는 국가도 66개나 됐다. 지금의 SI라는 명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51년에 시작됐고, 사회민주주의 정당, 노동자당, 민주사회주의 정당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사회민주당으로 구성됐다.

유럽 곳곳에는 제2인터내셔널에서 유래한 사회주의 정당들이 있는데, 그들 중 다수는 심지어 집권 여당이 되기도 했다. 최초의 사회주의 진영에는 폭력혁명을 주장하는 레닌과 점진적 개혁을 주장하는 카를 카우츠키,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등이 있다. SI에서 사회민주주의와 민주사회주의는 기본적으로 같은 의미다. 모두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새로운 제도라고 주장하거나 표방한다. 현재 SI는 각종 구성원과 조직을 약 160개 보유하고 있는데, 오늘날 세계 최대의 국제 정당 조직이다.

유럽 의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럽사회당 또한 SI 동맹 조직 중의 하나로서, 구성원은 유럽연합 및 주변 국가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다. 그것은 또한 유럽 의회 내의 정당으로 1992년에 설립됐고, 구성원은 유럽 의회, 유럽 위원회, 유럽연합 이사회, 유럽연합의 지역위원회를 포함한 절대다수의 유럽 기구 내에 분포돼 있다.

현재 유럽사회당은 유럽연합 25개국과 노르웨이(EU 비가입국)에 32개 정당 회원, 8개 준회원, 5개 옵서버 등 총 45개 정당을 두고 있다. 이로써 이들의 활동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 엿볼 수 있다. 유럽사회당의 주요 목표는 유럽연합 내부와 유럽 전역에서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운동을 강화하고, 동시에 각국의 유럽사회당 소속 정당, 정당 원내 지도부, 유럽사회당 원내 대표, 유럽사회당 간의 긴밀한 협력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한마디로 사회주의를 대대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스웨덴 집권당인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은 마르크스주의를 이론적 지침으로 내세우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이들이 통치하는 수십 년간, 평등과 복지를 주장하는 사회주의 이념을 추진했다. 이들 당의 역사 전시실에는 지금까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초상화가 높이 걸려 있다.

영국 노동당의 지도사상은 ‘페이비언 사회주의’에 기반을 둔다. 앞서 논의했듯이, 페이비언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주의의 한 변종에 불과한데, 그들은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전환을 점진적인 방식으로 실현할 것을 강조하며, 마찬가지로 높은 세율, 높은 복지 등 사회주의 이념을 고취한다. 영국 노동당은 최근 수십 년간 여러 차례 영국의 집권당이 됐고, 줄곧 페이비언 사회주의를 추진해왔다.

영국 공산당도 영국 정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또한 자신들의 당 기관지 ‘모닝스타(Morning Star)’를 운영한다. 영국 공산당은 1920년에 창당했고, 전성기에는 당원들이 경선을 통해 영국 하원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최근 영국 대선이 시작되자 영국 공산당은 갑자기 영국 노동당 경선에서 한 좌익 정치인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노동당의 한 주요 당원은 40여 년간 하루같이 국유화를 주장하고 사회주의를 주장했다. 2015년 9월, 그는 60%라는 압도적인 우세로 노동당 당수에 당선됐다. 그는 수년간 동성애, 양성애, 성전환자 등의 사회단체 권익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BBC 기자가 그에게 마르크스에 대한 견해를 물었을 때 그는 마르크스를 위대한 경제학자이자 “많은 것을 관찰하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매혹적인 인물”이라고 칭송했다.

프랑스의 사회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이자 프랑스 최대의 중도좌파 정당이며, 또한 사회당 인터내셔널, 유럽사회당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이 정당은 자칭 사회주의 정당으로, 이 정당의 대선 후보가 2012년에 프랑스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2017년 새로 당선된 프랑스 대통령은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마오(毛)주의자라고 솔직하게 밝혔다. 그는 입만 열면 마오쩌둥, 등소평 어록, 혁명, 장정, 문화혁명 등의 표현들이 나온다.

이탈리아의 원로 공산주의자인 안토니오 그람시는 1921년에 이탈리아 공산당을 창당했을 뿐만 아니라 정당의 총서기를 맡았다. 이탈리아 공산당은 1990년까지만 해도 활발하게 활동했고, 오랫동안 제2당의 지위를 유지했다. 1991년에는 이탈리아 좌익 민주당으로 개명했다.

유럽의 또 다른 대국 독일도 예외는 아니다. 독일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고향이고 20세기에 영향력이 컸던 신마르크스주의 유파인 ‘프랑크푸르트 학파’도 독일에서 발원했다.

스페인, 포르투갈 등 기타 유럽국가들도 모두 활발한 공산주의 정당들이 있어 그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동유럽 국가만이 사회주의가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북유럽, 남유럽, 서유럽 등 유럽 전반의 비공산 정권 국가도 사실 모두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공산주의 이념과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유럽이 함락됐다는 것은 결코 과언이 아니다.

10. 우리는 왜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나

미국의 사회학자 폴 홀랜더는 그의 저서 <정치적 순례자(Political Pilgrims, 1981)>에서 스탈린 시대의 소련, 마오쩌둥 시대의 중국, 카스트로 시대 쿠바의 정치 순례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수많은 청년 지식인들은 공산주의에 매혹돼 이들 국가로 몰려들었다. 비록 이들 국가의 일부 알려지지 않은 곳에서 끔찍한 폭행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이 순례자들은 자국으로 돌아간 후, 여전히 열정적으로 글을 써서 사회주의 제도를 찬양했다.[15]

공산주의 사상은 악마의 이데올로기이며,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공산주의가 가는 곳마다 폭력, 거짓말, 전쟁, 기근과 폭정이 함께한다는 사실을 점점 더 명확하게 봤다. 문제는 ‘왜 아직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기꺼이 이 악마를 도와 거짓말을 살포하고, 심지어는 그것의 순종적인 도구가 되는가’ 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시대에 따라 사람들이 공산주의에 끌린 동기가 다르다. 최초의 미국 공산당원들은 이민자로서 경제적 지위가 낮고 현지 사회에 녹아들기 힘들었기 때문에 모국(대부분은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의 영향을 받아 공산당에 가입했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서방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영향력이 급격히 강해졌고, 서방의 사상계가 급격히 좌편향됐다. 많은 지식인이 소련을 견학하고 돌아와 책을 저술해 사회주의 사상을 선전했다. 여기에는 영향력 있는 사상가, 작가, 예술가, 기자 등이 포함된다.

베이비 붐 세대는 1960년대 대학에 진학해 전후 풍요로움 속에서 자랐지만, 사회에 대한 그들의 관심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반전, 페미니즘 등으로 잘못 이끌렸다. 다음 세대가 학교에서 받아들인 것은 이미 고도로 좌경화된 교과 내용이었다. 그들의 선생님이 바로 ‘종신직 급진주의자(학교에서 정년을 보장받은 좌파 교육자)’이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의 체제 내의 장정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체재 내에서 번영과 자체 번식을 시작했다.

37년간 연방수사국(CIA) 국장을 역임한 존 에드거 후버는 공산주의를 폭로하는 전문서 <기만술의 대가들(Masters of Deceit)>이라는 책에서, 다섯 종류의 공산주의자를 정리했다. 공개적인 공산당원, 지하 공산당원, 공산당 동조자, 기회주의자(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공산당을 지지하는 자), 속임수에 넘어간 자가 그것이다.[16] 사실 극단적으로 사악하고 완고한 극소수 공산주의자를 제외한 절대다수의 공산당원 또한 속임수에 빠진 자들이다.

미국 기자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10일간>과  에드거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은 세계적으로 공산주의 사상을 전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존 리드는 모스크바의 크렘린 혁명 공동묘지에 묻힌 미국인 3명 중 한 사람으로, 공산주의 활동가다. 그의 10월 정변에 관한 서술은 사건에 대한 객관적인 보도가 아니라 치밀하게 기획한 정치적 선전이었다.

에드거 스노는 공산주의 동조자로서, 그가 1936년 중국 공산당원에게 제출한 인터뷰 요지에는 최소한 10여 개 방면의 질문이 포함됐다. 여기에는 외교, 외세의 침입에 대한 방어, 불평등 조약과 외국인 투자에 대한 견해, 반파시즘 등이 언급됐다. 이후 마우쩌둥(毛澤東)은 산시(陝西)성 북부의 동굴집에서 스노를 만나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담화를 시작했다. “이는 중국 공산당 중앙의 집단 지혜의 결정체며, 나아가 시대와 함께 전진하고, 공개적이고 투명하며, 허심탄회한 중국 공산당의 이미지를 세계에 보여줬다.” 젊고 경솔한 스노는 주도면밀한 중국 공산당의 도구로 사용돼 치밀하게 짜놓은 거짓말을 전 세계에 터뜨렸다.

KGB 요원이었던 유리 베즈메노프는 자신이 스파이 활동을 하면서 외국 친구들을 접대했던 경험을 회상했다. 그들의 일정은 모두 소련 정보 부서에 의해 배치됐다. 방문하는 교회, 학교, 병원, 유치원, 공장 등은 모두 미리 계획된 것이고, 관계자들은 공산당원이나 정치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며, 또한 그들은 한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철저히 훈련받았다. 그는 사례를 하나 들었다. 1960년대 미국의 주요 잡지인 ‘룩’이 소련에 기자를 보내 취재하고 가져온 사진과 인쇄물을 포함한 모든 자료는 소련 정보기관이 미리 준비해 놓은 것이었다. 기자들은 진위를 가리지 않고 미국 현지에서 기사를 발표해 소련의 사기극을 돕고 미국인을 그릇된 길로 이끌었다.

베즈메노프는 많은 기자, 배우, 스타 선수는 소련을 방문하는 동안 기만을 당했기 때문에 용서할 수 있지만, 많은 서방 정치인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명성과 이익을 위해 사실을 살피지 않고 소련 공산당에 협조해 거짓말을 꾸미고 전파했다. 그는 이것을 철두철미한 도덕적 타락이라고 했다.[17]

프레드 슈워츠 박사는 그의 저서 <당신은 공산주의를 신뢰할 수 있다>에서 왜 부유한 가정의 일부 젊은이가 공산주의를 좋아하게 되는지를 분석했다. 그는 그 이유를 4개로 정리했는데, 첫째는 자본주의 제도에 대한 실망감, 둘째는 유물주의 철학, 셋째는 지식의 오만함, 넷째는 충족되지 않는 종교적 욕구가 그것이다. ‘지식의 오만함’은 18~20세의 젊은이들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진실한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반권위주의에 사로잡혀 전통과 권위, 민족문화에 관한 모든 설교를 거부하기 때문에 공산주의 선전의 피해자가 되기 가장 쉽다.

충족되지 않는 종교적 욕구는 모든 사람이 일종의 종교적 충동을 가지고 있고, 개인적인 차원을 초월하는 더 큰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싶어함을 말한다. 그러나 학교에서 주입하는 무신론과 진화론은 전통적인 종교로부터 그들이 만족을 얻을 수 없도록 만든다. 인류를 해방한다는 공산주의 환상은 이러한 잠재된 인간의 수요를 이용해 대체 종교 역할을 한다.[18]

지식인들은 급진적인 이데올로기에 쉽게 속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현상은 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프랑스 사회학자 레몽 아롱의 저서 <지식인들의 아편>에서 20세기 지식인들은 전통적인 정치 제도를 격렬하게 비판하면서도 공산당 국가의 폭정과 살육에 대해서는 관대하게 묵인하거나 심지어 외면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좌파 지식인들이 위선적이고 독단적이며 비이성적인 광기로 좌파 이데올로기를 세속 종교의 지위로 끌어올렸다고 여겼다. 영국의 역사학자 폴 존슨은 그의 저서 <지식인들>에서, 루소 이후 지식인 십여 명의 생애와 급진적인 정치적 견해(공산주의를 포함) 사이의 관계를 분석했다. 존슨이 발견한 그들의 치명적인 약점은 오만과 자기중심주의이다.[19] 미국의 유명 경제학자 토마스 소웰은 <지성과 사회>란 책에서, 대량의 사례를 들어 지식인들의 이지적 광기를 지적했다.

이들 학자의 분석은 나름대로 일리가 있지만, 우리는 지식인들이 쉽게 속아 넘어가는 데 있어 더 중요한 이유가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공산주의 사상은 인간 사회의 어떤 전통문화에도 속하지 않는 악마의 이데올로기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반하기에 인간에 의해 유기적으로 개발될 수 없고 외부에서 강제로 주입할 수밖에 없다. 무신론과 유물론의 영향 아래, 학술계와 교육계는 보편적으로 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과학과 소위 ‘인간의 이성’을 맹신함으로써 쉽게 악마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됐다.

1960년대부터 공산주의는 미국 교육계에 대대적으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많은 젊은이는 좌파 언론의 무차별 폭격과 백치화 교육으로 인해 텔레비전, 컴퓨터 게임, 인터넷, 그리고 소셜 미디어에 푹 빠졌다. 이런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젊은 세대 상당수가 지식이 부족하고, 시야가 좁으며, 책임감과 수용력이 결핍한 ‘눈송이 세대(snowflake generation)’가 됐다. 몇 세대에 걸쳐 철저하게 세뇌된 사람들은 진실을 보고 듣더라도 여전히 왜곡되고 변이된 사고로 분석한다. 즉, 공산당의 거짓말이 얇은 막처럼 격리 작용을 하면서 진실과 멀어지게 된다.

악마는 세상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우매, 무지, 이기심, 탐욕 그리고 쉽게 믿는 인간성의 약점을 전방위적으로 이용했다. 한편, 인간의 이상주의와 아름다운 삶에 대한 로맨틱한 환상 또한 이용당했다. 이것은 가장 슬픈 일이다. 사실, 공산당 국가는 공산주의에 대해 환상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로맨틱하지 않다. 만약 그들이 즐거운 여행을 하는 대신, 공산당 국가에 가서 실제로 한동안 생활해 보면 스스로 이 점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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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 악마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서방에 침투했다. 구체적인 현상에서 벗어나 더 높은 곳에 서야만 비로소 악마의 진면목과 진짜 목적을 똑똑히 볼 수 있다.

악마가 성공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이 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도덕의 단속을 방종했기 때문이다. 신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하고, 도덕을 제고해야만 악마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만약 인간 사회가 전반적으로 전통으로 돌아간다면 악마는 더는 숨을 곳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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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layboy Interview with Saul Alinsky,」 New English Review,  http://www.newenglishreview.org/DL_Adams/Playboy_Interview_with_Saul_Alinsky/.

[2] David Horowitz, Barack Obama’s Rules for Revolution: The Alinsky Model (Sherman Oaks, CA: David Horowitz Freedom Center, 2009), 6, 16.

[3] Saul Alinsky, Rules for Radicals: A Practical Primer for Realistic Radicals (New York: Vintage Books, 1971), 「Tactics.」

[4] David Horowitz, Barack Obama’s Rules for Revolution: The Alinsky Model (Sherman Oaks, CA: David Horowitz Freedom Center, 2009), 42-43.

[5] 「Playboy Interview with Saul Alinsky,」 New English Review,

[6]  위의 책

[7] 아래의 분석을 참고하기 바란다. David Horowitz, Barack Obama’s Rules for Revolution: The Alinsky Model (Sherman Oaks, CA: David Horowitz Freedom Center, 2009)。

[8] David Horowitz and Richard Poe, The Shadow Party  (Nashville, Tennessee: Nelson Current, 2006), Chapter 6 「Strategy for Regime Change.」

[9] Saul Alinsky, Rules for Radicals: A Practical Primer for Realistic Radicals (New York: Vintage Books, 1971), 「Tactics.」

[10] W. Cleon Skousen, The Naked Communist (Salt Lake City: Izzard Ink Publishing, 1958, 2014), Chapter 12.

[11] Trevor Loudon, The Enemies Within: Communists, Socialists, and Progressives in the U.S. Congress (Las Vegas: Pacific Freedom Foundation, 2013), 1-5.

[12] 「Antifa protests mean high security costs for Berkeley Free Speech Week, but who’s paying the bill?」 Fox News, September 15th, 2017,  http://www.foxnews.com/us/2017/09/15/antifa-protests-mean-high-security-costs-for-berkeley-free-speech-week-but-whos-paying-bill.html.

[13] 「Penn Law professor loses teaching duties for saying black students 『rarely』 earn top marks,」 New York Daily News, March 15, 2018, http://www.nydailynews.com/news/national/law-professor-upenn-loses-teaching-duties-article-1.3876057.

[14] 「Campus Chaos: Daily Shout-Downs for a Week,」 National Review, October 12, 2017, https://www.nationalreview.com/corner/campus-chaos-daily-shout-downs-week-free-speech-charles-murray/.

[15] Paul Hollander, Political Pilgrim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81).

[16] J. Edgar Hoover, Masters of Deceit (New York: Henry Holt and Company, 1958), 81-96.

[17] Tomas Schuman (Yuri Bezmenov), No 「Novoste」 Is Good News (Los Angeles: Almanac, 1985), 65-75.

[18] Fred Schwartz and David Noebel, You Can Still Trust the Communists…to Be Communists (Socialists and Progressives too) (Manitou Springs, CO: Christian Anti-Communism Crusade, 2010), 44-52.

[19] 예를 들어 존슨은 프랑스 공산주의자이자 실존주의 철학자인 사르트르를 극악무도한 이기주의자라고 표현했다. 아래 참조. Paul Johnson, Intellectuals (New York: HarperCollins, 1989),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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