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예술편

9평 편집부
2018년 6월 23일 업데이트: 2019년 7월 21일

목차

1. 예술은 신이 사람에게 준 것

2. 인류에 대한 예술의 거대한 영향

3. 공산사령이 예술을 파괴하고 이용하다
1) 공산국가의 예술 이용과 통제
2) 전위적 예술 배후의 공산사령
3) 추함을 아름다움으로, 전통 미학을 바꾸다
4) 문학을 이용해 인류를 파멸하는 공산사령

맺음말
 

* * *

 

1. 예술은 신이 사람에게 준 것

미학에 관한 인류의 토론은 너무나 많다. 신을 믿는 사람은 가장 아름다운 것이 모두 천국 세계에서 왔음을 안다. 뛰어난 예술은 모두 천국의 미를 모방해 인간 세상에 전시한 것이다. 일부 예술 어휘들은 직접적으로 신의 이름에서 나왔다. 만약 어느 한 영역의 예술가가 신의 인도나 가지(加持)를 받을 수 있다면 그 영역에서 걸출한 인재가 될 것이다.

르네상스 시기 예술대가들은 신에 대한 경건한 신념으로 정성을 다해 신을 찬양하는 작품을 창작했다. 그들의 바른 생각과 선행이 신의 인정과 가지를 얻은 것이다. 여기에는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르네상스 중기의 예술가들을 포함한다. 이들은 이전 시대는 물론, 동시대인들의 기법을 훨씬 뛰어넘었고 그들의 회화 조각 건축 등 작품은 인류 예술의 불후의 경전이 되어 수백 년간 인류를 위한 숭고한 모범이 됐다. 이런 작품들을 감상하고 본보기로 삼으면 후대 예술가들에게 순수하고 바른 예술 기법을 학습하게 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사람에 대한 신의 관심과 보살핌을 절실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만약 사람들이 그들의 예술 작품 수법 정신을 잘 보존해 신과의 연계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설사 인류사회가 보편적으로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더라도 전통과 구원의 길로 되돌아갈 희망이 존재한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독일의 어느 극장에 이런 말이 있다. “바흐는 우리에게 신의 언어를 주었고 모차르트는 신의 웃음을 주었으며 베토벤은 신의 불꽃을 주었다. 신은 우리가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기도할 수 있도록 음악을 주었다.” 바흐는 평생을 신을 공경하고 찬미함을 최고의 창작 원칙으로 삼았다. 바흐의 모든 중요 악보에는 SDG란 세 글자가 적혀 있는데 ‘Soli Deo Gloria’의 약자로 신에게 영광을 돌린다는 뜻이다.

이는 예술가의 최고 경지로 즉, 신의 계시를 받은 후 천국세계의 사물을 우리 물질 공간에 표현한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회화와 조각, 고전음악 중에서 가장 걸출한 것은 모두 신을 믿는 사람이 창조한 것으로 인류 예술의 정상이 됐다.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3가지 요소는 모방, 창조, 소통이다. 예술창작은 모두 어떤 ‘주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이 ‘주제’야말로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모종의 정보다. 시, 회화, 조각, 사진, 소설, 연극, 무용 또는 영화 등 예술 형식을 막론한다. 예술가는 이 ‘주제’를 독자나 청중 혹은 관객의 마음에 전달하는데 이 과정이 바로 ‘소통’이다. 다시 말해 청중에게 작자의 사상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창작의 목적이다.

소통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예술가는 뛰어난 모방능력이 가져야 하며, 모방 대상은 신의 세계나 인간 세계 또는 마귀의 세계일 수 있다. 예술가는 또 ‘모방’을 기반으로 ‘창조’를 추가하고, 모방대상의 더 깊고 더 본질적인 요소를 추출하여 예술가의 ‘표현력’ 내지는 ‘소통 능력’을 향상시킨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신에 대한 경건한 믿음과 고상한 도덕을 지니고 있다면 신은 그에게 창작의 영감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 그가 창작한 작품은 신성하고 순수하며 선량한 것이기 때문에 본인은 물론이고 관객과 사회에 모두 유익할 것이다. 반대로 어떤 사람이 도덕을 버리고 마성을 방종하면 사령과 사탄 그것이 통제하는 저급한 영(靈)과 썩은 귀신이 빈틈을 타고 들어와 추악하고 더러운 현상이나 심지어 저급한 마귀의 세계를 표현하게 하는데 이런 작품은 창작자 본인은 물론이고 관객이나 사회에도 모두 해로울 것이다.

이 점을 이해한다면 우리가 정통예술의 가치를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이 전한 문화예술은 다양한 신과 인류문명을 연결하는 통로가 됐고 미, 선, 광명과 희망 등의 정보를 전달했다. 그러나 공산당 사악한 영(靈)이 사람을 조종해 만들어낸 각종 변이된 예술은 사람으로 하여금 신에게서 멀리 떨어져 마귀에 더 가깝게 만든다.

2. 인류에 대한 예술의 거대한 영향

위대한 예술작품은 문명을 계승하고 도덕을 함양하고 지식을 전파하며 정서를 도야하는 작용을 한다. 때문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주요 문명에서 모두 숭고한 지위를 지녔다.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피타고라스는 음악의 신비는 우주의 조화의 법칙을 반영한 천체의 조화로운 수의 모방에 있다고 봤다.

공자는 일찍이 “찬란하도다 그 문화여! 나는 주나라를 따르겠노라(郁郁乎文哉! 吾從周)”[1]고 언급한 바 있다. 공자는 주공이 예(禮)와 악(樂)으로 나라를 다스린 것을 숭배했기 때문이다. “순임금이 오현의 금을 만들어 남풍의 시를 노래하니 천하가 다스려졌다”[2]는 것 역시 순수하고 바른 음악이 사람을 교화하는 작용을 한다는 것을 설명한다. 당태종은 ‘진왕파진악(秦王破陣樂)’으로 주변 오랑캐들을 굴복시켰다. 신당서 기록에 의하면 현장이 경전을 얻으러 서역에 갔을 때 멀리 중천축(中天竺)의 계일왕(戒日王) 시라일다(屍羅逸多)가 현장에게 “당신 나라 임금은 진왕파진악을 만들었으니 성인이오”[3]라고 했다.

루이 14세 시대 프랑스 궁정은 무용과 예술을 통해 우아함과 시민의 규범을 펼쳐 보였다. 무용은 단지 기교뿐 아니라 사회적 예절과 행동 규칙을 전파한다. 루이 14세의 예술과 문명은 유럽에 좋은 영향을 미쳤고 다른 궁정과 대중들도 이를 따라 했다.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 역시 뛰어난 군주이자 음악가로 작곡은 물론 플루트 연주도 했다. 그는 베를린 오페라하우스를 만들어 직접 오페라 감독을 맡아 다양한 사회 계층이 오페라를 접할 수 있게 했다.

정통 예술은 자연이나 우주법칙에 부합해 신의 지혜를 본받는다. 때문에 특별한 힘과 효과가 있어 인간의 몸과 정신에 커다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이 정통예술 창작에 종사할 때면 기술적인 요구에 따라 육체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며 그 과정에서 정신을 집중하고 영혼은 예술이 표현하는 주제와 소통해야만 한다. 종종 이 물질세계를 초월해 특수한 체험을 하게 된다. 가령 신을 찬송하는 가곡을 부를 때의 그 엄숙하고 장엄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신의 빛에 가까워지는 아름다운 체험이다.

예술을 감상하는 사람에게 예술이란 신과 통할 수 있는 특수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 그 배후에는 수많은 사람의 지혜, 창조와 영감이 응축돼 있어 종종 표면을 벗어나는 깊은 내포를 초월하게 된다. 심지어 어떤 작품은 특수한 정신에너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모두 영성과 정신적인 측면에서 사람에게 일으키는 독특한 작용인데 다른 물질 수단으로는 이런 작용을 대신할 수 없다.

사회 도덕과 정신 방면에 미치는 영향에 있어 좋은 예술가는 하나하나 감동적인 스토리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속에 추상적 가치를 주입할 수 있다. 설사 학문이 깊지 않거나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예술을 통해 심령의 깨우침과 도덕적 훈도를 받을 수 있다. 전통사회에서 시비나 선악에 대한 인식은 서양에서는 ‘인어공주’나 ‘백설공주’ 등의 동화를 통해 얻었고, 중국에서는 사대명작이나 이야기 연극을 통해 얻었다. 또 천국세계를 표현한 그런 작품에서 우리는 신의 위대함을 느끼고 신께 귀의하고 싶은 소망을 가지게 된다.

동시에 좋지 않은 가치관도 예술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작가 로버트 맥키(Robert McKee) 교수는 ‘스토리’에서 “모든 효과적인 이야기는 우리에게 가치를 판단하는 생각을 전달하는데 이 사상은 우리 영혼에 쐐기처럼 박힐 수 있다. 한 이야기의 설득력은 너무 강력해서 비록 우리가 그것이 도덕적으로 불쾌하다고 여길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그것이 전달하는 가치를 믿을 수 있다”[4]고 말했다.

예술은 정반 양면에서 모두 인류의 도덕적 가치, 사상과 행위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 점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현 사회에서 여전히 많은 구체적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모차르트 효과(Mozart Effect)’는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과학계는 모차르트의 음악이 인간과 동물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 대해 많은 연구를 수행했다. 2016년 모차르트 효과에 대한 더 깊이 있는 연구에서 모차르트의 음악이 인간의 인지능력과 행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 발견됐다. 하지만 더 이상한 것은 모차르트의 음악을 반대로 틀면 완전히 반대되는 작용을 일으켰다. 이는 쇤베르크의 무조성 현대음악이 일으키는 작용과 아주 흡사한데 바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5]

무조음악과 비교하면 로큰롤의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크다. 전에 비슷한 규모의 두 도시 통계자료를 비교한 연구에서 로큰롤 음악을 많이 방송한 도시는 미혼모, 학교 중퇴, 청소년 사망, 범죄 등이 정상적인 음악을 튼 도시와 비교해 50% 정도 높았다고 한다. 많은 로큰롤이 자살을 미화하는데,[6] “(로큰롤의) 부정적인 멜로디와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가사는 모두 자살을 부추긴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로큰롤 음악을 많이 들은 후 청소년들이 자살했다는 것은 이미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7] 또 로큰롤 가사에서 묘사한 자살방법을 모방하는 청소년이 적지 않고 로커가 우울증이나 약물 남용에 빠지거나 심지어 자살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이 외에 널리 알려진 부정적인 예로 나치 선전영화 ‘의지의 승리’가 있다. 이 선전물은 (레니 르펜슈탈 감독 자신이 찍은 다큐멘터리라 주장하지만) 예술 수법이 뛰어나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웅장한 장면과 힘은 관객들로 하여금 그 배후에서 전달하는 정신적 힘을 느낄 수 있게 해주며 많은 최초 촬영기법과 뛰어난 기술은 후대 영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영화는 히틀러와 나치 제국에 거대한 선전작용을 했고 ‘가장 권위 있는 선전영화’로 불렸다. 2003년 영국의 ‘인디펜던트지’는 논평에서 “의지의 승리는 수많은 사람을 고혹시켜 나치즘을 찬양하고 무시할 수 없게 했고 의심할 여지없이, 나치당이 세계적으로 큰 지지를 얻도록 했다”[8]고 언급했다.

예술의 거대한 힘을 이해한다면 전통예술의 중요성과 왜 악마가 인류예술을 변이시키려 하는지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3. 공산사령이 예술을 파괴하고 이용하다

예술이 사회변화에 큰 역할을 하고, 공산사령이 예술을 ‘사회개조공정’의 중요한 수단으로 삼아 이용하고 통제한다는 것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 공산국가의 예술 이용과 통제

공산국가는 예술의 힘을 잘 알고 있으므로 예술을 세뇌하는 방식으로 삼아 모든 예술형식을 세뇌 수단으로 만들어버렸다. 많은 이들이 중국 공산당의 가수나 배우 장성(역주: 중국 공산당은 당에 기여한 뛰어난 예술인에게 인민해방군 장군 계급을 부여하고 있다)이 군사훈련이나 총을 들고 전투를 지휘한 적도 없으면서 장군이 될 수 있냐며 비웃곤 한다. 사실 중국 공산당은 이런 사람들이 공산 사교를 보급하고 수호하는 데 일으킨 작용이 군대와 마찬가지로 중요하며 심지어 군대와 비교할 수 없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설사 그들에게 계급을 준다 해도 그것도 공산당의 원칙과 일치한다. 바로 마오쩌둥의 말처럼 “우리는 또 문화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우리 스스로 단결해 전쟁에서 적을 물리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군대다.”[9]

그러므로 공산국가의 문예공연은 예술의 형식으로 국민이 공산당 치하의 고통을 잊게 만들고 공산당에 대한 충성심을 배양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대내외적 선전과 세뇌작용은 군대가 일으킬 수 없는 것이다.

거액을 들인 중국 공산당의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북한의 대형 아리랑 가무제, 구소련 발레단은 모두 당의 필요에 복무하는 것이다. 2011년 9월 중국 공산당 문화부는 미국 워싱턴DC 케네디 예술센터에서 소위 ‘중국: 한 나라의 예술’이라는 시리즈의 중국 문화절 행사를 거행했다. 이곳에서도 여전히 계급 간 증오와 공산폭력혁명을 선양하는 발레극 ‘홍색낭자군(紅色娘子軍)’을 국제무대에 올려 외국인들을 ‘세뇌’했다.

만약 신에 가까운 예술이나 인류 전통적 가치를 널리 알리는 예술이 동시에 존재한다면, 세뇌 예술은 곧 간파당해 세뇌 효과를 잃거나 심지어 살아남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공산국가들이 예술과 출판업계에 대해 엄격한 검열 제도가 존재하는 이유이다.

2) 전위적 예술 배후의 공산사령

수세기 동안 고전예술은 대대로 이어져 내려왔다. 하지만 이런 전통은 20세기에 들어와 갑자기 중단되고 차례차례 소위 급진적이고 전위적인 ‘주의(主義)’로 대체돼 신속하게 예술의 변이가 진행됐다. “웅대하고 고무적이며 아름다운 (예술이) 새롭고 다양한 추함으로 대체됐다.”[10] 예술의 표준은 표준이 없어질 정도로 떨어졌고 다만 뒤틀린 자기표현만 남았다. 인류는 미학의 보편적 가치를 잃었다.

이 모든 새로운 예술운동이나 ‘주의’의 근원을 돌이켜보면 모두 공산주의 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중 많은 예술가가 공산당원이거나 아니면 공산주의자의 변종이거나 혹은 이런 사조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다.

코민테른 헝가리 문화위원이자 서양 마르크스주의 창시자인 게오르그 루카치는 프랑크푸르트학파를 창립했다. 그중 한 가지 임무는 문화를 버리고 새로운 문화형식을 만드는 것인데 이 문화형식에서 반드시 ‘창조주의 예술을 의식적으로 모방하는 것’을 배제해야 한다. 독일 사회주의자이자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대표자인 마르쿠제는 ‘미학의 차원’에서 일컬었다. “예술은 현존하는 사회관계에 항의하고 초월하는데, 그것은 통치지위를 차지한 의식 다시 말해 일상경험을 전복한다.”[11] 다시 말해 그들은 예술이 신을 반대하고 전통도덕을 전복하도록 독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이 현대예술의 흐름을 주도했다.

미술에서 프랑스 사실주의 학교를 창립한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는 파리코뮌 참가자였다. 그는 코뮌 위원 및 급진적인 예술가 조직인 예술가연맹(Federation of Artists) 의장이 되었고 엄청난 열정으로 구제도를 ‘개조’하고 새로운 미술 취미를 세우는 일에 투신했다. 쿠르베의 지지하에 연맹은 신고전주의 건축물 방돔 기념비(Vendôme Column, 나중에 재건됨)를 파괴했다. 그는 인류가 신의 피조물임을 부인하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세계관과 유물주의를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나는 천사를 그릴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천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12]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쿠르베는 혁명하는 한편 예술을 ‘개조’했다. 그의 그림에 ‘사실’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추함으로 아름다운 것을 대체하고 여체 특히 여성 생식기를 드러내는 것을 ‘혁명 거동’으로 삼아 전통에 반항하고 전복시켜 공산주의 운동을 선동했다. 쿠르베의 인생역사에서 우리는 공산주의와 현대예술은 출생 초기부터 긴밀히 연계돼 있음을 볼 수 있다.

현대적 이데올로기의 영향 아래, 19세기 후반 몇십 년간 예술가의 혁명열정이 지속적으로 고조됐고 일련의 예술 운동이 잇달아 나타났다. 전통적인 유파와 달리 이런 예술은 한차례 단절적인 ‘아방가르드 운동’이었다. 아방가르드란 단어는 ‘정치혁명’에 어울리는 문화적 선구자로서 일찍이 사회주의자들의 예술이론에 의해 처음 사용됐다.

19세기 말, 악마가 배치한 인상파가 등장했다. 이때부터 현대예술가들은 전통회화기법에서 요구하는 비율, 구조, 투시, 명암 등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감수를 중심으로 탐색하기 시작했다. 신인상파(점묘파)와 후기 인상파가 잇달아 나타났는데, 각기 조르주 쇠라와 빈센트 반 고흐를 대표로 한다. 두 사람은 모두 사회주의 정서를 지니고 있다. 고흐는 심한 알콜중독자였고 말년에 정신병을 얻었고 그의 그림은 마치 마약에 중독된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과 같았다.예술작품은 창작자와 관객이 소통하는 매개체며 작품 속에는 창작자가 표현하고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가 있다. 르네상스 전성기 예술가들이 관객에게 전한 것은 오로지 선과 미였다면 현대파 예술작가들은 자신의 사상을 방종하고 귀신과 저급한 영이 대뇌를 통제하게 만든다. 그들 본인은 종종 미친 것 같은데 작품이 전달하는 정보도 어둡고 부정적인 것들이다. 고흐 등 인상파 화가의 많은 그림은 관객에게 몽롱하고 음침하며 퇴폐적이고 이성을 상실한 느낌을 준다.

인상파 이후 표현주의와 포비즘에 이어 피카소를 대표로 하는 입체파가 등장했다. 1944년 신문에는 피카소가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는 ‘나는 왜 공산주의자가 되었는가’라는 문장에서 언급했다. “내 삶과 작품 속의 논리적인 일환으로 공산당에 입당했다.” “억압과 저항 속에서 나는 단지 회화만 이용해선 안 되고 목숨을 걸고 투쟁해야만 한다.”[13] 피카소는 전통 화법을 타파하도록 고취했고 모든 사물을 진흙덩어리와 같이 멋대로 만질수록 괴상해지고 괴상해질수록 더 만족스럽게 여겼다. 이렇게 괴상하게 만드는 과정은 계속해서 그림을 파괴하는 과정이 됐고 관객이 보고도 이해할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게 했다. 심지어는 그와 같이 입체파를 대표하는 화가들조차 ‘아비뇽의 처녀들’이란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가 멋대로 기름을 뿌렸다고 여겼다.[14]

한편 입체파 화가 중 한 명인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은 전통 예술의 파괴와 반란을 실현하기 위해 ‘다다이즘’을 발전시켰다. 그는 이 때문에 ‘서양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불렸으며, “그 어떤 것도 모두 예술이라 불릴 수 있다”는 이념으로 이끌었다. 독일의 ‘다다이즘’의 행동강령은 공산주의와 직결돼 있다. “급진적 공산주의의 기반으로 창조력이 풍부한 모든 남녀는 혁명적인 국제연합을 이행해…즉각적으로 사유재산을 없애고 공동으로 나누며 전 인류를 해방시켜야 한다”[15]라고 선언했다.

전통에 대한 다다이즘의 맹렬한 비판은 프랑스에서 초현실주의로 발전했고, 이를 대표하는 인물은 공산당원인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이었다. 그는 공산주의 혁명이야말로 이상적인 형태의 혁명이라 여겼다. 그는 그 당시 유럽 현대예술의 전형적인 관점을 대표하는 합리적, 문화적, 사회적 제도의 ‘억압’에 반대했다.

그 이후 끊임없이 바뀐 예술운동으로는 추상주의, 미니멀리즘, 팝아트 등이 있다. 추상주의가 표현하는 것은 감정의 크기인데 모반과 무질서를 반영하며 허무로 초탈해 현실에서 도피함을 나타낸다. 나중에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면 공인된 사실이나 규칙, 추리와 도덕적 가치들은 모두 산산조각이 났다.[16] 더 심한 경우에는 직접적으로 예수와 성모마리아를 모독하는 소위 ‘예술’작품도 있다.[17]

현대파 예술가들이 모두 좌파 정치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류의 이성과 생존을 위한다는 출발점으로 신을 배척하고 대체한다는 점에서 공산주의와 정신적으로 의기투합한다.

3) 추함을 아름다움으로, 전통 미학을 바꾸다

각종 현대예술의 출현과 그에 따른 발전은 추함을 아름다움으로 만들어 전통적인 미학을 철저히 뒤엎고, 심지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마르셀 뒤샹은 소변기에 서명하고 ‘샘’이란 제목으로 뉴욕전시회에 출품했다. 비록 주최 측으로부터 출품을 거절당했지만 이런 ‘패러디’는 후대의 여러 미술가와 미술대학에서 ‘독창성’이 있다고 인정받게 된다. 이에 이르러 회화는 전례 없이 부정당하고 설치미술이 뒤따랐다. 이브 클랭(Yves Klein)은 1958년 파리 이리스 클레르 화랑에서 ‘텅 빈 전시회’를 열었다. 작품은 화랑 내부를 온통 하얗게 칠한 다음 텅 비워놓은 것이다.

독일 아방가르드 미술의 정신적 지도자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는 1965년 얼굴에 꿀과 금박을 칠한 뒤 죽은 토끼를 3시간 이상 끌어안고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할 것인가(How to Explain Pictures to a Dead Hare)’라는 퍼포먼스를 했다. 그는 “모든 사람은 예술가”라고 믿었다. 한번은 어떤 사람이 참을 수 없어 보이스에게 질문했다. “당신은 태양 아래 모든 것을 말하면서 예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가?” 보이스는 평온하게 “나는 태양 아래 모든 것이 다 예술이라고 본다”라고 대답했다.

모더니즘 예술을 대표하는 피에로 만초니(Piero Manzoni)는 1961년 자신의 대변을 90개의 작은 깡통에 넣어 예술가의 똥(Merda d’Artista)이라는 제목으로 출품했다. 2015년 그중 한 대변깡통이 런던에서 18만 2500파운드(약 20만 3000유로)에 팔렸는데, 이는 당시 같은 무게의 금 가격의 수백 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그는 또 직접 발가벗은 여인의 둔부에 서명한 후 살아있는 조각이란 제목을 붙여 전시회를 진행한 적도 있다.

또 어떤 여교수는 발가벗은 몸에 개똥을 칠해 출품했고 어떤 화가는 동물의 똥을 멋대로 칠한 것으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중국의 소위 어떤 ‘예술가’는 온몸을 발가벗은 채 꿀과 생선기름을 전신에 칠한 후 자기 몸에 파리가 달라붙게 했다. 이런 장면은 사람에게 생명이 천하고 추하며 역겹다는 느낌을 준다.[18] ‘BBC’에서 방송한 중국 ‘극단예술’에 관한 다큐멘터리 베이징 스윙스(Beijing Swings) 중에는 소위 한 행위예술가가 죽은 아기의 시신을 먹는 공연도 있다.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 월드마 자누스작(Waldemar Januszczak)은 “중국은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황당하고 어두운 예술을 만들고 있다”고 평했다.[19] 사실 이는 사람이 마성(魔性)을 추구한 결과이다. 현대예술의 소위 더럽고 메스껍고 후안무치함은 이미 인류가 심리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뛰어넘었다. 아방가르드의 작품과 행위는 바로 예술영역에서 진정한 ‘문화대혁명’이다.

이런 추세가 예술계에서 모더니즘을 하는 사람들에겐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 같다면, 진정으로 테크닉을 지닌 화가들은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엄격하게 전통을 따르고 각고의 노력으로 진정한 테크닉을 연마한 화가와 조각가들에게는 심지어 생존할 공간까지 사라졌다. 1922년 영국 빅토리아풍의 근엄하고 사실적인 신고전주의 양식 화가 존 윌리엄 고드워드(John William Godward)는 피카소 풍격을 존중하는 미술계에서 차별대우를 받다 자살했다. 죽기 전에 그가 남긴 한마디 말은 “세상은 나와 피카소를 동시에 포용할 만큼 크지 않다”는 것이다.[20]

악마가 음악을 부패시킨 방식도 유사한 수단을 채용했다. 정통적인 음악은 이론과 규범에 따르며 음률과 그에 따라 생기는 각종 음색과 음계는 조화로운 자연법칙에서 유래한 것이다. 신이 창조한 우주는 조화로우며, 사람은 우주의 조화를 감상하고 아름다운 느낌을 창조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도 신이 창조했기 때문이다. 현대파의 무조음악은 음계, 화음, 선율 등 음악의 전통요소를 배척하고 구성에 규범이 없다. 이는 신이 전한 고전음악을 부정한 것이다. 무조음악과 우주의 조화는 대립적이다. 이는 일반 청중들이 현대음악을 귀에 거슬려, 듣기 거북해 하는 이유다. 이에 대해 현대파 ‘음악가’들은 ‘미학이론’으로 청중의 귀는 훈련을 거쳐 이런 음악에 익숙해진 후에야 그것을 감상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현대파 음악의 기틀을 다진 아놀드 쇤베르크는 무조음악의 기초 위에 소위 12음기법을 제출해 반전통적 음악기법을 창조했다. 쇤베르크의 음악은 당시 반독일 음악문화, 즉 스타일, 감정, 전통과 모든 미학원칙에 대한 배신으로 여겨졌다. 그의 음악은 당시 독일인에게 코카인으로 불렸다. “쇤베르크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코카인을 주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 코카인은 독이고, 쇤베르크는 바로 코카인이다.”[21] 후대 음악평론가들은 이렇게 평가한다. “쇤베르크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는 바로 그의 사후 50년이 지났음에도 지구상의 어떤 공연장도 텅 비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22]

쇤베르크의 파격을 진정으로 널리 인정받게 한 것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중요인사인 아도르노(Theodor W. Adorno)의 음악이론이다. 아도르노는 1949년 쓴 ‘현대음악철학’ 중에서 철학이론으로 쇤베르크의 12음기법이 음악창작의 발전에서 ‘정점’에 도달했다고 ‘논증’했다. 후세 현대파 음악창작자와 비평가들이 쇤베르크의 12음기법 음악을 널리 받아들이게 하는 데 길을 닦아줬다.[23] 이후 많은 이들이 쇤베르크를 모방했고 아방가르드 음악에 거대한 추진작용을 일으켰으며 아방가르드의 물결도 음악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현대파 음악이 전통을 파괴한 후 ‘아방가르드 예술’은 로큰롤을 이용해 고전음악이 사람들의 생활 중에서 차지하던 위치를 대신했다. 미국 공산당 음악이론의 지도적 인물인 시드니 핀켈스타인(Sidney Finkelstein)은 공개적으로 고전음악과 통속음악의 경계를 타파할 것을 요구했으며, 이는 강렬한 리듬의 로큰롤 음악이 미국에 침투한 후 고전음악과 전통음악은 극히 협소한 생존공간만 남게 했다.[24]

로큰롤의 특징은 화성이 조화롭지 못하고 멜로디는 불규칙해 마치 공산주의 투쟁철학과 같이 비트, 감정충돌,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사기(史記)’에서는 도덕에 부합하는 소리(音)라야 비로소 음악(樂)이라 칭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로큰롤 음악가의 삶과 창작의 주요 테마는 성, 폭력과 마약이다.

로큰롤 음악 이후 미국에서는 랩과 힙합 등이 나타나 한 시대를 풍미하고 있다. 랩은 욕설이 난무하고 마약, 폭력과 상스런 말로 전통사회에 대한 반발을 표현한다.[25] 사회 전반의 도덕이 미끄러져 내려감에 따라 과거에는 ‘비주류문화’로 여겼던 이런 예술형식이 이미 주류사회에 침투해 주류예술의 전당에서도 떠받들어지고 있다.

앞에서 우리는 주로 미술과 음악의 현 상황에 대해 언급했다. 사실 전체 예술계는 거대한 충격과 현대파 예술의 큰 영향을 받았다. 전통적인 구상이나 수법의 조각, 건축, 무용, 패션, 디자인, 사진, 영화 등도 모두 마찬가지다. 현대 예술에 종사한 많은 사람들은 공산이데올로기의 강한 영향을 받았다. 가령 현대무용의 창시자 이사도라 덩컨은 동성애자이자 무신론자였다. 그녀는 발레를 반대했고 발레는 추하고 반자연적이라고 봤다. 그녀와 100명의 학생이 ‘인터내셔널가’를 무용의 주제로 모스크바에서 레닌을 위해 공연하기도 했다.[26]

이런 것들이 세상에 존재하고, 트렌드를 형성하며, 심지어 주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공산사령이 예술계에서 그들의 대리인을 통해 신이 전한 예술을 파괴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또한 표현에서 일종 기만적이면서도 대다수 사람이 받아들이게 만든 논리가 있는데 바로 그럴듯한 한 세트 미학이론의 뒷받침만 있다면 쓰레기조차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아방가르드 예술’과 ‘전통예술’의 차이를 유심히 살펴보면, 르네상스 시기 예술가들이 단지 예술로 신을 찬미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움’을 통해 인간의 마음속에서 ‘진’과 ‘선’을 불러일으키고 이를 통해 사회도덕을 유지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반대로 각종 변이된 소위 아방가르드 예술은 르네상스의 모든 업적을 파괴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들은 사람들더러 ‘추함’을 감상하도록 이끈다. 이런 ‘추함’은 사람의 마성을 불러일으키며 어둡고 퇴폐적이며 폭력 내지 악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들은 인간, 도덕, 사회의 신성한 본성인 신이 창조한 장엄한 경치를 깨뜨리고 악마로 이끈다. 심지어 직접 신을 모독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신과 멀리할 뿐만 아니라 내면의 신성과 사회와 전통 가치로부터 멀어지게 한다.[27]

4) 문학을 이용해 인류를 파멸하는 공산사령

문학은 한가지 특수한 예술부문이다. 그것은 언어를 매개체로 신이 사람들에게 준 지혜를 전승하며 인류의 소중한 삶의 경험을 기록한다. 고대 그리스의 고전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 전후 복잡다단했던 역사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냈으며 신과 인간이 함께 존재하며 공동으로 역사를 창조한 웅장한 그림을 진실하게 그려냈다. 이 서사시는 용기, 관용, 재치, 정의, 금욕 등의 미덕을 찬양함으로써 고대 그리스 문명과 전체 서양문명 가치관의 중요한 원천이 됐다.

문학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큰 영향을 볼 때, 사악한 영은 그들의 인간대리인과 명성과 부를 추구하며 진상을 모르는 세인들을 조종해 대량의 ‘문학작품’을 조작해 널리 보급시켰다. 이를 통해 세인들에게 악마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전통문화를 훼손했으며 세인의 도덕을 타락시키고 삶의 절망감과 부조리, 공허함을 퍼뜨려 사람들로 하여금 악마의 통치하에 사악과 변이된 혼탁한 세상에 적응하게 만들었다. 문학은 악마가 세계를 통치하는 중요한 도구 중 하나가 됐다.

가장 직접적으로 악마 이데올로기를 주입한 것은 공산당도들이 선전하는 공산주의의 다양한 업적이다. 파리코뮌이 진압된 후 코민 위원 외젠 포티에는 ‘인터내셔널가’를 만들어 “어디에도 위대하신 구원자는 없노라 신도, 황제도, 달변가도”라고 기고만장하게 떠들며 “세상은 바야흐로 밑바닥부터 뒤바뀌고”라고 큰소리친다. 인터내셔널가는 제1인터내셔널과 제2인터내셔널 대회 가요이자 중국 공산당의 당가이며 세계 각국 공산주의자들의 집회와 문예작품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소련 공산당과 중국 공산당 역사상 공산당은 민중을 세뇌하기 위해 그 문인들에게 상대적으로 전통적인 기법을 채용해 프롤레타리아의 삶과 계급의식을 표현하고, 공산당의 이론과 정책을 묘사해 많은 작품을 만들게 했다. 예를 들면 소련의 소설 <철류>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중국 공산당의 <청춘의 노래>와 <태양은 상간허위에 비추네> 등이 있다. 모두 커다란 선전작용을 일으켰다. 공산당은 이런 스타일의 작품을 가리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고 불렀다. 마오쩌둥은 이런 문예 기능을 개괄해 “노동자 농민 병사를 위한 봉사”며 “무산계급을 위해 봉사”라고 했다.[28] 이런 문학의 이데올로기 주입효과는 아주 명백하며, 사람들은 이것을 상당히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공산사령은 문학을 단지 인류를 부패하게 만드는 수단에 국한해서 사용하진 않았다. 아래에서 단락을 나눠 서술해본다.

첫째, 문학을 이용한 전통파괴이다. 공산사령이 인류를 파멸하는 한 가지 중요한 절차는 신이 사람에게 준 정통문명을 비방하는 것이다. 중국뿐 아니라 서방에서도 사령은 모두 사악의 변이된 사상을 지닌 문인을 이용해 전통문화를 왜곡하고 모욕하는 작품을 창작해 전파하게 했다. 소위 ‘신문화운동’ 중에서 전통에 대한 악독한 공격으로 유명한 루쉰(魯迅)의 중국 역사에 대한 태도는 전반적인 부정이었다. 그가 발표한 첫 번째 소설 <광인일기>에서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중국의 역사는 두 글자 ‘식인’뿐이라고 했다. 루쉰은 마오쩌둥에 의해 ‘문화신군의 가장 위대하고 가장 뛰어난 기수’ ‘중국문화혁명의 주역’이라고 추켜세워졌다. 마오는 또 “루쉰의 방향이 바로 중화민족 신문화의 방향이다”라고 말했다.[29] 유럽에서는 1909년 이탈리아 시인 마리네티가 ‘미래주의 선언’을 발표해 전면적으로 전통에 반대하고 기계, 기술, 속도, 폭력과 경쟁을 찬양했다. 러시아의 시인이자 공산주의자인 마야콥스키는 1913년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를 발표해 러시아 전통문학의 취향과 단호히 결별할 결심을 표현했다.

둘째, ‘현실 표현’이란 구실로 추악함을 표현한다. 문인과 예술가는 문학과 예술을 이용해 추하고 괴이하며 무서운 사물이나 장면을 표현하는데 가장 흔한 구실이 바로 ‘현실 표현’이다. 그들은 고전예술가들은 조화, 우아, 또렷, 절제, 적합, 균형, 보편성, 이상성 등을 강조하지만 현실을 표현할 때 반드시 선택과 가공이 더해져야 하므로 작품은 절대 진실일 수 없다고 본다. 이런 식의 관점은 사실 예술의 기원과 기능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예술이 비록 생활에서 나오긴 하지만 마땅히 생활보다 높아야만 건강하게 즐기고 고상하게 인도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술가가 창조할 때는 반드시 표현대상들을 선택하고 제련과 가공이 필요한 것이다. 일률적으로 ‘사실’만 강조한다면 실제 생활과 예술의 한계를 말살하는 것과 같다. 만약 이런 절대적인 ‘사실’이 바로 예술이라면 매 사람이 보고 듣는 것이 바로 예술인데 구태여 그렇게 큰 인력과 물력을 들여 예술가를 배양할 필요가 있겠는가?

셋째, 문학을 이용해 도덕성을 타락시키는 것이다. 사령은 인간대리인을 시켜 진실을 표현하는 자아, 자동 창작 등을 포함한 그럴듯한 변명을 만들었다. 그 목적은 세인들이 정통적인 도덕표준을 포기하고 인간 본성의 악한 일면을 방종하게 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앞에서 언급한 프랑스 공산당원이자 시인인 브르통은 ‘초현실주의 선언’에서 새로운 문학주장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순수한 영혼의 자동주의는, 말하거나 글을 쓰거나 혹은 그 어떤 다른 방식으로도 진정한 사유기능을 표현하기 위해 이 자율성을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단지 이런 사상의 명령에 따를 뿐 이성의 어떠한 통제도 따르지 않고 그 어떤 미학이나 도덕적 편견에도 의존하지 않는다.”[30]

‘의식의 흐름’과 초현실주의의 ‘자동 창작’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프로이트 심리학의 영향을 받아 20세기 초부터 일부 서양 작가들은 ‘의식의 흐름’ 창작실험을 시작했다. 이런 유의 작품은 종종 변변찮은 인물(안티 히어로)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간단하고 내적인 독백이나 자유로운 연상 등을 통해 내면의 은밀한 사상활동을 드러낸다. 주지하다시피 인성 중에는 선과 악이 동시에 존재하며 사람은 일생 중에서 끊임없는 도덕수양과 자기 억제를 통해 자신을 끝없이 제고하고 도덕적으로 고상한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 하지만 수많은 현대인의 사상 속에는 모두 적지 않은 악념과 욕망이 포함돼 있다. 만약 자신을 방임하는 한 가지 방식으로 자신의 각종 사상과 의식을 아무런 단속 없이 공적으로 드러낸다면 이는 한 사람의 좋지 않은 사상을 이용해 전 사회를 오염시키는 것과 같다.

넷째, 비판, 항의의 명목으로 마성을 방종한 것이다. 서방 자유세계에서 생활한 문인과 예술가는 반전통사상의 영향 하에 모든 법률제도와 사회규범, 도덕신조를 제한과 억압으로 간주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현대사회의 일부 문제를 보았고 인간 본성의 약점을 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성적으로 사고하거나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과 항의의 명목으로 개성을 방종한 극단적인 개인주의로 나아갔다. 때문에 이들은 자신의 마성을 확대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증오, 나태, 각종 욕망과 성적 충동, 공격성, 명리추구 등을 포함한 변이된 수단의 도움으로 소위 항의를 표현한다. 하지만 도덕적 자아 단속을 느슨히 하면 곧 마귀의 세력권에 들어간 것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파란을 더 크게 일으키는 작용을 한다.

1960년대 반문화운동이 유행하던 당시, 미국의 시인 앨런 긴즈버그는 비트 세대의 대표 중 하나였다. 지금도 저항의식을 지닌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고 있다. 그의 장편 시 <울부짖음(Howl)>은 알코올중독, 난잡한 성교, 마약주사, 동성애, 자해, 성매매, 나체달리기, 연쇄폭력, 절도, 목적 없는 유랑, 광기 등 극단적인 삶과 심리상태를 묘사한다. 반문화운동이 제도화되면서 <울부짖음>은 각종 문학선집에 들어가 ‘문학고전’의 지위를 얻었다. 긴즈버그는 자신이 일찍이 공산주의자였음을 인정했고 아울러 이를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31] 그는 카스트로와 다른 공산독재자들을 존경했고 대대적으로 동성애와 소아성애를 부추겼다. 긴즈버그를 통해 우리는 공산주의와 극단적 개인주의의 근원이 같음을 똑똑히 볼 수 있다.

다섯째, 문학을 이용해 외설을 전파한 것이다. 20세기 이후 문학작품은 성적으로 노골적인 내용을 표현하기 시작했으며, 일부 작품은 외설적인 부분이 수두룩하지만, 명작으로 떠받들어졌다. 많은 평론가와 학자들도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포기하고 이런 작품이 아주 진솔하고 예술수법이 뛰어나다고 칭찬했다. 주지하다시피 전통도덕은 많은 방면에서 금기의 형식으로 작용한다. 아무리 그럴듯한 구실로 이런 금기를 깨기 위해 변명을 해도, 그들은 사람들의 도덕을 부패시키고 있다.

여섯째, 저급하고 썩은 귀신이 문학을 통해 인체를 통제하게 한다. 지난 수십 년간 인류문화가 날로 복잡해지면서 소위 ‘장르 소설’이 대량으로 나타났다. 스릴러, 공포, 요괴, 판타지 등인데 사령과 사탄이 조종하는 저급하고 썩은 귀신이 일부 작품을 통해 침투해 사람의 사상을 통제하고 더 나아가 인체를 통제하게 했다. 이는 사람의 비인간화를 조성했는데 역사상 전례 없던 변이 현상은 대부분 저령의 인체통제와 관련이 있다.

속담에 이르기를 “두꺼운 얼음이 하루 추위에 언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문학예술이 타락해 악마의 수단으로 전락하는 데는 상당히 긴 과정을 거쳤고 다양한 유파와 관련이 있다. ‘낭만파’는 생활에 대한 문학의 표현범위를 확장했다. 일부 추하거나 괴이한 현상, 사람의 극단적이고 실성한 정신상태가 문학작품을 통해 대중의 시야에 진입했다. 몇몇 저명한 영국의 낭만파 시인은 소재가 부도덕해 일찍이 사탄파(The Satanic School) 시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사실주의는 현실의 재현을 기치로 내걸고 인간 본성의 더욱 저급한 부분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일부 작품은 변이사상과 부도덕한 행위에 심하게 오염됐다. 한 문학평론가는 사실주의는 “네발을 땅에 딛고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낭만주의”라고 말했다.[32]

자연주의는 인간의 도덕이 타락한 원인을 사회환경과 가족의 유전성 정신 질환으로 규정하는데, 이는 곧 개인의 도덕적 책임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다. 유미주의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예술의 기능은 감각적인 즐거움을 제공하고 어떤 도덕적 기능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모든 예술작품은 사람의 도덕에 미묘하지만 심오하고 지속적인 영향을 끼친다. 예술이 도덕적 기능을 담당할 필요가 없다고 부추기는 것은 예술이 ‘부도덕한’ 기능을 위한 문을 열어준 것과 같다. 확실히 이런 형형색색의 문학유파가 어느 정도 수준을 지닌 작품을 창작한 것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중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복잡하게 섞여 있고 수준 편차도 심하다. 비록 공산사령이 이들 유파를 직접 조종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중 부정적인 요소는 분명 인류도덕이 미끄러진 후의 성과이며, 이는 공산사령이 문학적 부패한 사람들을 이용할 수 있는 길을 닦았다.

한 개인이 작품을 만들 때 그의 도덕수준과 정신상태가 모두 작품 속에 반영된다. 인류 도덕이 전반적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면서 작가들의 마음속에도 부정적인 요소가 점점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고 수많은 창작품들이 사람을 선으로 향하게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사람을 지옥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맺음말

예술의 힘은 거대한 것으로 좋은 예술은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고 도덕을 끌어올리며 음양을 조화롭게 할 수 있다. 심지어 천지신명(神明)과 소통하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100여 년간 공산사령은 그것의 인간 대리인을 통해 사람의 마성과 사념을 이용하여 방대하고 극히 다양한 예술작품을 창작했다. 이를 통해 사람이 신을 반대하고 신을 배척하거나 모독하며 전통에 반대하고 도덕에 반대하도록 이끌어 전체 사회를 마로 변하게 했으니 온 세상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전통예술의 아름다움에 비하면 오늘날 현대예술은 가히 비루하고 괴상함이 극에 달했다. 인류의 심미관념은 이미 철저히 전복됐다. ‘아방가르드’는 크게 유행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신성하고 고상하게 취급받던 예술이 지금은 오락화되고 통속화되거나 심지어 마귀화돼 대중이 멋대로 소비하고 왜곡하며 조소하는 대상이며, 심지어 사람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마성을 배출하는 도구가 됐다. 미와 추, 우아함과 상스러움, 선과 악의 경계는 완전히 사라지거나 심지어 뒤바꿨다. 악마의 추악하고 무질서하며 음침함이 보편적 가치로 됐고 인류사회는 마성의 정보로 가득해져서 사람을 휩쓸어 타락과 파멸을 향해 더 빨리 나아가게 한다.

도덕을 끌어올리고 신앙과 전통을 되찾아야만 인류는 비로소 예술 부흥의 길로 나아갈 수 있고 진정한 예술의 아름답고 신성하며 휘황함을 재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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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자(孔子), 「논어, 팔일(論語 八佾)」

[2] 사마천(司馬遷), 「사기, 악서(史記, 樂書)」

[3] 구양수(歐陽修),송기(宋祁), 「신당서(新唐書第), 237권」

[4] Robert McKee, Story: Style, Structure, Substance, and the Principles of Screenwriting (New York: Harper-Collins Publishers, 1997), 129-130.

[5] Yingshou Xing, et al, “Mozart, Mozart Rhythm and Retrograde Mozart Effects: Evidences from Behaviours and Neurobiology Bases,” Scientific Reports Vol. 6, Article#: 18744 (2016), https://www.nature.com/articles/srep18744.

[6] David A. Noebel, The Marxist Minstrels: A Handbook on Communist Subversion of Music, (Tulsa, OK: American Christian College Press, 1974), 58-59.

[7] David Cloud, “Rock Music and Suicide,” Way of Life Literature, December 20, 2000, https://www.wayoflife.org/reports/rock_music_and_suicide.html.

[8] Val Williams, “Leni Riefenstahl: Film-maker Who Became Notorious as Hitler’s Propagandist,” September 10, 2003, https://web.archive.org/web/20090830045819/http://www.independent.co.uk/news/obituaries/leni-riefenstahl-548728.html.

[9] 마오쩌둥, 「연안문화예술좌담회 강화」, 마오쩌둥 선집 제3권

[10] Rober Florczak, “Why Is Modern Art So Bad?” PragerU, https://www.youtube.com/watch?v=lNI07egoefc.

[11] Herbert Marcuse, The Aesthetic Dimension: Toward a Critique of Marxist Aesthetics (Boston: Beacon Press, 1978), ix.

[12] “Gustave Courbet Quotes,” http://www.azquotes.com/author/3333-Gustave_Courbet.

[13] Pablo Picasso, “Why I Become a Communist,” http://houstoncommunistparty.com/pablo-picasso-why-i-became-a-communist.

[14] Robert Hughes, The Shock of the New: The Hundred-Year History of Modern Art—Its Rise, Its Dazzling Achievement, Its Fall (London: Knopf, 1991), 24.

[15] Richard Huelsenbeck and Raoul Hausmann, “What Is Dadaism and What Does It Want in Germany?” in Robert Motherwell, ed., The Dada Painters and Poets: An Anthology, 2nd ed., (Cambridge, MA: Belknap Press, 1989).

[16] Michael Wing, “Of ‘-isms,’ Institutions, and Radicals: A Commentary on the Origins of Modern Art and the Importance of Tradition,” The Epoch Times, March 16, 2017, https://www.theepochtimes.com/of-isms-institutions-and-radicals_2231016.html.

[17] Katherine Brooks, “One of The World’s Most Controversial Artworks Is Making Catholics Angry Once Again,” Huffington Post, May 13, 2014, https://www.huffingtonpost.com/2014/05/13/piss-christ-sale_n_5317545.html.

[18] Arnaud Hu, 「지금의 미술에 대한 범론(泛談當今的美術)」, 정견망

https://www.zhengjian.org/node/158434。

[19] “’Baby-eating’ Artist Sparks TV Row,” BBC News, December 30, 2002,http://news.bbc.co.uk/2/hi/entertainment/2614643.stm.

[20] “John William Godward: Biography,” Heritage Auctions.

[21] Walter Frisch, ed., Schoenberg and His World(Princeton, N.J.: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9), 94.

[22] Norman Lebrecht, “Why We Are Still Afraid of Scoenberg,” The Lebrecht Weekly, July 8, 2001, http://www.scena.org/columns/lebrecht/010708-NL-Schoenberg.html.

[23] Golan Gur, “Arnold Schoenberg and the Ideology of Progress in Twentieth-Century Musical Thinking,“ Search: Journal for New Music and Culture 5 (Summer 2009), http://www.searchnewmusic.org/gur.pdf.

[24] David A. Noebel, The Marxist Minstrels: A Handbook on Communist Subversion of Music, 44-47.

[25] Jon Caramanica, “The Rowdy World of Rap’s New Underground,” New York Times, June 22, 2017, https://www.nytimes.com/2017/06/22/arts/music/soundcloud-rap-lil-pump-smokepurrp-xxxtentacion.html.

[26] “Politics and the Dancing Body,” https://www.loc.gov/exhibits/politics-and-dance/finding-a-political-voice.html.

[27] Michael Minnicino, “New Dark Age: Frankfurt School and Political Correctness,” Fidelio Magazine, Volume 1, Number 1 (Winter 1992), https://www.schillerinstitute.org/fid_91-96/921_frankfurt.html.

[28] 마오쩌둥, 「연안문화예술좌담회 강화」, 마오쩌둥 선집 제3권

[29] 마오쩌둥, 「신민주주의론」, 마오쩌둥 선집 제2권

[30] André Breton, “Manifesto of Surrealism,” https://www.tcf.ua.edu/Classes/Jbutler/T340/SurManifesto/ManifestoOfSurrealism.htm.

[31] Allen Ginsberg, “America,” https://www.poetryfoundation.org/poems/49305/america-56d22b41f119f.

[32] Irving Babbitt, Rousseau and Romanticism (Boston: Houghton Mifflin,1919),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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