쑨리쥔 체포와 시진핑 6번의 타협

왕요우췬(王友群)
2020년 8월 10일
업데이트: 2020년 8월 11일

지난 4월 19일 중앙기율검사위원회(중기위)는 쑨리쥔(孫力軍) 공안부 부부장이 조사받고 있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 사건을 2012년 미국영사관으로 도망쳐 중국을 뒤흔든 ‘왕리쥔(王立軍) 사건’이나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중앙정법위 서기를 지낸 저우융캉(周永康) 체포 사건에 비견될 수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시진핑이 그의 최대정적인 장쩌민, 쩡칭훙과 여섯 번 타협하면서 갈수록 심각한 ‘핍궁(逼宮: 신하가 황제 퇴위를 강요)’, ‘정변’, ‘하야’ 위기에 몰린 배경 때문이다. 필자 생각에도 이는 과언이 아니다.

첫 번째 타협: 709 변호사 체포에서의 타협

2015년 6월 11일, 장쩌민, 쩡칭훙의 심복인 저우융캉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해 7월 9일, 중국 공안은 전국 25개 성, 자치구, 직할시에서 300여 명의 변호사, 변호사 조리, 인권 인사 및 그 가족을 소환해 형사 체포, 구속, 면담했다. 장쩌민, 쩡칭훙의 심복이자 당시 공안부장으로 있던 궈성쿤(郭聲琨)이 지휘하고 공안부 국보 국장이던 쑨리쥔이 집행한 이른바 ‘709 검거’ 이후 공안, 검찰, 법원, 사법기관은 인권변호사들을 잔혹하게 박해해 권익 보호에 앞장섰던 인권변호사들이 거의 자취를 감췄다.

중국에서는 이처럼 법을 알면서 어기고, 집행하면서 어기고, 아래위로 속이고, 법률을 농락하며, 인권을 짓밟고, ‘인민법원’을 이용해 법률을 파괴하는 심각한 범죄행위가 만연해 국내외에 악영향을 미쳤다. 당시 부패 타도와 권력 쟁취에 여념이 없던 시진핑은 이 사건을 방임했다.

두 번째 타협: 레이양(雷洋) 구타 사망 사건 조사 처벌에서의 타협

2016년 5월 7일, 베이징에 사는 환경운동가 레이양은 공항으로 친척을 마중 나갔다가 ‘성매매’ 혐의로 경찰에 체포돼 구타로 숨졌다. 공권력으로 무고한 시민의 목숨을 빼앗은 이 사건은 국내외에서 대중의 분노를 촉발했고 시진핑 총서기까지 나서 ‘법에 따라, 공개적으로’ 조사해 처벌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보도됐다. 그러나 상부의 압력을 받은 공안부장은 최고위층에 ”관련 경찰을 처벌하면 사직하겠다”는 서신을 4000여 명이 연명으로 보내도록 했다. 12월 23일, 베이징시 펑타이구 검찰원은 ‘죄질이 가볍고, 죄를 인정하며 뉘우친다’는 이유로, 해당 경찰 5명을 불기소 처분했다.

권선징악이냐 범죄 방임이냐, 인심을 얻을지 잃을지 가늠할 수 있었던 사건에서 시진핑은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도모해야 할 경찰이 인명을 경시한 사건을 축소해 흐지부지되도록 만들었다.

세 번째 타협: 최고인민법원 법관 왕린칭(王林淸)의 ‘자인’ 사건에서의 타협

2018년 12월 26일, 중국 국영 CCTV의 유명 앵커 추이융위안은 왕린칭 판사의 인터뷰 동영상을 SNS에 공개했다. 영상에서 왕 판사는 최고인민법원(대법원 격) 원장 저우창이 ‘산시성 천억위안(약 16조 5천억 원) 광산권 사건’ 판결에 관여했으며 재판기록 분실에 책임이 있다고 폭로해 전 세계의 시선을 끌었다. 2019년 1월 8일, 중앙정법위는 중기위, 국가감찰위원회, 최고인민검찰원, 공안부 등으로 구성된 합동조사팀을 투입해 전면 조사에 나섰지만 1개월여의 조사 끝에 내린 결론은 “왕린칭의 자작극”이었다. 2월 22일, 왕린칭은 CCTV에 나와서 죄를 자인했다. 이 사건은 현대판 ‘지록위마(指鹿爲馬 : 흑백이 뒤바뀌고 사실이 호도됨)’로 불린다.

영상이 공개된 12월 26일부터 2월 22일까지 50여 일 동안 추이융위안의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와 관련 보도는 삭제되지 않았다. 현지 관리 이름만 폭로해도 금지되거나 삭제당하는 중국에서 이를 방치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시진핑이 묵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중앙정법위는 이 사건에 중공정치국 상무위원이자 중기위 서기인 자오러지의 위법문제가 있다는 것과 시진핑이 709 변호사 체포사건과 레이양 사건에서 당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 양보, 타협했던 약점을 활용해 가짜뉴스를 만들어 냈다.

저우창이 법을 어기고도 비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장쩌민 이익집단’의 중요구성원이기 때문이다. 2015년 5월 1일부터 전 세계 21만 명의 파룬궁 수련자들이 실명으로 최고인민법원에 장쩌민을 고발했을 때 저우창은 법대로 장쩌민을 조사하지 않았고 오히려 차오젠밍 최고인민검찰원장과 공동으로 파룬궁 박해를 가중하는 ‘사법해석’을 발표했다.

왕린칭은 법학박사이며 전국정법계통 최초로 두 개의 박사학위를 소지했고 일찌기 ‘전국법원사건처리모범’으로 선발된 바 있으며, ‘걸출한 전국 10대 청년 법학자’ 등에 추천됐다. 중국 정부는 이런 인물도 트집을 잡아 감옥에 보내는데 10여억의 인민, 700여 만 홍콩인, 2300만 대만인, 70여 억의 세계인 중 누가 중국의 법률을 믿겠는가?

장쩌민, 쩡칭훙의 심복인 궈성쿤 중앙정법위 서기가 흑백을 뒤집을 때도 시진핑은 당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 침묵했다.

네 번째 타협: 중공 19차 당대회에서 장쩌민, 쩡칭훙과의 타협

시진핑은 2012년 집권 이래 반부패 운동을 지속해 5년만에 이미 양대 원흉인 장쩌민, 쩡칭훙에 근접했다. 2017년 10월 중국공산당 19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장쩌민과 쩡칭훙은 패배를 인정하는 약한 모습을 보여 시진핑은 스스로 최고권력을 이미 손에 넣었다고 여기고 그들의 죄를 더는 추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장쩌민과 쩡칭훙이 시진핑 주변에 심어놓은 정치국상무위원 왕후닝이 시진핑을 과도하게 치켜세워 국내외 정치에서 대응 착오를 일으키도록 유도했다.

적을 공격할 때 우두머리를 잡지 않으면 반드시 화를 부른다. 중공 19차 당대회 이후 줄곧 두 사람의 심복은 기회만 있으면 국내외에서 시진핑을 괴롭힌다. 시진핑은 만신창이로 곤란을 겪으면서 전 세계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다.

2년 반 동안 시진핑이 이룬 업적, 인심, 인기, 국제적 명성은 거의 다 물거품이 됐다. 그에게 희망을 걸었던 개혁파, 개명파, 자유파, 대학생, 일반 민중, 국제 친구까지 하나씩, 한 무리씩 그를 떠났다. 중국의 초대 원로 뤄뤼칭(羅瑞卿)장군의 아들이자 시진핑의 어릴 적 친구인 뤄위(羅宇)는 시진핑에게 계속 편지를 보내 권고했지만, 시진핑은 듣지 않았다. 실망한 뤄위는 더는 편지를 보내지 않는다. 장쩌민, 쩡칭훙은 가장 사악한 정치인이다. 악마와 거래해서 좋을 게 있겠는가?

다섯 번째 타협: 미중 무역전쟁에서의 타협

2018년 3월, 시진핑의 두 번째 임기에서 부딪힌 첫 번째 난관은 미중 무역전쟁이다. 2016년 4월, 시진핑은 미국을 방문해 “우리는 미중 관계를 좋게 유지할 천 가지 이유가 있다. 미중 관계를 나쁘게 만들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이 말대로라면, 미중 무역전쟁이 발생할 리 없고 곧바로 협상했을 것이다.

왕후닝은 그가 장악한 선전기구를 이용해 “작게 싸우는 것은 중급으로 싸우는 것만 못하고, 중급으로 싸우는 것은 크게 싸우는 것만 못하다. 크게 싸워야 크게 승리한다”며 미중 무역전쟁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관세 폭탄을 맞았고 2018년 12월 1일 양국은 90일간의 휴전 후 재협상하기로 했다.

시진핑이 직접 나서 2019년 5월 양국은 90% 이상의 합의를 이뤘고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을 백악관으로 불러 서명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왕후닝 등이 반발해 협상이 무산됐다. 시진핑은 중심을 못 잡고 다시 한번 악마와 타협한 것이다. 다시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은 중국에 치명타가 됐다. 2020년 1월, 시진핑은 군권을 과시하면서 미국과 간신히 제1단계 무역 합의를 이뤘다.

이번 미중 무역전쟁에서 시진핑은 2016년 4월 자신이 한 말조차 잊어버렸다. 중요한 외교 문제에서 방향을 잃고 ‘나아가고 물러섬’에 정확성을 잃으면서 참혹한 손실을 봤다.

여섯 번째 타협: 홍콩 송환법 반대운동에서의 타협

홍콩은 세계 제3대 금융중심지이자 중국의 대외개방에서 가장 중요한 창구다. 과거 40여 년간 중국경제발전에 결정적인 공헌을 해왔다. 중국에 큰 재난이 닥칠 때마다 홍콩인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기부를 했다.

전략적으로 홍콩을 중시하고 홍콩의 번영과 안정을 유지하는 것은 중국의 지도자가 국내외에서 지위를 공고히 하는 전제조건 중 하나다. 1997년 7월 1일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후 장쩌민, 쩡칭훙이 홍콩을 장악했다. 시진핑이 7년여간 집권했지만, 아직도 홍콩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홍콩 행정 장관 캐리 람, 중국 중앙인민정부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중련판) 주임 왕즈민, 국무원 홍콩·마카오판공실 주임 장샤오밍, 정치국상무위원, 국무원 부총리 겸 홍콩·마카오 공작협조소조 조장 한정(韓正) 등은 모두 장쩌민, 쩡칭훙의 심복들이다. 홍콩 경찰도 장쩌민, 쩡칭훙의 심복들이 장악하고 있다.

작년 6월, 홍콩에서 유사 이래 최대규모의 송환법 반대 시위가 발생했다. 장쩌민, 쩡칭훙의 심복이자 중국공산당 정치국 위원 겸 중앙정법위 서기인 궈성쿤은 공안부 홍콩마카오대만판공실 주임 쑨리쥔을 원격조종해 궈성쿤의 옛 부하인 공안부 주홍콩중련판 경무연락부 주임인 리장저우(李江舟), 홍콩경무처장 루웨이총(盧偉聰) 및 그의 후임자인 덩빙창(鄧炳强)과 함께 단 6개월 만에 홍콩을 난장판으로 만들었고 홍콩은 유사 이래 가장 암울한 시기를 맞이했다. 이는 700만 홍콩인과 홍콩에 거주하는 외국인에 대한 범죄이고, 14억 중국인에 대한 범죄다.

홍콩의 난국에 중대한 책임을 져야 할 홍콩 행정 장관 캐리 람, 중련판주임 왕즈민, 국무원 홍콩마카오판공실주임 장샤오밍 등은 지금까지 한 명도 기율이나 법규 위반 처분을 받지 않았다. 시진핑은 이들에 대해 엄격한 책임추궁을 하지 않았다. 이는 장쩌민, 쩡칭훙과의 타협이다.

시진핑이 여섯 차례에 걸쳐 타협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민중 가운데서 명망이 일락 천장한다. 시진핑 리더십에 대한 회의론이 확산되고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면서 시진핑의 생명안전은 계속 위협받고 있다. 관리들의 나태, 부패, 무사안일로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 다반사가 됐다. 장쩌민, 쩡칭훙과 심복들은 갈수록 겁 없이 날뛰면서 대담한 짓거리를 벌이고 있다.

올해 우한폐렴(중공 바이러스) 펜데믹으로 국제적 책임 추궁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중국 내에서도 시진핑의 하야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위, 아래로부터 압력이 가중되면서 시진핑은 최대 위기에 처해 있다.

쑨리쥔 체포는 어떤 효과가 있을까?

쑨리쥔은 상하이 시 정부 외사판공실 부주임, 공안부 판공청 부주임, 공안부 당위위원, 1국(국내안전보위국), 26국(공안부610판공실)국장, 중앙610판공실 부주임, 홍콩마카오대만판공실 주임으로 승승장구했다.

쑨리쥔은 멍젠주의 비서실장 출신으로 멍젠주가 공안부장으로 있을 때 발탁돼 승진 가도를 달렸다. 멍젠주가 중공정치국 위원, 중앙정법위 서기로 승진하자 쑨리쥔은 체제 안전을 담당하는 공안부 1국 국장을 맡으면서 공안부 실세가 됐다. 공안부 1국은 정부수집분석, 반 전복파괴정찰, 해외 비정부조직관리 등을 담당한다. 중공 비밀경찰의 우두머리라고도 불리는 쑨리쥔은 2013년~ 2017년까지 궈성쿤이 공안부장으로 있을 때 그의 심복 부하였다.

쑨리쥔은 멍젠주, 궈성쿤의 심복이었다. 멍젠주, 궈성쿤은 쩡칭훙이 발탁한 인물로 둘 다 공안부장과 중공정치국위원, 중앙정법위 서기를 지냈다. 쩡칭훙은 장쩌민이 발탁했다. 따라서 쑨리쥔 낙마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사람은 멍젠주와 궈성쿤이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장쩌민, 쩡칭훙까지 영향을 미친다.

공안부 610판공실 주임, 중앙 610판공실 부주임으로써, 쑨리쥔은 장쩌민, 쩡칭훙이 지휘한 파룬궁 박해의 주요 실무책임을 맡았다. 610판공실(국무원 판공실 610호)은 장쩌민 전 주석이 재임 당시 파룬궁 탄압 전담기구로 설치한 국무원 산하 비밀경찰 조직이다.

미국에 망명해 있는 중국 부동산 재벌 궈원구이가 폭로한 바에 따르면, 멍젠주는 자신의 모친과 장쩌민의 장남 장몐헝을 위해 여러 번 신장 이식수술을 주선했다. 감옥에 갇힌 수감자들의 신장을 제공하는 일은 쑨리쥔이 했다. 쑨리쥔 등이 파룬궁 수련자를 박해한 죄행은 반드시 드러나 결국 처벌받을 것이다.

공안부 홍콩마카오대만판공실 주임 쑨리쥔의 낙마는 중국의 홍콩마카오대만의 스파이계통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지난해 홍콩의 송환법 반대 시위를 진압하면서 쑨리쥔이 지휘한 홍콩마카오대만의 스파이계통은 나쁜 짓을 적잖게 벌였다. 지난해 11월 23일, 호주로 망명한 왕리창은 그가 홍콩 송환법 반대 운동에 침투한 스파이 활동을 폭로한 바 있다. 다음 날 왕리창이 폭로한 샹신(向心)부부가 대만에서 체포됐다. 쑨리쥔 낙마 후, 홍콩마카오대만의 스파이계통은 대폭 교체될 것이다.

중국의 해외스파이 정보계통은 장쩌민파의 2인자인 쩡칭훙이 오랫동안 장악해왔으나 시진핑은 지금까지도 이를 철저히 숙청하지 못했다. 쑨리쥔 낙마 후, 공안부 1국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중국의 해외스파이 정보계통은 대거 숙청될 것이다.

결론

어떤 사람은 쑨리쥔이 체포된 것은 시진핑이 각성했기 때문이며 19차 당대회에서 성사된 시진핑과 장쩌민파와의 거래는 파국을 맞이했다고 한다. 이는 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쑨리쥔을 체포한 것은 잘한 일이다. 시진핑은 당과 권력을 지키기 위해 여섯 번이나 타협했다. 그러나 당은 이미 썩을 대로 썩었고 권력마저 지키기 어렵게 됐다. 매번 타협할 때마다 인심을 잃고 위험은 커져 막다른 골목까지 몰렸다. 시진핑이 정치적 위기를 무사히 넘기고 국면을 전환할 수 있을지 여부는 그가 여섯 번의 타협을 통해 교훈을 얻었는지, 천리와 민심에 순응할 것인지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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