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부출범특집]”대북 정책은 좌우 균형 잡혀야” 홍용표 전 통일부 장관

[신정부출범특집]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⑦
최창근
2022년 04월 5일 오후 1:37 업데이트: 2022년 04월 7일 오후 9:59

제20대 대통령 당선자가 결정됐습니다.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모든 대통령은 ‘성공’을 갈망하는 국민의 지지 속에서 청와대에 입성합니다. 다만 5년 후 청와대를 나오는 대통령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성공을 바라지만 성공한 대통령은 가지지 못한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에포크타임스는 신정부 출범 특집으로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기획을 마련하였습니다.
전직 정부 각료, 전직 청와대 참모진, 학자, 언론인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연속 대담을 통하여 새로운 대통령과 정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조망해 보고자 합니다.
그 일곱 번째 순서로 통일 외교 안보 분야 전문가 홍용표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만나 대 북한 정책의 주안점, 외교 안보 정책 추진 과정에서 청와대와 일선 부처의 역학 관계, 통일부의 존재 의의 등을 주제로 대담을 진행했습니다.

홍용표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학자 출신으로 청와대 비서관, 각료를 역임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외교, 북한, 통일, 평화, 안보연구이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연세대 국제대학원 졸업 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을 거쳐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통일협회 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실무위원으로 참여한 후 대통령비서실 통일비서관으로 박근혜 정부에 합류했다. 이후 2015년 통일부 장관에 취임했다.
장관 퇴임 후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남북 의회교류포럼 자문위원,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자문위원, 아산정책연구원 이사 등으로 활동 중이다.

홍용표 교수는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거쳐 대통령 통일비서관,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다. 그는 통일 정책에 있어서 균형 잡힌 시각과 그에 기반한 전략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이유정/에포크타임스.

북한 포용 정책을 기조로 한 문재인 정부 대북한 정책이 결과적으로 실패하였습니다. 원인은 무엇이고 대안은 무엇이라 보나요?

홍용표 교수는 보수정부 대북한 정책을 ‘봉쇄정책(containment policy)’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포용정책(engagement policy)’의 상대적인 개념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북한을 상대함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온건 기조를 유지하냐, 강경 기조를 유지하냐 등 정도 차이는 있지만 대북한 정책이 실제 추진되는 과정에서는 차별점이 그렇게 크지는 않습니다.” 외부에서는 두 정책의 차별성을 강조해서 부각하지만 ‘안보’ ‘교류·협력’을 양대 축으로 하는 대북한 정책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대북 정책의 목표는 명확합니다. 한반도 평화 유지, 나아가 북한과 통일이죠.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4조에도 명시된, 북한과 교류 협력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보·보수 정부 할 것 없이 북한과 대화하려는 노력을 합니다. 또 북한의 위협에 대응한 안보도 중요합니다. 문제는 북한입니다.”

‘봉쇄정책, 포용정책’ 이분법적 사고 옳지 않아
한반도 평화 유지·통일이 대북정책 목표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나요?

“북한은 ‘핵 보유국’으로서 인정받겠다는 목표를 설정했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핵 보유국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북한의 기본 입장인데 억지로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려니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홍용표 교수는 ‘한반도 운전자론’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 대북한 정책의 실패 원인에 대해서는 다음 진단을 내렸다. “문재인 정부는 지나치게 ‘대화’에 중점을 두고 북한을 대했습니다. 2019년 이후 북한은 기본적으로 ‘대화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는데 대화의 장으로 억지로 끌어 내려다 보니 한국이 애걸복걸해야 하는 상황이 됐죠. 버티는 쪽이 우세한 상황이 지속되고요. 대화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대화’도 ‘제재’도 수단의 하나인 것이죠. 당근과 채찍을 전략적으로 사용해서 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고 통일로 나아가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의 경우 ‘정책 목표’와 ‘정책 수단’이 혼선을 일으킨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북한 체제는 연속성을 지니고 있고 대남한 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신 한국은 정권에 따라 대북한 정책 기조가 바뀝니다.

“북한 당국자를 상대하는 것은 정말 힙듭니다. 말 그대로 ‘터프’한 사람들이죠.”라며 홍용표 교수는 북한과 대화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통일부 장관 시절 그는 통일전선부장을 겸하는 김양건 북한 노동당 비서와 회담을 가진 적이 있다. “북한 체제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정권 교체에 따라 대북 정책 기조가 바뀌고 하는 것은 약점이라 볼 수는 있습니다. 다만 근본적으로 민주주의 체제가 강점을 지녔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했습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한반도 평화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북한을 어떻게 상대할 것인지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라고 이야기 한 홍용표 교수는 ‘보수 정부=강경·봉쇄정책’ ‘진보 정부=포용·교류정책’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도 이야기하는데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는 유사한 내용도 많이 담겨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한반도  평화·통일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정책 일관성이 강조되지만 보수진보 정부마다 정책 기조가 급격하게 달라지는 대북한 정책과 관련하여 정권 인수 과정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박근혜 전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제시했고 취임 후 실행에 옮겼습니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는 교류·협력을 강조하는 진보 진영에서도 딱히 비판하기 어렵다고 평가할 만큼 대화와 협력에 대한 내용도 많았습니다. 대북 정책은 기본적으로 종합정책입니다. 문제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업무 영역 별로 외교부, 통일부, 국방부 등으로 나눈다는 것입니다. 공약을 만드는 데 참여한 사람으로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국방, 외교, 안보, 교류 협력, 한미동맹 등 통일 관련 제(諸) 분야를 망라하여 균형을 잡아 구성한 정책인데 부처별로 나눠서 되나? 이 속에서 정책의 기본 취지가 손상 되지 않나?’ 하는 우려도 들었습니다. 물론 업무 별로 주무 부처는 있고 협력 부처가 있어야 합니다. 북핵 문제는 외교부가 주무 부처이지만 통일부나 국방부와도 긴밀하게 협력해야 하는 사안입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참여자로서 이러한 문제 의식을 가졌다는 홍용표 교수는 통일 정책 등 부처 간 조율이 중요한 정책에서 청와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청와대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나요?

“부처 간 협업이 중요한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 청와대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원래 정책 취지를 살려서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것이죠. 문제는 청와대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하다 보면 옥상옥(屋上屋) 형태로 부처를 좌지우지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컨트롤 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부처 할거주의(sectionalism)로 인하여 종합적인 정책 조율이 어려워진다는 딜레마에 빠진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한 홍용표 교수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행정학·조직학에서 이야기하는 부처 할거주의는 극복해야 하는 문제인데 현실에서는 쉽지 않습니다. 박근혜 정부도 ‘(부처 간) 칸 막이를 없애야한다’고 강조했지만요.” 그는 앞으로 대통령 보좌 조직이 어떤 식으로 재편되든 국가안보실 등이 통일·외교·안보 정책의 중재자·조정자 역할을 일정 부분 수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야기는 차기 정부 대통령 보좌 조직 개편 문제로 흘러갔다.

2014년 남북 고위급 접촉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본부를 나서는 한국 대표단. 오른쪽부터 김규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 배광복 통일부 회담기획부장, 홍용표 청와대 통일비서관, 손재락 총리실 정책관, 김도균 국방부 북한정책과장이다. | 연합뉴스.

현재 청와대는 3대통령 비서실, 정책실, 국가안보실체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국가안보실은 현 조직과 기능을 유지하는 것이 좋을까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로 권한을 넘겨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 되고 있습니다.

“정책실은 논외로 하고 비서실과 국가안보실 위주로 이야기하자면 이러합니다.”라며 홍용표 교수는 대통령의 정무·비서 역할을 하는 비서실과 별개의 외교안보 참모조직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이어지는 설명이다. “모든 정책에는 정무적 판단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외교·안보 분야는 특수성과 전문성이 존중되어야 하고 정무적 판단이 우선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문제점은 북한 문제 등에 있어서 현실에 입각한 외교·안보 논리보다는 정무적 판단을 우선시한다는 점입니다. 단적인 예로 남북정상회담 같은 중요 안건에 대통령비서실장 등 정무 라인이 개입한다는 것입니다. 대북한 메시지도 마찬가지고요.” 그는 사전 메시지 조율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비서실장이나 정무수석비서관은 기본적으로 ‘정치인’입니다. 민감한 정책 현안에 대해서도 정치적 판단을 우선시하는 속성을 지녔습니다. 물론 대통령의 통치 행위에 있어서 정무적 판단도 무시할 수는 없으나 해당 분야 특수성·전문성을 도외시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북한 문제의 경우 청와대 정무·홍보 라인이 외교안보수석비서관, 통일비서관 등과 사전 조율해서 메시지를 내 보내야 합니다. 이를 무시하고 메시지를 내 버리면 정책 추진 과정에서 혼선이 생기는 것은 자명하고요.”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한 홍용표 교수는 통일·외교·안보 문제는 전문성에 입각한 독립적인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정무·의전 기능을 담당하는 비서실과 별도 보좌 조직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행 국가안보실이 됐든 국가안전회의(NSC)사무처가 됐든 분리된 조직이 전담하는 것이 옳습니다.”

대통령비서실은 정무적 판단 우선시
별도로 국가안보실 필요

통일비서관을 거쳐 통일부 장관으로 입각했습니다. 청와대와 실무 부처 간 역학 관계는 어떠하다 평가하나요?

“대통령 비서실, 정책실, 국가안보실 등 보좌 조직은 대통령이 제대로된 판단을 내리도록 돕는 참모조직입니다.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에서는 대통령의 역할이 크기 때문에 청와대가 결정하면 각 부처가 따라가는 현상이 발생하기는 합니다. 예를 들어 ‘청와대 분위기가 이러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일선 부처는 ‘지시 사항’처럼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만 해도 통일부 장관으로 가기 전 청와대에 근무했기 때문에 청와대 내부의 정책 결정 메커니즘 등을 파악하고 있어서 업무 수행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만, 만약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애로를 겪었을 듯합니다.”라며 홍용표 교수는 청와대 재직 경험을 이야기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실무위원을 거쳐 통일비서관으로 청와대에 가게 됐습니다.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라인’에서 민간 전문가는 나 혼자였습니다. 국가안보실장, 외교안보수석비서관, 외교비서관, 국방비서관 등은 다 군 출신 아니면 직업 외교관이었죠. 40대 젊은 나이에 유일한 민간 출신 비서관으로 가니 다들 ‘일 제대로 하나 보자’ 하는 시선이었습니다. 결국 열심히 일해서 성과로 보여주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홍용표 교수는 통일비서관으로서 불철주야(不撤晝夜) 업무에 매진했다고 했다. 설·추석 연휴를 포함해서 단 하루도 쉰 적 없이 출근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통일연구원, 대학에 있다 갔으니 현장 사정이나 실무에는 어두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연히 업무에 더욱 더 열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론에 정통한 전문가 출신으로서 현장 관료들 보다 뭔가 낫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요. 그렇게 일하니 국가안보실장도 ‘홍용표 교수처럼 일 잘하는 학자 출신은 못 봤다’고 인정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 통일 정책 청사진을 그리는 데 일조한 것이 실제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도 했다.

외부 전문가 출신으로서 청와대 비서관을 거쳐 입각했습니다. ‘외부자로서 관료집단을 통제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외부 전문가가 관료 집단의 수장이 됐을 때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 홍용표 교수는 “기본적으로 한국 직업 관료 집단은 우수합니다. 업무 영역별로 전문성도 뛰어납니다. 장관으로서 업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관료 집단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라며 말을 이어갔다. “장관으로 취임했을 때 나는 만 50세였습니다. 당시 국장급(고위공무원단 나급) 절반 정도가 나보다 연상이었습니다. ‘연배’를 따지는 문화가 강한 한국에서 자연히 처신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만 청와대에서 일하면서 통일부 실·국장급 간부들과 업무상 교류를 지속해 왔기 때문에 나에 대해서 간부들이 특별한 반감을 표명하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업무 파악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고요.” 이른바 ‘관료집단의 장관 길들이기’ 관련 질문에 홍용표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활동할 때부터 통일부 공무원들을 자주 접촉하면서 관료 사회가 어떠한 시스템으로 움직이는지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같이 일하던 통일부 국장급 간부들이 ‘장관 길들이기’ 관련 이야기도 해 주고 해서 미리 파악하고 대비할 수 있었던 측면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나는 청와대 담당 비서관으로 있다 장관으로 취임해서 부처 사정을 잘 아는 편이었습니다.” 그는 관료주의, 부처 할거주의는 분명 존재하며 이는 부처 간 협업에 장애가 된다는 점은 지적했다.

한국 관료집단은 우수
부처 할거주의 관료주의도 존재

2015년 3월 16일 통일부 장관 취임사를 하는 홍용표 교수. | 연합뉴스.

장관 재직 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조직 운영 경험이 없거나 적은 외부 전문가를 계선(line)’ 조직 수장으로 임명했을 때 조직 운영에서 문제를 일으킨다는 비판적인 시각이 존재합니다.

“인사(人事)문제였습니다. 정책 문제는 청와대 재직 시절부터 연속성이 있는 것이라 장관으로서 업무 수행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문제는 인사·예산 등 행정학에서 이야기하는 전형적인 조직 관리 문제였습니다. 예산이야 통일부가 예산이 많은 조직은 아니고 해서 큰 문제는 없었지만 인사는 어려웠습니다.”라며 홍용표 교수는 장관 재직 시 겪은 어려움을 토로했다. “막상 장관이 되니 거대 조직을 이끌어야 했습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것도 다시 한번 체험했습니다. 결국 ‘어떠한 사람을 어떠한 자리에 앉혀 어떠한 일을 맡길 것인가’에 대한 판단 문제였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통일부도 역사가 오래된 관료조직이다 보니 ‘고시 기수 문화’가 고착화돼 있었습니다. 00기는 국장급, XX기는 과장급 하는 식이죠. 이변이 없는 한 비슷한 시기에 행정고등고시 기수별로 승진하는 것이 일반적이죠. 나는 이를 한번 파괴해 보고자 했습니다. 몇 기수 뛰어 넘어 서기관을 고위공무원단 다급(3급 부이사관)으로 승진시켰습니다. 업무 능력, 전문성, 평판 등을 종합 고려해서요. 대상자가 실력·인품 면에 문제가 없어서 큰 문제는 없었는데, 불만이 제기되는 것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군대로 치면 장성(將星)급에 해당하는 고위공무원단 승진은 공무원 사회에서 민감한 문제이니까요.” 그는 인사 문제로 고민하다 ‘장관 정책보좌관’ 자리를 장기간 공석으로 둔 것은 후회되는 대목이라고도 했다. “전임 이명박 정부부터 장관 정책보좌관(2급 상당 1인, 3급 상당 1인) 제도가 시행됐습니다. 2급 상당 자리는 전임 장관 정책보좌관을 유임시켰는데 3급 상당 보좌관은 거의 2년간 공석으로 두었습니다. 제자나 후배를 발탁하자니 ‘자기 사람 심는다’는 오해를 받을 듯하고 해서 고민하다 결과적으로 장기간 공석으로 두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하루빨리 임명해서 업무 수행에 도움을 받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죠. 다른 관점에서는 인사 문제 판단이 그만큼 어려웠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홍용표 교수는 장관 재직 시 경험을 들어 인사 문제에 대해서 다음을 강조했다. “관료조직에 들어가서 ‘인사는 잘해야 본전’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어떤 식으로 인사를 해도 불만이 없을 수는 없으니까요. 중요한 점은 인사를 함에 있어서 섣불리 판단해서도 안 되고 마지막까지 인사 내용이 새어 나가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장·차관이라 하여 인사 절차에 함부로 개입해서도 안 되고요.” 인사 이야기는 자연히 ‘부처 인사권 위임’ 문제로 이어졌다.

차관 이하 소속 직원 인사는 어떠했나요? 청와대의 개입은 없었나요?

“고위공무원단 가급(1급) 승진 대상자만 청와대에서 최종 결정했습니다. 고위공무원단 나급(2급) 이하 인사는 부처 자체적으로 했습니다. 고위공무원단 가급의 경우도 부처 책임자로서 의견을 제시하면 청와대 인사팀에서 대부분 수용했습니다.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실에서 인사 세세한 부분까지 개입하지 않았습니다.”라며 홍용표 교수는 자신의 청와대 재직 시 경험담을 덧 붙였다. “통일비서관으로 일할 때도 국가안보실장이 ‘부처 인사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장관의 영이 서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조직 수장으로서 인사가 가장 어려운 문제
장관 재직시 기수 파괴 인사 시도

주요 정책 추진을 두고 청와대와 의견 불일치 등이 발생할 때 장관으로서 어떠한 역할을 했나요?

“컨트롤 타워로서 청와대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통일·외교·안보 분야 주요 정책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조율됩니다. 비공개회의로 매주 개최됐습니다. 회의 때마다 주요 현안을 두고 토론을 벌였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청와대와 부처 간 혹은 부처와 부처 간 이견 등이 대부분 조율됐습니다.”라고 이야기 한 홍용표 교수는 청와대와 부처 간 ‘시각차’는 존재한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장관은 책임진 부처의 시각에서 사안을 바라보게 됩니다. 청와대는 이를 취합하고 조율하고 큰 틀에서 정책이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고요.”

차관급 청와대 수서비서관이 부처 장·차관에게 군림하는 문제도 발생합니다.

“참모(staff) 조직이 계선(line) 조직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며 홍용표 교수는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청와대에 근무할 때 공공연하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청와대 급수는 일선 부처 급수보다 한 단계 높여 봐야 한다.’고요. 사실 이것도 권위주의 시절에나 통용될 만한 이야기이죠. 지난날 권위주의 통치기에는 수석비서관이 장관 불러다 ‘지시’하고 했었잖아요. 수석비서관이 명목상 차관급이지만 ‘권력자’인 대통령과 물리적 거리가 가까우니 그럴 수도 있었죠. ‘대통령의 뜻’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기도 좋고요. 내가 비서관으로 근무할 때나 장관으로 일할 때에는 이러한 일은 없었습니다. 물론 수석비서관이 부처 장·차관 상대하고 비서관은 차관보·실·국장이 업무상 카운터파트인데 어디까지 예의를 갖춰서 조정·협의 과정을 거친 것이지 ‘군림’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도 통일비서관 때는 주로 통일부 실·국장을 상대하고 가끔 차관을 만나기도 했는데 고압적으로 처신한 적은 없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군() 출신, 법조인 출신 인사의 고위직 임명이 두드러졌습니다. 기본적으로 보수적이고 사고가 유연하지 못하여 이들 정권 보위에는 도움이 되지만 유연한 사고와 창의력이 요구되는 정책 입안·집행에는 군인이나 법조인이 부적할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군인이나 법조인의 창의성 부족 지적은 늘 제기되는 문제입니다. 다만 일반화시킬 수는 없다고 봅니다.”라며 홍용표 교수는 자신이 경험한 바를 이야기했다. “말 그대로 정말 ‘케이스 바이 케이스(case by case)’라 할 수 있어요. 사람들이 군인이나 법조인의 배경을 두고서 편견을 가지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모두가 사고가 경직되어 있고 융통성이 부족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 고위직에 오른 인사는 기본적으로 경험이 축적돼 있고 전략적 사고를 할 수 있으며 이에 기반하여 정책적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는 자신이 상관으로 모셨던 청와대 고위직들의 예를 들었다. “통일비서관으로 일할 때 국가안보실장은 모두 군인 출신이었습니다. 김장수 실장은 덕장(德將)·지장(智將) 이미지가 강했고 후임 김관진 실장은 ‘강인한 군인’으로만 알려졌는데 실제 두 사람 다 사고가 개방적이고 전략적입니다. ‘외부의 시각’과 다르죠. 군인, 법조인을 지나치게 많이 국가 요직에 등용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고 왜 그런 비판이 나오는지는 이해하지만 일반화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청와대 통일비서관 재직시 홍용표 교수(좌)와 당시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우). 홍용표 교수는 청와대 재직 경험을 들어 군인이나 법조인이라 하여 사고가 경직되어 있을 것이라 일반화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청와대 참모가 각료에 군림해서는 안 돼
군인 법조인 창의성 부족 문제는 일반화할 순 없어

통일부 장관으로는 매파(강경파), 비둘기파(온건파) 중 어떤 성향이 적합하다 판단하나요? 장관 취임 시 올빼미파라고 하였습니다.

홍용표 교수는 “나는 올빼미파이다.” 발언은 취임사가 아닌 출입기자 차담회에서 즉흥적으로 나온 이야기라며 당시 이야기를 들려줬다. “공식 취임식 끝나고 출입기자단과 차를 곁들인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어떤 기자가 ‘신임 장관은 비둘기파인가? 매파인가?’라는 질문을 했고 내가 ‘나는 비둘기파도 매파도 아닌 올빼미파다이다’라고 답변한 것이 기사화된 것이죠.” 그는 당시 발언이 통일부 장관으로서 필요한 ‘실용성·전략적 사고’를 중시한 것이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통일 정책 분야, 대북한 전략에 있어서는 온건·강경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는 정책을 만들기 힘듭니다. 어느 한편에 치우치면 스스로 선택지를 줄이게 되고요.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이에 기반하여 정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북한 바라기’식으로 가서도 안 되고 반대로 한미동맹, 국제적 공조만을 중시하며 ‘북한 압박하기’만이 능사도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통일부 장관은 북한문제만이 가진 특수성, 국제 사회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넓은 시야와 통찰력의 소유자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2015년 3월, 통일부 장관 취임 후 간담회에서 홍용표 장관은“나는 올빼미파이며 강경과 유화 사이에서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었다.

통일부 무용론혹은 통일부 역할 축소론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나요? 이명박 정부에서도 통일부를 국무총리실 산하 남북교류협력처로 축소하거나 외교통상통일부로 흡수·폐지하자는 주장이 제기 됐습니다. 윤석열 당선자도 후보 시절 통일부 축소·폐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제17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통일부 폐지론이 심각하게 제기됐습니다. 여성가족부 문제도 마찬가지였고요. 결국 두 부처 다 존속되고는 있습니다. 대신 이명박 정부 출범 후 통일부 조직이 조금 축소됐습니다.”라며 홍용표 교수는 통일부 축소·폐지론이 지속 제기되는 이유에 대한 분석을 이어갔다. “통일부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에는 ‘대화나 협상은 외교부가, 북한 지원 등은 기획재정부 등 경제·예산 관련 부처가 맡으면 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외교부랑 합쳐서 ‘외교통일부’를 만들거나 조직 규모를 축소해서 국무총리 산하 ‘처(處)’로 강등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고요. 문제는 통일부의 주요 역할을 ‘남북교류·협력’에 한정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지난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평화협력부’로 개칭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고요. 주지할 점은 이러한 ‘외부 시각’과는 다르게 통일부가 북한과 교류·협력만을 담당하는 부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통일’이라는 헌법에도 명시된 국가·민족적 대(大)과제를 수행하는 주무 부처입니다. 한반도 평화 전반을 관리하기도 하고요. 탈북자 문제, 이산가족 문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문제, 북핵 문제 등을 다양한 영역에서 업무를 수행합니다.” 그는 통일부만이 지닌 고유 업무 특성 혹은 북한 문제의 특수성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다른 국가와는 다른 특수성을 지녔습니다. 이러한 북한을 상대함에 있어서 노하우도 필요하고요. 이 점에서 지난 수십 년간 남북대화 등을 통해 경험을 축적한 통일부가 북한을 상대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통일부가 존속해야 할 주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이야기한 홍용표 교수는 북한과 대화·협상이 가진 고유의 화제성도 관건이라고 했다. “외교부가 협상 창구로서 다른 나라와 대화나 교섭을 하고 있습니다. 통일부는 북한을 상대로 하고요. 둘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외교부의 외국과 협상 등은 실무진 협상이 끝난 후 최종 결정 과정만이 이슈가 되는 것이 대부분인데, 남북한 대화나 협상의 경우 그 자체가 폭발성을 지닌다는 것입니다. 자연히 언론의 관심도 집중되고요. 남북 관계에 있어서는 ‘실무자 접촉’ 자체가 뉴스거리가 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는 다른 외교 협상과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죠.”

통일부 고유 역할 있어… 존속해야
매파 비둘기파 아닌 올빼미파

2016년 9월 28일 서울 종로구 이마빌딩에서 열린 북한인권기록센터 현판식.이창재 법무부 차관(왼쪽부터), 홍용표 통일부 장관, 유호열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손광주 남북하나재단 이사장. |연합뉴스.

차기 정부 통일 분야 주요 과제로 북한 인권 문제 개선이 꼽힙니다. 북한을 자극하는 대표적인 의제인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북한 인권 문제는 ‘기정사실화(fait accompli)’ 전략으로 가야 합니다. 북한 인권문제는 국제사회 차원의 문제이니까요. 인권은 인류 보편 권리이기도 하고요.”라며 홍용표 교수는 북한이 반발하더라도 의제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자주권 침해’ ‘내정 간섭’이라며 반발하겠지만 ‘해당 국가가 자국의 인권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하면 제3자가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 국제 사회에서 통용되는 상식입니다. 매년 유엔이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하고, 대한민국 정부도 ‘북한인권법’을 제정하는 근본 이유입니다. 유엔에서 한국과 미국 등에 요구하는 것이 ‘북한과의 모든 대화에서 인권문제를 거론하라’는 것인데, 북한이 당장 불쾌해하더라도 인권 문제는 지속 제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제기해야만 합니다. 이런 관행을 통해 처음에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남북대화에서도 인권문제를 논의할 수밖에 없다고 북한이 인식하게 해야 합니다.” 그는 북핵문제를 예로 들기도 했다. “지난날에는 한국정부가 북핵 문제를 거론하면 북한이 회담을 거부하거나 결렬시켰는데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니 이제는 일단 회담 의제로 오르는 것은 거부하지 않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남북한 정상회담 의제 중 하나이기도 했고요. 이 점에서 북한 인권 문제도 북한의 반발과 그로 인한 파장은 불가피하지만 피해 가서는 안 되는 문제입니다. 한국 정부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죠.” 홍용표 교수의 통일부 장관 시절 ‘북한인권법’이 제정·공포됐다. 그 후속 작업으로 북한인권재단도 발족 준비를 했으나 당시 제1야당이던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의 보이콧으로 2022년 현재까지 북한인권재단은 공식 출범하지 못 했다.

북한인권재단 출범이 6년째 지연되고 있습니다.

“통일부 장관 때 ‘북한인권법’이 진통 끝에 통과됐습니다. 후속 조치로 법에 명시된 북한인권재단도 사무실을 임차하는 등 출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은 재단 출범에 반대했는데 논거가 ‘북한인권재단이 생기면 탈북자 단체를 지원하고, 탈북자 단체는 대북한 전단지 살포 등 북한을 자극하는 일을 벌일 것이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당시 여당(당시 새누리당) 몫 이사 추천은 마무리되고 이사장도 사실상 내정됐었는데 야당의 이사 추천 거부로 인하여 이사진 구성이 마무리되지 못했고 재단도 출범하지 못했습니다.”

북한 인권문제는 기정사실화 전략으로 가야
기회를 포착하여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야

차기 정부가 대북한 정책에서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양 극단에 치우쳐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전쟁 아니면 평화, 강경 혹은 보수 등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정책 목표와 수단 구분을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한반도 평화’가 정책 목표가 되어야 하고 대화나 제재는 정책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한 홍용표 교수는 ‘진정한 평화’에 대서도 이야기했다. “남북한 ‘대화’에 방점을 찍고 목표와 수단이 뒤바뀐 정책을 편 문재인 정부하에서 평화를 정의하자면 ‘평화를 위한 평화’ ‘대화에만 의존한 평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화라는 가치 자체를 부정하거나 폄하할 수는 없지만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대화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제재·압박 수단도 필요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평화’라는 대전제를 달성하기 위해서 전략적 사고를 하면서 다양한 수단을 사용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서 진정한 평화 혹은 ‘견고한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현재 상황에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는 쉽지 않다는 점도 강조했다. 당분간 상황을 지켜 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 시절 대북한 정책 기조였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를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이른바 전략적 인내라고 하여 ‘무작정 기다리자’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관건은 북한이 현재 대화할 의지가 없는데 대화로 끌어내려면 무리수를 두게 된다는 점이죠. 이는 지양해야 합니다. 북한의 동태를 세밀히 관찰하면서 대화의 계기가 생겼을 때 혹은 대화 의사를 내비칠 때를 포착하여 실제 대화로 이끌어내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대책 없이 무작정 기다리자는 의미는 아닙니다.”

홍용표 교수는 차기 대통령과 정부 통일·외교·안보 관계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한국의 외교·안보 문제는 기본적으로 ‘북한 변수’와 연계되어 있다는 특성을 지닙니다. 반면 북한 문제는 북한만을 상대해서 해결할 수 없는 특수성을 지닙니다. 국제사회, 특히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4강(强)과 연계한 외교적 접근도 필요합니다. 국내 문제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통일 정책 추진에 있어서 국민 여론도 신경 써야 하고 이념적 문제도 있습니다. 특히 이른바 ‘대북관(對北觀)’은 보수·진보 혹은 좌·우 이념 차이가 좌우하는데 특정 이념에 치우쳐 선입견을 가지고 북한을 바라보고 대북한정책을 한쪽 방향으로만 끌고 가서도 안 됩니다. 균형 잡힌 시각과 이에 기반한 전략이 요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