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부출범특집]”대통령과 참모는 수시로 소통해야” 이각범 전 대통령 정책기획수석비서관

[신정부출범특집]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②
최창근
2022년 03월 21일 오후 7:11 업데이트: 2022년 03월 22일 오전 9:01

제20대 대통령 당선자가 결정됐습니다.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모든 대통령은 ‘성공’을 갈망하는 국민의 지지 속에서 청와대에 입성합니다. 다만 5년 후 청와대를 나오는 대통령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성공을 바라지만 성공한 대통령은 가지지 못한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에포크타임스는 신정부 출범 특집으로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기획을 마련하였습니다.
전직 정부 각료, 전직 청와대 참모진, 학자, 언론인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연속 대담을 통하여 새로운 대통령과 정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조망해 보고자 합니다.
그 두 번째 순서로 대통령 정책기획수석비서관으로서 김영삼 정부 주요 국정 과제였던 세계화·정보화 개혁에 앞장섰던 이각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술경영학부 명예교수를 만나 바람직한 대통령과 보좌진의 관계, 대통령 당선자와 차기 정부 참여자가 명심해야 할 문제 등을 주제로 대담을 나누었습니다.

이각범 교수는 자신의 대통령 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재임 시절 경험을 들어 바람직한 대통령과 참모진 간 관계에 대해서 조언했다. |이유정/에포크타임스.

이각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술경영학부 명예교수는 학자 출신 정책 혁신가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후 독일 콘스탄츠대, 빌레펠트대에서 유학했고 빌레펠트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재임 시절 김영삼 정부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되어 박세일 사회복지수석비서관과 더불어 세계화·정보화 개혁에 앞장섰다. 이후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로 후학을 양성했으며 한국정보사회학회 회장, 한국미래연구원 원장, 대한불교진흥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민간공동위원장(정부측 위원장 국무총리)으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21세기 한미 관계의 재정립: 글로벌 동맹관계를 위한 로드맵’ ‘하이트렌드: 디자인과 콘텐츠가 창조하는 기업의 미래’ ‘퓨처코드: 대한민국 미래 트렌드’ 등이 있다.

한국 대통령의 실패 원인으로 ‘87년 체제라 불리는 5년 단임제 문제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대통령 재선이 가능하도록 4년 중임(重任)제로 헌법 개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년 단임제하에서 대통령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봅니다. 중임제가 도입될 경우 자연 대통령 첫 임기 4년 동안은 재선을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게 될 것이고 4년 만에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하니 업적 면에서 더 나을 것이라 봅니다.”

5년 단임제는 4년 중임제로 개헌해야

단임제라 퇴임 후 책임질 필요가 없는 근본적 문제가 존재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동의합니다. 재선이 가능하고 재선을 염두에 두는 대통령이라면 임기 중 국가 부채를 증대시킨다든지, 소득주도성장론 같은 이론적 배경도 현실성도 없는 엉터리 경제 정책을 펼치지 않았을 것이라 봅니다.”

대통령 당선자는 공약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공약했다 해서 다 지킬 수는 없습니다.

“단적으로 이야기해서 선거 과정에서 바른 소리 하면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요. 결국 틀린 줄 알면서도 허황된 공약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노출됩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 과정만 봐도 그래요. 20대 남성을 겨냥한 주요 공약 중 하나가 ‘병사 월급 200만 원으로 인상’이었잖아요.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뿐만 아니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 등도 유사 공약을 내세웠습니다. 재원 마련 문제될 것이 자명한 공약인데 후보들은 다 할 수 있다고 했잖아요. 왜? 한쪽에서는 병사 월급 200만 원 지급하겠다 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재정 형편 때문에 안 된다고 하면 이해 당사자들은 누굴 뽑겠습니까? 비유를 하자면 당장 빛쟁이들이 몰려들 형편임에도 자녀들이 용돈 달라고 했을 때 주는 부모와 형편을 설명하며 주지 않는 부모 중 누굴 택하겠어요? 병사 월급 200만 원 인상 공약도 대표적이라고 봅니다. 병사 월급을 인상하면 부사관, 장교 등 간부 월급 인상으로 이어지고 국가 재정을 압박하게 됩니다. 사실상 재원 마련 방안이 없는 공약이죠.” 이각범 교수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전반적인 국가 재정 문제가 악화됐다는 것도 지적했다.

공약했다 해서 다 지킬 수도, 다 지킬 필요도 없어
공약을 필터링하고 못 지킬 공약은 철회해야

대통령 당선자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요?

“문재인 정부 5년간 국가 채무가 폭증했습니다. 차기 대통령과 정부가 해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는 국가 재정 건전성을 회복시키는 방안을 제시하고 실행하는 것이죠. 요약하자면 ▲공공부문 부채 규모 파악 ▲중장기 국가재정운용 계획 수정 ▲각종 연기금 운용 정상화 ▲한전 등 적자 공기업 경영 개선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윤석열 당선자가 국민 앞에 솔직해져야 한다고도 했다. “당선자가 취임 전이든 대통령 취임 후든 국민에게 이렇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현재 대한민국 국가재정 상태가 이러합니다. 부채는 얼마이고 추세는 이러할 것이라 전망됩니다. 국가 재정 형편을 감안할 때 병사 월급 200만 원 인상 등의 공약을 임기 내 지킬 수 없습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하는 중요한 일 중 하나가 공약 필터링입니다.

“사실 선거 공약집에 제시했다고 해서 다 지킬 필요도 없고 더 현실적인 이야기기 하자면 다 지킬 수가 없습니다. 5년 이라는 제한된 임기 동안 다 할 수는 없는 것이죠.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진짜 필요한 개혁 등 어젠더는 인수위원회에서도 제시해서는 안 됩니다. 기밀 유지가 필요한 일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말한 이각범 교수는 자신이 몸담았던 김영삼 정부의 개혁 작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김영삼 대통령 당선 후 훗날 국무총리가 되는 정원식 서울대 교수가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되지만 실질적인 정책 입안 작업은 이른바 ‘동숭동팀’으로 불리던 태스크포스(T/F)가 주도했습니다. 물밑에서 작업을 한 것이죠. 그 결과물은 고위공직자 재산 등록, 금융실명제 실시 등 개혁으로 현실화됐습니다. 특히 김영삼 정부 최대 업적으로 꼽히는 금융실명제 같은 경우 보안 유지가 생명인데 당선 전 공약이든 당선 후 인수위원회 활동 과정에서든 새어 나가면 실시 자체가 불가능 한 것이었죠.” 이야기는 자연 ‘문민정부’로 불리던 김영삼 정부의 개혁과 업적 이야기로 흘러갔다. 이각범 교수는 ‘김영삼 정부는 재평가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록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사태로 막을 내렸고 그 연장선상에서 국민들의 냉혹한 평가를 받고 있지만 김영삼 대통령과 문민정부의 업적은 재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 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임명 전인 1996년 공보처 주최 국민홍보위원회 연찬회에서 ‘세계화’를 주제로 강연하는 이각범 당시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김영삼 정부의 업적은 무엇이 있을까요?

“‘하나회(군대 사조직)’ 척결, 금융실명제 시행,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 등 개혁 조치와 더불어 한국의 미래를 위한 사회간접자본(SOC) 확충에도 공헌했습니다. 인천국제공항 건설, 고속전철(KTX) 도입 등이 대표적이죠. 특히 정보통신(IT)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고 오늘날 정보통신 강국이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이 ‘ICT강국’을 향해 본격 시동을 건 것은 김영삼정부 시절입니다. 종전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확대 개편한 것이 시발점이죠. 김영삼 대통령은 정보화를 국정 지표로 제시한 첫 대통령이기도 했습니다. 전임 대통령들도 과학기술이나 정보통신에 역점을 두었으나 정보화를 국정 지표로 제시하지는 않았죠. 김영삼 대통령은 재임 중 ‘정보화는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수단’이라면서 정보화 대통령이 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1996년 4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정보화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종합적인 정보화 시책을 추진토록 했습니다. 청와대에는 경제수석비서관실 산하에 정보통신비서관(1급)을 신설했습니다.” 대통령과 정부의 강력한 추진 의지 속에서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 디지털이동통신(CDMA) 도입 등 ICT 사회의 기초가 닦였다고 이각범 교수는 설명했다.

10년 앞을 내다보고 정책을 입안해야

좀 더 설명해 준다면요.

“1992년 미국에서 출범할 예정이던 빌 클린턴 대통령·앨 고어 부통령 행정부는 ‘인포메이션 수퍼 하이웨이(information superhighway, 초고속정보통신망)’ 건설을 주창합니다. 한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당시 서울대 지역종합연구소(현 국제대학원)가 각국 정보화 사업에 대해 연구하기도 했지요. 인포메이션 수퍼 하이웨이로 대변되는 세계화·정보화에 국가 차원에서 대응하지 못하면 산업화에 늦어 일본의 식민지가 됐던 것처럼 다시 한번 21세기 식민지 처지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사회 전반에 팽배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정보화의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고 문민정부 출범 이듬해인 1994년 ‘초고속정보통신 추진기획단’을 설치해 초고속정보통신망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라고 말한 이각범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들었다. “당시 내가 청와대에서 경험했던 바로는 모든 정책은 지금 시안을 내면 10년 후에야 효과가 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역으로 생각해서 10년 후의 세상이 어떻게 변할 것이냐 생각해서 지금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0년 후의 수요를 예견해 정책의 공급자가 돼야 합니다.”

 

김영삼 대통령이 1996년 10월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종이 없이 진행된 ‘정보화 추진 확대 보고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종이 없는 회의 아이디어를 입안하고 실행한 것은 당시 정책기획수석비서관이던 이각범 교수이다.

김영삼 정부 대통령 정책기획수석비서관, 이명박 정부 국가정보화전략위원장을 역임했습니다. 두 대통령의 리더십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기본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아주 스마트한 사람이에요. 개별 정책 사안에 대한 이해력도 높습니다. 반면 개인적으로 지력이나 비전 측면에서는 약한 편이라  평가합니다.”라며 이각범 교수는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이 중요한 시대에 두 부처(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를 없애 작은 정부를 구현하고자 한 것은 안타까운 결정이었다고 덧붙였다. “반면 김영삼 대통령은 대조적인 리더십 소유자입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개별 사안을 잘 이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국가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지를 판단해서 큰 줄기를 잡는 데 뛰어났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판단이 서면 ‘내가 우짜면 되겠노’라고 묻고 ‘그럼 그렇게 해라’라고 지시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통치는 구체적으로 어떤 스타일인가요?

“좀더 설명 하자면 김영삼 대통령은 긴 설명 없이 A4 용지 두 장으로 말하던 분이었습니다. 누가 어떤 일을 한다고 하면 아낌없이 도와주는 것이 본인의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구를 도와줘야 하느냐, 그럼 내가 전화할게’ 하고 지시하는 스타일 말입니다. 정책 순발력이 뛰어난 분이셨죠.”

김영삼 대통령은 큰 맥락 파악
이명박 대통령은 세부 사안 이해

한국식 대통령제는 제왕식 대통령제로 불리며 대통령 실패 원인 중 하나로 지목받기도 합니다. 어찌 보나요?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하는데 사실 나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나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제왕의 자질, 혹은 국가 지도자로서 적합한 능력과 성품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통치하면 뭐가 그리 나쁘겠습니까? 예를 들어 세종대왕 같은 영명한 군주가 대통령이 되어서 제왕적 대통령제로 통치하겠다고 하면 찬성해야 하겠죠. 사실 김영삼 대통령 시절만 해도 제왕적 대통령이라 할 만 했습니다. 다만 세계화·정보화 개혁, 부정부패 척결, 금융실명제 실시 등은 제왕적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시행이 힘들었다 봅니다.” 이각범 교수는 대통령에게는 무엇보다 ‘애국심’이 있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독주하고 인사나 정책에 있어 행정부에 일방 지시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요?

“중요한 지적입니다. 나는 각 부처 장관은 차관급 이하 공무원 오늘날 고위공무원 가급(구 1급 관리관) 이하 직원 인사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봅니다. 장관이 인사권을 행사하지 못하면 부처를 통솔할 수 없습니다. 공무원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승진이나 전보를 앞두었는데 장관에게 실질 권한이 없고 청와대에 인사권이 있으면 당연히 장관 건너뛰고 청와대만 쳐다보지 않겠어요? 장관 입장에서도 임기 내 중점 사업이 있을 것이고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팀워크가 필요한데 인사권을 행사하지 못하고서는 할 수 없는 것이죠. 그 연장선상에서 부처 실·국장급 이하 공무원 인사권은 부처 장관에게 위임하여 행사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인사’를 주제로 한 대담은 김영삼 정부 시절 인사 문제로 이어졌다. 이각범 교수의 전임 정책기획수석비서관이자 사회복지수석비서관으로 같은 시기 청와대에서 일했던 고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설립 이사장도 “김영삼 대통령은 인재 등용에 있어 통이 컸다. 각 부문 인사를 널리 끌어 들이는 이른바 ‘대탕평책’을 썼다. 여야 구분이 없었다. 재야에서는 김문수, 손학규, 노무현 등을 발탁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인사에 있어서는 대탕평책을 써야 합니다. 다만 한국 풍토상 출신 지역 안배를 하지 않을 수 없고 각 대통령마다 비선이랄까 측근들이 있어 인사에 개입하는 문제가 지속 제기되고 있는데 심각한 문제라고 봅니다.”

부처 차관급 이하 인사권 장관에 위임해야
인사권 없이 장관 리더십 발휘 힘들어

대통령과 참모 간 소통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요?

“기본적으로 국정운영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은 부지런하고 청와대 참모, 국무위원들과 지속적인 소통을 해야 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경우 집무실이 아닌 관저에 머무는 시간이 지나치게 많았다고 합니다. 탄핵 사태로 귀결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실패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구중궁궐’로 불리는 청와대 그중에서도 대통령 관저에서 머물며 소통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더하여 ‘문고리 권력’으로 불리는 소수의 비서진, 측근, 이른바 ‘비선 실세’에게 국정 운영을 의존했고요. 당시 조윤선 대통령 정무수석비서관이 11개월이나 대통령을 ‘독대’하지 못했다고 증언하기도 했잖아요. 이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제가 정책기획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김영삼 정부 시절을 돌이켜 보면, 매일 7시 대통령이 본관 집무실로 출근하면 비서실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30분 정도 그날 주요 현안에 대해서 대통령과 논의한 후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가 7시 30분 정도에 열립니다. 김영삼 정부 때 정무수석비서관은 하루에 대통령을 몇 번 만났는지 셀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경제수석비서관만 해도 하루 평균 다섯 번 대통령과 독대했습니다. 환율, 금리, 주식 같은 현안이 있으면 대통령 집무실로 올라갔죠.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하루 평균 세 번, 정책기획수석비서관인 나도 상대적으로 적긴 해도 평균 이틀에 한 번 대통령을 만나 정보화 관련 업무를 보고했습니다. 그 밖에 현안이 있으면 언제든지 대통령을 만나 보고드리고 의논했습니다. 민정수석비서관은 매주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20분 동안 한 주일 동안 보고받은 거의 모든 것을 보고했습니다. 지나치게 사실 그대로 보고해서 ‘너무 심하지 않으냐?’는 지적이 나오자 김영삼 대통령이 ‘오히려 그런 일 하는 게 민정수석 아니냐?’며 민정수석비서관 편을 들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대통령과 보좌진 간 관계가 긴밀했다는 것입니다.”

청와대 보좌진 구성에 있어서 외부 출신 인사와 부처 파견 직업 공무원 비율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요?

“1/3 정도는 외부인사로 나머지 2/3 정도는 공무원 출신으로 기용하는 것이 바람직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제 이런 인력 구조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외부 출신 수석비서관·비서관은 정책 아이디어는 풍부하지만 실제 일을 추진하는 것은 직업 공무원 출신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도 배우고요.”

본관, 관저, 비서동(여민관), 영빈관 등이 분리된 현재 청와대 청사 배치. 대통령과 참모 사이 물리적 거리가 멀어 소통에 방해되고 대통령을 고립시키는 원인으로 지적돼 왔다. | 연합뉴스.

본관, 비서동, 관저 등이 분리된 청와대 청사의 구조적 문제가 대통령의 소통을 방해한다는 지적은요?

“대통령과 참모진은 같은 층에 근무하지는 못해도 수시로 대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청와대에 근무할 때만 해도 대통령 만나기 위해서는 면담 시간 미리 잡고 자동차 대기하라고 해서 여민관 비서동에서 청와대 본관 집무실까지 가고 했습니다. 수석비서관이 대통령 만나려 해도 번거로운 절차 거쳐야 했죠. 대통령 비서실장도 마찬가지고요.” 윤석열 당선자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공약에 대해서 이각범 교수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봅니다. 구중궁궐에서 나와 소통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죠. 더하여 청와대 조직을 슬림화하고 대통령 직속 민관합동위원회를 구성하여 국정운영에 도움을 받겠다고 표방하고 추진 중인데 이도 굉장히 옳은 방향이라 봅니다.” 이각범 교수는 대통령과 참모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 대통령집무실 이전은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대통령과 참모는 이왕이면 같은 층 사무실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해도 같은 청사를 사용하며 수시로 대면하고 국정을 의논해야 합니다.” 그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뿐만 아니라 대통령 보좌 조직을 줄이고, 각종 민관합동위원회를 설치하여 국정 운영 자문을 받겠다는 윤석열 당선자의 구상에 대해서도 긍정적이라 평가했다.

대통령과 참모는 수시로 소통해야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바람직

정부 여당과 기획재정부 간 재난지원금 예산 편성을 둘러싼 갈등 등에서 드러난 관료에 대한 민주적 통제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요?

“결론적으로 전문성을 갖춘 관료가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각 성(省)의  대신(大臣·장관)은 실질적인 힘이 없고 사무차관이나 국·과장 등 관료 파워가 세죠. 한국 장관과 일본 대신이 합의한 사안도 실무진이 뒤집는 경우가 많을 정도였죠. ” ‘전문성을 입각하여 영역을 구축한 관료들을 방치할 경우 관료독재 혹은 관료지배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반문에 대해서 이각범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관료 독재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지만 기획재정부가 추경 예산 편성에 반대하는 것은 장기 국가 재정운영 관점에서 하지 말아야 한다는 판단과 소신 때문인 거죠. 이에 집권여당이 관료에 대한 민주적 통제 운운하면서 찍어 누르려 드는 것을 옳지 않다고 봐요.” 이렇게 지적한 이각범 교수는 법무부 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지휘권 행사 남용도 문제라고도 했다. “이것도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당선자에게 법무부 장관이 ‘감히 임명받는 권력이 선출된 권력에 덤비느냐’고 했던 것인데 굉장히 잘못된 것이죠.”

차기 대통령과 정부가 국정 운영에 있어 명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사람을 폭넓게 등용해야 합니다. 이게 관건이라고 보고요. 두 번째는 대한민국을 둘러싼 국제 정세가 바뀌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죠. 지난날에는 경제와 안보가 분리됐는데 오늘날에는 절대 분리할 수 없는 환경으로 바뀌었습니다. 세 번째 4차 산업혁명시대라는 현실에 맞게 정부 조직을 재편해야 합니다. 과학기술 분야가 선도해야 하는 것이죠. 네 번째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 절벽’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타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010년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위원장 시절 정부통합전산센터를 방문한 이각범 교수.

과학기술정책 분야에서 조언한다면요?

“새로이 시작된 미·중 양극 체제 속에서 미국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중국 편에 설 것인가를 강요받고 있습니다.”라고 전제한 이각범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주목해야 할 것이 미·중 양극체제로 세계질서가 변했다는 것입니다. 미·소 양극체제였던 것이 미국이 주도하는 팍스아메리카 시대로 바뀌게 됩니다. 유럽과 일본 등의 세력이 커지면서 잠시 다극단 사회도 도래합니다. 양극이 일극이 됐다가 다극체제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중국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중국으로부터 받는 영향은 지대합니다. 예를 들어 미세먼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직접적인 영향권입니다. 기후 변화의 영향은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여파를 가져옵니다. 우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가 공동으로 대응해야 하는 흐름으로 가고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만의 문제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가 되면서 이제 하나 혹은 두 개만 보면 안 되고 여러 상황이 중첩돼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어느 나라가 지배하느냐? 그 지배 원천이 무엇이냐 하는 그런 면에서 지배 방식의 변화를 따져왔습니다. 지금은 전혀 다른 세상이 됐습니다. 그 바탕에는 미·중 양극체제가 있으나 사실 우리 일상과는 굉장히 거리가 먼 차원이 됐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혁신(innovation)’의 편에 서야 하고, 현실과 가상의 융합에서 어우러질 수 있는 전략적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그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이를 이끌 주무부처가 돼 조정과 협력, 지원의 역할을 주도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이각범 교수는 대통령은 차세대를 내다보는 안목을 갖추고 국가 중·장기 발전을 위한 과제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거쳐 국무총리나 국무위원으로 입각할 가능성도 높은데 만약 국무총리로 입각할 경우 자신의 전문 분야인 과학기술정보통신 분야를 ‘직할’로 두고 직접 챙기는 것도 바람직한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