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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변애수 San Diego 사업가, 오른쪽 이선혜-주한 미8군 참모부 본부행정실 근무.@대기원 |
[대기원] “제 친구와 객석에 앉아서 “와”하고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났었어요. 전 샌디에고San Diego에 살고 있는데 평소 오페라나 발레를 아주 좋아해서 공연 시즌만 되면 빼놓지 않고 찾아가 봅니다. 그런데 오늘 본 이 신운 공연은 그것들과 완전히 달라요.”
공연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무대와 관객과의 교감이다. 무대에서 의도하는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이를 예술인들이 과연 관객들에게 얼마나 잘 전달하는가, 그리고 관객들의 문화소양과 순수한 감상태도는 그 공연의 감동 수치를 결정한다.
23일 저녁 신운 공연 이틀째. 1부가 끝나고 인터미션에 극장 밖을 나서지 못하는 중년의 두 여인이 눈에 띄었다. 소녀처럼 상기된 표정, 그녀들 눈빛은 신운공연을 계속 관람하고 있는 듯하다.
이선혜 씨는 샌디에고에 사는 친구 애수 씨가 모처럼 한국에 들어오자 그녀에게 뭔가 특별한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애수 씨가 오페라와 발레, 뮤지컬 등 공연 매니아인 것을 잘 알기에 선혜 씨는 이것저것 국내 공연 정보를 찾았다. 그러다 문득 며칠 전 핸드백 속에 찔러두었던 광고신문이 떠올랐다.
“오늘 저 친구와 구경할 공연 정보를 살피다가 이 신운공연을 선택한 겁니다. 굉장히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 공연은 정말 굉장히 독특합니다.”
그러면서도 이선혜 씨는 이 특별한 공연에 걸맞지 않게 오히려 광고가 부족해 보인다고 아쉬워했다. 며칠 전 세종문화회관에서 뮤지컬을 관람한 후 나오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이 광고 신문을 건넸다. 그게 바로 신운 공연 광고지였던 것. 처음엔 별 관심이 가지 않아서 잊어먹고 있었는데 미국에서 애수 씨가 찾아왔고, 공연에는 일가견 있는 그녀에게 왠지 이 공연을 보여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서양의 것도, 또 한국의 것도 아닌 뭔가 색다른 공연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늘 여기 공연을 보기 위해 오는데 짜증나는 일이 이상하게 많이 생기는 거예요. 결국 공연을 보고 나니 오늘 겪은 일들을 다 감수해도 될 만큼 만족합니다. 지금 심정은, 누구에겐가 이 공연을 빨리 보라고 전해주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음식점에서 단골손님이 친구들을 몰고 오듯 자신도 이 공연이라면 지인들에게 어서 보라고 빨리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그녀들과 대화하는 동안 객석의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극장 안이 조용해졌다.
이번엔 좀 더 구체적으로 프로그램의 소감들을 듣고 싶었다.
“선녀들이 부채를 활용해 연출한 선녀답파도 정말 특이했어요. 춤과 배경스크린의 조화가 어찌나 환상적이었던지 우린 “와”하고 객석에서 소리를 쳤어요.”
춤 하나하나가 다양한 것도 감명 깊었는데, 2시간이 지나고 있어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았다고 한다. 춤과 배경스크린의 절묘한 조화로 객석에 앉아 있는 동안 마치 신선이 노는 듯한 기분으로 공연에 몰입했다고 감탄했다.
변애수 씨는 “이 공연은 다른 공연과 비교를 할 수 없어요. 외국에서 많이 봐온 공연들과 이 공연은 완전히 방향이 다릅니다. 노래 부분도 좋았는데, 특히 테너 훙밍(洪鳴)! 그 분의 노래는 정말 굉장했어요. 전 객석에서 또 소리를 질렀어요.”
국내 공연장 분위기가 일반적으로 차분한 반면, 서구의 외향적인 공연관람 매너에 익숙한 듯한 그녀들은 감동적인 대목에선 객석에서 스스럼없이 탄성을 질렀나보다.
두 여인의 공연 소감이 봇물 터지듯 했다. “청나라 궁중에서 생활하는 여인들이 신는 신발, 그 화분신발을 나도 신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너무 들었어요. 거거춤처럼 그렇게 반듯하게 균형을 맞춰 움직여야 하는데, 과연 내가 그렇게 화분신발을 신고 우아하고 기품있게 걸을 수 있을까 상상했죠, 거거춤도 굉장히 강하게 인상에 남아 있어요.”
마치 아련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려는 듯 청조 황실 거거(공주)들의 화분신발에 눈빛을 반짝이는 모습도 흥미롭다. 평소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 다양한 공연을 즐긴다는 변애수 씨는 중국무용을 직접 보니 우선 그 몸짓이 매우 섬세하다며 놀라워했다. 무용 동작이나 의상이 서양 발레와는 다르지만 중국무용에서 무용수들이 기술을 구사하는 것에서 어떤 굉장한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공연 사회자의 설명대로 중국무용은 신운(감정과 사상)과 신법(동작), 그리고 기교로 이루어져 무용가의 사상과 인품마저 고스란히 무대 위에 반영한다. 예술인의 정신, 사상경지 그리고 공연의 주제에 따라 중국무용은 광활한 우주 천체마저 무대 위로 올려놓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문득 신운 공연에서 “각성”이라는 제목의 무용극 마지막 대목이 떠올랐다. 젊은 엄마가 광폭한 탄압을 견디며 眞善忍을 지켜낸 후 청초하고도 고고한 신념을 신체언어로 묘사하는 수석무용수 런펑우의 고난도 다리 동작은 관람객의 가슴에 영원히 기억될 명장면이다. 두 사람도 중국무용에서 손끝과 발끝에 실리는 신운(神韻)을 발견하고 있는 듯했다. 신운 공연 관람으로 한껏 고무된 것도 이 공연이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려 하는지 두 사람은 자신의 인식범위에서 온전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운 공연에선 고대 중국에서 현대 중국에 이르는 전반 중국의 역사를 관통해서 무엇이 진정한 중화문화인지를 펼쳐 보여준다. 또한 이 전통을 거스르는 오늘날 중국사회의 치명적 결함을 거울에 비춰주듯 보여주어 관객에게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매우 평화롭고도 온화한 방식으로 우리의 각성을 도와주고 있는 듯하다.
과거의 화려한 문물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것이 전통문화의 체현에만 머물러 있는 외줄의 그물망이라면 우리는 여전히 허전한 감동만 건질 수 있을 뿐이다. 올바른 현실인식에 토대한 휴머니티가 공연에 부가될 때 비로소 완전한 그물망으로 공연은 짜여진 것이 된다.
그런 점에서 眞善忍을 탄압하는 현대 중국사회의 그늘을 이토록 자각적이고도 애틋하게 형상화하여 지적할 수 있다는 사실은 신운공연이 이루어낸 높은 예술적 구성력이기도 하다.
이선혜 씨는 “각성” 작품을 보고 가슴이 “찡”하고 울렸다고 했다. “아, 무언가를 얘기하려는구나, 이것은 그저 단순한 춤이 아니고, 우리에게 무언가 메시지를 남기려는 거로구나.”
“무용극이고 동작으로만 표현하는 것인데도 그 메시지가 거의 제 마음 속에 와서 닿았어요. 억누르는 것에 대해 시민들이 이젠 용기 있게 거부하는 것, 두렵지만 같이 뭉쳐서 막아내는 것.”
그리고 친구 변애수 씨도 자신은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며 현재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탄압 문제는 반드시 올바르게 바뀔 것임을 믿는다고 말했다. 몰려오는 문화를 막을 순 없다는 사실과, 그런 문화의 힘만이 가장 평화로운 방식으로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것에 두 사람은 크게 공감했다. 신운예술단의 공연이야말로 음악과 무용을 통해서 말로는 표현해내지 못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특별한 공연이라며 두 여인은 남은 소감을 모두 전하고는 극장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