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음식 낭비 막아라” 지시에 한 중국 식당에서 벌인 일

남창희
2020년 8월 25일
업데이트: 2020년 8월 25일

식량 수급에 대한 불안이 일고 있는 중국에서 ‘음식 낭비 막기’가 국가적 운동으로 떠오른 가운데, 중국 후난성의 한 식당에서 웃지 못할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13일 후난성 창사(沙)에 있는 소고기 전문 대형 음식점 ‘추이옌샤오차오니우러우‘(炊烟小炒牛肉)에서는 ‘몸무게에 맞춘 메뉴’(稱體重點餐)를 개발해 영업에 들어갔다.

앞서 11일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등 관영매체에서 “시진핑 총서기가 음식 낭비를 줄이라고 지시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이틀 만에 ‘묘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 메뉴는 체중과 성별에 따라 주문할 수 있는 음식의 종류와 가짓수를 제한했다.

예를 들어, 체중 40kg 미만인 성인 여성은 소고기 볶음 외에 1개만 추가로 주문할 수 있도록 했다. 체중 80kg인 성인 남성은 돼지고기 간장 볶음 등 총 3개 메뉴를 주문할 수 있었다.

이 식당의 새로운 영업방식에 대해 “정책을 정확하게 따르고 있다”는 비웃음 반 평가 속에 “당의 노선을 기계적으로 해석한 것”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관심을 끌어 식당을 홍보하려는 속셈”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결국 비난 여론에 식당 측은 이틀 만에 SNS를 통해 사과문을 게재하고 해당 영업방식을 철회하며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하지만 식당 측은 사과문에서 “몸무게에 맞춘 메뉴는 의무사항이 아니었다. 시행 당일 수천 명의 고객이 자발적으로 협력해줬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글로벌 위성채널 NTD는 중국의 한 유명한 음식 체인점 출신 요리사의 발언을 인용해 “이는 우연한 일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 요리사는 “중국은 오랫동안 독재정권이라는 환경 속에 있었다. 지도자가 절약하라고 하면 우리는 즉시 그 말대로 해야 한다. 지도자에게 ‘보십시오, 당신의 명령을 바로 순종하고 있습니다’라고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해당 식당이 발표한 사과문에서 “후난성 외식산업협회와 후난성 식음료 산업협회가 전날(12일) 발표한 ‘음식 낭비금지 제안’에 따른 행동이었다”고 해명한 부분도 눈에 띈다.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와 관련 단체까지 줄줄이 이어져 온 무언의 압력에 따른 대응이었다는 것이다.

후난성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13일 중국 31개 성·시·자치구의 요식업 관련 협회에서는 제각각 음식 낭비를 막기 위한 방안을 발표했다.

또한, 음식점에만 그친 것도 아니었다.

공산당 최고 지도자의 ‘음식 낭비를 막아라’라는 지시가 떨어지자, 전국 각 정부 기관과 관련 업계가 일제히 협조에 돌입했다.

중공의 ‘거수기’ 의회인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회는 “음식 낭비를 막기 위한 입법 위원회를 구성한다”고 밝혔다.

중앙정치국과 정부 각 부처에서는 모든 간부와 노동자들에게 “음식 낭비 금지에 관한 정책이념을 관철하고, 신속하게 행동할 것을 권고”하는 공개서한을 줄이어 발표했다.

당 기관지 인민일보 등 관영매체는 식량 안보의 중요성을 부각하고 음식 낭비를 질타하는 보고서와 논평을 쏟아냈다.

중국 연구가 첸쿠이더(陳奎德)는 이를 “정치 운동”이라며 “구시대적 통치방식”이라고 평가했다.

상하이 푸단대 철학박사 출신으로 미국 프린스턴대 동아시아학과에서 중국 근현대사를 연구한 첸 박사는 “마오쩌둥 시대에도 비슷한 음식 낭비 막기 운동이 시작됐지만, 큰 피해만 남기고 끝났다”고 했다.

그는 “1959년부터 3년간 발생한 대기근이 바로 그 결과물의 하나”라며 “중국인들은 이러한 통치방식이 부패하고 뒤떨어진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대기근은 중국인 3천만~5천만 명이 굶어 죽은, 현대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비극이다. 독재자 마오쩌둥의 비현실적 정책을 관리들이 그대로 추종하면서 빚어진 참혹한 결과였다.

중국의 저명한 문화학자이자 평론가인 우쭤라이(吳祚來)는 “(중국) 정부가 식량 문제 해결을 시장에 떠넘겼고 그 압력이 일반 대중에까지 가해졌다. 음식 절약 운동은 정치적인 운동으로 변질하고 있다. 중국의 음식점들이 느끼는 부담감은 일종의 정치적 압력”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은 당에서 명령이 떨어지면 현실성과 합리성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실행해 온 공산주의 사회의 씁쓸한 자화상을 보여준 사건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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