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윈 비파 연주자, ‘박해 딛고 전하는 고요·평온의 선율’

션윈 비파 연주자, ‘박해 딛고 전하는 고요·평온의 선율’

션윈예술단 비파 연주자 량위(梁玉) | Shen Yun Creations

2022년 07월 1일

미국 션윈예술단의 지난 시즌 작품 중에 중국을 배경으로 한 감동적인 무용극이 있다.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하는 젊은 부부가 첫아이를 얻었지만, 부부는 곧 당국에 납치돼 고문으로 세상을 떠나고 아이는 고아가 된다. 다행히 아이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게 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오늘날 중국의 비극적 상황을 담아내기도 했다.

관객들은 이 작품을 보며 눈물을 짓다가도 아이가 따뜻한 보살핌을 받게 되는 대목에서 감동과 안도감을 느낀다. 그런데 공연장에서 이 작품을 더 남다른 감정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 바로 션윈 오케스트라 단원 량위(梁玉) 씨다.

무대 아래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작품을 보게 되는 량씨는 공연 때마다 이 작품이 시작되면 몸이 얼어붙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그녀는 중국에서 어머니가 체포되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파룬궁 수련자다.

파룬궁으로 알려진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중국의 전통적인 정신수양법이다. 진실(眞)·선량(善)·인내(忍)를 원칙으로 도덕성을 함양하고, 부드럽고 느릿한 다섯 가지 동작으로 건강을 다진다.

1990년대 초 중국에서 입소문을 타고 급속히 퍼지면서 7~8년 만에 수련 인구가 7천만 명을 넘어섰다(당국 추산). 중국 공산당은 1999년부터 파룬따파를 박해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멈추지 않았다.

언론이 보도한 박해 이유는 ‘사회 안정을 위협한다’는 것이었지만, 소위 ‘파룬궁 사건’들은 모두 당국이 박해를 정당화하려 조작한 사건들임이 입증됐다.

공산당은 비밀경찰 조직을 만들어 수련자를 체포해 감옥이나 강제노역소와 교육센터로 보냈다. 수련을 포기하게 하거나 다른 수련자의 이름과 연락처를 대라며 여러 가지 방법으로 수련자들을 괴롭히고 고문했다.

수련자들이 공개한 사진에서는 전기충격기에 얼굴이 까맣게 탄 젊은 여성, 온몸이 시퍼렇게 멍들고 가슴에 커다랗게 꿰맨 자국이 있는 할아버지 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중국에서의 고통스러운 기억

량씨는 “나는 아직도 그 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며 어린 시절 겪은 일을 얘기했다.

1999년 8월의 어느 하루, 량씨의 어머니와 이웃들은 아파트 단지 공원에서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있었다. 그때 경찰차 여러 대가 도착하였고 경찰차에서 내린 경찰들이 그들에게 접근했다. 좋은 의도가 아님은 확실했다.

이 장면을 본 량씨는 공포감에 빠졌다. 그녀는 어머니의 팔을 잡고 “체포될 것 같다”고 외쳤다. 하지만 어머니는 움직이지 않고 수련에 집중했고 어머니와, 함께 수련하던 이웃들은 모두 량씨의 눈앞에서 경찰에 끌려갔다.

량씨는 어리다는 이유로 체포를 면했고 어머니도 며칠 뒤 집에 돌아왔지만 이 사건은 그녀에게 매우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그 후 2년 동안 어머니는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4차례 더 구금됐다.

두 사람에게 괴로운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베이징에서 비파(琵琶) 연주를 공부하던 량씨에게 어느 날 뜻밖에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미국 션윈예술단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합격했다는 내용이었다.

어려서부터 비파 연주를 공부한 량씨는 음악가로서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션윈예술단이 중국 전통악기를 다루는 예술가를 단원으로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한 어머니가 그녀 이름으로 지원서를 넣었고 합격한 것이었다.

2006년 뉴욕에서 설립된 션윈예술단은 세계 최정상의 중국 고전무용단이다. 서양 고전음악과 중국 전통악기를 결합한 수준 높은 라이브 심포니 오케스트라도 포함됐다. 오케스트라 단독으로 콘서트를 열기도 한다.

중국의 오랜 전통에 충실한 고전적 음악가를 꿈꾸던 량씨에게 션윈은 최고의 선택이 됐다.

미국으로 떠나던 날 량씨는 공항으로 배웅 나온 아버지, 어머니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족은 표정과 눈물로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량씨는 앞으로 한동안 집에 돌아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중국을 떠나는) 그 한 걸음으로 마치 새로운 세상에 들어온 것 같이 느껴졌다”며 “매우 어려운 한 걸음이었다. 션윈 공연에는 파룬따파가 박해받는 상황을 소재로 한 작품도 일부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중국에서 벌어지는 인권탄압을 소재로 한 작품을 공연하는 예술단에서 딸이 단원으로 활동한다는 사실은 중국에 남은 부모와 가족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파룬궁 수련자인 어머니는 더 큰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도 있었다.

량씨는 “중국 공산당이 사람을 협박하고 괴롭히는 방법은 아주 많다. 나는 부모님의 안전이 걱정됐다”며 “박해가 끝나기 전까지는 가족과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당시 심정을 털어놨다.

하지만 그녀의 결심은 확고했다.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그녀는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옛 선현들을 기억했다.

그녀는 “역사적으로 많은 위대한 인물들은 중요한 고비 때, 성공할 것이냐 실패할 것이냐가 아니라 도덕적이냐 도덕적이지 않으냐를 놓고 고민했다”며 “도덕에 부합하면 실행에 옮겼고,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면 하지 않았다. 나 역시 중국 공산당의 박해 앞에서 그런 마음가짐이었다”고 했다.

중국에서 겪은 힘든 일들은 음악가로서 일정 부분 도움이 되기도 했다. 괴로움은 성숙으로 이어졌고 이는 예술을 이해하고 음악을 해석하는 밑바탕이 됐다.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성장

량씨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악기를 배우게 됐다. 어렸을 때 어머니는 그녀를 악기 전문상가에 데려가 “마음에 드는 악기를 하나 고르라”고 했다.

어렸던 량씨는 장난스러운 선택을 했다. 눈을 감고 빙빙 돌다가 멈춰 선 뒤 자기 앞에 놓인 악기를 가리키고는 “이거”라고 했다. 게다가 “이게 아니라면 어떤 악기도 배우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고. 그렇게 고른 악기가 바로 비파였다.

운명이었을까. 량씨는 비파 연주에 두각을 나타냈다. 중학 시절부터 전국 비파 콩쿠르에서 상을 받았고, 고등학교와 대학교 진학 후에도 여러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당시 량씨에게 음악은 오늘날 많은 젊은 아티스트들이 그러하듯 콩쿠르를 중심으로 한 스포츠와 같았다. 연주의 속도, 파워, 곡의 난이도 등 스킬을 겨루는 경쟁이었다.

하지만 션윈예술단에 가입한 후 량씨는 음악에 대해 점차 다른 시각을 갖게 됐다.

량씨는 훌륭한 음악은 그런 기준으로 판단되어선 안 된다고 했다.

“산이 높지 않아도 신선이 살면 명산이요, 물이 깊지 않아도 용이 살면 신령한 물이라네(山不在高, 有仙則名. 水不在深, 有龍則靈).”

중국 당나라 시인 유우석(劉禹錫)의 시문집 <누실명(陋室銘)>에 실린 시의 한 대목을 인용한 량씨는 “악기 연주는 스킬보다 연주자의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예전에 내가 콩쿠르에서 연주한 곡을 들으면 늘 불편했다. 조급하고 불안한 콩쿠르 당시의 심정이 곡에 고스란히 담아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연주할 수 있게 됐고, 어떤 곡을 연주해도 나 스스로 편하게 들을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션윈에 입단한 후 “인간으로서의 성품이나 예술가로서의 수준이 더 깊어진 것 같다”며 “션윈이 전하는 전통문화와 보편적 가치관을 접하면서 얻은 성과”라고 수줍게 자평했다.

문명의 부흥이라는 막중한 사명

션윈예술단은 올해 월드투어에 임하며 새로운 슬로건을 내세웠다. ‘공산주의 이전의 중국’이다.

중국의 5천 년 문명을 통틀어 공산주의 체제는 단 70여 년 역사에 그친다. 이 기간 문화대혁명 같은 파괴적 사회운동과 정치선전으로 망가지고 오염된 오늘날의 중국 문화는 앞서 수천 년간 이어진 중국 문명과는 완전히 단절된 변질품이다.

션윈은 공산주의 이전에 5천 년 가까이 번영했던 ‘오리지널’ 중국 문명 회복을 사명으로 초창기부터 음악과 무용을 통해 중국의 아름다움을 표현해왔다.

고대 중국의 문화는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를 그 중심에 두고 있다. 그러므로 션윈예술단 단원들 역시 천인합일을 지향하는, 매우 특별한 예술가 집단이 돼야 했다.

량씨는 “션윈이 하는 모든 것, 션원의 책임·역할·전승 그리고 그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중국 전통문화의 정수(精髓)이자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다”라고 했다.

션윈에서 보고 배운 것은 그녀에게는 자신이 물려받은 중국 문화에 대한 재발견의 기회이기도 했다. 전통문화 속에서 자연과 신(神)에 대한 공경을 바탕으로 자비, 성실, 존중, 지혜, 충효, 정직, 명예, 용기 같은 가치관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됐다.

량씨는 “이는 사람이 마땅히 갖춰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가치관”이라며 “‘나는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런 가치관을 지킬 수 있을까? 정의를 선택할 수 있을까?’ 스스로 자주 묻는다”고 했다.

이어 “23년 전 어머니가 그랬고 또 많은 사람이 정의를 위해 싸우는 걸 봤다. 그들은 내가 신념을 지키고, 인내심을 가지고 옳은 일을 견지하도록 격려해줬다”고 말했다.

량씨 가족은 2018년 미국에서 재회했다. 하지만 파룬따파와 수련자들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박해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션윈 크리에이션즈에서 더 많은 영상과 작품들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