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의 연방화” 美 공화당, 민주당 주도한 투표권법 저지

하석원
2021년 11월 4일
업데이트: 2021년 11월 4일

공화당 상원이 민주당이 발의한 투표권법을 필리버스터로 3일(현지시각) 부결 처리했다. 당론 표결로 이뤄진 이번 법안 심리에서 공화당의 이탈표는 1표뿐이었다.

민주당은 표결 후 공화당이 시민들의 투표권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상원 다수당인 민주당의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공화당은 투표권 보호를 배척하기로 결심한 것이 분명하다”며 공화당 의원 중 유일하게 찬성표를 던진 리사 머코스키 의원에게 살짝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선거법은 당초 하원에서 처음 발의됐으며, 같은 법안의 상원 버전은 지난달 초 제출됐다.

법안을 처음 발의한 앨라배마주의 테리 스웰 의원은 “(앨라배마) 주의회에서 가결한 ‘유권자 청렴법’은 1965년에 제정된 선거권법(Voting Rights Act of 1965)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스웰 의원이 ‘유권자 청렴법’이라고 부른 개정된 선거법은 앨라배마 공화당이 의회 다수당으로서 실력 발휘를 통해 제정한 법이다.

미국 여러 주의회 공화당은 작년 대선 이후 유권자 신분확인과 선거인 명부 관리, 특히 무분별한 우편투표를 제한해 선거를 청렴하게 만든다는 취지로 법안을 발의, 제정해왔다.

공화당은 이를 선거를 공정하게 만들고 정당한 유권자의 투표권을 보장하는 법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민주당은 유색인종 유권자를 차별적으로 제한하는 법이라고 맞서왔다.

이번에 민주당이 상원에서 통과시키려 했던 선거법은 ‘1965년 선거권법’의 주요 조항을 부활시키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

‘1965년 선거권법’은 주(州)정부나 카운티 위원회 등 각 지방정부가 선거 자격을 제한하거나 투표에 필요한 요건, 절차를 연방정부 승인 없이 요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법이 담고 있는 특수한 제한은 5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미국의 사회적 상황이 극적으로 달라졌기 때문에 더 이상 원래 취지대로 작용하기 어렵다고 판단됐다. 결국 2013년 미국 법원 판결로 효력이 중단됐다.

미국 정치권 안팎에서는 공화당이 이번에 필리버스터로 좌절시킨 민주당의 선거법이 만약 그대로 통과됐을 경우, 연방의회가 지방선거에 다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은 지방의 선거제도에 대한 개입 의사를 명확히 나타내고 있다. 각 주의회에서 공화당이 통과시킨 여러 선거법이 유색인종이나 소수그룹에 차별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이미 올해 ‘브르노비치 대 민주당 전국위원회’ 재판에서 대법원에 의해 기각된 바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선거법을 둘러싼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결은 그동안 지방정부의 고유 권한이자 책무였던 선거를 연방정부·의회가 주도하느냐 즉, ‘선거의 연방화’ 문제로 수렴하고 있다.

공화당은 선거를 계속 주의회·정부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고, 민주당은 연방이 나서서 차별적인 선거를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화당은 앞서 지난달 20일에도 민주당이 추진한 ‘투표의 자유’ 법안을 필리버스터로 저지했다. 당시 공화당에서는 이탈표가 1표도 나오지 않고 전원 반대했다.

이 법안은 선거일을 연방공휴일로 지정하고 우편투표, 사전투표를 대폭 확대하며 사진이 없는 신분증빙서로도 현장투표할 수 있게 하는 등 기존에 각 주의회에서 정한 선거법을 대폭 바꾸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무제한 토론을 통해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필리버스터는 미국 의회 상원에서 소수당에만 보장된 합법적 권한이다. 다수당의 횡포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다.

민주당은 선거법 변경 시도가 공화당의 필리버스터로 번번이 좌절되자 필리버스터 규정 자체를 바꿔 강행돌파를 더 쉽게 하거나 아예 필리버스터를 삭제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조 만친, 키어스틴 시네마 의원 등 민주당 내 온건·중도파 의원들은 공화당의 선거법 표결 저지에 불만을 나타내면서도 필리버스터 규정 자체에 손을 대는 것은 또 다른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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