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북한 김정은 체제 가장 큰 위협은 미국 아닌 중국

쉬젠(徐簡)
2021년 12월 20일
업데이트: 2021년 12월 20일

북한과 중국은 ‘이념적 공통점’에 기반하여 경제, 외교 등 제반 분야에 있어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김정은 집권 시대에 들어서서는 북한 안보에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12월 12일,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하여 “북한이 중국에 대한 의존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북한 안보에 최대 위협국이라는 이유에서다.

앞서 미국 CNN도 “북한 경제가 거의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고 전했다. 1950년대 6·25전쟁 이후 두 나라는 줄곧 ‘동맹국’이었다.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점점 고립되어 갔지만, 중국은 북한의 최대 무역 파트너가 되었다. 특히,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지속되면서 북한의 대중국 무역 의존도는 2001년 17.3%이던 것이 2019년 95.2%로 급증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북한이 중국에 이념적으로 흡수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 북한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Andrei Lankov) 국민대 교양대학 교수는 “‘북한과 중국 간 이념적 통일’을 이룩했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모든 북한 방첩 요원이라면 누구든지 북한에 있어 가장 큰 내부 보안 위협이 되는 것은 중국이라고 말할 것”이라며 “중국이 북한 내부에 혼란을 가져다줄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배경에 6·25전쟁, 이른바 중국 측의‘항미원조(抗美援朝)’를 시작으로 북한과 중국이 서로 반목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란코프 교수는 그 후 중국이 북한 침투를 시도했고 이는 김일성 일가의 두려움을 유발하게 됐다고 전했다. 항미원조는 중국이 6·25전쟁에서 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운 것을 말한다. 중국은 지난해 항미원조전쟁 70주년 기념전에서 1950년 10월 1일 김일성이 보낸 중국 인민지원군 파병 요청 서신을 공개한 바 있다.

란코프 교수는 그 예로 북한은 6·25전쟁 관련 70쪽 분량의 공식 설명에서 김일성이 중국 공산당원이었다는 부분을 삭제하며 과거를 은폐하고 중국 공산당이 6·25전쟁에 참가했다는 부분도 단 세 차례만 언급했다고 설명했다.

여러 사료에 따르면, 김일성은 중국 공산당 만주성위원회 산하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에 몸담았다. 북한은 동북항일연군의 활동을 김일성이 지휘하는 조선인민혁명군의 항일투쟁이라 말한다. 실제 조선인민혁명군은 존재하지 않았던 군대로 알려져 있다.

김일성이 결정적으로 중국에 악감정을 갖게 된 것은 중국 공산당이 동북항일연군숙청을 단행하면서부터로 알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 국적 간부와 병사들이 살해당했다. 반면 김일성은 중국과 가까이 지내온 이들을 모두 제거했다. 이로 말미암아 1950년대 후반 북한에 체류 중이던 중국군은 철수했다.

6·25전쟁이 나고 100년도 되지 않았지만 북한은 일본보다 중국을 더 경계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윤선 미국 스팀슨센터 중국 담당국장은 “북한에는 ‘일본은 100년의 적이며 중국은 1000년의 적이다’라는 말이 있다”고 소개했다. 미·소련 냉전 기간 북한과 중국 관계도 줄곧 팽팽한 긴장 국면이 이어졌다. 북한은 중국과 소련 간의 갈등과 모순을 이용하여 다방면에서 어부지리를 얻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중국은 북한 고위층 탈북자들에게 망명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그들을 추후 북한의 잠재적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키워내고자 했다. 이는 북한이 중국을 극도로 경계하게 만들었다.

급기야 2013년 김정은은 중국 고위 관료들과 가까이 지내온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했다. 장성택에게 ‘미제와 남조선에 편승했다’는 죄목과 더불어 ‘국가의 귀중한 자원을 헐값에 팔아버리는 매국 행위를 했다’는 죄목을 씌웠다. 헐값에 사 준 국가의 이름은 쏙 뺐다.

2017년에는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이 암살당했다. 북한의 대표적인 친중파로 알려진 김정남은 중국 정부의 암묵적 보호를 받아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은 김정은 사망 시 북한 체제 안정을 위해 차기 북한 노동당 위원장으로 김정남을 염두에 뒀다는 설도 나온 바 있다.

1992년 중국이 한국과 수교했고, 북한도 미국으로부터 인정받기를 고대했다. 그러나 북한이 기대한 만큼 중국은 북한을 돕지 못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북한으로서는 이것이 중국 측의 가장 큰 배신이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존 델러리(John Delury)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중국이 북한을 잠시 버렸다”고 지적했다.

그 후,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추구했다. 북·중 접경지대에서는 은근슬쩍 중국 공산당에 영향력을 가하고자 했다. 이는 중국을 적대시한 것으로 풀이됐다. 이로 인해 양측의 합작 투자 기업이 문을 닫게 됐다.

2012년 북한 관리들은 북한 남서부 지역에서 중국 기업이 설립한 철광석 채굴 시설을 압류하고 이곳에서 일하던 중국인 노동자들을 모두 강제 추방해버렸다.

북한은 이듬해인 2013년 중국이 출자해 만든 ‘조중우의교(中朝友誼橋·북중친선교)’를 유휴상태로 유지하는 한편 국내 도로망과 분리했다. 조중우의교는 압록강을 가로질러 중국 단둥(丹東)과 북한 신의주를 잇는 다리다. 다리가 양측 국경을 넘나드는 만큼 이곳의 왕래는 큰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델러리 교수는 “북한이 중국에 경제를 개방한다는 것은 김씨 일가의 열쇠를 넘겨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는 북으로서는 두려운 일이다. 결과적으로 김씨 일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예로 북한이 이동통신 네트워크 사업자로 이집트 오라스콤(Orascom)을 선정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델러리 교수는 “북한은 전쟁 발발 측면에서는 미국을 우려하지만, 체제 전복이나 쿠데타 문제에 있어서는 중국 측을 더 걱정할 것”이라며 북한이 이동통신 사업에 중국을 끌어들이지 않은 이유를 밝혔다. 북한이 중국을 안보 위협하는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미중 전략적 경쟁이 김정은에게 유리하다는 분석도 나왔다. 미국 윤선 스팀슨센터 중국담당 국장은 “미중 전략적 경쟁이 김정은 정권의 생존에 있어 유리하다. 중국이 그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며 “다만 중국은 북한에 절대적으로 최소한의 대가만을 지불하려 할 것이다. 그 기준은 북한인들이 굶어 죽지도, 배부르지도 않게 하는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중국이 북한을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사이의 완충 장치로 유지하려는 전략이 김정은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준다는 것이다. 과거 김정은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외교 관계가 중국 측의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북한이 중국의 통제를 벗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 이 기사는 류정엽 객원기자가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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