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中 공안 2인자 몰락과 계파간 ‘후계자’ 제거 공작

남창희
2022년 01월 25일 오후 3:15 업데이트: 2022년 01월 25일 오후 3:15

지난 13일, 중국 최고인민검찰원이 쑨리쥔(孫力軍·52) 전 공안부 부부장을 뇌물수수, 증권시장 조작, 총기 불법 소지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이는 2021년 9월 30일 쑨리쥔에게 쌍개(雙開·당적과 공직을 동시에 박탈함) 처분을 내리고 수사할 당시에 통보한 내용과 큰 차이가 있다.

지난 9월 쑨리쥔이 낙마할 당시 국가감찰위가 발표한 700여 자의 통보문에는 총 45개의 죄목이 나열됐고 또 매우 엄중한 표현을 썼다.

예를 들어 “정치적 야심이 극도로 팽배해 있다”, “정치적 헛소문을 퍼뜨렸다”, “개인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패당과 이익집단을 만들어 주요 부문을 통제했다”, “사사로이 대량의 기밀 자료를 보관했다” 등등이다.

당시 한 시사평론가는 “반역에 속하는 이 같은 죄목들을 한 사람에게 적용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이는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다”고 했다.

쑨리쥔은 차관급에 불과한데 그에게 적용한 죄목들은 정치국 상무위원급에 해당한다. 과연 그에게 그런 파워가 있을까?

쑨리쥔은 2020년 4월 19일 낙마했고 공식 조사 결과는 1년 반 후에 나왔다. 조사 기간이 이처럼 길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공안부장을 지낸 저우융캉(周永康) 정치국 상무위원에 대한 조사가 1년밖에 걸리지 않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쑨리쥔을 기소할 때의 죄목과 초기에 조사할 때 통보한 내용이 확연히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예사롭지 않은’ 쑨리쥔 사건의 본질은 무엇인가? 필자는 이 두 가지 의문을 분석하고자 한다.

주지하다시피 올가을 20차 당대회에서 결정되는 시진핑의 3연임을 둘러싸고 시진핑 세력과 반시진핑 세력이 치열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반대 세력은 3연임을 막을 수 없다면 권력 구도(주로 정치국 상무위원과 정치국위원급)와 ‘후계자’ 포석(주로 중앙위원회급과 장차관에 해당하는 성부[省部]급 직위)에서 보상을 받으려고 한다.

시진핑으로서는 반시진핑 세력에 결코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판을 뒤엎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그는 ‘투쟁’의 진행 속도와 강도를 효과적으로 통제해 20차 당대회를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단합된 대회’, ‘승리의 대회’로 만들려 할 것이다.

따라서 시진핑은 쑨리쥔 사건을 ‘북(鼓)’으로 삼아 요란하게 두드리며 각 세력에게 경고했지만, 정작 사건을 처리할 때는 각 세력과의 관계를 깨지 않기 위해 강하게 몰아붙이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이것이 바로 쑨리쥔이 조사받을 때는 죄목이 45개였는데 기소할 때는 3개로 확 줄어든 주요 원인이다.

그렇다면 시진핑은 왜 쑨리쥔을 골라 타격했을까? 공안부란 이 부서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쑨리쥔의 배경 때문일 수도 있다.

쑨리쥔은 47세(2016년)에 공안부 당위원회 위원이 됐고, 공안부 국내안전보위국(1국) 국장, 공안부 26국장(종교 담당 책임자), 610사무실 부주임, 홍콩·마카오·대만 사무실 주임 등 민감한 직무를 겸임했다. 이는 분명 공안부와 정법위원회 ‘후계자’ 코스를 밟고 정치 ‘스타’로 자리매김하는 모양새였다.

쑨리쥔이 공안부 최연소 부부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장쩌민 계파인 상하이방(上海幫)이란 백그라운드가 있었기 때문이다. 쑨리쥔의 이력을 보면 상당히 기이한 데가 있다.

1969년생인 그는 1988년 9월 19세에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지만 놀랍게도 1997년 12월에야 공산당에 가입했다. 쑨리쥔은 1990년대 말에 벌써 상하이시 위생국 외사처 간부가 됐고, 1999~2003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립대에서 공공위생·도시관리학과를 졸업했고, 30대에 상하이시 위생국 부국급(副局級·부국장급)으로 승진한 데 이어 상하이시 외사판공실 부주임이 됐다.

쑨리쥔은 2008년에 공안부 판공청 부주임으로 베이징에 입성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한 것이다. 이어서 그는 멍젠주(孟建柱) 당시 정법위원회 서기의 비서를 거쳐 2013년 44세의 나이로 공안부 1국장에 올랐다.

쑨리쥔의 이력을 보면 그를 밀어주는 강력한 힘이 있고 또 명확한 계획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동시에▲시진핑이 공안부를 장악하는 데 한계가 있고,▲시진핑은 당시 쑨리쥔을 신뢰했고 기대를 걸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시진핑은 공안부의 중요성을 감안해 2016년 자신의 최측근인 당시 베이징시 부시장 겸 베이징시 공안국장 왕샤오훙(王小洪)을 공안부에 배치하였다. 왕샤오훙은 2016년 공안부 부부장에서 2017년 5월 정부장급, 2018년 3월 공안부 당위원회 부서기 겸 부부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점차 공안부 실권을 장악했다.

쑨리쥔이 관장하는 부서는 공안부 내에서 상대적으로 독립돼 있어 외부인이 개입하기 어려웠다. 암암리에 횡포를 부리던 쑨리쥔과 시진핑을 대신해 공안부를 장악하려던 왕샤오훙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쑨리쥔은 2018년 3월 공안부 당위원회 위원, 부부장이 됐지만 곧 업무 범위를 조정해 치안 관리를 주관했다. 이는 쑨리쥔이 이미 신뢰를 잃고 소외되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2019년 전후로 쑨리쥔에 대한 비밀수사가 시작됐다.

쑨리쥔을 제거한 것은 왕샤오훙과 쑨리쥔 개인 간의 갈등 때문이 아니라 그들 배후 세력 간의 힘겨루기 때문이다. 시진핑이 쑨리쥔을 쳐낸 것은 상하이방의 인사 계획을 일거에 흐트러뜨리고, 그들이 오랫동안 양성해 온 후계자를 일격에 제거한 것이다.

이 같은 수법은 전례가 있다. 저우융캉이 후계자로 키우던 정샤오둥(鄭少東)이 공안부 당서기에서 낙마한 사건이 그 예다. 밑바닥에서 차근차근 경력을 쌓은 정샤오둥은 광둥성 공안청 부청장을 거쳐 47세에 공안부 당서기에 올랐지만, 2009년 1월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낙마했다. 후진타오(胡錦濤)와 장쩌민(江澤民) 사이의 내부 투쟁 결과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사실 중공의 내부 투쟁에서 핵심 전략 중 하나는 상대의 인사 구도를 무너뜨리고 상대의 ‘후계자’를 제거하는 것이다. 시진핑이 18차 당대회에서 무난히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2012년 초 상하이방의 ‘후계자’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서기를 제거했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19차 당대회를 앞두고 상하이방이 배치한 또 다른 후계자 쑨정차이(孫政才) 충칭시 서기를 제거했다.

시진핑이 쑨리쥔을 척결하면서 내보낸 메시지 중 하나는 ‘후계자’ 배치에 다른 사람이 손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20차 당대회를 통해 정국을 완전히 장악하려 할 것이고, 반대 세력도 만만치 않게 저항할 것이다. 중공의 내부 투쟁은 목하 진행 중이고, 앞으로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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