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유의 도자기, 동양미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줘

다얀(Da Yan)
2023년 10월 11일 오후 6:39 업데이트: 2024년 02월 5일 오전 11:29

프랑스에서 크게 유행한  ‘시누아즈리(Chinoiserie)’
동양에 대한 호기심의 발현

17세기 프랑스는 중국풍의 예술품에 뜨겁게 열광했다. 당시 프랑스 왕실에서 사랑받은 예술품들은 지금까지도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시누아즈리

‘시누아즈리(Chinoiserie)’는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말까지 한 세기 이상을 아우르는 예술품을 총칭하는 말이다. 후기 유럽의 바로크・로코코 양식의 미술에 가미된 중국풍의 취미 작품을 일컫는 것으로, 프랑스 격동기에 주로 도자기, 면직물, 가구에 나타났다. 당시 매우 화려하게 제작된 시누아즈리 꽃병들은 장인들의 정교한 예술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호화로운 생활상을 담고 있다.

시대를 담은 꽃병

‘다섯 개의 뚜껑이 있는 꽃병’(1781), 세브르 국립 도자기 제작소. 폴 게티 박물관/월터스 미술관 | 폴 게티 박물관

프랑스 세브르 국립 도자기 제작소(공방)는 1740년, 루이 15세의 연인이자 프랑스 사교계의 중심인물이었던 퐁파두르 부인(1721~1764)의 요청으로 설립된 곳이다.

세브르 공방은 1778년부터 ‘시대의 꽃병’이라는 주제로 다섯 가지 꽃병 컬렉션을 제작했다. 꽃병은 전체가 푸른색 안료로 칠해져 우아한 빛을 뽐낸다. 또한, 각각 성인 남성과 여성, 어린 소년의 머리모양 장식이 달린 금박 청동 손잡이로 꾸며져 화려함을 더한다. 꽃병은 에나멜 안료와 보석으로 정교하게 꾸며져 있는데, 이 장식들은 작은 충격에도 쉽게 훼손된다. 그렇기에 실제로 사용되지 않고 전시품으로서의 기능만 수행했다.

꽃병 중 하나의 앞면에 그려진 텔레마코스와 테르모시리스의 세부 묘사. | 폴 게티 박물관, 공개 도메인

베르사유 궁전에 살았던 마지막 프랑스 왕 루이 16세(1754~1793)는 궁전의 개인 서재를 꾸미기 위해 꽃병을 구입했다. 이 꽃병에는 고대 시인 호머의 ‘오디세이’를 각색해 쓰인 ‘텔레마코스의 모험’의 장면이 그려져 있었다. 루이 16세가 이 꽃병의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기간은 채 10년이 되지 않았다. 1789년 일어난 프랑스 혁명으로 루이 16세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 꽃병은 왕실 자산에서 국유 재산이 되었다.

(좌)’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1775), 장 밥티스트 고티에. (우)’루이 16세의 초상화’(1789), 앙투안 프랑수아 칼레. 캔버스에 오일 | 공개 도메인

프랑스 왕실 가문은 ‘태양왕’이라 불렸던 루이 14세의 통치 기간에 절대 권력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루이 16세 즉위 이후 프랑스의 경제는 크게 쇠퇴했고, 혁명 이후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처형당했다. 베르사유 궁전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꽃병은 지금까지 남아 당시 왕실의 호화로운 취향을 뽐내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루이 16세 소장 꽃병 중 세 개의 뒷모습. | 폴 게티 박물관, 공개 도메인

‘시누아즈리’의 유행

베르사유 궁전의 다른 예술품인 ‘세 개의 뚜껑 달린 꽃병’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애정을 쏟았던 작품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1774년 여왕 즉위 후 개인 주택을 새로 장식하기 위해 세 개의 달걀 모양 꽃병을 구입했다.

‘세 개의 뚜껑이 달린 꽃병’(1775~1776), 세브르 국립 도자기 제작소. 베르사유 궁전, 트리아농 궁전 국립박물관 | JP 게티 박물관

금박으로 섬세하게 장식된 받침 위에 세워진 이 꽃병은 매우 특별한 작품이다. 백자의 표면에는 독특한 동양풍 그림이 그려져 있다. 프랑스 로코코 미술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화가 프랑수아 부셰(1703~1770)가 그린 판화를 차용해 백자의 표면에 옮긴 것이다. 신기하게도 부셰는 중국을 방문한 경험이 없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으로 당대 중국인들의 복식과 정원 등을 아름답게 묘사했다. 부셰의 그림과 더불어 동양풍의 여러 작품들은 중국에 대한 당시 유럽인들의 호기심을 보여준다.

면직물에서 나타난 동양에 대한 호기심

유럽인들의 호기심은 꽃병뿐만 아니라 로코코 양식의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난다. 17세기 후반 유럽에서 유행했던 미술 양식인 로코코는 세련미와 화려함, 여성스러움으로 대표된다. 그들에게는 생소하며 신비로운 동양의 문화는 로코코 예술 기준에 부합했기에 당대 예술가들이 선호하는 소재로 사용되었다.

‘항해하는 황제, ‘중국 황제 이야기’에서”(1716), 기 루이 베르낭살 1세. 양모, 실크, 은도금 및 금박 실로 감싼 실크 | 공개 도메인

여러 가지 색실로 그림을 짜 넣은 면직물인 ‘태피스트리’에도 시누아즈리의 인기를 찾아볼 수 있다. 17세기 프랑스의 역사화가 기 루이 베르낭살 1세가 프랑스 왕실을 위해 제작한 태피스트리에는 청나라 황제의 출항 장면이 그려져 있다. 화면 아래에는 중국 문화에서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 학, 거북 등이 있다. 그와 대조되게 화면 위쪽은 베네치아의 고딕 양식을 연상시키는 건축물이 있고, 그 위에는 인간과 동물, 식물을 혼합해 만들어진 그로테스크한 로마식 장식물이 배치되어 있다. 이국적인 소재를 다양하게 혼합해 기발하고 신비롭게 표현한 이 작품은 동양의 미학에 대한 상상력의 유희적 표현으로 해석된다.

중국과의 교역으로 시누아즈리 유행

시누아즈리의 유행은 프랑스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했다. 청나라와 프랑스 간의 무역이 활발해지며 선교사들이 중국 문화에 대한 정보를 전파했기 때문이다. 당시 유행을 선도했던 왕실은 중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문화에 반영했다. 마리앙투아네트, 루이 16세가 소장했던 도자기와 태피스트리 등이 그 증거로 남아있다. 시누아즈리 예술품들은 왕실의 국제적이며 화려한 면모를 보여주는 장식물이었다.

프랑스 왕실은 운명의 굴곡 속에서 참혹한 종말을 맞았지만, 이 꽃병과 예술품들은 풍파를 무사히 겪어내고 오늘날 우리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와 동시에 이 작품들은 그들이 목격했던 모든 고난의 역사를 우리에게 전달해 준다.

다얀(Da Yan)은 유럽 미술사 박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상하이에서 자란 그는 미국 북동부에 거주하며 미술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류시화 기자가 이 기사의 번역 및 정리에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