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지만 이제와서 왜? 6년 만에 K드라마 허용한 中

류정엽 객원기자
2022년 1월 6일
업데이트: 2022년 1월 6일

이영애 주연의 SBS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사임당)가 중국 매체에 방영되기 시작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중국 매체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우리나라에서 종영된 사임당은 지난 4일 후난위성(湖南衛視)TV가 운영하는 채널 ‘망고TV’에 올라왔다. 후난오락(湖南娛樂)도 사임당의 중국어 더빙 버전을 방송했다.

앞서 지난달 배우 나문희와 이희준이 출연한 한국 영화 ‘오! 문희’가 중국에서 개봉된 데 이어 안방극장도 다시 문호가 열린 것이다. 2016년 하반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문제로 한류콘텐츠 제재, 소위 한한령이 가해진 지 6년 만이다.

이번에 방송된 사임당이 당초 2017년 한국과 중국에서 동시 방송 예정이었다가 사드 문제로 촉발된 한한령에 의해 방송이 무산된 드라마라는 점도 우연치 않아 보인다.

사임당 방영 결정은 갑작스럽게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일보는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3주 전 중국 측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3개 채널에서 3년간 방송한다는 계약서를 지난주에 회신한 뒤 현지 방송이 즉각 추진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결정 배경에는 중국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최근 중국을 대하는 한국의 행보가 중국 정부에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비쳐졌으리라는 것이다.

중국은 오는 2월 4일부터 20일까지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개최한다. 중국 공산당으로서는 이번 올림픽 개최는 홍콩 국가보안법 강행, 신장 위구르족이나 파룬궁 수련자 인권탄압, 중공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과 은폐 등으로 실추된 이미지를 세탁할 기회다.

그런데 미국을 중심으로 다수의 국가들이 베이징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하며 중국이 애써 깔아놓은 판을 흔들고 있다.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를 열망하는 중국은 지정학적으로 중국을 거절하기 힘든 위치에 있는 한국이 올림픽 대표단과 정상급 인사를 파견하기를 내심 기대해왔다.

이는 지난달 7일 청와대가 베이징 동계올림픽 보이콧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히자 다음 날 중국 정부가 보인 반응에서도 확인된다. 왕원빈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8일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 정부의 입장에 대한 반응을 묻자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같은 달 13일에는 호주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호주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중국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말했다.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에 한국 대통령의 직접적인 입장 표명은 외신을 통해 각국에 타전됐다.

호주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캔버라 국회의사당 내 대위원회실에서 열린 한-호주 정상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

이어 12월 23일 열린 한중 외교차관 전략대화에서 양국은 정상을 비롯한 고위급 교류가 중요하다는 것과 베이징올림픽 성공을 기원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외교차관 전략대화는 2017년 6월 이후 4년 6개월여 만에 처음 열린 것이다.

외교차관 전략대화 개최 하루 전, 문재인 정부는 중국 측에 뜻밖의 선물을 전하기도 했다. 지난 12월 22일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대만의 천재 헤커 출신 정무위원(장관 격) 탕펑(唐鳳)을 화상 컨퍼런스 발표자로 초청했다가 행사 당일 급작스럽게 초청 취소 통보를 했다.

위원회는 “양안(한국-중국) 관계의 여러 측면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대만 외교부는 외교적 결례라며 발끈했지만, 중국은 환영했다. 중국 당과 정부의 입장을 비공식적으로 표명하는 관영매체로 꼽히는 환구시보는 “레드라인을 고려한 올바른 결정”이라고 칭찬했다.

넘어서는 안 될 경계선을 뜻하는 ‘레드라인’은 중국 입장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민일보나 신화통신이 공산당의 입장을 다소 점잖게 전하는 채널이라면, 환구시보는 자극적이거나 과격한 보도를 서슴지 않는다.

소위 중국만 빼놓고 모두 욕한다는 환구시보의 찬사는 대만에 외교적 결례를 범하면서까지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얻은 것이 무엇인지 짐작게 했다.

2022년은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기도 하다.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은 지난해 6월 1일 ‘국제사회 소통 역량 강화’를 주제로 한 공산당 지도부 모임에서 “사랑스럽고 존경할 만한 중국 이미지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중국은 국가 주도로 무협 영화와 드라마 등을 통해 전통의상 등을 국제적 콘텐츠화 하려 시도하며 ‘사랑스러운 중국’ 만들기를 시도하고 있지만, 자금력을 앞세워 맥락 없이 선전 요소를 끼워넣거나 과한 추켜세우기로 역효과만 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반도 공산화를 목적으로 6·25 전쟁에 참전한 중국 인민해방군(중공군)을 미화한 정치선전 영화 ‘금강천’ 포스터가 베이징의 한 거리에 걸려있다. | AFP/연합

한국의 문화 콘텐츠 제작 능력은 공산주의를 포장해야 할 중국으로서는 탐나지 않을 수 없는 능력이다. 특히 복식, 생활양식, 풍습 등 전통문물을 현대인들에게 매력적으로 포장해 전달하는 능력은 이미 세계인이 인정하는 K드라마의 전매특허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은 한국의 전통 모자인 ‘갓’의 우아함을 세계인에게 각인시키기도 했다.

한국도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아, 중국과 문화교류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부 인사들은 중국과 관계 개선으로 한한령을 풀고, 문화콘텐츠 판로를 다시 여는 것을 주요 과제의 하나로 내세우고 있다.

중국도 비슷한 견해를 내비친다. 다만 취지는 사뭇 다르다. 중국 최고명문대인 칭화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다웨이(達巍)는 지난 1일 중국 매체 펑파이(澎湃)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전략적 기회의 시기를 조정해야 하는 상황에 당면했다”며 중국과 미국 사이에 있는 낀 국가들에 유화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웨이 교수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 낀 국가들 절대다수는 양자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며 이익을 얻으려 한다며, 그동안 중국이 이들 국가를 상대로 실행해온 전략인 ‘살계경후(殺雞儆猴·닭을 죽여 원숭이에게 경고함)’를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에 따르면, 원숭이에게 겁을 주려 닭을 죽이면 오히려 역효과만 난다. 원숭이는 겁을 먹기보다는 닭을 죽인 자에게 반감을 품고 닭에게는 측은한 마음을 갖게 된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망설이는 국가에 대입하면, 미국 쪽으로 기울지 말도록 닭을 잡듯 한 국가 혹은 해당 국가의 기업이나 산업을 공격하면, 다른 국가들이 겁을 먹는 대신 오히려 중국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피해 국가를 지지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웨이 교수는 지난 1년간 이런 현상을 확인했으므로 앞으로는 전략을 바꿔야 한다며 “최대한 더 많은 친구를 얻고 적수를 최대한 줄여 전선(戰線·충돌 지역)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모습을 보이라고 조언했다.

다만, 그렇게 중국 쪽으로 가까워진 국가들이 당분간은 중국의 ‘포용’을 누리겠지만, 닭이나 원숭이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을지는 의문이다. 중국은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한국 대중문화 규제를 언급한 적은 없다.

중국 삽화가 쉬펑페이 그림 ‘살계경후’ 1990.10 | 자료사진

그러나 사드 사태 이후 한국 대중문화, 예술에 대한 금지는 계속되고 있다. 2017년 3월 중국 관광산업 주관부처인 국가여유국은 한국 관광상품을 전면 금지하라고 구두지시했으며, 주요 여행사들은 한국 관광상품 판매중지와 관련해 “자발적 조치”라고 주장했다.

같은 해 10월 한국은 성난 중국을 위해 ‘사드 3불정책’을 놓았다. 3불 정책은 중국 언론이 이름 붙인 것이지만,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외교통일국정감사에서 사드 추가 배치를 하지 않고, 한·미·일 군사동맹과 미국 미사일방어(MD) 체계에 참여하지 않는다며 3불정책을 공식 확인했다.

두 달 후 문 대통령은 베이징대 연설에서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 “대국”이라고 칭하고 한국을 “작은 나라”라고 부르며 중국이 주변국을 넓게 포용해줄 것을 간곡히 청했지만, 중국의 한한령은 수년이 흘러도 제자리걸음을 해왔다.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주변국의 적극적 참여와 지지가 아쉬워진 중국 공산당이 한중수교 30주년을 맞아 한국 드라마·영화 상영 허용을 이어가며 한한령을 해제할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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