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건국원칙 25] 외국과 동맹을 맺지 않는다

제임스 팡
2022년 04월 5일 오전 11:03 업데이트: 2022년 04월 5일 오후 1:47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정한 25번째 건국원칙은 “미국은 모든 나라와 평화, 통상, 선린우호 관계를 맺지만 동맹관계로 얽히지는 않는다”이다.

이는 가치관이 충돌할 수 있는 다른 나라들로부터 부당한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한 것으로,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 외교 원칙을 자유로운 주권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여겼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건국할 때 모든 부문을 고려했는데, 헌법 부문은 정치체제를 고려해 설계했다. 그것은 국가체제는 어떤 형태로 할 것인지, 군대조직·경제구조·외교노선 등은 어떤 형태로 할 것인지 등 국가 정치체제 전반에 걸친 청사진이었다. 이 때, 건국의 아버지들은 외교관계의 방향을 설정하면서 ‘모든 나라와 통상을 하고 우호관계를 맺지만, 동맹관계로 얽히지는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어째서 동맹을 맺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을까? 지금 미국의 동맹국은 많지 않은가? 이를테면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 미국은 현재 여러 국가와 동맹을 맺고 있다. 결론적으로 후대의 미국은 이 원칙을 잘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비동맹 원칙’은 고립주의 아닌 분리주의 선언

먼저 개념 정리를 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취임 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탈퇴하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으로 대체하는 등 많은 일을 했다. 그러자 좌파는 트럼프의 이러한 외교 행보를 고립주의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 개념은 건국의 아버지 시대에 이미 언명됐던 것으로, 건국의 아버지들은 미국의 비동맹 정책을 ‘고립주의(Isolationism)’가 아닌 ‘분리주의(Separatism)’라고 정의했다. 고립주의는 ‘자기 집 문 앞의 눈만 쓸 뿐, 남의 지붕 위의 서리는 신경쓰지 않는’ 외교정책이어서 당시 건국의 아버지들이 정한 미국의 비동맹 원칙과는 다른 개념이다.

그렇다면 분리주의는 무엇인가? 미국이 다른 나라들과 친구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미국은 널리 우호관계를 맺기를 바랐다. 그들은 단지 불필요한 동맹을 맺음으로써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생각이 없었을 뿐이다. 분리주의는 자신들의 종교·문화·민족 정체성을 지키려는 이념으로, 동양의 선조들이 이상적인 교우관계로 여겼던 ‘군자지교(君子之交)’와 일맥상통한다.

스카우슨 교수는 이 개념이 오늘날의 스위스의 외교정책과 비슷하다고 했다. 다시 말해 자국을 위협하지 않는 한 어느 나라와도 친구가 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미국이 다른 나라와 불필요한 동맹을 맺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건국의 아버지들은 종교와 도덕이 그렇게 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는 미국이 수호해야 할 종교·도덕·정치제도 등을 훼손할 국가와는 동맹을 맺지 않음을 시사한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정의와 선량함으로 다른 나라와 정의와 관계를 맺고자 했다. 이것이 그들의 외교 원칙이었다.

스카우슨 교수는 국가 간의 관계는 군자들의 교우관계와 같다고 했다. 군자가 얄팍한 이익을 좇아 사람을 사귀지 않고 또 파당을 짓지 않듯이 국가 간의 외교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세계 각국과 비즈니스 관계는 강화하되 정치적 관계는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지 워싱턴은 전쟁 때는 임시 동맹이 가능하지만 전쟁 후에는 조화롭고 자유로운 외교관계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로 볼 때 ‘동맹을 맺지 않는다’는 말은 널리 친교를 맺되 전시 상황이 아니면 고정 불변의 동맹은 맺지 않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취임 후 NATO를 탈퇴하려 했을 때 미국인 상당수는 “NATO는 우리의 동맹!”이라며 이해하지 못했다.

트럼프가 NATO를 탈퇴하려는 것은 물론 국익을 위한 선택이기도 하지만, 더 근원적인 동기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의 건국원칙으로 돌아가려는 데 있었다. 1949년 당시에는 NATO를 결성하는 것이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진영의 위협에 맞서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미국이 개입하지 않아도 NATO 회원국들 스스로 지역 방위를 할 수 있는 지금까지도 미국이 이들 국가와 얽히는 것은 건국 원칙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오랜 동맹’을 깨는 것이 상궤를 벗어나는 비정상적인 행동으로 비칠 수 있지만, 그것은 미국 건국의 정신을 헤아리지 못한 데서 나온 오해일 뿐이다.

분리주의는 신이 내린 사명을 위한 원칙

스카우슨 교수는 “미국의 분리주의는 미국이 외국의 일에는 관심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미국인들은 ‘명백한 사명(Manifest Destiny)’을 믿고 있다”고 했다. 그는 분리주의는 미국의 독립과 공정함을 의미하고 국가 간 동맹을 맺지 않음을 의미하며, ‘명백한 사명’은 미국의 도덕적 책임을 가리키는 것이어서 이 둘은 모순되지 않는다고 했다.

‘명백한 사명’이란 무엇인가. 유럽 개신교도들이 ​​유럽을 떠나 미국에 왔을 당시 신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들은 하느님(God)이 자신들을 광활하고 비옥한 땅으로 이끌었고, 이곳에 하느님의 지상 왕국을 세우도록 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이 땅에 모범 국가를 세우는 것이, 그리고 그들이 세운 모범 국가의 정치제도를 세계로 전파하는 것이 사명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은 건국의 아버지들이 헌법을 제정할 때부터 시작됐다.

1823년, 미국 제5대 대통령인 제임스 먼로(James Monroe) 시대에 그 유명한 먼로 독트린(Monroe Doctrine)이 나왔다. 먼로 독트린은 아메리카 대륙의 통제권에 관한 외교 정책으로, 유럽 열강은 미국 영토(미국 서부)를 침략할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제임스 먼로의 속뜻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뜻은 미국의 제도를 널리 전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북미에 뿌리를 내린 후 남미로 뻗어나가게 하고, 서부가 먼저 ‘명백한 사명’을 주신 하느님 왕국이 된 후, 다시 전 세계로 뻗어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분리주의는 미국을 독립적이게 하고 다른 나라를 선(善)으로 대하게 한다. 그리고 ‘명백한 사명’은 미국이 세계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한다. 제임스 먼로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이 땅과 사명을 주셨으니 우리는 여기에 도덕과 정치적 자유를 확립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초 위에 세워진 나라는 하느님의 왕국’이며, 우리가 도덕과 정치적 자유를 세계에 널리 전파하는 것이 ‘명백한 사명’의 뜻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서점운동(서부 개척) 당시 미국인들은 정말로 용감히 앞으로 나아갔고, 어려움과 난관을 헤쳐 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들고 이 운동에 참여했는데, 그들은 그것이 하느님이 주신 사명이라고 굳게 믿었고, 자신들이 반드시 이 나라를 태평양 연안까지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믿었다. 이것이 그들의 원동력이었다. 오늘날에도 미국인들은 여전히 미국이 바로 그런 사명을 가진 나라이고, 미국은 하느님이 주신 나라이며, 도덕과 정치적 자유를 전 세계로 전파할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아직 그 사명을 완수하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오늘날의 좌파와 자유파는 더 이상 이 사명에 동의하지 않지만, 여전히 많은 미국인의 피 속에는 이 명백한 사명이 흐르고 있다.

미국의 25번째 건국 원칙은 외교 정책에 관한 것으로, ‘동맹을 맺지 않는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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