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사협회 “체질량지수(BMI), 백인 자료에 기반…인종차별적”

한동훈
2023년 06월 20일 오후 8:20 업데이트: 2024년 01월 19일 오후 2:14

체질량지수는 ‘인종차별주의적’이라고 미국의사협회(AMA)가 밝혔다. 이 지수가 주로 백인들의 자료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의사협회는 지난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과체중 여부를 판단할 때 체질량지수(BMI)를 유일한 지표로 사용하지 말라고 권고했다(AMA 발표문).

BMI는 체중(kg)을 키(m)의 제곱으로 나눈 값이다. 체지방을 직접 측정하지 않아 불완전하다는 한계가 있지만, 체지방량과 상관관계가 높아 과체중, 비만 여부를 알아보는 지수로 널리 사용돼 왔다. 방식이 쉽고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점도 장점이다.

하지만 미국의사협회는 현행 BMI 단계별 구분은 “체지방량이 사망률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20세 이상 성인 기준 BMI 18.5~24.9kg/㎡이면 ‘정상’으로 간주한다. BMI 25~29.9은 ‘과체중’, 30 이상은 ‘비만’으로 분류한다(CDC 링크).

“BMI, 백인들에게서 수집한 데이터 기반…인종차별적”

미국의사협회는 이번 발표에서 “측정 도구로서의 BMI는 비(非)히스패닉계 백인 세대로부터 수집된 데이터에 크게 의존해 왔기 때문에 “인종차별적”이라고 주장했다.

협회 측은 인간의 상대적인 체형과 조직구성은 인종과 민족, 성별, 연령에 따라 다르며, 이는 BMI를 적용할 때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BMI는 일반 대중의 체지방량과 “상당한 상관관계가 있지만” 개인에게 적용할 때 예측 가능성을 상실하며, 특히 비정상적인 범주의 섭식 장애가 있는 개인을 진단하고 치료할 때 문제가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BMI를 내장지방 측정, 체지방 지수, 체성분, 상대 지방량, 허리둘레, 유전적 또는 대사적 요인 등 다른 요인과 함께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전 미국의사협회회장 잭 레스넥 박사(MD)는 “BMI가 체지방을 측정하고 비만을 진단하는 데 사용되는 방식에 대해 많은 우려가 있지만 일부 의사들은 특정한 경우에서 여전히 BMI가 유용한 지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레스넥 박사는 “의사가 환자를 위한 최선의 치료를 결정하기 위해 임상 환경에서 BMI를 사용할 때 얻을 수 있는 이점과 한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체중에 따른 차별 반대, 비만 수용 운동

의료계에서는 이번 권고가 의료적 조치에서 ‘체중 문제’를 애써 무시하려는 이념적 움직임 속에서 내려진 조치라는 견해도 제기된다.

현재 미국에서는 차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격렬히 반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체중에 대한 편견(weight bias)’, ‘비만 수용(Fat Acceptance)’ 등의 용어가 등장하고 있다.

‘체중에 대한 편견’이란 비만 혹은 과체중에 관한 부정적 관념이 존재하며, 이는 체중과 체격을 가지고 개인을 차별하는 생각과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비만 수용’ 혹은 ‘비만 수용 운동’은 비만과 과체중인 자신의 몸을 긍정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받겠다는 주장이다. 비만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면서 이러한 차별에 반대한다. TV 방송에서 비만 체형 출연자를 수용하라는 요구로도 이어진다.

미국 내 여러 병의원에서는 “체중 측정 금지(don’t weigh me)” 카드도 사용된다. 의료진에게 체중 측정이 정말 필요한지 설명을 요구하고 사전동의를 거치도록 하려는 용도로 쓰인다.

또한 체중에 관한 언급 자체를 차별의 한 형태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의사들 사이에서 체중 측정이나 관련 문진을 피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고 있다.

비만·과체중의 정상화…의학적 문제는?

과체중이나 비만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철폐하려는 운동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도 나온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임상저널 ‘메이요 클리닉 프로시딩스’에 자주 인용되는 과학 분야 작가인 마르타 로센베르크는 ‘비만 수용 운동’ 등 비만과 과체중을 정상화하려는 시도가 “위험한 생각”이라고 2021년 에포크타임스 기고문에서 경고했다(기고문 링크).

과체중을 일상적인 현상으로 여기게 됨으로써 초래될 건강상의 부정적인 결과를 소홀히 여기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BMI 수치가 높아지면 개인이 심장 질환 및 고콜레스테롤 등 만성 질환에 걸릴 확률도 높아진다.

직관적이고 알기 쉬운 BMI가 건강 위험을 예측하는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하는 의학 전문가도 많다. 운동생리학자인 브래드 디터는 건강 전문 잡지인 헬스(Health Megazine)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생각에 동의했다(인터뷰).

그는 “나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라”며 “어쨌든 나이가 들수록 만성 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BMI도 마찬가지다. BMI가 높을수록 건강에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커진다”고 말했다.

과체중은 종종 수많은 건강 문제와 연관되기 때문에 개인이 비만인지 과체중인지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제2형 당뇨병을 앓고 있는 사람 10명 중 약 8명은 과체중 또는 비만인 것으로 추정된다.

과체중을 감량하면 제2형 당뇨병 위험이 감소하며, 과체중이면서 제2형 당뇨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는 체중 감량을 증진하는 운동 처방이 내려지기도 한다.

CDC는 비만 및 과체중은 고혈압, 높은 LDL 콜레스테롤, 관상 동맥 심장 질환, 담낭 질환, 뇌졸중, 호흡 문제, 골관절염, 신체 통증, 불안 및 임상 우울증과 같은 정신 질환 등 다양한 질병 및 건강 상태의 위험이 증가한다고 밝혔다(CDC 링크).

2019년 20만4507명을 조사한 총 17건의 연구를 종합한 분석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우울증과 비만 사이에는 상당한 정비례적 연관성이 나타났으며, 이는 여성에게서 더 두드러졌다. 이 분석은 미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생물공학정보센터에 게재됐다(분석 링크).

과체중에 대한 정의 변경 시도는 최근 의학계에서 이어진 성별에 관한 변경 움직임과 맞물려 있다.

존스 홉킨스대학은 최근 여성을 ‘비남성(non-man)’으로 묘사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가 해당 용어를 용어집에서 삭제해야 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과거 ‘트랜스젠더의 건강 문제’를 ‘정신 및 행동 장애’ 하위 카테고리로 분류했으나 2019년 이를 폐지했다.

미국심리학회(APA) 역시 2021년 2월 채택한 결의안을 통해 트렌스젠더를 정신 장애에서 제외했다.

결의안은 “성전환이나 젠더 논바이너리 정체성(남녀 이분법을 벗어난 성정체성)과 그 표현은 건전하며, 누군가의 (타고난) 성별과 젠더의 불일치성은 병리적이거나 정신건강 장애가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또한 “성별이란 다양한 성정체성을 허용하는 비이분법적 구성”이라며 “개인의 성정체성이 출생 때 결정된 성별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이해한다”고 했다.

한국, 한국인에 맞춰 세분화된 지표 사용

한편, 체질량지수에 따른 체중 분류는 한국과 미국이 차이가 있다.

한국은 이를 현지 상황에 맞춰 더 세분화하고 허리둘레도 참고하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미국이 30 이상을 비만으로 분류하지만 한국은 25 이상을 비만으로 본다.

질병관리청 국가정보포탈에 따르면, 한국인의 체질량지수에 따른 분류는 18.5~22.9kg/㎡ 를 ‘정상’, 23~24.9를 ‘비만전단계’(과체중), 25~29.9를 ‘1단계 비만’, 30~34.9를 ‘2단계 비만’, 35 이상을 ‘3단계 비만(고도 비만)’으로 구분한다(질병관리청 링크).

국내 기준이 미국에 비해 엄격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대한비만학회는 작년 발표한 ‘비만진료지침 개정8판’에서 비만 기준 25 이상을 “타당하다”며 그대로 유지했다.

* 이 기사는 자카리 스티버 기자가 기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