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특집] 물망초 전쟁범죄조사위원회, “6.25전쟁 때 종교인들은 왜 학살당했나?”

이연재
2022년 06월 25일 오후 12:45 업데이트: 2022년 06월 27일 오전 11:32

“대한민국의 역사는 피로 쓴 역사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는지 모릅니다. 그 중심에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한미동맹을 통해 북한을 자유화하는 것으로 보답해야 합니다.”

양일국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외래교수는 24일 물망초 전쟁범죄조사위원회가 ‘6.25 전쟁 때 종교인들은 왜 학살당했나’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이같이 말했다.

양일국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외래교수가 ‘6.25전쟁 때 종교인들은 왜 학살당했나?’를 주제로 발언하고 있다. | NTD

양 교수는 “김일성은 6.25 전쟁 도발 직후 전과 불량자, 악질 종교 등을 처벌할 것을 명령했는데, 악질 종교에 기독교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양 교수는 북한이 한국전쟁 시작 전부터 기독교 세력을 의식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독교인들은 해방 전후부터 6·25 전쟁에 이르기까지 선명한 반공 노선을 걸었다.”며 “김일성은 이를 자신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고, 기독교를 친미·반공 세력으로 규정하고 말살 정책을 폈다.”고 설명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최근 서울신학대학교 박명수 교수팀에 의뢰해 진행한 ‘6·25 전쟁 전후 기독교 탄압과 학살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후퇴하면서 개신교인과 천주교인 등 1천 명이 넘는 종교인을 학살했다.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직후인 1950년 9월 26일 북한 당국은 “반동 세력 제거 후 퇴각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후 한 달여간 전국적으로 피비린내 나는 학살이 이뤄졌다. 희생된 종교인은 기독교인 1026명, 천주교인 119명 등 총 1145명으로 집계됐다.

양 교수는 “기독교와 천주교는 한국 반공과 자유민주주의 수호 세력의 중심축”이라고 했다. 그는 “6.25 전후 종교인들은 애국, 헌법정신을 수호하기 위해 희생했다.”며 “국가보훈의 차원에서 바라보고 그들의 행적을 기록하고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석향 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과 교수(좌)와 황기식 충남아산동산교회 목사(우) | NTD

이어진 토론에서 황기식 충남아산동산교회 목사는 북한 인민군이 학살한 기독교인들의 사례를 발표했다.

전남 영광군 염산교회에선 북한군이 인민군 사무실로 사용하던 교회를 불태우고 교인들의 목에 돌을 달아 바닷물에 수장했다. 이렇게 77명이 살해당했다.

충남 논산 병촌 성결교회에선 9월 28일 전후로 신자와 가족 등 총 66명이 북한군과 공산당원들에게 살해됐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공산당원들이 삽, 곡괭이, 망치 등으로 구타해 살해했다.

북한군은 전남 신암군 임자진리교회 목사와 장로 등 48명을 수장하거나 총검으로 살해했다.

황 목사는  또 한반도 전체에서 학살된 기독교 지도자 명단도 공개했다. 여기에는 북으로 끌려가 북한군에게 학살된 목사도 포함됐다. 황 목사에 따르면 ▲해방 이후 6.25 전쟁 전(1945~1949) 피살 자(20명) ▲6.25 전쟁 중 북부지방에서 학살된 기독교 지도자(69명) ▲6.25 전쟁 중 중부지방에서 납북돼 학살된 기독교 지도자(19명) ▲6.25 전쟁 중 남부지방에서 납북돼 학살된 지도자(50명) 등 총 158명이다.

김석향 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 인민군은 기도교인을 상대방의 목숨을 빼앗는 수준을 넘어 경쟁이라도 하듯이 잔혹하게 학살했다.”고 운을 뗐다. 김 교수는 그 이유에 대해 “공산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기본적인 인간관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독교는 인간을 하나님이 만든 존재로 본다. 아무리 힘없고 능력이 없어도 기독교에서는 귀하게 여긴다. 하지만 공산주의자들은 인간을 그들의 목적을 위해 활용하는 도구로 보기 때문에 더 강한 도구를 위해서 약한 도구를 희생시키는 것에 죄의식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독교와 공산주의의 기본적인 인간관의 차이를 지적하지 않으면 ‘6.25 전쟁에 종교인들은 왜 학살당했나?’라는 물음에 설명할 길이 없다고 주장했다.

희생된 종교인 중 기독교가 유독 많았던 이유에 대해 김 교수는 ‘한국기독교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 있지 않겠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제주 4.3 사건 직후 토벌대와 무장대 사이에 화해자로 나서 수천 명의 목숨을 구했던 조남수 목사의 ‘자수강연’을 예로 들었다.

조남수 목사는 우익의 입장이었지만 우익 단체에 가담하고 직접 좌익과 투쟁하는 선봉에 서지 않았다. 간접적으로 심정적으로 그들을 지원하고 협력하면서도 교회가 휘말리지 않도록 교육했다.

김 교수는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는 전쟁의 극한 상황에서 조 목사는 그 흐름을 끊어준 사람이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 중 그렇지 않았던 경우도 많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어 “기독교는 잘못이 없는데 학살당했다고 주장하기보다 역사적 과오도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물망초전쟁범죄진상조사위원회는 6.25 전쟁 중 북한군이 자행한 민간인 납북·집단학살 등 전쟁범죄의 진상을 조사·분석해 알리고 문헌화 작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