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대혁명의 두 장면, 다리 위 미친 여자와 ‘패왕별희’

오세라비
2021년 7월 2일
업데이트: 2021년 7월 3일

1966년 5월에 시작된 중국 공산당 ‘문화대혁명’은 5천 년 중국 전통문화를 송두리째 파괴하였다. 마오쩌둥은 10대 홍위병 조직을 앞세운 이른바 ‘파사구(罷四舊·네 가지 낡은 것 타파)’ 운동으로 숱한 문화유산을 닥치는 대로 부수고 잿더미로 만들었다. 과거의 전통문화를 모조리 없애야 공산당 정권의 토대를 새로이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봉건 질서 타도라는 광기 앞에 전통 예술을 업으로 삼았던 이들 전부 반동분자로 몰려 비극의 희생자가 되었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중국인들은 어린 홍위병부터 ‘중산복’으로 통일해서 입었다. ‘인민복’으로도 불리는 중산복은 신해혁명 후 쑨원(孫文)이 고안한 녹색 복장이다. 중산복 외 화려한 빛깔의 전통 복식은 모두 악덕 부르주아의 사치를 상징하는 것으로 금지되었다. 청나라 시대부터 전통 의상으로 내려오는 치파오가 그랬다.

청나라 시대 꽃을 피운 경극도 문화대혁명 광풍을 피하지 못했다. 봉건 왕조의 전통 연극인 경극은 특히 청나라 말기 황제를 능가하는 권력과 부귀를 누렸던 서태후가 즐겼다. 서태후의 경극에 대한 사랑은 대단하여 공연을 위한 건축물과 경극 관람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청 왕조의 잔재 경극은 부숴야 할 낡은 것이었다.

문화대혁명 기간을 거친 두 작품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쑤퉁(蘇童)의 ‘다리 위 미친 여자’와 영화감독 천카이거(陳凱歌)의 작품으로 유명한 장국영 주연 ‘패왕별희’에 대해서다. 필자는 현재 시대 중국 작가 쑤퉁의 소설을 좋아한다. 국내 출판된 작품은 거의 다 읽었다. 쑤퉁은 영화 ‘홍등’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패왕별희’는 홍콩 작가인 이벽화(李碧華)의 소설이다.

중국 상하이의 한 공장 노동자들이 마오쩌둥의 어록집을 읽고 ‘무산계급 문화대혁명(문화대혁명의 정식명칭)’ 추진을 다짐하고 있다. | AFP/Getty Images/연합뉴스

# 장면 1- 다리 위 미친 여자

쑤퉁의 ‘다리 위 미친 여자’는 오래전 읽었지만 아직까지 뇌리에 박혀 있을 만큼 슬프고 강렬한 단편소설이다. 그건 바로 문화대혁명 시기, 한 미친 여자가 항상 입고 다리 위를 서성이던 치파오에 얽힌 이야기다. 또 ‘패왕별희’ 중 가장 가슴 아픈 장면이 어릴 적부터 경극을 함께 수련한 두 주인공이 문화대혁명 광풍 속에서 공산당원에 둘러싸여 자아비판과 서로를 고발하는 대목이다. 치파오, 경극은 반혁명분자들이 입거나, 공연하는 것이었다.

쑤퉁은 특히 여성 서사를 섬세하고 탁월한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중 ‘다리 위 미친 여자’도 3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그것도 각자 미친 여자들이다. 문화대혁명 시절을 살아가며 무엇이 그녀들을 미치게 했는지 작가는 말하지 않지만 그 시기에 다들 미쳤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다리 위에 한 여자가 서성이고 있다. 모든 미의 추구는 부르주아적 산물로 죄악시되던 문화대혁명 시대, 다리 위를 왔다 갔다 하며 어딘가 자아도취에 빠진 듯이 보이는 한 미친 여자가 있다.

미친 여자의 일과는 항상 같은 시간에 다리 위에서 딸을 기다린다. 하얀 벨벳 치파오를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금빛 부채를 살랑살랑 흔들며 다리 위를 오간다. 멀리서 보면 한 폭의 그림이요, 빼어난 미인도를 보는 것 같다. 하지만 미친 여자다. 분명한 건 원래부터 미친 건 아니었다. 빼어난 미모로 문예공연단에서 화려한 젊은 시절을 보내다 혁명을 맞았고, 어찌어찌하다 정신이 나간 여자다.

그렇지만 완전히 미친 것은 아닌 듯하다. 하나뿐인 어린 딸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은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혁명기 모두가 중산복 차림만이 허용되던 시절에 미친 여자는 하얀 벨벳 치파오를 입은 것이다. 다리 위를 오가는 여자의 그런 자태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금지된 아름다움에 대한 기묘한 동경과 두려움을 동시에 준다.

딸을 기다리는 미친 여자 앞을 지나가던 할멈이 있다. 수레로 우유를 배달하는 할멈은 다리 위에서 늘 만나는 미친 여자의 벨벳 치파오에 달린 화려한 비취 브로치에 눈독을 들여 교묘한 눈속임으로 뜯어내 빼앗는다.

비취 브로치가 없어진 줄도 모른 채 딸을 기다리는 미친 여자 앞을 지나가던 또 다른 한 여자는 동네 보건소 젊은 여의사다. 미모로 따지면 다리 위 미친 여자만큼이나 아름답기로 소문났다.

여의사는 늘 녹색 인민복 차림이다. 자신의 미모가 저 미친 여자가 입은 치파오를 입으면 얼마나 돋보이는지 잘 알고 있다. 아름다운 옷에 대한 갈망에 사로잡혔다. 여의사는 오늘은 기필코 미친 여자가 입은 것과 똑같은 치파오를 양장점에서 맞춰 입으리라 결심한다.

딸을 기다리고 있는 미친 여자를 살살 구슬려서 안면 있는 동네 양장점으로 데려갔다. 재단사는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큰일 나려고 치파오를 입나?”라며 빈정거리지만 치파오를 입겠다는 집념으로 가득한 여의사를 말릴 수는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치파오 목 언저리의 단추매듭이었다. 재단사는 비파 문양의 매듭을 단추로 만들 자신이 없었다. 그러자 재단사는 여의사와 함께, 미친 여자가 입은 하얀 벨벳 치파오에 달린 매듭단추를 면도날로 떼어내었다. 어차피 미친 여자니까 알 리가 없으리라는 생각으로 그 자리는 옷핀으로 대충 여며 놓았다.

미친 여자의 매듭단추가 떨어지자 본래의 치파오 자태가 흐트러졌다. 여의사는 그것을 감추기 위해, 미친 여자에게 목에 두를 검정색 실크 스카프를 선물하겠다며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다.

여의사의 집 앞에 거의 도착할 때쯤, 그때서야 미친 여자는 비취 브로치도, 비파 문양의 매듭단추도 뜯긴 걸 알아채고 정말로 미쳐버렸는지 동네가 떠나가도록 소리를 지르며 펄쩍펄쩍 뛴다. 동네 사람들이 다 몰려나와 소동을 지켜보자 여의사는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며 딱 잡아뗀다. 미친 여자의 하얀 벨벳 치파오는 목덜미 매듭이 풀어진 채 옷은 본래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잠시 후 정신병원 차가 도착하였다. 건장한 남자 셋에 끌려 미친 여자는 어디론가 실려 가는 이야기로 끝난다. 미친 여자지만 자신이 더없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빼앗기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딸을 결국 만나지 못하고 정신병원 차에 실려 딸을 기다리며 서성이던 다리 밑을 지나 사라졌다.

‘다리 위 미친 여자’는 그냥 미쳐버린 한 여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은 일체의 미가 금지된 시기다. 하지만 금지할수록 여자의 본능적인 욕망은 약자가 가진 것을 빼앗는 잔인함으로 드러난다. 약자가 약자를 갈취하고, 자신보다 더 못한 약자의 물건을 훔치는 것에 죄의식마저 사라진다.

영화 ‘패왕별희(覇王別姬)’의 한 장면 | 스틸컷

# 장면 2- 패왕별희

‘패왕별희’는 홍콩 배우 장국영의 대표작이다. 청 왕조 몰락 후 군벌이 난립하고 공산주의가 서서히 싹이 트기 시작한 중국의 혼란기. 어린 나이에 경극학교에 들어가 수련한 두 남자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다. 패왕과 별희의 역할은 이들을 최고의 경극배우로 이름을 떨치게 했다.

곧이어 중국 정세의 극심한 혼란상은 이들을 격랑 속으로 몰고 간다. 인기 경극배우로 유명세를 떨치던 중 발발한 중일전쟁은 일본군 앞에서 위문공연을 해야 했다. 일본군이 전쟁에 패배하자 장제스의 국민당과 마오쩌둥의 공산당 간에 국공내전 상태가 되었다. 베이징을 점령한 국민당군은 경극을 관람하겠다고 몰려들었지만 이내 공연장은 난장판으로 변한다. 국공내전은 공산당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이제 전통 경극은 공산당 치하에서 더 이상 예전의 경극이 아니었다. 중국의 전통문화공연인 경극은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반혁명의 산물이었다.

문화대혁명의 광란이 몰아닥쳐 두 남자는 반동분자, 문화계의 요물로 불리며 인민재판을 받는다. 마오쩌둥 대형 초상화와 붉은 깃발이 나부끼는 광장에 패왕과 우희 분장을 하고 홍위병들에게 끌려다니며 자아비판을 강요받는다. 그리고 가장 슬픈 장면이 펼쳐진다. 그들은 상대를 향한 비판과 고발을 하게 되는 것이다. “장제스 국민당 앞에서 노래를 했고, 아편을 피웠으며, 일본군을 위해 공연을 했다. 이따위 경극이 대체 뭐란 말이냐…….” 어린 나이에 경극학교에서부터 수련을 쌓아 평생을 노래와 춤으로 살아왔던 그들은 서로를 배반하며 종막을 향해 치닫는다.

 

2021년 올해는 중공 창당 100주년, 문화대혁명 발발 55주년째다. 문화대혁명 기간 중국 전역을 휩쓸었던 10대 홍위병들은 현재 나이 70대 혹은 지났을 것이다. 늘 궁금하게 여기는 부분이 대부분 중국에 생존해 있을 이들은 지난 문화대혁명에 대해 어떤 생각과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평가이다. 자신들이 마오쩌둥, 장칭의 권력의 도구, 선전선동의 땔감이 되어 무수한 문화유산을 파괴하고, 반혁명분자로 몰아 만행을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도 말이다.

중국은 문화대혁명 기간의 냉정한 평가 작업 없이는 결코 새로운 중국이 될 수 없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침묵, 시치미 떼기, 모른 척한다면 새로운 세대를 형성하는 젊은 중국인들에게도 크나큰 족쇄가 될 것이므로!

이 기사는 저자의 견해를 나타내며 에포크타임스의 편집 방향성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