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종전선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주요 입구”

2021년 11월 25일
업데이트: 2021년 11월 27일

“종전선언은 정치적·외교적 선언이자 평화협정의 시발점”
“4자회담서 지지해주면 차기 정부에서도 이어갈 것”
“종전선언 최종 목표 불분명” 전 주한미군사령관 반론


“종전선언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위한 가장 중요한 입구다. 종전선언으로 남북 간 신뢰를 회복하고 비핵화 추동 기본 토대가 갖춰지면 남·북·미·중 4자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분야 멘토로 불리는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지난 11월 23일 한 특강에서 이같이 말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출신인 문 이사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 역임 이후 현 정부까지 외교안보 정책에 영향을 끼쳐왔다. 이른바 ‘연정 라인(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출신)’의 대부 격이다. 현 정부 들어 대통령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을 맡았고, 지난 2월 15일 세종연구소 이사장에 취임했다.

11월 2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공공외교’ 마지막 세션 연사로 문정인 이사장이 초청받았다.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 민주연구원(노웅래 원장)과 이재정 의원(외교통일위원회 간사)실이 지난 9월부터 매주 한 차례 주최한 공공외교 주제 연속 세미나의 갈무리였다. 세미나장에는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김경협·김영호·김종민·이용선·양정숙 민주당 의원이 자리를 함께했다.

1회차(9월 1일)는 ‘한국 공공외교의 현황 및 진단’, 2회차(9월 9일)는 ‘공공외교 참여 주체 확대 방안’, 3회차(9월 16일)는 ‘미·중·일·러 대상 공공외교 전략’, 4회차(9월 23일)는 ‘신남방정책 이행을 위한 공공외교 전략’, 5회차(9월 30일)는 ‘한국 공공외교의 발전방향에 대한 종합토론’이 주제였다.

문정인 이사장의 종전선언 발언 요지는 종전선언을 시작으로 남·북, 북·미 대화를 끌어내겠다는 이른바 종전선언 ‘입구론’을 지지한 것이다. 종전선언을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마중물로 사용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임기 막바지의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종전선언(declaration of the end of war)’은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 이후 지속하고 있는 한반도 휴전상태를 마감하고 전쟁 종료를 선언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23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종전선언 둘러싼 한·미, 여·야간 입장 차이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과 현 정부 외교안보 멘토로 꼽히는 문정인 이사장의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는 이유는 종전 선언에 대해 보수·진보 간 혹은 여·야간 온도 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내 야권 등 보수 진영에서는 전쟁이 완전히 끝나고 평화협정이 체결돼야 비로소 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할 수 있다는 종전선언 ‘출구론’을 주장한다. 특히 주한미군 철수 등 북한이 요구하는 선결 조건에도 불구하고 종전선언을 밀어붙이는 것은 남북한 대치 국면 속에서 안보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반대한다.

지난 10월 18일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외교부 1차관 출신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은 “북한이 내건 종전선언의 선결 조건을 보면 우리 안보를 근본적으로 허무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고 발언하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핵과 미사일은 더 이상 문제 삼지 말고 인정하고 그 대신에 우리는 한미동맹을 해체하고 스스로 군사력을 갖추는 노력도 하지 말라고 하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정전협정 당사국인 미국과의 입장차도 존재한다. 미국 전·현직 국무부 관리나 정치권은 문재인 정부의 종전선언 추진에 회의적이다.

“종전선언이라는 첫걸음을 통해 우리가 목표로 하는 최종 상태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것이 평화협정인지, 아니면 비핵화인지 우리는 아직 답하지 않았다”라고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신중론을 폈다. 그는 한미 친선 비영리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지난 17일 개최한 ‘2021 한국에서의 미국 외교와 안보’ 토론회에서 이같이 발언했다.

기본적으로 미국의 입장은 북한이 대화에 임하고 비핵화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종전선언을 하나의 상응 조치로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23일 강연에서 문정인 이사장은 “평화협정이 체결돼야 비로소 전쟁이 끝났다 주장하는 보수진영의 ‘출구론은 이른바 ‘확인론’으로, 너무 이상적인 생각”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종전선언이 되면 바로 유엔사령부가 해체되고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 논의가 이뤄지는 등 한미동맹에 큰 이상이 생길 것으로 걱정한다”며 “그게 북한이 요구하는 선제 조건이 아닌가 우려하지만 제가 볼 때는 그렇게 부정적 시각으로 볼 게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종전선언과 한미동맹, 주한미군은 별개의 문제라고 분명히 언급했다. 종전선언은 70년 된 전쟁을 끝내는 ‘현상 변경’인데 이런 현상변경이 또 다른 전쟁을 초래할 것 아니냐는 ‘현상유지론’과의 갈등이 있는 것이다. 종전선언 자체는 정치적, 외교적 선언에 불과하고 그걸 하나의 시발점으로 삼자는 건데 종전선언 자체가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것처럼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11월 2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공공외교’ 마지막 세션이 열렸다. | 에포크타임스

종전선언, 당위·현실 간극 존재

문정인 이사장의 주장이 야권 등 보수진영과 차별점을 보이는 분야는 현실과 당위에 관한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다.

그는 “종전선언과 관련한 제일 큰 문제는 당위론과 현실론의 차이”라며 “(정전협정을 맺은 지) 70년 된 전쟁을 이제 끝내야 할 것 아니냐. 미국도 명분상 반대할 수가 없다. 영원한 전쟁(forever war)을 바란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측의 반응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문 이사장은 한국 외교부 차관의 방미 성과를 들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이 워싱턴DC에서 웬디 R. 셔먼 국무부 부(副)장관을 만났을 때 셔먼이 (종전선언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으로 말했다. 셔먼의 발언은 미국도 종전선언에 참여하겠다 것인데 다만 어떻게 조건부를 만들어내느냐가 문제다.”

문제는 이같은 문정인 이사장의 해석과는 다른 해석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한국 외교부는 “종전선언 등 진전 방안에 대해 한미 간 공조가 빈틈없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이 종전선언 협의에 만족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미 국무부 공식 발표문에는 ‘종전선언’ 단어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지난 18일 셔먼 부장관의 발언 관련 미 국무부가 공개한 원문을 인용해 “셔먼 부장관은 한·미가 종전선언에 대한 합의에 이르렀는지 여부는 직접 언급하지 않고 외교적 답변을 한 것”이라며 “종전선언보다 ‘비핵화 협의’ 자체에 방점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고 보도했다.

문정인 이사장은 또 다른 정전협정 당사국인 중국의 종전 선언 채택에 ‘조건부 찬성’ 입장도 밝혔다. 이는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지난 22일 YTN 단독 대담에 출연해 “중국은 정전협정의 상임(당사)국이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중국과 상의해서 하는 것이 맞는 것”이라고 발언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다른 당사국인 북한 관련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종전선언에 대해 미국이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북한에서 조건으로 제시하는 제재 완화의 문제를 미국이 얼마나 수용할지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종전 선언이 나쁠 것 없다면서도 ‘이중 기준 중단’과 ‘대북 적대시 정책 철회’라는 두 가지 선결 조건을 내걸었다. 북한은 자신들의 미사일 시험과 한국의 미사일 시험에 대해 같은 기준을 적용해 달라고 요구했다. 미국의 전략무기 한반도 배치 관련해서는 대북 적대 정책의 대표 사례로 언급했다.

문정인 이사장은 현 정부가 임기 말 추진하는 종전선언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를 5개월 남겨둔 시점에서 추진하다 보니 북한 문제를 정치에 활용하는 것 아니냐, 정권 말기에 소위 특정 정권을 지지해 줘서 결국 여당 후보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거 아니냐는 생각들을 할 수 있다. 타이밍이 너무 늦은 감이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고 발언했다.

최근 미중 간 첨예한 외교 현안으로 떠오른 2022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 ‘외교 보이콧’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만약 바이든 대통령이 베이징 올림픽에 불참하면 우리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남·북·미·중 4자 정상회담을 통한 종전선언 채택은 어려워질 것이다. 다만 현 정부의 기본방향과 아이디어에 대한 4개국 간 협의가 이뤄지면 내년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그것을 중요한 준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올림픽 평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재창출하는 건 어려울 수도 있지만 남·북·미·중 4자 회담을 통해 미국과 중국이 종전선언을 지지해준다면 구속력이 생겨 차기 정부도 이를 거부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종전선언으로 전쟁을 끝내면 북한의 비핵화를 추동할 수 있고 북미 간 신뢰 구축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 차기에 보수 정부가 출범하더라도 이걸 어떻게 뒤집겠냐는 생각이다.

/ 취재본부 이윤정 기자 yunjeong.lee@epochtimes.n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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