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윈 자산 3조원 증발한 날, 신화통신이 올린 ‘말(馬) 구름’ 그림

한동훈
2020년 11월 7일
업데이트: 2020년 11월 7일

지난 5일로 예정됐던, 중국 최대 핀테크 회사 ‘앤트그룹’의 상하이, 홍콩 증시 상장이 무기한 연기됐다. 유예기간이 최장 6개월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앤트그룹 상장 연기 소식은 중국을 뒤흔들었다. 지난 며칠간 바이두 등 주요 검색엔진과 포탈 검색 상위권을 차지했다. 그러나 7일 현재 앤트그룹에 관한 뉴스는 중국 온라인 순위권에서 사라진 상태다.

 

사상 최대 기업공개(IPO), 왜 연기됐나

앤트그룹은 중국인 9억명 이상이 사용하는 전자결제 시스템 ‘알리페이’의 모회사다. 앤트그룹이 주식을 공모한다는 소식에 무려 3200조원의 뭉칫돈이 몰렸다. 사상 최대의 기업공개로 기록될 참이었다.

그러나 예정일을 불과 이틀 남겨두고 갑작스럽게 상장이 연기됐다. 투자금은 돌려받을 수 있게 됐지만, 대박을 꿈꿨던 투자자들의 충격은 매우 컸다.

앤트그룹 지분 33%를 보유한 알리바바는 주가가 폭락했다. 미국 나스닥 주가가 하루 만에 9.7% 빠졌다. 알리바바 지분 4.2%를 가진 마윈은 자산이 30억달러(3조4천억원) 증발했다. 세계 부호 순위에서도 18위로 12계단 떨어졌다.

이번 상장 중단은 앤트그룹의 실질적인 경영자인 마윈 전 알리바바 회장이 중국 금융당국과 ‘면담’을 진행한 후 벌어졌다.

지난 2일 중국 4대 금융당국인 인민은행, 증권감독위원회, 은행보험감독위원회, 국가외환관리국은 마윈 전 회장, 징셴둥 앤트그룹 회장 등과 ‘웨탄(約談·면담)’했다고 밝혔다.

웨탄은 한국어 면담으로 번역되지만, 단순한 면담이 아니다. 문책이나 지도를 받는 수위 높은 경고에 해당한다. 웨탄은 종종 좌천, 해임, 처분 등으로 이어진다. 결과론적이기는 하나 이번에는 무려 3조원의 자산 증발이었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이번 소식을 전한 중국 금융당국의 발표 형태다.

상장 중단 뉴스는 중국 현지언론을 통해 떠들썩하게 보도됐다. 그러나 이를 촉발시킨 마윈의 면담 소식은 4대 금융당국 가운데 증권감독위원회의 공식 홈페이지에만 단 한 줄로 짤막하게 공지됐다.

공산주의 중국에서는 ‘말이 적을수록 큰 사건’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번 증시 상장이 최장 6개월 연장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일부 중국 전문가들은 재상장 추진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는다.

사건이 그만큼 ‘정치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윈 전 알리바바 그룹 회장 | EPA=연합뉴스

공산당 기관지 신화통신의 ‘경고’

앤트그룹은 3일 마윈의 면담 이후 보도자료를 내고 “면담에서 나온 의견을 철저히 실행에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일종의 사과문이다.

이날 오후 늦게 상하이 증권거래소는 앤트그룹의 상장 유예를 발표했고, 다음날(4일) 오전에는 앤트그룹이 홍콩 증권거래소 상장 유예 소식과 공모 청약대금 환불을 공지했다.

중국 당국은 이번 조치에 대해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상하이 증권거래소는 “금융 감독 환경 변화 등 중대한 사항”이라고만 전했다. 표현은 간단하지만 중국 전문가들은 “무거운 표현”이라고 진단했다.

중국 공산당이 이번 사건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도 포착됐다.

당 관영매체 신화통신은 상장 유예가 발표된 3일 공식 SNS(위챗)에 한 네티즌의 글을 게재했다.

이 글은 ‘말(言)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해서는 안 되며, 일은 내키는 대로 해서 안 된다’라는 제목이었다.

그런데 이 글에는 묘한 삽화가 실려있었다. 빈 하늘에 ‘말(馬) 모양의 구름’이 그려진 삽화였다.

마윈의 이름을 한자로 나타내면 ‘말 마(馬)’ 자에 ‘구름 운’(雲) 자다.

글에서는 특정 개인, 집단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언행을 논했지만, 나타내려는 의미는 명확했다. 마윈에게 입조심하라는 경고이자, 다수의 대중을 향한 본보기였다.

앤트그룹 상장이 갑자기 좌절된 날, 신화통신이 게재한 말 그대로 ‘뜬구름’ 같은 그림은 이번 사건의 본질에 대해 백 마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했다.

한 네티즌이 캡처해 올린 지난 3일 신화통신 게시물 하단의 삽화 윗부분에 말 구름 모양이 보인다(동그라미 부분). | 화면 캡처

마윈의 설화(舌禍)? 어떤 비판 했길래

다수의 언론은 이번 사건의 직접적 계기를 “마윈의 당국 비판”으로 전한다.

실제로 마윈은 지난달 24일 상하이에서 열린 와이탄 금융서밋 연설에서 금융 당국에 대한 작심 비판을 쏟아냈다.

이 발언은 ‘마윈이 당국의 지나친 보수적 감독 정책을 비난했다’는 표현 정도로 외부에 전달됐지만, 실제 강도는 그 이상이었다.

마윈은 이날 연설에서 “중국 금융에는 시스템 리스크가 없다”면서 “왜냐하면, 시스템 자체가 없기 때문”이라고 당국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그의 연설 바로 앞 순서에서는 왕치산 국가부주석이 화상 연설을 했다. 이로 인해 마윈의 비판은 왕치산을 직접 겨냥한 것으로도 이해됐다.

그래서 마윈의 비판이 당 내부 권력투쟁과 얽혀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중국의 유명 반체제 언론인으로 여러 차례 투옥 생활을 했던 가오위(高瑜)는 “앤트그룹 상장은 원래 중국 공산당의 (내부)협상 결과였다”고 주장했다.

중국 반체제 언론인 가오위 | VOA/위키피디아 커먼스

현재 중국에 연금 중인 가오위는 “앤트그룹이 대표하는 이익집단은 매우 복잡한 편”이라며 “중국에서 최대 민영기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모종의 정치세력과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 의미”라고 했다.

이어 “마윈이 알리바바 회장에서 은퇴한 것도 권력 다툼의 결과였다. 이번 상장 추진도 그 당시 파벌 간 이뤄진 협상의 결과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앤트그룹은 그 엄청난 규모에 비해 상장 일정은 단 36일에 그쳤다. 중국 일각에서는 “날아가는 속도”라는 말까지 나왔다.

가오위는 “이번 상장 좌절은 다른 정치 세력의 미움을 산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번 유예는 사실상 폐지에 가깝다. 재추진을 장담하기 어렵다”며 “홍콩에서 빨아들인 자금을 모두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다. 치명상 수준”이라고 했다.

그녀는 미국 대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중국 공산당이 사회주의적 본질을 강하게 드러낸 사건으로도 평가했다.

 

마윈의 발언에 담긴 진위…공산당 ‘역린’ 건드렸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에이킨 대학교의 셰톈(謝田) 교수는 “상장유예는 첫 총격을 가한 것에 불과하다. 더 큰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셰톈 교수는 “중국의 대형 민간기업들은 공산당의 껍데기가 되는 대신에 독점적 지위와 보호를 누린다. 하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공산당에 대해 불만을 느낀다”고 했다. 기업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진취적 경영 환경이 박탈되어서다.

소위 민간 ‘재벌’은 당내 파벌의 눈치를 봐야 한다. 게다가 중국 공산당은 국영기업 위주의 정책을 추진하며 ‘재벌 때리기’ 중이다. 공산당의 침투에 대한 세계 각국 경계장벽이 높아지면서 민간기업의 해외진출이 어려워지는 점도 있다.

중국경제가 하락세를 겪으면서, 당국은 새어나가는 외환을 막으려 외환 통제를 강화했다. 이 역시 민간기업에는 엄청난 부담이다.

셰톈 교수는 “중국 인터넷 회사들은 금융 분야에 진출하며 중국 공산당의 금융 독점에 도전장을 던졌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전자상거래 발전이 가져올 경제성장이 절박하다. 그래서 이를 경솔하게 금지하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공산당은 인민은행 등 국영은행을 중심으로 한 자국 금융분야를 독점해왔다. 인민은행은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암호화폐를 자체 개발하며 자국 핀테크 시장을 키우며, 민간기업에 참여를 허용해왔다.

이에 대해 셰톈 교수는 “중국 공산당은 암탉(민간기업)이 알을 낳게 하고 싶기는 하지만, 또 너무 살찌우는 것은 원치 않는 심리”라고 일침했다.

재미 정치경제분석가 친펑(秦鵬)은 “중국 공산당은 그동안 앤트그룹에 엄격한 금융규제의 족쇄를 채우지 않았다. 과학발전을 원하는 당내 개혁세력의 옹호와 함께 한몫 크게 챙기려는 권력자의 욕심도 있었을 것”으로 봤다.

그러면서 중국 공산당이 이번에 갑작스럽게 규제에 나선 것에 대해 “‘위험 방지’만 앞세운다는 마윈의 비판을, 당에 대한 일종의 반역으로 봤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덧붙여 “급제동은 시진핑의 체면을 살리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 ‘위험 방지’ 중심의 금융정책은 시진핑의 아이디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최근 몇 년간 금융위기를 방지하기 위한 국제 조약인 ‘바젤 협약’과 국제 금융기관의 기준에 맞춰 금융 시스템 붕괴 방지에 힘을 쏟아온 점이 분명히 있다”면서도 “큰 시각에서 보면 정권 리스크, 정권 붕괴를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했다.

이어 “마윈은 지금 이것을 간파하고 자신의 견해를 설파하고 있다. 이는 금기사항이다. 중국 공산당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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