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주의가 지닌 골치아픈 문제들

이안 젠틀스
2020년 8월 29일
업데이트: 2020년 8월 29일

칼 마르크스는 처음에는 철학자였고, 이후에는 경제학자였다.

마르크스는 관념철학을 대표하는 독일 철학자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의 이론인 ‘역사는 정(正), 반(反), 합(合)의 세 가지 방식으로 발전한다’는 변증법을 받아들였다.

동시에 마르크스는 관념철학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물질에 존재론적 우위성을 부여함으로써 헤겔의 견해를 뒤집었다.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따르면, 고대 노예제도(정)는 그 반대 자극(반)으로 인해 봉건주의(합)를 탄생시켰고, 다시 봉건주의(정)는 그 반대 자극(반)으로 부르주아 계급의 자본주의(합)로 이어졌다.

자본주의(정) 역시 같은 과정을 거쳐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만들어냈다. 여기까지가 마르크스의 이론에 따른 역사적 개요이다.

마르크스주의에 기초한 변화를 주도하는 엔진은 경제이다. 경제가 물적 토대이며 이데올로기, 문화 및 종교는 단지 ‘상부 구조’일 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마르크스는 관념론자인 헤겔의 이론을 거부했고, 오늘날 ‘현실주의자’라는 자부심을 가진 많은 사람들처럼 마르크스 역시 유물론자였다.

유물론과 도덕주의

그러나 철학적 유물론의 논리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많다.

첫째, 물질은 자신의 존재를 창조하기 위해서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없다.

둘째, 유물론은 사람들의 자유 의지를 암묵적으로 부정하는 ‘강한 결정론’이다. 인간이 전적으로 화합물의 전자, 원자, 분자의 구성과 같이 이미 정해진 틀대로 구성된 물질이라면, 인간에게 객관적인 도덕성은 존재할 수 없다.

도덕성은 행동, 책임, 선택, 자신의 결정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우리가 물질적인 존재이며, 운명론에 지배받는 존재라면 어떻게 도덕적인 존재일 수 있겠는가?

물론 이러한 주장은 도덕적 상대주의로 이어진다. 우리가 어떤 도덕관을 믿든지 간에 도덕은 사회 계급과 같은 우리의 물질적 환경을 완전히 반영한다.

하지만 우리가 자유로운 존재라고 느끼면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고, 옳고 그름을 선택할 수 있으며, 우리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인지하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유물론적 상대주의자가 지갑을 도둑맞았다면, 그는 자신의 행동을 되짚어 볼 만하다.

그는 지갑을 도둑맞은 사실에 화가 났고, 범인이 잡히면 법의 심판을 받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도둑은 물론 자유인이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인지한다고 가정한다. 이러한 범죄 상황에서까지 유물론자는 ‘도덕적 상대주의’를 유지할 수 있을까.

마지막 셋째는 자유의지 현상이다.

이성(理性)과 생물학적 뇌는 다르다. 이성은 뇌를 통해 문제를 판단하고, 이에 맞게 합리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선택지 중에서 최적화된 안을 선택한다.

즉, 이성이 문제를 판단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인간이 유물론에 의해 정의되는 개체라면 위에서 언급한 ‘이성의 적극적인 역할’은 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의식’의 문제가 있다. 우리는 삶을 영위해가는 존재이며, 저마다의 신념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간다. 또한 우리는 자신을 반성하고 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유물론에 의해 정의된 인간이라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거나 고찰할 수 없다.

이외에 다른 문제들도 있다. 어떤 것이 자유의지인가? 유물론에서 정의하는 인간의 존재란 무엇인가? 감정은? 유물론에서 규정하는 물리적 실체로 규정지을 수 있는가? 유물론에 근거한다면 음악과 음악으로 인한 강한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필자는 유물론은 객관적인 도덕의 기준을 근본적으로 부인하기 때문에, 일반 대중에게 위의 질문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을 주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유물론의 사상을 진지하게 대한다면,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이다.

마르크스는 기존의 도덕을 부르주아(유산계급)의 순전한 이기주의라고 일축했다.

필자는 기존 도덕성에 대한 경멸이 끔찍한 부패와 생명 경시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목격한 모든 공산주의 정권은 이런 종류의 부패와 무관용으로 우리에게 혼란을 주었다.

이러한 공산주의 정권에는 러시아, 구소련 동유럽 국가들, 쿠바, 중국, 북한, 캄보디아, 베트남 및 베네수엘라가 있다.

그러나 초기에 마르크스주의는 강한 이상주의적 색채를 가졌다. ‘공산당 선언’과 그밖의 다른 저작물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유럽의 억압받는 노동자들에게 봉기하고,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노동자의 국가를 건설할 것을 호소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국가는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우선되고, 경제적 이익이 공유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각자 그 능력을 다하고, 각자 필요한 만큼 재화를 소유한다.

노동자 봉기에 대한 낭랑한 호소와 유토피아에 대한 이상향은 많은 사람을 매료시켰지만, 반면에 이 이론은 유물론적 결정론을 암시적으로 부정한 셈이 됐다.

왜냐하면, 만약 노동자의 모든 행동이 외부환경에 의해 미리 결정된다면, 어떻게 ‘들고 일어날’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이는 마르크스주의가 지닌 핵심 모순 중 하나이다. 자본가에 대한 도의적 차원의 분노 역시 모순된다.

혁명

마르크스는 자칭 혁명가였다. 그리고 그는 뻔뻔스럽게도 폭력을 정당한 사회 변화의 수단으로 여겼다. 결국, 그의 결론은 “지배 계급은 순순히 권력을 대중에게 내놓지 않기 때문에 폭력을 사용하여 지배적 지위를 포기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역사학자로서 50년 이상 세계의 주요 혁명을 연구해왔다. 필자에게는 영국 혁명 (1640-1660)이 가장 익숙하지만, 이외에도 프랑스 혁명 (1789-1815), 러시아 혁명 (1917-1921), 중국 혁명(1930-1949)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각 혁명의 역사적 패턴은 비슷하다. 이상주의적 열정으로 무장하고 세력은 약하지만, 의지가 강한 조직이 혁명의 중심세력이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그 시대의 억압적인 관습과 부패한 지배 세력 전복, 과거 청산을 주장한다. 또한 투명한 정부를 재건하고, 모두를 위한 완벽한 공정성과 정의를 바로 세울 것을 촉구한다.

처음에는 대중으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지만, 곧 강한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반동적’ 저항을 극복하려면 길고 치열한 투쟁이 필요하다.

영국 혁명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수십만 명으로 밝혀졌다. 프랑스 혁명에서 나폴레옹의 폭정 기간을 포함한다면, 혁명 직후라고 하더라도 희생된 사람들의 숫자는 수백만 명에 달할 것이다.

러시아 혁명과 중국 혁명에서 전체주의가 남긴 후유증을 고려한다면, 희생자수는 수천만 명에 이를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은 그들이 시작한 혁명에 겁에 질려, 혁명에 반대하고 다양한 형태로 이전의 정권 체제를 복원하려고 노력했다.

영국에서는 1660년 군주정의 회복을 목격했고, 프랑스에서는 1815년 왕을 맞이했고, 1989년 러시아 공산주의 정권은 도덕적으로 부패하고, 경제도 심각한 불경기여서, 민중들이 총을 쏘지 않고도 정권이 저절로 무너지게 됐다.

중국 공산당 정권은 여전히 ​​집권하고 있으며, 중국식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사상을 거의 반영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잔혹한 정치적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수십만(그 이상은 아니더라도)의 사람들이 여전히 감옥에 수감되어있다. 모든 중국 국민들은 중국 정부에 대한 원성이 들끓고 있지만, 그러한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필자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점진주의 발전방식을 채택한 사회에서 인류가 직면한 상황에 대한 실질적인 개선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사회는 과거의 우수한 유산을 보존하고 이러한 성과를 토대로 계속 발전하고 있다.

영국은 1660년 이후에, 프랑스는 나폴레옹 정권을 무너뜨린 후에 발전을 이루어 냈으며, 러시아는 현재 점진주의 발전방식을 택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점진주의 방식의 우수성은 마르크스주의를 거부하는 나라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래의 국가들이 점진주의 발전방식을 택한 나라들이다. 스칸디나비아 국가(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및 대부분의 유럽 국가, 요르단, 모로코, 캐나다, 일본, 인도, 싱가포르, 대만, 한국 및 미국, 대부분의 아프리카 및 라틴 아메리카 국가 등이다.

마지막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너무 많은 대학교수들 포함)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까지 마르크스주의는 다른 어떤 정치 이념 체계보다 인류에게 더 많은 고통을 가져왔다.

아래에 1917년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1억 명이 넘는 사람들의 비정상적인 죽음에 마르크스주의가 직접적으로 책임이 있음을 증언한 책들을 소개했다. 물론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다.

▲‘굴라크 아일랜드’(Gulag Islands) : 러시아의 소설가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구소련 노동수용소 참상을 폭로한 책으로 20세기 역사 및 문학 걸작 중 하나.

▲‘커뮤니스트 블랙 더 페이퍼’(Communist Black The Paper, 1997) : 프랑스 사학자인 스테판 꾸르트와(Stéphane Courtois) 및 그 외 저자가 쓴 책

▲‘더 그레잇 테러’ (The Great Terror, 1968) : 영국과 미국의 사학자인 로버트 콘퀘스트(Robert Conquest)의 작품

▲‘마오쩌둥: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Mao Zedong : A Little Known Story, 2005) : 중국계 영국 작가 장룽과 그녀의 남편이자 아일랜드 사학자인 존 할리데이(Jon Halliday)의 책

마르크스주의의 추종 세력들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인류는 이러한 사상에 쉽게 미혹되지 않을 것이다.

원문 :  The Trouble With Marxism

저자 이안 제임스 젠틀스 박사는 캐나다 요크 대학 명예교수이자 현(現) 캐나다 틴데일대학 역사 및 글로벌 연구 분야 초빙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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