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포로교환’…트럼프 “평화를 향한 첫걸음”

Zachary Stieber
2019년 9월 10일 업데이트: 2019년 9월 10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7일(현지시간) 상대국에 억류돼 있던 인사 35명을 맞교환했다.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7, 8월 전화 통화를 통해 억류자 교환 문제를 논의했으며, 이 후 양측의 인권 담당 특사가 만나 억류 인사 목록을 교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으로 얼어붙었던 양국 관계의 변화를 보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아주 좋은 소식이다, 아마도 평화를 향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두 나라 모두 축하한다!”고 이날 성명을 통해 전했다.

지난 4월 압도적 표 차로 당선된 젤렌스키 대통령은 키예프 공항에 나가 귀환자를 직접 맞이하며 환영했다.

다수 언론은 포로 교환을 양국 관계 해빙의 신호탄으로 해석했다.

5년 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후, 러시아는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에서 벗어나기를 원했고, 우크라이나는 장기간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러시아와 협력이 필요한 시기다. 이번에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하나의 결과물을 이끌어냈다.

러시아 외무부는 포로 교환을 환영하는 성명에서 “우크라이나는 모든 문제에 대해 러시아로 비난의 화살을 돌리려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며 장기간 계속된 양국의 갈등을 ‘우크라이나 내분’이라고 짚고 넘어갔다.

러시아에 수감됐던 로마 수쉬첸코가 포로 교환 후 키예프 외곽 보리스필 국제공항에 도착한 후 친척들의 환영을 받는다. 2019. 9. 7. | Oleksandr Klymenko/Reuters =Yonhapsnews(연합뉴스)

크림반도 영토권 분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크림반도 영토권 분쟁의 발단은 19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크라이나 출신 소련 서기장 니키타 후르시초프는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 선물했다.

소련이 붕괴하자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 영토권을 쥔 채 독립했고, 러시아는 ‘원래 내 땅이니 돌려 달라’고 주장했으며, 양측의 갈등에 놓인 크림반도는 자치공화국으로 독립하고자 했다.

우크라이나 내부에 놓인 민족 간 갈등 또한 양측의 분쟁을 가속화했다. 러시아 외무부 장관이 언급한 ‘우크라이나 내분’ 문제다.

동유럽과 러시아 사이에 위치한 우크라이나는 지역에 따라 양분됐다. 서부는 대부분 우크라이나인이며 친 유럽 성향이 강하고, 동부 대부분은 러시아인으로 친 러시아 성향이 짙었다. 어느 쪽이 집권하느냐는 두 민족의 중대사였다.

크림반도의 원래 소유주이기도 한 러시아가 크림반도에 강한 집착을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 겨울 해안 대부분이 얼어붙는 러시아에 크림반도의 남서부 세바스토폴항에 구소련 함대인 ‘흑해 함대’를 유지하는 것은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소련이 붕괴되자 1995년 흑해함대 ‘분할 소유’에 합의한 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돈을 주고 2017년까지 빌린다. 하지만 서부 친 유럽파 대통령이 당선되자 임대비가 4배로 뛴다. 다시 친러 동부 출신이 정권을 잡자 2042년까지 임대 기간을 연장해 준다.

둘째, 러시아는 세계 최대 천연가스 생산국으로 유럽에서 소비되는 천연가스의 30%를 러시아에서 공급하며, 공급 파이프라인 80% 정도가 우크라이나를 통과 한다. 크림반도가 러시아의 경제적 요새이기도 한 것이다.

키릴 비신스키(가운데) 전 우크라이나 RIA 노보스티 통신국 국장과 드미트리 키슬리요프 로시야 세고드냐 국장(왼쪽)이 러시아 모스크바의 브누코보 공항을 출발한다. 2019. 9. 7. | AP Photo/Pavel Golovkin =Yonhapnews(연합뉴스)

러시아 합병

복잡한 우크라이나 정세는 러시아에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을 주게 됐다.

2010년에 취임한 우크라이나 빅토르 아누코비치 대통령은 친 서방정책에서 친러시아 정책으로 바꾼다. 급기야 2013년에 유럽연합(EU)와 협력 협정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발표하자 이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진압 과정에서 100여 명의 사망자까지 발생했다.

야누코비치는 러시아로 망명하고 친 서방 세력의 과도 정부가 들어서자 이번에는 이 과도 정부를 반대하고 러시아 귀속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결국 친러시아와 반 러시아 간 유혈사태로 확산됐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동부와 크림반도로 대규모 병력을 이동시켜 국제사회를 긴장시켰다. 러시아계 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이었다.

크림 자치공화국(완전 독립국이 아니라 국가 안의 자치 국가)은 2014년 3월 16일, 러시아 귀속에 대한 찬반 투표를 했다. 95% 이상이 러시아 귀속을 찬성했다. 한 달 뒤, 크림 공화국은 러시아와 합병 조약에 서명했다.

우크라이나는 물론 미국, EU 등 국제사회는 국민투표 자체가 우크라이나 헌법과 국제 질서를 위반한 것이며, 러시아의 내정 간섭, 크림반도 무장 점거를 지적하며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러시아, 우크라이나, 프랑스, 독일 등 4개국 정상들은 ‘노르망디 포멧’(Normandy format)을 결성해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해 나섰다.

2015년 2월 노르망디 포맷 정상회담이 벨로루시의 수도 민스크에서 개최됐고, 4개국 정상들이 합의한 주요 내용에는 모든 포로와 억류 인원 맞교환 및 석방이 포함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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