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특집] 한국과 평행이론 처럼 닮은 대만 선거가 주는 함의

최창근
2022년 01월 18일 오후 5:39 업데이트: 2022년 03월 3일 오전 9:49

‘지구상에서 가장 유사한 두 나라’ 한국과 대만
민주화 시기, 정권 교체 시기, 정권 교체 주기 닮음꼴
2000년 국민당 분열 후 여파는 현재 진행형
선거 패턴에 비춰 볼때 차기 한국 대선은 민주당 유리
‘분열=패배’ 공식

‘평행이론(平行理論)’은 서로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는 서로 다른 사람의 운명이 같은 식으로 반복된다는 이론이다. 이는 비단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에도 적용된다.

한국과 대만은 평행이론처럼 닮았다. 분단국가로서 각각 ‘한강의 기적’ ‘대만의 기적’이라는 고도 경제성장을 이뤘다. 정치 발전 면에 초점을 맞춰봐도 두 나라는 놀라우리만치 유사하다. 1980년대 후반 급격한 민주화를 이뤘다. 한국은 1997년에, 대만은 2000년에 ‘선거’라는 민주적 제도에 의해서 여·야 간 정권 수평 교체를 이뤘다. 정권 교체 주기도 똑같다. 한국은 5+5년, 대만은 4+4년 주기로 보수·진보 정당이 번갈아 집권했다.

비교정치학자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비슷한 두 나라 사례’로 꼽는 한국과 대만. 대만의 선거가 한국에 주는 함의는 무엇일까?

지구상에서 가장 비슷한 두 나라 한국과 대만
정권 교체 시기, 정권교체 주기도 유사

‘6월 항쟁’ 열기로 뜨겁던 1987년, 대만에서도 민주화 열기가 고조됐다. 한 해 전인 1986년 ‘당외(黨外·국민당 밖의 사람들 이라는 뜻으로 ‘재야 인사’ 지칭)’ 인사들이 대만 첫 야당인 민주진보당(民主進步黨·민진당)을 결성했다. 계엄령하의 당금(黨禁·정당 설립 금지 조치) 속에서 국민당 외 정당 설립은 불법이었지만, 장징궈(蔣經國) 총통은 이를 묵인했다.  1987년 7월 1일을 기해 ‘대만지구 계엄령’이 해제됐다.

장징궈(좌) 전 총통과 리덩후이(우) 부총통. 장제스의 장남 장징궈는 총통 재임 시절 민주화를 진전시켰다. 본성인 학자 출신 리덩후이를 부총통으로 지명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결과적으로 1988년 장징궈 사망, 리덩후이의 총통 취임은 대만 민주화가 급진전되는 계기가 됐지만, 국민당 분열의 원인을 제공했다. 2001년 리덩후이는 대만독립을 지향하는 정당, 대만단결연맹을 창당했다. | 자료사진.

1988년 1월, 장징궈 총통이 사망하고 ‘헌법’에 의하여 총통직은 본성인(本省人·국민당 정부 대만 천도 이전 대만에 거주하던 대만인) 출신 부총통 리덩후이(李登輝)가 이었다. 이후 대만의 민주화가 급격한 진전을 이뤘다. 1996년에는 복원된 총통 직선제 첫 선거에서 리덩후이가 당선됐다.

2000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당은 분열됐다. 총통이자 당 주석이던 리덩후이는 대중적 지지가 높던 쑹추위(宋楚瑜)를 배제하고, 롄잔(連戰) 부총통을 국민당 총통 후보로 지명했다. 쑹추위는 장징궈 총통의 비서로 정계 입문 후 37세에 행정원 신문국장(국정홍보처장)에 임명된 후, 국민당 비서장을 거쳐 1994년 사상 첫 민선 대만성(臺灣省) 성장으로 선출된 대중정치인이었다. 당시 대만성은 수도 타이베이(臺北)와 제1 항구도시 가오슝(高雄) 등 2개의 행정원직할시를 제외한 대만섬 전체를 관할했다. 쑹추위는 ‘소총통’으로 불리며 국민당의 차기 총통으로 손꼽혔다.

쑹추위 대만 친민당 주석. 중화민국 군 장성인 아버지를 둔 외성인 2세 정치인으로서, 장징궈 총통의 신임하에 30대에 행정원 신문국장에 발탁됐다. 이후 국민당 문화공작위원회 주임, 비서장 등 요직을 역임하고 1994년 민선 대만성장에 당선됐다. 2000년 국민당을 탈당하여 친민당을 창당했다. 이후 쑹추위의 대권 도전은 범국민당계 표 분산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 중앙사.

롄잔이 총통 후보로 지명되자 쑹추위는 이에 반발하여 탈당하여 독자 출마했다. 결과적으로 2000년 3월 치러진 대선에서 롄잔은 23.10%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3위로 낙선하고, 쑹추위는 36.8%를 기록했다. 국민당 분열 속에서 어부지리를 얻은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이 39.3% 득표율로 당선됐고 대만 사상 첫 여·야 간 정권 수평교체가 이뤄졌다. 이를 두고 본성인 출신으로 대만독립론자인 리덩후이 전 총통이 천수이볜 당선을 돕기 위하여 쑹추위 대신 롄잔을 총통 후보로 지명하고, 총통 선거 과정에서 공공연하게 야당 후보인 천수이볜을 지원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는 1997년 대선 과정에서 이인제 전 경기도지사가 탈당하여 여권 표가 분산됐고 김대중 새정치정치회의 후보가 당선되는 데 일조한 상황과 겹쳐진다.

2004년 총통 선거에서 롄잔과 쑹추위는 단일화를 이뤄 각각 총통·부총통 후보로 출마했다. 다만 결과는 6,471,970표(50.1%)를 얻은 천수이볜의 승리로 돌아갔다. 6,442,452표(49.9%)를 기록한 롄잔·쑹추위는 석패(惜敗)했다. 민진당은 재집권에 성공하여 8년간 집권했다.

2000년 대만 총통 선거에서 국민당은 대중적 인기가 높은 쑹추위 대신 롄잔을 대선 후보로 지명
국민당 분열 속에 치러진 선거에서 민진당 천수이볜이 어부리지를 얻어 당선

2008년 대선에서 타이베이 시장 출신 마잉주(馬英九) 국민당 후보는 58.4%의 득표율로 41.6%에 그친 민진당 셰창팅(謝長廷)에게 압승했다. 천수이볜 정부는 임기 후반 각종 부패 스캔들, 경제 성장률 추락이라는 악재에 시달렸고, ‘경제 회복’ ‘민진당 정부 심판’을 내세운 클린 이미지의 마잉주는 손쉽게 승리했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범국민당 계열의 쑹추위 친민당 주석이 출마하지 않아 국민당 성향 표가 분산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2012년 대만 대선 과정은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박빙(薄氷) 승부가 이어졌다. 마잉주의 국민당 정부는 집권 후 지지율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었다. 반면 천수이볜 정부에서 대륙위원회 주임위원(통일부 장관 해당), 행정원 부원장(부총리 해당)을 역임한 차이잉원(蔡英文) 민진당 후보는 상승세를 이어갔다. ‘정권 안정론’과 ‘정권 심판론’이 맞붙은 선거에서 마잉주는 51.6%를 득표하여 45.6%를 기록한 차이잉원에게 승리하여 4년 집권을 이어갔다. 집권 여당의 메리트를 무시할 수 없음을 입증한 선거였다.

2016년 총통 선거에서 ‘대선 재수’에 나선 차이잉원이 56.1%의 득표율로 31.0%의 주리룬(朱立倫) 국민당 후보에 앞승했다. 정계 입문 후 입법위원·타오위안(桃園)현장·신베이(新北)직할시장 등 출마하는 선거마다 승리하여 ‘선거의 왕자’로 불리던 주리룬은 이때 처음 패배를 맛봤다. 주리룬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신베이 시장에 출마, 차이잉원 당시 민진당 주석을 상대로 승리한 적도 있었다. 국민당 입장에서 패배가 뼈아픈 것은 ‘후보 교체’라는 극약 처방을 했으나 패배했다는 것이다. 총통 선거 패배가 기정사실화돼 가는 과정에서 주요 당내 후보들은 총통 선거 출마를 껴렸고, 8선 입법위원(국회의원)이지만 당내 비주류였던 훙슈주(洪秀柱)를 총통 후보로 지명했다. 다만 후보 지명 후에도 지지율은 오르지 않았고 국민당은 대중적 지지가 높고 차이잉원을 상대로 승리한 경험이 있는 주리룬으로 후보 교체를 단행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한 가지 더 짚을 것은 국민당과 지지 기반이 겹치는 쑹추위 친민당 주석이 출마해 12.84%의 득표율을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훙슈주(좌)와 주리룬(우) 2016년 총통 선거에서 국민당은 다선 입법위원이지만 당내 비주류였던 훙슈주 입법원 부원장을 대선 후보로 지명했으나, 지지율 하락으로 인하여 주리룬 전 신베이 시장(현 국민당 주석)으로 후보교체 했지만 총통 선거에서 패배했다.

사상 첫 여성 총통이 된 차이잉원은 취임 후 지속적인 지지율 하락에 시달렸다. 취임 무렵 70%에 육박하던 지지율은 3개월 만에 50% 선이 무너졌다. 이후 매년 평균 두 자릿수 하락세를 이어갔다. 2018년 11월 치러진 지방선거는 차이잉원에게 결정타를 날렸다. 수도 타이베이 등 22개 광역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민진당은 6석을 얻는 참패를 당했다. 반면 제1야당 국민당은 15석을 차지했고, 타이베이 시장은 무소속 후보에게 돌아갔다. 차이잉원은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당 주석직에서 사임했다. 지지율은 20% 언저리였다. 대만에서는 정권 교체론이 비등했다.

이 속에서 선거 승리를 자신한 국민당 내에서는 당내 후보 경선이 치러졌다. 국민당 불모지이던 가오슝에서 시장에 당선되며 대만 정계 한류(韓流) 열풍을 일으킨 한궈위(韓國瑜) 가오슝 시장, 주리룬 전 신베이 시장, 12선 입법위원으로 정계의 부도옹(不倒翁·오뚜기)이라는 별칭의 왕진핑(王金平) 전 입법원장 등 당내 거물에 더하여 대만 최대 부호 궈타이밍(郭台銘) 폭스콘 회장이 경선에 가세했다. 본선보다 치열한 당내 경선에서 한궈위가 후보로 지명됐다.

대만 선거는 분열=패배 공식
정권교체 주기 차이잉원 재선 성공 종합할 때 한국도 민주당에 유리

결과적으로 2020년 대선에서 차이잉원은 57.13%, 8,170,231표라는 역대 최고 득표율로 당선됐다. 한궈위는 38.61%에 그쳤다. 홍콩 민주화 시위, 중국의 무력 침공 위협 고조라는 ‘외적 변수’에 더해 한궈위의 지나친 친중국 이미지와 이에 대한 젊은 유권자들의 반발 심리 등 내적 요인이 겹쳐진 결과였다. 범여권과 범야권 역학 구도 면에서 보자면, 차이잉원과 민진당은 경쟁자이던 차이잉원 총통과 라이칭더(賴清德) 전 행정원장(현 부총통)이 단일대오를 이뤘다. 반면 범야권에서는 쑹추위 친민당 주석이 출마하여 4.26%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국민당 당내 경선에서 패배한 궈타이밍 폭스콘 회장은 쑹추위를 지원했다.

결과적으로 국민당 입장에서 역대 총통 선거 결과는 ‘분열=패배’라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더하여 5+5년(한국), 4+4(대만) 주기로 여·야 정권 교체가 이뤄지고 있는 두 나라 선거 패턴, 2020년 대만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 차이잉원 총통의 재선 성공을 종합할 때 한국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의 집권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상기시킨다.

3월 9일 대통령 선거는 한국과 대만의 집권주기가 다시 한번 일치할지 아닐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선거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