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특집] “이번 대선은 대한민국이 전진하냐 후진하냐를 결정” 전성철 회장

제20대 대선 '대한민국의 미래를 묻다' ④
최창근
2022년 02월 2일 오전 11:58 업데이트: 2022년 03월 3일 오전 9:46

에포크타임스는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맞이하여 ‘대한민국의 미래를 묻다’ 대선 특집 기획을 마련하였습니다.대한민국과 한반도의 향후 5년의 운명을 판가름할 차기 대통령이 제시해야 할 비전, 새로운 정부가 수행해야 할 국정과제를 각 분야 전문가의 고언과 해법을 통해 제시하고자 합니다.
그 네 번째 순서로 전성철 IGS글로벌스탠다드연구원 회장을 만나 한국의 보수와 진보, 성공한 보수·진보 리더십, 대통령 후보자의 비전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습니다.

전성철 IGS글로벌스탠다드연구원 회장의 인생 역정은 다채롭고 역동적이다. 도전의 연속이다.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후 무일푼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택시 운전사, 웨이터, 수위 등으로 주경야독(晝耕夜讀)하여 미네소타대 경영대학원·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서 MBA와 미국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뉴욕 맨해튼 소재 대형 로펌 리드 엔드 프리스트(Reid & Priest)에서 동양계 외국인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4년 만에 파트너(이사)로 승진했다. 귀국 후 김앤장 법률사무소 미국 변호사로 일하던 중 김영삼 정부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비서관으로 합류하여 ‘세계화’ 개혁에 앞장서기도 했다. 이후 산업자원부 무역위원장, 세종대 경영대학원장·부총장으로 활동했다. 2003년 최고경영자(CEO) 교육기관 IGM세계경영연구원을 설립해 15년 동안 1만 명 넘는 최고경영자·임원에게 경영의 다양한 기법을 전수하여 ‘경영자들의 스승’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언론계에서는 KBS ‘전성철의 경제 포커스’ MBC ‘경제매거진’ 등을 통해 시청자 눈높이에 맞춘 진행으로 어려운 경제 문제를 쉽게 풀어가는 진행자로 유명세를 탔다. 30여 년 동안 국내외 매체에 200여 편의 칼럼을 기고하기도 하며 한국 최초 ‘경제 전문 칼럼니스트’ 타이틀을 얻었다.

전성철 회장의 ‘인생 4막’은 위기에 빠진 한국 보수 구하기이다. 이를 위해 2019년 ‘보수의 영혼’이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진보를 이겨내는 자유의 힘’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에서 전성철 회장은 ‘자유와 선택의 원리가 보수의 영혼’이라고 정의 내렸다. “대통령 후보는 국민에게 꿈을 제시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전성철 회장과 인터뷰는 1월 27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 IGS글로벌스탠다드연구원에서 진행됐다.

정당은 꿈을 파는 존재, 대선후보는 비전을 제시해야
보수의 핵심 가치는 자유, 진보는 평등을 우선시
국민을 배 고프지 않게 하는 것과 배 아프지 않게 하는 것 모두 중요
민주주의 발전에서 정의의 가치 중요
보수가 수구라는 것은 오해, 보수가 진보보다 개혁적일 수 있어

20대 대선은 비전과 정책이 실종된 선거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 원인은 무엇이라 보나요?

“여야 각 당 후보의 국가 비전이 확실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원인이고 다음은 참모의 문제라 봅니다.” 국가·비전이 실종된 선거라는 평가를 받는 이번 대선의 문제에 대해서 원인을 진단한 전성철 회장은 설명을 이어갔다. “후보나 참모 둘 중 한쪽은 국가 비전이 있어야 상호 보완이 되는데 현재까지는 없어 보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등 지방 행정 경험만 있어서 국가 차원의 비전이나 정책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 봅니다. 경기도가 인구 면에서 국내 최대 지방자치단체이기는 하지만 국가 단위와 도(道) 단위는 차원이 다르죠. 지방 행정은 비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리가 중요합니다. 도로를 새로 개설한다 등 실리적인 정책으로 유권자에게 접근이 가능합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경우 평생 ‘검찰’에만 몸담았기 때문에 국가 운영 전략 등을 고민한 적이 없었던 것이죠. 그래도 정치 감각이 있으면 참모들의 아이디어를 선별 수용해서 자기 것으로 포장할 수 있는데 ‘감(感)’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어요. 비유를 하자면 산해진미가 한 상 가득 차려져 있고 젓가락으로 입에 넣어야 하는데 무엇을 넣어야 할지 잘 모르는 형국이죠.”

·야 대선 캠프는 경험 있고 유능한 사람들로 채워졌습니다.

“후보 스스로 역량을 갖추지 못하면 아무리 참모가 유능해도 할 수 없습니다. 여·야 모두 공통적으로 지닌 문제이죠. 여당 쪽에는 국정 경험을 갖춘 참모들이 있지만 후보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야당도 마찬가지인데 후보가 국가 비전·정책에 관심이 덜하니, 좋은 아이디어를 내도 사장당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여·야 대선후보와 캠프 참모진의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한 전성철 회장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전 미국 대통령의 예를 들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내세운 구호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잖아요. 이 구호 하나에 외교·국방·경제·복지 등 모든 분야 정책 공약들을 연결시켰어요. 자신의 모든 공약들을 이 꿈을 이루는 수단으로 포장하여 제시했던 것이죠. 시간이 가면서 그 ‘꿈’과 그 정책들 간의 연관성과 일관성을 감지하게 된 미국 국민들은 트럼프의 그 ‘꿈’을 정말 믿게 되었고, 그 믿음이 바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핵심 요인이었습니다.” 전성철 회장은 지난해 모 일간지에 게재한 칼럼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문에 대해서 깊은 실망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윤석열 후보)가 출마 선언을 하면서 ‘꿈’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말로, 그 연설에 정치의 본질이 빠져 있기 때문이었다. 한 마디로, 그는 그날 그 연설에서 무엇을 ‘안 하겠다’는 이야기만 했다. 그러나 ‘하겠다’는 말은 거의 없었다. 윤석열 후보는 문재인 정권을 통렬히 비판하는 것을 넘어 ‘나는 어떤 세상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했었어야 했다. 거창하게 ‘부작위’만을 외치고는 단상을 내려오는 윤 후보에게서 국민이 감동을 얻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고 썼다.

전성철 회장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 핵콕TV에 출연하여 보수와 진보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윤석열 후보에게 실망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준다면요.

“지난해 6월, 윤석열 후보는 출마 연설에서 반복해서 외친 단어가 ‘자유’ ‘공정’ ‘상식’입니다. 그중 자유는 보수우파의 핵심 가치입니다. 문제는 윤석열 후보가 자신이 이야기한 자유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공허하게 몇 번 외쳤을 뿐이죠. 사실 오늘날 대한민국에 자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이 나라가 민주주의의 기본 틀은 지키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상황에서 공허하게 그 단어를 3~4번 외치기만 하고 단상을 내려왔으니 그것이 ‘꿈’이 될 수 없었고 자연히 감동을 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자유가 보편 가치이자 보수의 핵심 가치이기 때문에 윤석열 후보의 외침은 하기에 따라 엄청난 의미를 지닐 수도 있었습니다. 만약 윤석열 후보가 자유의 가치를 그만큼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다면 한걸음 더 나아갔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자유가 넘치는 대한민국’을 자신이 국민에게 약속하는 꿈으로 제시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설명이 들어갔으면 연설이 빛이 났을 텐데 빠졌던 것이죠. 공정과 상식도 마찬가지고요.” ‘칼럼을 쓴 지 6개월이 지난 후 윤석열 후보에 대한 평가는 바뀌었나’는 질문에 “여전히 정책은 있으나 비전은 없다. 정책은 비전에서 나와야 한다. 이는 총론과 각론 관계이다”라고 답했다.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구호로 당선
대선 후보라면 꿈을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이재명 후보는 제대로 꿈을 제시했다 보나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전형적인 진보주의자라 할 수 있습니다. 정책 면에서 진보주의자로서 특별한 흠결은 발견할 수 없습니다. ‘분배하고 다 같이 평등해지자’ 이런 것이 진보주의니까요. 문제는 큰 틀에서 ‘대한민국의 어떠한 나라로 만들겠다’고 제시하지는 못했다 판단합니다. 더하여 이재명 후보에 대해서 각종 도덕적 흠결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의식이 선진화됐는데 도덕적 흠결이 있고 자유를 제한하는 각종 정책을 제시하는 후보를 과연 지지할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달리 말해 대한민국이 요구하는 시대 정신과 이재명 후보가 맞나 하는 것이죠.” 여·야 후보의 문제점을 평가한 전성철 회장은 “대선후보라면 비전과 정책을 일관되게 제시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대선 후보가 제시해야 할 비전은 어떤 것인가요?

“제가 보수 정당 후보라면 ‘모두가 신나서 자유롭게 꿈을 추구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고 하겠습니다. 진보 정당 후보라면 ‘모두가 편안하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정도로 이야기할 것입니다.”

이번 대선이 한국 정치사에서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한국 정치발전사는 민주주의 회복 투쟁이었습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1987년 6·10 민주항쟁 등 두 번의 피비린내 나는 투쟁에서 국민이 승리하여 민주주의를 쟁취했습니다. 권위주의 체제와 민주주의 체제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정의로운가 그렇지 않은가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독재자의 뜻이 곧 정의이니까요. 다음 단계인 민주화로 이행하고 나면 ‘정의’는 이슈가 됩니다. 제도적인 민주화를 이루고 나면 내용에 있어서 정의로운가를 따지게 되는 것이지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근본 이유에는 국민들이 ‘대통령과 정부가 정의롭지 못하다’고 판단한 것이 깔려 있습니다. 그다음에 현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는데 이번 정부도 정의를 짓밟은 측면이 있다 봅니다.”

전성철 회장은 ‘정직’ ‘정의’의 가치가 경제와 민주주의 발전의 핵심이라는 것을 설파해 오고 있다.

어떤 면에서 문재인 정부가 정의를 짓밟았다 보나요?

“쉽게 말해서 ‘내로남불’한 거죠. 현 정부 사람들은 정의보다 ‘자기편’을 우선시하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같은 행위를 두고 자기편에는 면죄부를 주고 상대편은 처벌한 것이지요. 내편은 옳고 상대편은 그르다는 이분법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는 다시 한번 짓밟힌 정의를 회복하는 선거 혹은 정의를 짓밟은 권력자의 행태를 교정하는 선거라 할 수 있습니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하기 위해서는 정의가 필요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를 해야

민주주의에서 정의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인가요.

“정의가 바로 서지 않은 상태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한 경우가 없습니다. 정의를 짓밟으면 민주주의는 후퇴합니다. 남미 국가들이나 러시아가 대표적이 예이죠. 남미 국가들의 경우 절차적 민주주의를 이뤘으나 정의가 짓밟히면서 다시 후퇴했죠. 더하여 민주주의를 하지 않는 나라치고 선진국이 된 사례가 없습니다. 정리하자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하기 위해서는 정의가 필요하고 민주주의가 되어야 선진국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선진국 반열에 올랐으나 다시 후퇴할 위험에 처했는데 이번 선거는 전진하냐 후진하냐를 판가름할 선거라고 봅니다.”

한국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 혹은 좌파와 우파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보수는 기본적으로 자유를 중시합니다. 반면 진보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평등이죠. 여기서 모든 것이 출발합니다.” 자유와 평등을 보수와 진보의 핵심 가치라 정의한 전성철 회장은 보수와 진보가 대립할 수밖에 없는 원인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보수가 추구하는 것이 ‘자유와 선택’이라면 진보가 추구하는 것은 ‘공평과 평등’입니다. 자유를 통해 떡을 키우더라도 평등이 없으면 결국 그것은 소수의 배만 불리는 결과가 된다는 생각에, 자유를 다소 제한해서라도 공평과 평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자유를 가장 중요하고 신성한 가치로 신봉하는 보수와 공평과 평등을 추구하는 진보는 영원히 대립하고 갈등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관계입니다.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은 선악(善惡)으로 구분될 수 없는 것이지만 사회 갈등의 한 요소가 되면서 이념에 따라 보수는 진보를, 진보는 보수를 혐오하는 세태까지 나아가고 있기도 합니다.”

한국 보수·진보 세력의 문제점은 뭐라 보나요?

“한국 보수 세력 혹은 보수 정당은 충분히 이념적이지 않습니다. 이념을 기반으로 정책을 제시해야 하는데 기본적인 이념과 가치에 대한 정립조차 되어 있지 않으니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리가 없지요. 정책을 통하여 보수가 중시하는 자유를 증진시켜야 하는데 이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당은 기본적으로 ‘이념’을 파는 곳입니다. 세상을 어떻게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전혀 못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진보는 왜곡된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진보가 주장하는 평등이라는 가치는 필수불가결한 것입니다. 진보집단도 반드시 존재해야 하고요. 그런데 한국의 진보는 ‘이익’ 앞에서 가치나 원칙을 버리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어요. 한국 진보 세력이 가진 근원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진보 정부가 평등을 중시하다 국가 경제를 망치는 것은 일반적인 행태입니다. 그런 실패를 겪지 않은 나라가 거의 없을 정도이지요. 진보가 가지는 근원적인 위험 요소입니다. 반면 현 정부는 가치보다 자기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한국 보수·진보 세력에 쓴소리를 한 전성철 회장은 ‘자신도 젊은 시절 진보였다’고 고백한다.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공천으로 서울 강남에 출마했다 낙선한 적도 있다.

전성철 회장은 2000년 서울 강남구(갑) 선거구에 새천년민주당(더불어민주당 전신) 공천으로 출마했다. 그는 ‘전성철은 밥을 사지 않습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출마하여 선전했으나 한나라당 최병렬 후보에게 져서 낙선했다. 지역감정의 벽을 넘기 위한 도전이었다. 사진은 2004년 1월 새천년민주당 재입당 기자회견. | 연합뉴스.

본래 진보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미국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미국 헌법 정신을 배우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미국 수정 헌법 제14조는 차별 금지 조항입니다. 본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연령, 성별, 출생지(고향), 인종 등 4가지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핵심 명제입니다. 이러한 정신을 실현하고자 200여 년 동안 미국 진보주의자들이 바친 처절한 노력을 배우며 가슴 저려오는 감명을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돌아와 한국 현실을 보니 슬펐습니다. 특정 지역 출신들을 차별하고 멸시하는 것 때문이었죠. 나는 이러한 현실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그러하지만 ‘민주당’ 약세 지역인 서울 강남에서 총선에 출마했죠.” 지역 감정의 벽을 넘기 위해 불리함을 감수하고 총선에 출마했다 낙선했던 전성철 회장은 총선 출마 전인 김영삼정부 대통령 정책기획비서관 시절 ‘사법시험 합격자 수 증원, 법학전문대학원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사법개혁안을 밀어 붙이기도 했다. 당시 이를 주도한 박세일 정책기획수석비서관과 더불어 ‘급진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보수는 자유와 선택
진보는 공평과 평등

보수로 전향한 계기는요?

“나는 기본적으로 자유주의자입니다. 진보적인 성향도 지니고 있으나 자유에 더 무게를 둡니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보수와 진보의 근본 가치로 나의 이념을 정의하라면 보수주의자가 맞는 것이지요.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보수와 진보 이념 다 필요합니다. 보수는 빵을 키운다면 진보는 이를 나눠주는 역할을 합니다. 한국은 온전한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고 평가하기도 힘들고 좀 더 빵을 키워야 한다고 봅니다. 현 시점에서 보수 이념이 우선 필요하고, 상대적으로 긴요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보수주의자라 정의한 전성철 회장은 한국에는 보수라고 하면 오해를 불러일으킨다고도 했다. 영어 어휘 ‘컨서버티브(conservative)’의 번역에서 생긴 문제라는 취지이다.

한국에서 보수라면 수구 이미지가 덧 씌워집니다.

“컨서버티브를 더욱 정확하게 보면 ‘보존’입니다. 자유를 비롯하여 인류가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지켜 나가는 것이 컨서버티브인데, 우리말로는 보수라고 번역되니 ‘수구(守舊)’라는 이미지가 덧 씌워지는 것이죠. 보수가 나쁘다고 생각하게 된 원인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보수=꼰대’로 인식되고 수구로 오해받으면서 젊은이들, 개혁주의자들에게서 외면받은 겁니다. 반면 ‘진보(progressive)’는 ‘전진하다’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이니 얼마나 그럴듯해 보입니까. 진보가 이름 덕을 많이 본 겁니다.” 보수의 참뜻에 대해 설명한 전성철 회장은 보수가 개혁적일 수 있다고도 했다.

보수가 수구라는 것은 번역이 초래한 문제
보수가 진보에 비해 개혁적일 수 있어

전성철 회장이 개혁적 보수의 대표 사례로 든 인물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 정치가 벤자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이다. 40년간 영국 하원의원으로 활동하며 두 차례 총리를 역임했던 그는 작가이기도 했다. 대표작은 ‘두 국민’이라는 부제가 붙은 ‘시빌(Sybil)’이다. 산업혁명 시대 노동계급의 현실과 빈부격차를 주제로 한 작품은 저임금 중노동, 가난, 질병 등과 싸우던 소외 계층의 참상을 생생히 그려냈다. 시빌과 찰스로 대표되는 ‘두 국민’은 빈부(貧富)를 상징한다. 작품은 두 국민을 한 국민으로 통합하고자 하는 디즈레일리의 의지를 담았다. 부유한 집안 출신 보수주의자 디즈레일리는 제국주의자였다. 부국강병(富國强兵)이라는 보수의 가치에 충실하며 대외적으로 확장 정책을 폈다. 이집트 수에즈운하 소유권을 매입하고, ‘영국령 인도제국’을 성립하여 인도제국 황제 칭호를 빅토리아 여왕에게 바치기도 했다. 반면 대내적으로는 산업혁명을 거치며 갈라진 영국을 통합하고자 했다. 이 속에서 탄생한 이념이 ‘일국보수주의(一國保守主義·one-nation conservatism)’이다. 디즈레일리는 과격한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와는 거리를 두고 도시 민중, 노동자 계급을 위한 온정적인 복지 확대를 추구했다. 토지를 소유한 젠트리(gentry) 계급과 일부 자본가들에게만 한정되어 있던 선거권을 도시 민중과 노동자 계급에게도 부여했다. 전체 (남성)유권자 비율을 80% 이상 끌어올리는 결과도 받아들였다. 디즈레일리의 총리 재임 시 노동조합법, 근로자주택법, 공장법이 제정돼 도시 노동자의 삶의 질이 향상됐다. 이러한 정책은 경쟁 정당이던 자유당보다 진보적인 것이었다. 디즈레일리의 일국보수주의로 영국은 천천히, 하지만 중단 없이 의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로 전진할 수 있었다. 디즈레일리식 보수주의는 ‘따뜻한 보수’ ‘개혁적 보수’의 상징이됐다.

벤저민 디즈레일리. 대영제국 최전성기인 빅토리아 시대 정치가로서 두 차례 총리를 역임했다. 대외 정책 면에서 제국주의자로서 이집트 수에즈 운하를 매입하고, 인도를 식민지화하여 인도 황제 칭호를 영국 여왕에게 바치는 등 대외 확장정책에 주력했다. 반면 대내적으로는 ‘일국보수주의’를 내세우며 복지 정책 확대, 노동자 삶 질 개선 등을 통하여 분열된 영국을 통합하려 했다. 디즈레일리의 일국보수주의는 이후 마거릿 대처 총리가 집권하기 전까지 영국 보수당의 핵심 이념이 됐다.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세상에서 어떠한 일을 이루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유를 주면서 스스로 하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명령을 해서 하지 않으면 안 되게 하는 것이지요. 자유를 주고 인센티브로 해결하는 것이 보수라면 명령으로 하는 게 진보입니다. 예를 들어 시내에 자동차가 너무 많아 좀 줄이고 싶을 때 진보는 아마도 차량 10부제라는 명령을 내릴 것이에요. 그러나 제대로 된 보수는 그러지 않습니다. 그냥 시내에 들어오는 통행료를 좀 올리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겠죠. 인간이 행복해지려면 ‘배를 고프지 않게’ 해야 하고 ‘배를 아프지 않게’도 해야 합니다. 한꺼번에 두 가지를 추구할 수는 없습니다. 배를 고프지 않게 하려면 경쟁이 필연적이고 결과에 따른 차별이 발생하죠. 배를 아프지 않게 하려면 규제를 해야 하는데 자유가 침해받고 생산력 저하 등의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결국 상황에 따라 어느 쪽을 우선시할 것 인가를 결정해야 하는데 결국 정치의 몫입니다.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의 역할이기도 하고요.”

보수나 진보 모두 극단적으로 가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풍요와 분배는 같이 있어야 합니다. 보수와 진보의 가장 큰 차이점은 보수는 자유를 해치지 않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진보는 자유를 해치는 방법을 사용하죠. 세금을 올리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보수가 추구하는 가치대로 가면 자유는 생기지만 불평등을 수반하죠. 경쟁 때문에요. 진보가 추구하는 가치대로만 갈 경우 극단적으로 가면 사회주의를 거쳐 공산주의로 가게 되는데 역사가 그 결과를 이미 증명했습니다. 때문에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 듯이 보수와 진보가 합리적으로 공존해야 합니다. 그 어떤 가치만을 중시해 극단으로 가서는 안 됩니다.”

성공한 보수·진보 리더십의 예를 들어 주세요.

“로널드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 미국 대통령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는 케네디(Kennedy)-존슨(Johnson)-카터(Carter)로 이어지는 민주당 장기 집권기를 끝내고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 됐습니다. 레이건은 ‘당신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정부를 떨쳐버려라(Get the government off your shoulder)’라는 선거 구호를 내걸고 당선됐죠. 대통령 취임 후 이 이념을 실천했습니다. 시장에서 실시되던 가격과 경쟁 통제 기능 등 정부의 관리·감독 기능을 과감하게 없앴습니다. 모든 부문에 경쟁 체제를 도입하면서 레이건의 8년 재임 기간 7%대이던 실업률은 4.2%로, 10%가 넘던 인플레이션은 4%대로 내려갔습니다. 자유와 선택의 원리를 통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를 실현했죠. 대외적으로는 동유럽 사회주의와 냉전에서 승리하고요. 진보 지도자 중에서도 ‘자유와 선택의 원리’를 적용해 성공한 사례가 많습니다. 토니 블레어(Tony Blair) 영국 총리가 있습니다. 역시 대처(Thatcher)-메이저(Major) 총리의 보수당 장기 집권 후 정권 교체에 성공한 블레어는 진보정당 당수임에도 보수당 정부의 정책을 계승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처 재임기에 ‘영국병’에서 탈출한 영국 경제를 더욱 강건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블레어 총리 재임 시 영국 경제는 연속 3% 성장을 거듭했고, 완전 고용에 가까운 상태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블레어 총리가 보수당인 줄 착각할 정도였는데, 그는 ‘공평과 평등’이라는 진보정당의 기본 목표는 지키면서 ‘자유와 선택’이 새롭게 개발돼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일부 진보 정치인이 친(親)노동 정책을 펼치지 않는다며 ‘배신자’라고 했지만, 그의 신념은 영국을 부강하게 만들었습니다.”

로널드 레이건(우) 전 미국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좌) 전 영국 총리. 전성철 회장은 성공한 보수 리더십의 사례로 레이건과 대처를 꼽는다. 두 지도자는 ‘자유’라는 보수의 핵심 가치를 꿰뚫고 있었다. | 연합뉴스.

한국 대의민주주의 위기 원인으로 사법부 독립 문제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아주 적절한 지적입니다. 미국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의 70% 정도는 ‘사법부 우위 원칙’에서 비롯됩니다. 미국 연방 대법관을 종신직으로 해서 임명 후 국가 헌정 체제 수호와 사회 정의 확립을 위해서만 일하도록 한 것이 대표적이죠. 대법관이 되면 오로지 국가의 미래와 헌법 정신만을 생각하게 제도적으로 만들고 운용하는 것인데 이를 설계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의 위대한 점이라 생각합니다.”

미국 대통령은 2년마다 국민이 내준 시험 통과
중임제는 책임 정치를 가능케 하는 제도적 장치

미국식 대통령제는 미국 외에는 성공한 사례가 드뭅니다. ‘()대통령제라 하여 독재의 수단으로 변질되기도 합니다. 한국의 ‘제왕식 대통령제’도 그 범주에 속하는데 해결 방안은요?

“미국식 대통령제가 잘 운영되는 것은 헌법에 기인합니다. 대통령 중임제도 있고요.” 이렇게 전제한 전성철 회장은 미국식 대통령제와 선거제도의 장점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가장 중요한 요인이 미국의 대통령은 2년 만에 한 번씩 반드시 국민의 평가를 받는다는 점입니다. ‘중간선거’라 불리는 총선이죠. 2년마다 미국 하원 의원 전원, 상원은 전체 의원 1/3을 새로 선출하고요. 대통령이 취임해서 바로 2년 후 치르게 되는 첫 총선에서 여당이 패배하면 나머지 2년 간 대통령은 레임덕에 걸립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업적을 제대로 내기 힘들어지는 겁니다. 업적 없는 대통령이 2년 후 재선이 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합니다. 한마디로 단임으로 끝나야 하는 것이에요. 단임 대통령은 예외 없이 ‘실패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낙인이 찍히는 겁니다. 미국 대통령은 재선 여부에 따라 1류, 2류 혹은 우등생과 열등생으로 갈립니다. 쉽게 말해 대통령 취임 후에도 열심히 노력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죠.” 이렇게 중임(重任)제의 장점을 설명한 전성철 회장은 “대통령 단임제는 임기 중 재선을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적합하지 않다”며 4년 중임제 개헌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전성철 회장은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대한민국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변곡점에 서 있으며 여기서 낙오하면 따라잡는데 100년은 더 걸릴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더하여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한 자유와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 때 입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자유와 선택’이라는 바로 ‘보수의 영혼’이 이렇게 필요한 때는 없었습니다”라며 사회 변화를 이끄는 보수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