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일국양제’ 좌절된 中 공산당, 군사적 위협 노골화

주정우
2021년 4월 12일
업데이트: 2021년 4월 12일

1980년대 중국 최고권력자였던 덩샤오핑(鄧小平)은 대만 문제 해결을 위해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구상했다.

덩샤오핑은 1997년 7월 1일 영국으로부터 홍콩이 반환되자 대만을 통일하기 위한 예행연습으로 홍콩에서 일국양제를 실시했다. 홍콩에서 일국양제 경험을 쌓아 대만에 적용할 의중이었다.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덩샤오핑-장쩌민-후진타오로 이어지는 지도자 계보를 이은 시진핑은 2019년 1월 일국양제로 대만과 통일하는 방안을 담은 담화를 발표했다. 22년전 덩샤오핑의 계획을 마무리 짓겠다는 선언이었다.

여기서 돌발 변수가 발생했다. 그해 6월, 아시아 민주주의의 최전선인 홍콩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송환법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송환법 반대를 내세웠지만 이 시위의 본질은 반(反)중, 반중공이었다.

중공은 늘 그랬던 것처럼 강압으로 억눌렀다. 1989년 톈안먼 시위 때도 그러했고 1999년 파룬궁의 항의 때도 그러했다. 2009년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는 시위대를 강경 진압해 150여 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마오쩌둥은 10년 주기로 민중을 탄압해야 권력이 유지된다는 주장을 편 적이 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피를 흘리게 해야 정권을 안정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공교롭게도 그의 주장대로 중공의 역사는 흘러왔다.

1979년 1월28일 미국과 국교 수립 직후 중 미국을 방문한 덩샤오핑(왼쪽) 주석이 텍사스의 한 로데오 경기장을 방문해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있다. | 연합뉴스

중공은 2019년 6월 12일을 기점으로 홍콩에 대한 진압을 강경에서 폭력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로써 홍콩의 일국양제는 유명무실해졌다.

이 사건으로 대만의 민심은 크게 반전됐다. 이전까지 대만인들 상당수는 홍콩의 체제가 그럭저럭 보장되는 것을 보면서 일국양제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완화된 상태였다.

그러나 2019년 중공의 폭력진압으로 홍콩인들이 얻어맞고 사지로 내몰리는 것을 목격하게 된 대만인들 대다수는 “저게 곧 우리의 모습이 될 것”이라고 걱정하며 일국양제 반대로 돌아섰다.

2021년, 대만에서는 네 차례의 민주적 투표가 실시됐다. 대통령 선거와 입법회 선거 그리고 한궈위(韓國瑜) 가오슝 시장 탄핵과 천치마이(陳其邁) 가오슝 시장 선출 선거였다.

이 네 차례의 민주적 투표에서 중공은 온갖 방법으로 개입하며 부정선거를 저질렀지만, 유권자들의 표심은 부정선거를 뛰어넘을 정도로 확고했다. 이 선거 최대 쟁점은 후보자들의 중공에 대한 태도였다.

절대적인 열세에서 재선에 나섰던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후보는 홍콩 탄압으로 촉발된 대만인들의 자주독립 열망 속에 뜨거운 지지로 총통 연임에 성공했다. 총선에서도 민진당 의원들이 대거 승리하며 의회 다수당 지위를 지켜냈다.

또한 대만의 제2 도시 가오슝 시장에도 민진당 후보가 당선됐다. 가오슝 현직 시장이었던 국민당 한궈위 후보는 총통 선거에서 패배한 데 이어 시장 직위에서도 파면됐다. 중공의 지원을 받은 그는 한때 돌풍을 일으켰으나 오히려 중공과의 관계 때문에 발목이 잡혀 정치적으로 몰락했다.

중공은 그동안 온라인 공간에서 여론 공작을 펴고, 군대를 동원한 무력시위로 대만을 위협하며 정치인과 대만인들을 압박했으나 일국양제로 대만을 통일하겠다는 중공의 야망은 철저하게 무산됐다. 이는 중공이 수시로 전투기를 띄우며 대만을 들볶게 된 이유다.

전략 변경도 포착된다. 중공은 지난 4일 첫 항공모함 랴오닝함과 구축함 등 6척을 미야코해협을 통과시켜 대만 인근 해상에서 훈련을 진행하며 또다시 대만을 겁줬다. 일국양제가 좌절되자 군사적 위협을 노골화하는 형태다.

미국도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5일부터 미국 등 쿼드 4개국(미국, 일본, 캐나다, 인도)은 프랑스와 함께 인도 벵골만에서 사흘간 합동 군사훈련을 펼쳤다.

일국양제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갈등은 이제 대만을 사이 두고 쿼드 4개국 대 중공의 군사적 갈등으로 격화될 조짐이다.

덩샤오핑이 구상한 일국양제를 따르던 중공은 절대로 미국과 패권을 다투지 말라는 그의 유훈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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