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구직자들 ‘좋은 일자리’ 좇다 동남아서 노예로 전락…“일대일로 영향”

정향선 인턴기자
2022년 08월 20일 오후 1:47 업데이트: 2022년 08월 20일 오후 1:47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에 참가한 동남아 국가들이 중국계 범죄자들에 의해 인신매매, 불법 도박, 인터넷·통신 사기 심지어 강제 장기적출 등 범죄의 온상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대일로는 중국 당국이 추진 중인 ‘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다. 

캄보디아에서 현대판 노예 ‘주자이’가 된 대만 구직자들

최근 중화권 매체들은 캄보디아에서 각종 범죄 행위를 강요당한 ‘주자이(豬仔·새끼 돼지)’라는 현대판 노예들의 피해 사례와 구출 소식을 연일 전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높은 연봉은 물론 숙식도 제공한다”는 거짓 구인 광고를 보고 동남아를 찾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16일 대만 중앙사는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의 인신매매 범죄 집단으로부터 구출된 피해자들의 사연을 전했다. 

대만 여성 피피는 시아누크빌에서 일주일 사이에 4차례나 인신매매를 당했다. 그는 갇혀 있던 곳에서 다른 피해자가 범죄집단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빌딩에서 뛰어내리다 발이 골절된 사건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신고했으나 그들마저 범죄자들에게 매수된 터라 피해자를 돕지 않았던 사례도 들은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17세 대만 남성은 올해 4월 캄보디아에 도착하자마자 범죄조직에 여권을 뺏긴 채 온라인상에서 투자 사기를 벌이도록 강요당했다. 그 과정에서 범죄 조직원들은 폭력과 전기봉을 사용했다.

끝내 범죄조직의 요구에 불응한 이 남성은 또 다른 범죄조직으로 수차례 팔려갔다. 몇 단계를 거쳐 태국으로 이송된 그는 태국에 주재하는 대만 당국자와 연락이 닿아 간신히 구출됐다. 

중앙사는 대만 당국의 통계자료를 인용해 작년 6월 21일부터 올해 8월 10일까지 대만 국민 222명이 “캄보디아에 일자리를 구하러 갔다가 자유가 박탈됐다”며 당국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또 대만 경찰청은 같은 기간 내에 유사한 사건을 최소 213건 접수했다고 매체는 전했다. 

18일 중앙사가 대만 당국을 인용해 보도한 데 따르면 올해 3~7월 실명이 밝혀진 피해자는 373명이며 이 중 40명만 구출됐다. 대만 당국은 나머지 333명을 구출하는 작전을 펼치고 있다. 

홍콩 당국도 동남아에 갇힌 ‘주자이’ 구출 나서 

대만 사람들만 ‘주자이’가 되는 건 아니었다. 중앙사에 따르면 홍콩 당국도 18일 전담팀을 구성해 미얀마에 잡혀 있는 홍콩 출신 주자이 8명을 구출하는 작전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홍콩 보안국 줘샤오예(卓孝業) 부국장은 지금까지 홍콩 시민들의 구조 요청은 20건으로 집계됐으며 그들은 각각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그리고 라오스 등에 잡혀 불법 노동에 투입됐다고 말했다. 

국제 구호단체 “이용 가치 사라진 주자이, 강제 장기적출당해”

동남아에서 갇혀 있는 주자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KK가든(KK園區)’으로 팔려가 강제로 장기를 적출당하는 것이다. 

14일 대만 중시신문망(中時新聞網)은 국제구호조직 GASO 관계자 새미(Sammy)를 인용해 “미얀마에 동남아 인신매매의 종점 ‘KK가든’이 있다”고 보도했다. 

새미에 따르면 ‘주자이들의 지옥’으로 알려진 KK가든에는 피해자가 1000명 정도 갇혀 있다. 인신매매를 여러 차례 당한 뒤 더 이상 이용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주자이는 이곳에 팔려 온다. 이곳 범죄자들은 ‘쓸모없는’ 주자이를 전신마취한 다음 바다 한가운데로 데려가 장기를 적출하고 시신은 바다에 버린다. 하지만 미얀마 정부도 손쓸 방법이 없다. KK가든이 미얀마 군부가 통제하는 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KK가든의 소유주 중 한 명으로 지목된 40세 중국인 서즈쟝(佘智江)이 태국에서 불법 도박장을 운영한 혐의로 잡히면서 KK가든 범죄가 세상에 드러났다. 

말레이시아 성주일보(星洲日報)의 15일 자 보도에 따르면 서즈쟝은 한때 동남아 화교를 대표해 중국 화교상인연합회 부회장을 맡았다. 그는 미얀마, 캄보디아, 필리핀에서 온라인 도박 집단을 구축하고 태국과 미얀마 국경에서 대형 도박장을 세웠다. 서즈쟝은 해당 도박장을 ‘일대일로’ 프로젝트 중 하나라고 주장했지만 중국 당국은 강하게 부인했다고 매체는 전했다. 

RFI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유치한 동남아 도시, 인터넷 사기 범죄의 온상으로 전락”

프랑스 RFI 라디오는 17일 ‘동남아는 일대일로 때문에 범죄 집단의 온상이 됐다’는 논설을 통해 동남아가 범죄자들의 ‘천국’으로 전락하게 된 계기를 분석했다. 

RFI는 “중국 당국의 일대일로 전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는 대량의 중국 자본, 인력, 건설 프로젝트가 들어오면서 현지 취업 시장도 많이 활성화됐다”면서도 “원래 조용했던 시아누크빌은 짧은 몇 년 사이에 중국계 기업과 도박장의 집결지가 됐다”고 전했다. 

미국 싱크탱크 ‘제임스타운 재단(Jamestown Foundation)’은 지난 3월 25일 발간한 잡지 <차이나 브리프(China Brief)>에 범죄 위험 관리 전문가인 전 홍콩 경찰 마틴 퍼브릭(Martin Purbrick)의 기고문을 실었다.

퍼브릭은 기고문에서 “중국 본토의 범죄 집단들은 일대일로를 명분 삼아 동남아에 진출해 대대적으로 사기, 도박, 인신매매, 희귀 동물 및 약재 도매, 불법 자금 세탁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아시아 전역으로 확장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중국계 이민이 아시아 국가로 나가고 있으며 이를 통해 범죄조직들도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등의 국가에서 활개 치고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