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판 공수처’ 염정서 사례가 한국에 주는 시사점

최창근 객원기자
2020년 11월 26일
업데이트: 2020년 11월 27일

24년 간 논란과 진통 끝에 출범… 유명무실한 ‘옥상옥’을 만들었다는 비판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출범 문제로 정국이 뜨겁다.

한국과 같은 ‘대륙법’ 국가이자 앞서 공수처를 도입한 대만 사례에서 배울점은 무엇인가.

대만(臺灣)은 비교정치학자들이 ‘지구상에서 한국과 가장 유사한 나라’로 꼽는다. 역사 궤적, 정치・경제 발전 수준도 유사하다. 사법(司法)체계 면에서는 한국과 같은 대륙법 국가라는 점에서도 같다. 오랜 논의와 진통 끝에 반부패기구 염정서(廉政署)를 출범 시키고 운용 중인 대만 사례는 한국에 어떤 시사점을 줄까?

중국의 과거(科擧)제도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실적주의(實績主義・merit system)에 바탕을 둔 관리 선발제도이다. 수(隨) 문제(文帝) 재위기 시작되어 명(明)・청(淸) 대 이르러 제도가 완비됐다. 오랜 관료제 전통만큼 역대 중국 왕조들은 부패로 골머리를 앓았다. 청 옹정제(雍正帝)는 관료 부패를 제도적으로 막기 위해 양렴은(養廉銀)이라는 특별 수당을 지급했을 정도다.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 결과, 1912년 1월 1일 건국된 중국 역사상 첫 민주공화국 중화민국(中華民國) 정부는 국가 운영의 근간이 되는 관리 선발과 부패 방지를 위하여 사법・입법・행정 3권에 고시・감찰권을 더하여 5개 권력기관이 서로 견제하게 하는 세계 유일의 5권 분립제를 채택했다.

 

감찰권이 독립된 5권 분립제 헌법, 방대한 사정 기구

고시권과 감찰권을 독립 시켜 관리 선발과 부패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 했지만, 중화민국 국민당정부는 고질적인 관료 부패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패배한 주요 원인도 군인・관료 부패였다.

1949년 국부천대(國府遷臺・국민당정부 대만 파천) 이후, 대만에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게 된 중화민국 정부도 관료 부패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결과는 방대한 규모의 사정(査正) 기구 창설로 이어졌다.

대만의 중화민국 정부는 총리급 부처로 감찰원(監察院)을 두고 있고, 법무부 산하 최고검찰서(한국 대검찰청 해당), 법무부조사국(法務部調査局・미국 연방수사국(FBI)나 영국 정보청 보안부(MI5)에 해당하는 특수수사・방첩기관), ‘경찰’조직인 내정부 경정서(警政署)도 존재한다. 이들 기관은 상호 견제하며 반(反) 부패 업무를 수행해 왔다. 문제는 사정기구의 존재에도 관료 부패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새로운 반부패기구 창설의 근본 원인으로 작용했다.

1987년 7월, 장징궈(蔣經國) 총통 집권 말기 103명의 입법위원(국회의원 해당)이 행정원 산하 ‘부패방지국’ 창설을 제안했다. 입법원 원내 논의 중이던 이듬해 1월, 장징궈가 지병으로 사망하면서 부패방지국 창설도 물거품이 됐다. 후임 총통이 된 리덩후이(李登輝)는 부패방지국 설치에 소극적으로 임했다.

2000년 5월, 여・야 간 정권 수평 교체로 민주진보당 천수이볜(陳水扁) 정부가 출범했다. 스타 변호사 출신의 천수이볜은 새로운 반부패기구 창설에 적극적이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행정원 법무부 산하 조직으로 염정서(廉政署)를 설립하기로 했다. 2000년 10월 ‘법무부조직법개정안’・’법무부염정서조직조례안’이 작성됐으나, 당(黨)・정(政) 협의중 유야무야 됐다.

천수이볜 2기 정부 시기인 2005년 10월, 행정원은 ‘염정서조직법안’을 입법원에 송부하였으나 입법원에서는 2년 넘게 계류시켰다. 결과적으로 2000~2008년 8년 간 천수이볜 총통 집권기에 염정서조직법안은 입법원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자동폐기 됐다.

2008년 5월 취임한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총통은 취임사에서 “임기 내 강력한 권한을 지닌 반부패기구 창설”을 천명했다. 국립대만대 법대를 거쳐 미국 뉴욕대・하버드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율사’ 총통의 의지 하에 새로운 반부패기구 창설은 속도를 냈다.

마잉주 총통 취임 이틀 후인 2008년 5월 22일, 법무부는 ‘중화민국 반부패기관설립 평가보고서’를 제출하고 반부패기관 설치를 공포했다. 7월 27일, 법무부 조직 조정・기획소조(小組・태스크포스팀)는 법무부 조직개편안을 초안했다. 다만 마잉주 총통 임기 내에도 염정서 출범은 장담할 수 없었다. 검찰 등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 거셌다. ‘옥상옥’을 만든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러한 사정 속에서 염정서 출범의 촉매로 작용한 사건이 발생했다. 2010년 발생한 법조비리 사건이다. 판사가 뇌물을 받고 무죄를 선고한 사건으로 관련 판사 4명에게 징역 11~20년, 검사 1명에게 징역 6년, 변호사 1명에게 징역 1년 6월형이 선고됐다. 같은 시기 대만의 청렴성지수도 경쟁 국가에 비해 낮은 것으로 평가받았다.

제도적 문제도 있었다. 대만의 부패사건 수사·기소는 검찰이 담당했다. 특수 수사 전담기관으로 법무부 조사국, 정풍기관으로 법무부 정풍사(司)가 존재했지만, 검찰이 수사권·기소권을 독점하는 대륙법 시스템 속에서 두 기관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모든 형사 사건을 검찰에 송치해야 하는 전건송치주의, 검찰이 기소를 전담하는 기소독점주의를 채택한 현실 때문에 검찰의 업무는 자연 과중됐다. 부패 관련 수사에 전념하기 힘든 형편이었다. 이속에서 새로운 반부패기구 창설 필요성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2010년 12월, ‘법무부산하 부패방지독립위원회(염정서) 조직법초안’이 입법원 사법・법제위원회에서 가결됐다. 법안은 이듬해 4월, 입법원 본회의도 통과했다. 2011년 4월 20일 마잉주 총통은 ‘법무부산하 부패방지독립위원회(염정서) 조직법’을 공포했고, 7월 20일 법무부 산하 차장(차(관급) 부처로 ‘법무부염정서’가 공식 출범했다. 초대 서장으로 검사 출신으로 법무부조사국 정풍실(政風室) 주임・법무부 법률사무사장(司長・국장 해당) 등을 역임한 저우즈룽(周志榮)이 임명됐다.

 

총정원 240명, 서열 1위 신설 기구의 위용

신설 조직 염정서의 위상은 높다. 한국 부처 외청(外廳)에 해당하는 대만 행정원 법무부 산하 5서(署)・1국(局) 중 기성 조직인 교정서(矯正署・한국 법무부 교정본부 해당), 행정집행서(行政執行署), 조사국, 최고검찰서, 대만고등검찰서(고등법원에 대응하는 대만 유일 고등검찰서)를 앞서는 서열 1위다.

염정서는 서장 1인, 부(副)서장 2인 예하에 종합규획(綜合規劃)・방탐(防貪)・숙탐(肅貪)・정풍업무(政風業務)조 등 4개 업무조직을 두고, 지원조직으로 비서・인사・회계실 등 3실(室)을 설치했다. 지방조직으로 대만 전역을 3개 권역으로 나눠 남・북・중부지서(支署)를 두고 있다. ‘법무부 염정서 조직법’에 따른 조직 총정원은 240명이다.

업무는 크게 반부패정책의 수립과 추진 등 기획, 부패행위 단속, 부패 방지, 정풍 등 4개 부문으로 나뉜다. 핵심 업무인 부패 범죄 수사는 염정관(廉政官)이 담당한다. 주서(駐署・파견)검사도 존재하는데, 수사·기소 관련 염정관을 지휘한다. 검찰이 수사권·기소권을 행사하는 대륙법에 기반을 둔 대만 형법 체계에 따른 것이다.

별도 기구인 검찰이 염정서 수사를 지휘할 경우 발생하는 제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다. 영미법 계통인 홍콩, 싱가포르와 달리 대륙법 계통인 대만에서 사법권을 가진 염정서를 총통이나 행정원장 산하로 할 경우 수사 주체인 검사가 사법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도 반영된 결과다.

염정서는 인지(認知)·고발 사건을 크게 부패사건과 일반사건으로 분류한다. 전자는 직접 수사, 후자는 자체 처리나 검찰·경찰·법무부 조사국 등 관련 기관 이첩(移牒)이 원칙이다.

염정서 핵심 조직인 숙탐조는 ‘형법’을 비롯한 각종 ‘형사법’・’공직자이익충돌방지법’・’공직자재산신고법’・’공무원청렴윤리규범’ 등 각종 반부패관련 법률・규정・지침을 위반한 정부부기관・공공기관・교육기관 외 군(軍)・민(民) 분야 공직자・임직원 부패 관련 조사와 법 집행업무를 담당한다.

서(署) 업무의 중추인 염정관(廉政官)에는 검사・법무부조사국 요원에 버금가는 권한이 부여된다. 구체적으로 수사권・조사권・압수수색권・계좌추적권・정보자료제출요구권・비상시 무영장 체포권・기소요구권 등이다. 염정서 수사 후 기소 여부 판단은 검찰 기소독점주의를 채택한 대륙법 체계에 따라 파견검사가 전담하며, 경우에 따라 최고검찰서 소속 전담 검사가 맡기도 한다.

2011년 출범 후 2018년까지 염정서는 1453명의 부패 혐의자 수사를 진행 했다. 대상은 간임(簡任・한국 차관~3급 해당 고위공직자 직급)급 이상 고위공직자 129명, 각급 지방자치단체장・지방자치단체 의원을 망라한다.

 

출범 10년째 염정서 평가 비판적

2021년이면 출범 10년 차를 맞이하는 염정서에 대한 평가는 비판적이다. ‘부처 산하 독립기구’라는 제도적 제약을 극복하지 못한 채 검찰에 예속된 기구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기존 사법원・감찰원 산하 특별정사정팀(特別偵伺組), 법무부 조사국・최고검찰서, 내정부 경정서 조직과 업무가 중복되는 ‘옥상옥’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고위 공직자 비리를 포함한 ‘거악(巨惡) 수사’의 대명사로 인식돼 온 법무부조사국과 업무충돌이 잦아 법무부장(장관)이 조정・중재에 나서는 경우도 잦다. ‘게이트’라 할 만한 대형 부패사건을 수사한 실적이 미비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영미법 제도에 기반을 둔 홍콩・싱가포르의 반부패기구를 대륙법 국가인 대만에 이식하려다 유명무실한 기구를 만들었다는 평가도 있다. 200명 정도 소규모 조직이 지니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 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실제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는 여전히 법무부 조사국이나 검찰에서 이뤄지고 있는 형편이다.

염정서와 직접 상관관계는 밝힐 수 없으나, 대만 국가청렴지수(CPI) 상승은 주목할 만 하다. 염정서 출범 전인 2008년 39위로 40위를 기록한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었던 대만 국가청렴지수는 염정서 출범 이듬해인 2012년 37위, 2014년 36위, 2018년 31위로 매년 상승하고 있다.

출범을 앞두고 막바지 진통을 겪고 있는 한국 공수처에 대만 염정서는 어떤 반면교사(反面敎師)와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까. 성공에서 배우고 실패는 되풀이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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