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중국 의사가 겪은 심상치 않은 장기이식 수술

2020년 7월 24일
업데이트: 2020년 7월 24일

“사전 준비를 막 마치자 (이식할) 간이 도착했습니다. 모든 게 질서 정연하게 배치된 듯했습니다.”

저장대학 부속병원의 의사 A는 2011년 어느 날 심야에 진행된 간 이식 수술에 참여했다. 당시 실습의(實習醫)였던 그는 이날 밤 겪은 일과 인터넷 방화벽을 우회해 본 정보 때문에 그 후 장기 이식을 피하게 됐다.

이날 심야에 간 이식 수술을 한 장소는 저장대학 의과대학부속 제1병원으로, 이 병원은 중국에서 최대급 장기이식센터 중 하나다.

2019년 12월 19일 의사 A가 기자에게 “내심 충격이 너무 큰 데다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며 “나중에 근무한 병원도 이런 일(장기 이식)을 적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택했다”고 했다.

사안의 심각성 때문인지 그는 기자에게 자신의 학사‧석사 학위 증서, 의사자격증 원본 등을 보여주었다.

“수술실에 공안 복장이 많이 비치돼 있었어요”

당시 A는 저장의과대학에서 임상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는데, 이 기간에 많은 실습이 필요해 저장의 각 병원을 돌면서 실습해야 했다. 그는 항저우 일대 병원은 거의 다 가봐서 주요 과(科)의 사정을 비교적 잘 알고 있고, 보고 들은 것도 많다고 했다.

그는 2011년 그날 밤에 겪은 충격적인 일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실습 기간에 제2조수 신분으로 간 이식 수술에 참가했어요. 저장대학 제1부속병원은 간 이식 부문에서 권위가 있고 화둥(華東) 지역에서는 간 이식 수술을 가장 많이 해요.”

그날 저녁 11~12시쯤 이미 취침에 들어간 상태였는데 집도의가 그를 찾았다.

“그가 전화로 ‘사람이 부족하다’면서 나더러 올 수 있는지 물었어요. 당시 나는 배우고 싶었던 터라 ‘기회가 있다면 당연히 가야지요’라고 했어요.”

그는 그날 보았던 특이한 상황들을 하나하나 짚었다.

“수술실에 딸린 탈의실에는 밤에는 일반인 옷이 매우 적은데 공안 복장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어요. 탈의실은 내부인용인데 어떻게 공안복이 있을 수 있을까 싶었어요?”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집도의의 수술대로 갔어요. 그것(수술대)은 한칸 한칸씩 나뉘어 있었는데 나는 지정된 칸에 들어갔어요. 바로 이식 수술을 할 칸에요. 나중에 이식할 간을 다른 곳에서 가져왔습니다.”

“우리 옆 칸을 지나올 때 보니 몇 사람의 의상이 우리와 달랐어요. 수술실에서 입는 옷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의사들이 입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외부인들이 입는 것이죠. 내가 본 두 명은 외부인의 방호복을 입고 있었는데, 둘 다 체격이 아주 건장했어요.”

“간 이식과 각막 이식 수술이 동시에 진행됐어요”

“나중에 우리 팀이 수술을 시작했는데, 수술 준비가 다 되자 그것이, 즉 간이 왔습니다. 모든 게 질서 정연하게 배치된 것 같았습니다. 장기 제공자의 수술이 옆 칸 수술대에서 진행된 듯했어요. 지나올 때 외부인 복장을 한 사람들을 봤거든요.”

“이날 이식 수술을 받은 사람은 간경화 환자였습니다. 이날 수술은 아주 오래 했습니다. 밤 11~12시에서 다음 날 아침 7~8시까지 했어요.”

이식 수술 장면. | 에포크타임스 DB

“나중에 들어보니 각막 이식 수술도 했다고 하더군요. 바로 옆 수술대에서 안과의사가 수술을 했다는 얘깁니다. 한날한시에 필요한 간과 각막을 구했다는 건데, 각막은 적합한 타입을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각막이 생기면 환자가 그곳으로 가는 게 일반적입니다.”

“일반적으로 각막 이식과 간 이식은 같은 시간에 하지 않는데, 이날 밤에는 여러 수술이 동시에 진행됐어요. 이런 배치는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곳이 마치 공장처럼 모든 게 한 곳에서 진행됐어요. 이는 장기 제공자에게 있는 것(장기)은 모두 가져다 쓸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장기 제공자는 정치범이 틀림없어요”

A는 비록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그날 밤 자신이 겪은 정황에 근거할 때 불법 장기 적출 가능성이 높다고 여겼다.

“정치범이 틀림없어요. 그게 아니라면 경찰이 올 필요가 없죠. 만약 자발적인 기증자였다면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간 이식 구역의 다른 팀에서 인턴을 할 때 주임의사 정수썬(鄭樹森)에게 들은 말이 떠올랐다.

“내가 왜 나중에 (강제 장기 적출)을 생각하게 됐는지 아십니까? 그(정수썬)가 ‘지금은 (장기 공급)이 예전처럼 많지 않다’고 했어요. 전에는 아주 많았는데 지금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했죠.”

그는 그 말을 생각하다 가슴이 철렁했다고 했다.

“‘전에는 어떻게 그렇게 많을 수 있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하다 나는 ‘아뿔싸! 지난번에 본 게 이것(생체 장기 이식)일 수 있겠구나’ 싶었죠.”

그가 말한 정수썬은 저장대학 제1부속병원 장기이식센터 책임자로, 소위 다장기(多臟器) 연합이식수술을 선도적으로 개척한 인물이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17년 12월까지 정수썬이 이끄는 팀은 간 이식을 2300여 건이나 했다. 2005년 1월 28일에는 하루에 5건을 하기도 했다.

정수썬은 2007년부터 의사 직분 외에도 의학과는 무관한 저장성 반사교(反邪敎)협회 부이사장을 맡고 있었는데, 이 조직은 파룬궁 박해를 전담하고 있다.

장기 이식 수술이 대폭 감소한 이유

그는 생체 장기 적출에 관해 어느 정도 알게 됐다고 했다.

“나중에 인터넷 봉쇄를 돌파해 이 일(중공이 파룬궁 수련생들의 생체에서 장기를 적출한 일)을 알게 됐고, 일부는 사소한 대화 중에서 들은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직접 이 일을 목격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죠.”

그는 가장 실제적인 단서로 ‘수술 건수’를 언급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정수썬이 말했던 장기가 많지 않았던 때는 대략 2015~6년경이다.

“그때 내가 인턴으로 두 번째 순환 근무를 할 시기였는데, 그때 이미 이식 건수가 줄어들었어요. 수술 건수가 대폭 감소한 건 확실합니다. 왜 그리됐을까요? 또 과거에는 어떤 이유로 그렇게 많았을까요? 원인은 하나입니다.”

비록 정수썬이 원인을 말하진 않았지만, 공개된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2015년 국제적으로 강력한 비판에 직면한 중국 공산당은 2015년 1월 1일부터 시민들의 자발적인 장기 기증만을 유일한 장기 공급원으로 삼는다고 발표했다.

당국에 등록된 간과 신장 이식 건수가 당국이 발표한 사형수 숫자보다 훨씬 많다. 이는 이식 장기 대부분이 파룬궁 수련생들의 생체에서 나온 것임을 의미한다. | 에포크타임스 제작

중공은 줄곧 장기 출처를 밝히길 거부해왔지만, A의 견해는 확고했다.

“내가 듣기로는 처음에는 파룬궁 수련생들이 분명 (장기 공급의) 아주 많은 부분을 차지했어요. 왜냐하면 정치범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죠. 다른 곳에서는 집중적으로 (장기가) 나올 데가 없어요.”

중국의 장기 이식 시장은 1999년부터 2007년 사이에 신속하게 성장했다. 2003년에는 중국 장기 이식이 갑자기 폭발적으로 증가함으로써 중국으로 장기를 이식받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붐이 국제적으로 일어났을 정도였다. 저장대학 1부속병원을 포함해 중국의 일부 병원의 장기 이식 대기 시간은 불가사의할 정도로 짧아서 평균 1~2주에 불과하다(외국에서는 보통 2~3년을 기다려야 한다).

2008년 11월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발표한 보고서는 “중국의 장기 이식 붐과 파룬궁 박해는 거의 동시에 일어났으며, 이것은 사람들의 우려를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고 명확히 밝혔다. 국제사회 또한 중공의 범죄 행위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양심상 간 이식 분야를 피하고 싶었어요”

국제사회는 생체 장기 적출을 중단하라고 압력을 가했지만, A를 포함한 의대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경력’이었다. A도 예외가 아니었다고 했다.

“당시에는 마치 (장기 이식) 형세가 아주 좋아 보였고 이 분야를 선택하면 병원에 남을 수 있었어요. 저의 많은 동창이 (장기 이식) 병원으로 갔어요.”

본과 2, 3학년 때는 의대생들이 지도교수를 선택할 시기다. 당시 이식 수술에 대한 수요가 폭증했기 때문에 장기 이식을 할 의사도 많이 필요했다.

그는 당시 저장대학 1부속병원의 주력 분야가 간 이식이었기 때문에 정수썬 주임 밑에 인원이 특히 많았고 추천도 많이 했다고 했다.

“정상적인 과(科)의 주임인 경우 대학원생으로 들어가더라도 꼭 병원에 남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어요. 하지만 거기(정수썬 주임)는 가기만 하면 남게 해줄 수 있다고 했어요. 우리가 정 주임이나 그 밑에 있던 다른 교수를 선택하기만 하면 병원 스태프로 확실히 남을 수 있었죠.”

A가 소속된 곳은 간담(肝膽) 이식, 일반외과, 정형외과 등을 포함하는 외과 파트였다. 그는 양심의 선택을 해야 하는 곳에 있고 싶지 않아서 간담 이식 지도교수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했다.

“바로 이런 것(장기 이식)과 멀어지고 싶었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이미 (파룬궁 수련생 생체 장기 적출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른 척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죠.”

그는 많은 의사가 일단 특정 분야에 참여하게 되면 거기에 국한돼 다른 분야에 들어갈 기회가 거의 없다고 했다.

“나중에 나는 그들(간 이식 팀)의 일선에 들어갈 만한 충분한 이유가 없었어요. 지금 내가 가는 수술실을 포함해서 나 역시 나에게 지정된 곳만 갑니다.”

저장대학 의학부 건물. | 위키 백과

의사들이 말하는 ‘사형수’는 누구인가?

마취를 하지 않고 장기를 적출하는 수술은 실제 해본 사람만이 상황을 알 수 있는데, A는 참여한 적이 없다고 했다.

“장기를 적출하는 일은 그(이식 의사)를 지도교수로 선택한 후 그의 대학원생이 돼야만 비로소 할 수 있어요.”

A는 당시 이식 분야를 선택한 자신의 동창들은 일부 내막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들은 (장기 제공자가) 사형수라고 했어요. (상부에서) 그들에게 사형수라고 했죠.”

A는 생체 장기 이식 수술을 접했을 때의 상황에 대해서 언급했다.

“(수술을) 하러 갈 수밖에 없었어요. 지도교수가 가라고 시켰기 때문에 갈 수밖에 없었죠. 가급적 많이 묻지 않았는데, 그래야 아는 걸 피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내부에서 토론할 때 감히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고 (아주 작은 목소리나 입 모양만으로) ‘파룬?’ 이렇게 묻곤 했지요.”

“당시 몇몇 동기나 선배들에게 궁금한 척하면서 ‘이것이 (파룬궁 수련생 장기) 아닌가요?’라고 물으면 그들은 낮은 소리로 ‘응, 응’ 하고 시인하면서도 감히 말하지는 못했어요.”

“파룬궁 수련생 장기라는 증거가 많아요”

A는 의대 졸업 후 인터넷 방화벽을 우회해 강제 장기 적출에 관한 보다 많은 사실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인터넷 봉쇄를 돌파하고 나서야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죠. 나중에야 비로소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것들이 하나로 연결됐어요. 처음에는 부분적으로 알고 있어서 연결하지 못했죠. 하나로 연결하는 것은 사실 이런 변화를 그대로 겪는 것 같았어요.”

“이것을 알았을 당시 충격이 아주 컸어요. 내가 본 것을 포함해서 많고도 확실한 사실들이 있기 때문에 반박할 수 없다고 느껴졌어요.”

“이것이 바로 나중에 중국에서 이식 논문마저 발표하지 못하게 한 원인이죠.”

A가 대학원생일 때 해외에서는 이미 중국 이식 의사의 논문 발표를 금지했다. 심지어 정수썬의 논문마저 세계적으로 저명한 학술지 ‘리버인터내셔널(Liver International)’에서 취소했는데, 그 원인은 그가 논문에서 언급한 563건의 간 이식에 사용한 간의 출처가 윤리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수썬이 간 이식 수술을 대량으로 하던 시기와 중공이 파룬궁을 대대적으로 박해한 시기가 일치한다. 따라서 그는 파룬궁수련생들의 생체에서 장기를 적출하는 범죄에 가담한 혐의를 받고 있다. | 신기원 합성사진

A는 나중에 정수썬에 관한 일부 정황을 더 상세히 폭로하겠다고 했다.

“이것은 학술 방면에서 일부 사례를 들 수 있는데, 그의 논문이 어떻게 발표됐는지, 그의 연구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그가 과학원의 연구원이 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그가 어떻게 간 이식의 표준이나 다름없는 새로운 표준(항저우 표전)을 정할 수 있었는지 등등입니다. 그가 왜 이런 표준을 정해야 했을까요? 이 표준과 국제표준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이런 것만으로도 단독으로 발표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은 일부 사전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례적으로 신장내과에서 신장 이식 수술 독점

A는 자신이 간 이식 팀에 가서 실습할 당시 이식 규모가 아주 큰 분야에는 신장 이식도 있었다고 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이식 수술을 외과에서 합니다. 하지만 신장내과는 세력이 아주 강해서 이식 분야를 모두 가져가 버렸죠. 저장대학 1부속병원 비뇨기과가 이식을 주관하지 않고 신장내과에서 전부 도맡아 했어요.”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이식 수술의 양이 많아 이미 내과에서 외과 일을 하게 할 정도였다는 겁니다. (이식 수술 양이) 일정 규모가 될 때라야 그렇게 하는 것이 효율적이죠.”

A는 당시 신장내과 의사들의 대우가 아주 좋았다고 했다.

“당시 주치의급이면 대략 1년에 30여만 위안을 받았습니다. 이건 겉으로 드러난 것이고 실제로는 더 많이 벌었을 텐데, 그건 우리도 모릅니다.”

신장내과 의사가 어떻게 외과 수술을 할 수 있었을까? A는 그 이유를 명확히 짚었다.

“그건 고위층의 업무 배치와 관계가 있어요. 바로 윗선에서 하라고 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죠.”

저장대학 부속제1병원 사이트를 보면 이 병원 신장병센터에는 신장 이식용 병상이 40개가 있다. 이는 중국 최대급 신장이식센터 중 하나임을 말해준다. 보도에 따르면 2017년 3월까지 저장대학 1병원에서만 5022건의 신장 이식 수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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