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中 ‘톈안먼 학살’ 30주년…당시 사진 2천장이 공개된 이유

He Jian
2019년 5월 10일 업데이트: 2019년 11월 5일

30년 전의 5월 말, 그는 친구들과 함께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비계를 설치하고 자유의 여신상을 세움으로써 평화 시위에 참여하는 학생과 시민들을 고무했다. 그는 중국 정부에 환상을 품은 채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비계에 올랐다. 사진으로 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하고 싶어서다. 당시 그는 이 사진들이 중국 근현대사에서 비무장 상태의 학생과 대중을 겨냥한 가장 흉악한 대학살 사건의 증거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의 이름은 류젠(劉建). 그는 당시 베이징에 사는 19살 대학생이었다.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지고 며칠 지나지 않아, 인민해방군이 탱크를 몰고 기관총을 쏘아대며 톈안먼 광장으로 몰려왔다. 사방에서 날아든 탄알이 젊은 학생들의 피 끓는 육신을 처참히 부쉈다. 차가운 탱크가 중국 민중이 품고 있던 중국 공산당에 대한 마지막 환상을 산산히 깨버렸다. 그해 평화 시위 활동에 직접 참여한 류젠은 당시 찍은 사진을 통해 ‘톈안먼 대학살’의 산 증인이 됐다.

4월 16일, 민주적 성향의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 후야오방(胡耀邦)의 기일을 맞아, 베이징 시민과 대학생들의 추모 활동이 반부패, 민주화를 요구하는 평화 시위로 발전했고, 결국 6월 4일 톈안먼 대학살로 이어졌다. 류젠은 이 역사적인 활동 전 과정에 참여했고 카메라로 모든 과정을 기록했다.

류젠은 중국에 있을 때는 공산당이 자신을 박해했다고 느끼지 않아 이 사진들을 공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2016년 해외로 이주한 후, 자유로운 정보를 접하게 되면서 자신이 그동안 세뇌됐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에포크타임스와 NTD에 신뢰를 갖고 있었던 류젠은 인터뷰에 응하며 30년 동안 묻어두었던 ‘톈안먼 사태’ 관련 사진을 무려  2천 장이나 꺼내왔다. 그는 에포크타임스와 NTD에 사진을 공개할 권한을 위임하며, 지금까지도 중국 공산당이 은폐하고 있는 이 엄중한 역사에 대해 다시금 책임을 느낀다고 했다. “역사는 지울 수 없다! 어떤 정부도 역사를 지울 수는 없다. 우리는 중국인으로서, 산 증인으로서 사람들에게 진상을 밝히고 후대에 진실을 알릴 의무가 있다.”

1989년 톈안먼 사건 전, 베이징의 대학생들이 톈안먼 광장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장면 | 류젠 제공

톈안먼 광장에 세운 자유의 여신상

“이 사진들은 모두 제 친구가 국내(중국)에서 막 가지고 온 것입니다. 당시 컬러필름까지 모두 우리 손으로 직접 인화했고, 집에 30년 동안 보관해 두었습니다.”

류젠은 이 사진들 중 몇 장은 당시 톈안먼 광장에 설치한 자유의 여신상의 눈높이 각도에서 촬영했다는 점이 특이하면서도 소중하다고 했다.

“당시 톈안먼 광장에는 자유의 여신상이 세워졌습니다. 중앙미술대 학생들의 작품이었죠. 당시 우리는 사나흘 동안 비계를 설치했는데, 저와 제 친구 둘만이 거기 올라갈 수 있었죠. 이건 비계 위에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기억하기로는 당시 한 프랑스인이 (거기서) 반나절 동안 대화를 하면서 사진 몇 장과 영상을 찍었습니다. 그 외에는 누구도 비계, 그 각도에서 사진을 찍은 사람이 없습니다. 5월 말에 설치된 자유의 여신상은 며칠 지나지 않아 진입한 군대가 폐기했습니다.”

1989년 톈안먼 사건 전, 중앙미술대 학생들이 톈안먼 광장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설치하는 장면 | 류젠 제공

“이 모든 게 범죄의 증거”

1989년 6월 3일 밤, 중국 공산당은 평화적으로 시위하는 학생과 시민들을 학살하도록 계엄부대에 지시했다.

당시 19세였던 류젠은 그때까지 한 번도 시신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튿날인 6월 4일 아침, 그는 수많은 시신을 보게 된다. 그것도 선혈이 낭자한 시체들이 수없이 광장에 널브러진 광경을.

류젠은 당시 학살당한 피해자들의 사진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이것이 모두 범죄의 증거”라고 했다.

“무시디의 청샹무역센터 근처 싼환과 창안거리 인근의 수리부(水利部) 병원 안입니다.”  응급용 카트가 마구 밀려 들어오고 있었죠.” “너무 참혹했습니다. 몸에는 온통 탄알이 박혀 있었어요.” “3일 저녁 죽은 사람들에게서 혈흔이 아직 채 마르지 않았습니다.”

류젠은 당시 상황이 참혹해 “감당하기 어려웠다”며 사진 몇 장을 찍고 바로 뛰쳐나왔다고 했다.

류젠은 사진 현상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톈안먼 사태 이후엔 사진을 인화하는 게 아예 불가능했습니다. 다 직접 몰수해갔습니다. 경찰이 계속 감시하고 있었죠. 당시 저도 이 사진들을 반년가량 보관한 후 인화했습니다. 그래서 남은 게 그리 많지 않습니다.”

1989년 톈안먼 사태 전야, 톈안먼 광장에서 평화적으로 시위를 벌이는 민중이 질서 정연하게 자유의 여신상 부근에 모여있는 모습 | 류젠 제공

“애국과 애당(愛黨)은 다르다”

30년간 세상에 드러내지 못한 사진들을 왜 이제야 꺼내게 된 걸까? 류젠은 자신의 심경 변화를 회고했다. 그는 몇 가지 문제를 고민하다 생각에 큰 변화가 생겼고, 결국 이 사진들을 세상에 드러냄으로써 진상을 복원하고 역사를 보존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그는 먼저 중국 공산당 통치하의 강압적이고 세뇌적인 환경을 언급했다. “이러한 국내 환경에서는 외부 정보를 알 수 없어요. 공산당은 선전과 세뇌, 그리고 세상 물정에 밝은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어주는 일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은 세상이 평화롭다고 생각하죠. 게다가 돈을 열심히 벌도록 장려합니다. ‘다른 건 생각 말고 어떻게 돈을 벌지나 생각하라!’는 식이죠. 각종 맛있는 것, 재밌는 것, 흥청대는 일들이 있으니 곳곳에 여행 갈 생각, 사치할 생각을 하게 합니다. 정치에는 관심을 두지말고 말이죠.”

류젠은 “정치적으로 세뇌된 국내 일반인들은 모두 톈안먼 사태를 반란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톈안먼 사태에 관해 언급하기를 꺼리고, 애써 잊으려 하죠. 저 또한 그랬으니까요”라고 했다.

그는 “최근 3년 동안 미국에 있으면서 제가 보고 경험한 것들과 알게된 정보는 (중국) 국내에서는 아예 볼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공산당의 박해를 받은 적이 없다고 여겼어요”라고 했다.

미국에 와서 자유롭게 정보를 접하게 된 그는 중국 공산당의 세뇌가 바로 민중 박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모두 중국 공산당의 세뇌입니다. 중국 공산당은  애당(愛黨)을 애국 정신으로 교묘히 뒤섞어놓았습니다. 나라를 사랑하고 조국을 사랑하는 것이야 문제 될 게 없지만, 당과 나라는 서로 다른 개념입니다. 중국 공산당은 고의로 당과 나라를 뒤섞어놓았습니다. 중국인은 당을 욕할 수 없고, 지도자를 욕할 수 없으며, 지도자 얼굴에 먹칠을 하면 잡혀갑니다. 자유 국가인 미국에서는 이런 일이 있을 수 없죠.”

류젠은 진실을 은폐하고 세뇌를 통해 우민화를 진행하는 환경을 벗어난 후, 중국 공산당의 실체를 알게 됐다고 했다.

“특히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국 공산당의 일관된 수법이 폭로됐습니다. 이는 완전히 체제 문제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을 알게 됐을 때,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는 그의 친구를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중국 공산당의 친구들을 보면 시리아, 베네수엘라, 북한과 같은 사악한 패거리밖에 없죠.”

류젠은 또 ‘중국 공산당은 독재 체제로, 고압적이고 전제적인 방식으로 통치를 유지하기에 협상, 소통, 수정이 불가능한 체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독재 통치가 강압적이고 공포스러워 보이나, 하룻밤 사이에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나무가 쓰러지면 원숭이는 흩어지게’ 마련이죠. 따라서 제 생각에 공산당 스스로도 무척이나 두려워하고 있다고 봅니다. 두려우니까 더 큰 각도로 ‘좌로 이동’해 통제를 강화하려 하는 거죠.”

1989년 톈안먼 사태 이전, 베이징의 학생들이 톈안먼 광장에서 단식 투쟁을 벌이고 있다. | 류젠 제공

“역사는 지울 수 없다. 중국인들은 진실을 알아야 한다”

류젠이 생각을 바꿔 사진을 공개하고 진상을 밝혀야겠다고 결심하게 한 사건이 또 하나 있었다.

“딸과 대화를 할 때였습니다. 딸은 대학 다닐 나이입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문화대혁명이 뭔지 아니?’ 딸이 말했습니다. ‘몰라요.’ 제가 물었죠. ‘톈안먼 사태는 아니?’ 딸이 대답했습니다. ‘들어본 적이 없어요.’ 저는 또 딸아이에게 말했습니다. ‘1989년 6월 4일, 인민해방군이 톈안먼 광장에서 사람들을 죽였어!’ 딸의 반응은. ‘그럴리가요’였습니다.”

이때 류젠은 자신의 아버지가 떠올랐다고 했다. “딸아이의 반응은 마치 아버지께서 당시 ‘오칠 간부학교’에서 사람들이 아사한 사실을 알려주셨을 때 제가 받았던 느낌과 비슷했습니다. 당시엔 저도 믿지도,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

계속해서 진실을 은폐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중국 공산당은 시간이 모든 진실과 기억을 지워주기를 바란다. 류젠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출생한 20세 이하 세대들은 이러한 역사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류젠은 결심을 굳혔다.

“올해가 텐안먼 사태 30주년인 걸 알았을 때, 내가 이 사진들을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이 사진들을 이용해서 공산당 붕괴 후 기념관을 세우면, 더 많은 사람이 사진을 보고 당시의 역사를 알 수 있게 되겠죠.”

류젠은 자신의 심경 변화 과정을 중국인들과 나눔으로써 중국인들의 공감과 성찰을 이끌어내고 싶다고도 했다. “인터넷이 개방되면 공산당의 거짓도 무너져내릴 것입니다. (중국 공산당은) 거짓으로 나라를 다스리니까요.”

1989년 6월 4일 톈안먼 사태 현장 | 류젠 제공

1989년 6월, 중국 공산당은 탱크, 장갑차, 자동소총을 동원해 반부패와 민주화 실천을 요구하고 나선 맨손의 애국 학생운동을 진압함으로써 세계를 충격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2014년 미국 백악관에서 공개한 기밀 문건에 따르면 톈안먼 사태 당시 사상자가 4만 여 명에 달하며, 그중 1만454명이 사망했다. 중국 공산당은 당시 민중의 평화적인 시위 활동을 ‘반혁명 폭동’이라고 매도하고 민간인 사살 만행을 부정했다. 지금까지도 중국 공산당은 톈안먼 사태의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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