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꾼들 펑펑 울렸다” 손님들에게 의문의 ‘노트’ 건네는 택시 기사의 정체

윤승화
2020년 5월 27일
업데이트: 2020년 5월 27일

“늦잠을 자서 급하게 일어나서 그냥 아무 택시나 잡고 탔는데, 아저씨께서 ‘혹시 안 바쁘면 이것 좀 써주실 수 있느냐?’고 노트 한 권을 주시더라고요.

‘네’ 하고 일단 받긴 받았는데… 응? 이게 뭐지? ‘여기에 그냥 자유롭게 생각이나 일기같이 쓰면 된다. 다른 분들한테도 부탁드리고 있는데 좀 적어주시면 감사하겠다’ 이러셔서…”

‘길 위에서 쓴 편지’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노트에는 이 택시에 탔던 많은 이들의 글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SBS ‘궁금한 이야기 Y’

4월 3일

코로나 때문에 병원이 너무 힘들어요ㅠㅠ 다들 힘내서 이겨냅시다^_^

출근길, 코로나 때문에 너무 힘들다는 한 대학병원 간호사의 얘기부터,

SBS ‘궁금한 이야기 Y’

4월 8일

울 엄마 정기검진 잘 받고 내려갑니다. 조직검사도 무사했음 좋겠어요. 저도 이 택시에서 좋은 기운 받아 갈게요!

어머니의 건강검진을 따라왔다 내려가는 길이라는 딸의 간절한 바람까지,

SBS ‘궁금한 이야기 Y’

정답 없는 물음에 공허하지만 7남매를 키워내신 부모님 생각이 난다.

요즘은 너무 힘이 드네요..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좋은 사람이 되는 일이 한 해 한 해 어려워져 가지만, 그래도 올해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나 싶고.

SBS ‘궁금한 이야기 Y’

노트에는 수많은 사람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사람들은 왜 생전 처음 만난 택시 기사님이 내민 노트에 이런 글들을 남겼을까.

길 위에서 만난 의문의 택시 기사. 이 노트를 건넨 택시 기사님은 어떤 사람일까.

SBS ‘궁금한 이야기 Y’

지난 22일 방송된 SBS 시사 교양 프로그램 ‘궁금한 이야기 Y’에서는 승객들을 태우고 가는 동안 자신들의 이야기를 적게 하는 어느 택시 기사의 사연이 전해졌다.

최근 SNS를 통해 해당 택시를 탄 승객들이 노트를 공유하며 많은 이들이 그 정체를 궁금해하던 가운데, 이날 방송에서 제작진은 직접 서울의 한 택시 회사로 찾아갔다.

‘길 위에서 쓴 편지’ 노트를 손님과 주고받는 택시 기사의 정체는 명업식 기사님.

SBS ‘궁금한 이야기 Y’

어쩌다 이 노트를 싣고 택시 운행을 하게 됐을까. 무엇 때문에 승객들에게 이 노트를 적게 했을까.

자신이 운행하는 택시가 유명해진 줄도 몰랐다는 명업식 기사님은 “제가 태어나서 이렇게 힘든 일은 처음 해봤어요. 진짜 어려워요”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1년 6개월 전, 명업식 기사님은 환갑을 앞두고 처음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

SBS ‘궁금한 이야기 Y’

그러나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퇴사를 고민했다. 술 취한 취객부터 요금 100원 더 나왔다며 싸움을 거는 승객까지, 여러 사람을 대하는 일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명업식 기사님은 “손님들과 소통이 되면서 손님들도 또 뭔가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드렸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이나마 서로 마음을 나누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손님하고 가까워지기 위해서 마련한 노트였다.

SBS ‘궁금한 이야기 Y’

그렇게 어느덧 총 517명의 사연을 담은 ‘길 위에서 쓴 편지’는 벌써 세 권째 노트를 채워가고 있다.

짧게는 몇 분, 길게는 한 시간 정도 택시에 머물며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적었을까.

SBS ‘궁금한 이야기 Y’

너무 괴롭다. 너무 힘들다 정말…

아저씨를 뵈면서 우리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나도 그저 오늘 하루를 충실하련다

택시에 더 머물러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특별한 아침입니다.

SBS ‘궁금한 이야기 Y’

그중에는 남들에게 털어놓지 못했던 솔직한 마음이 담긴 이야기들도 있었다.

한 승객은 힘겨운 삶으로 지쳐있던 와중에 이 노트가 예기치 못하게 만난 선물 같다며 감사함을 전하기도 했다.

사실 명업식 기사님에게는 아픈 사연이 있었다.

SBS ‘궁금한 이야기 Y’

평생을 약속한 아내가 10년 전,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명업식 기사님은 세 딸을 홀로 키워냈다.

명업식 기사님은 “제가 나름대로 반찬은 잘하는 편이에요. 사골국물도 내고”라며 “반찬이라도 해서 먹여야지, 부모니까. 그래서 하다 보니까 많이 늘었어요”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아내의 몫까지 해내느라 더욱 이 악물고 달려왔던 명업식 기사님. 그러나 시작한 사업이 부도까지 나며 힘겨운 시간을 보냈었다.

SBS ‘궁금한 이야기 Y’

그래서 명업식 기사님에게는 한 승객이 특별히 기억에 남아 있었다.

“남자분인데, 뭐 사업에 실패했는지…

약주를 좀 많이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한 페이지 다 썼던 그분이 기억에 남아요”

SBS ‘궁금한 이야기 Y’

손님이 쓴 글은 이러했다.

오늘, 갈림길에 놓였습니다.

명업식 기사님은 “잘 됐으면 좋겠는데 잘 됐는지 궁금하네요”라며 “그래도 한번 다시 제가 모시게 된다면 한번 여쭤보고 싶고 대화도 한번 하고 싶네요”라고 전했다.

SBS ‘궁금한 이야기 Y’

제작진은 수소문 끝에 그날의 승객을 찾았다.

명업식 기사님이 찾던 승객, 이승찬 씨는 당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 시작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은 상태였다.

이승찬 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기로에 서 있었어요”라며 “이전에도 한 번 사업을 했다가 잘 안 됐던 경험 때문에 많이 힘들었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SBS ‘궁금한 이야기 Y’

그러면서 “기사님 만난 이후로 결정에 좀 큰 도움이 됐었던 것 같아요”라면서 “그날 이후로 방향의 결정을 하게 됐고 그대로 여태까지 왔는데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을 해요”라고 감사함을 드러냈다.

“그때 고민이 굉장히 많았었는데 그 글들을 보고서 공감이 많이 됐었고 도움이 많이 됐었던 거로 기억을 해요”라는 이승찬 씨는 얼마 전 작은 식당을 열었다.

이 소식을 누구보다 반가워할 한 사람, 명업식 기사님은 택시에서 내린 후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됐다는 손님 이야기에 본인 일처럼 기뻐했다.

SBS ‘궁금한 이야기 Y’

이승찬 씨는 이후 명업식 기사님을 자신의 식당으로 초대해 직접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손님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적게 하며 희망을 주는 훈훈한 택시 기사, 명업식 기사님은 오늘도 기쁜 마음으로 운전대를 잡는다. 승객들 모두가 힘내서 잘 살아가기를 바라며.

한 승객은 노트에 이런 글을 남기기도 했다.

SBS ‘궁금한 이야기 Y’

기사님께서 이 노트를 건네주실 때

말 한마디 눈빛 몇 초로 하루가 행복해질 수 있음을 아시고 이렇게 노트를 건네주신 거죠?

간만에 기분 좋은 이동길이 되었습니다.

안전운행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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