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화학상 휘팅엄 박사 “자신이 현재 하는 일에 만족하면 성공한 삶”

SHIWEN RONG
2019년 11월 5일 업데이트: 2019년 11월 9일

올해 노벨 화학상은 ‘리튬이온 배터리’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3명의 과학자가 공동 수상했다. 이 리튬 이온 배터리 발명 덕분에 전화기를 손에 들고 다닐 수 있고 노트북과 전기 자동차 등 모바일 시대를 열 수 있었다.

리튬이온 배터리 연구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인 첫 과학자, 마이클 스텐리 휘팅엄 박사를 찾아 나섰다.

뉴욕 빙엄턴 대학 신기술단지 캠퍼스 2층 복도에 오르니 노벨상 수상을 축하하는 듯 풍선으로 장식된 사무실이 눈에 띈다. 현재 78세인 휘팅엄 박사는 여전히 실험실을 출입하고, 전 세계를 다니며 강의하는 데 열정을 보인다.

“언제 은퇴할 것인가?”라는 사람들의 물음에 휘팅엄 박사는 “내가 하는 일이 좋다”며 계속하겠다고 답한다. 외국어 교수인 그의 아내 조지나 위팅엄 박사도 “주치의가 은퇴하지 말라”고 했다며 계속 강단에 서고자 했다.

햇빛 좋아하는 영국인

휘팅엄 박사는 30년 넘게 빙엄턴 대학에서 여러 직책을 맡았다. 현재, 그는 화학·재료 과학·공학 분야의 권위 있는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영국 잉글랜드 동부 노팅엄의 링컨셔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휘팅엄 박사는 고등학교 선생님 덕분에 화학에 매료됐다. 그는 “그 시절에 화학물질을 만들고, 물건을 날려버리고, 허용되지 않은 것을 할 수 있어서 화학에 빠졌다”고 회상했다.

휘팅엄 박사는 옥스포드대에서 학사·석사를 거쳐 박사과정까지 밟았다. 박사학위 말미에 북미나 캐나다로 이전하는 동료들이 많았지만, 그는 스탠퍼드 대학에 가기로 했다. 웃으며 “햇빛 좋은 곳에 가고 싶었다”는 휘팅엄 박사의 모습에 영국인 정서가 베어 있었다.

아내를 만난 곳도 스탠퍼드 대학이다. 그는 “우리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만난 지 9개월 후 결혼했다”고 말했다.

차세대 배터리

휘팅엄 박사는 그의 발명품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다.

휘팅엄 박사는 1970년대 초 스탠퍼드 박사과정 후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리튬이온을 티타늄 황화물 시트에 저장하는 방법을 알아내고, 이를 토대로 충전이 가능한 리튬이온 배터리를 제작할 수 있었다. 리튬이 매우 가볍고 양전하를 띤 리튬 이온을 쉽게 방출할 수 있는 특징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후 휘팅엄 박사는 에너지 회사 엑손으로부터 대체 에너지 기술에 대한 민간 연구를 제안 받아 엑손에 합류했다. 에너지와 관련 있는 일이었지만, 석유나 화학 물질은 아니었다. 그는 태양 에너지와 전기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연료 전지에 관심이 깊었고, 차세대 배터리를 목표로 연구에 집중했다.

결국, 1972년 리튬 금속과 티타늄 이황화물을 배터리에 결합해 최초로 리튬이온 배터리를 발명했다.

휘팅엄 박사가 이룩한 기반을 이용해 미국의 과학자 존 구드너 박사가 더욱 강력한 배터리로 또 다른 돌파구를 만들었다.

구드너 박사는 1980년대 초 리튬-코발트 산화물을 이용해 더 가벼우면서 많은 양의 충전이 가능한 리튬이온 배터리를 개발했다. 휘팅엄 박사는 물리학자인 구드너 박사가 화학자들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실험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1985년에 일본의 요시노 아키라 박사가 뒤를 이어 상업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최초의 리튬이온 배터리를 만들었다. 그가 개발한 리튬이온 배터리는 1992년 일본의 회사 소니에서 상용화돼 세계 최초로 상품화에 성공했다.

엑손에서 일한 후, 휘팅엄 박사는 자신이 항상 연구와 학계로 다시 돌아오고 싶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휘팅엄은 80년대 후반 빙엄턴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맡아 배터리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

“나는 정말 (캠퍼스에서) 연구하고 싶었다. 대학에는 해마다 18세 젊은이들이 입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더 젊어진다”며 휘팅엄 박사는 농담처럼 말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며 “누구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박사 과정에 있는 그의 제자 안시카 고엘은 “나이에 비해 아직 젊어 보이는 (교수님의) 모습이 동기부여가 된다. 교수님은 여행을 아무리 많이 다녀도 매일 제시간에 사무실과 연구실에 오신다”고 말했다. 제자 이청 장 또한 “선생님이 새벽 3시에 내 메일 답장을 보내왔다. (그 시간에도) 여전히 일하고 계셨다”고 동조했다.

30년이 넘도록 후학을 가르치며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는 열정이 그가 계속 마음의 청춘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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