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학생조직, 서울대 등 주요대학에 ‘하마스 지지 대자보’

전경웅 객원기자
2023년 10월 14일 오후 3:32 업데이트: 2023년 10월 14일 오후 3:32

노동자 연대 청년조직, 대학생·청년층 여론 형성에 주력
하바드 동문들은 “하마스 지지하면 취업 불이익” 불호령

서울 광화문에서 하마스 지지 시위가 열린 데 이어 서울 시내 주요 대학에 하마스를 지지하는 대자보가 나붙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

하마스 지지 시위와 지지 대자보를 붙인 단체는 공산주의 추종단체로 지난해 2월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해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를 내세우며 실제로는 하마스를 지지하는 이런 시위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 등에서도 열리고 있다.

다만, 이들 국가의 정부는 불허 방침을 확실히 하며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특히 하버드대학에서는 동문들이 ‘하마스를 지지하면 취업에 불이익을 주겠다’며 자체 진화에 나선 모습이다.

공산주의 추종단체 ‘노동자연대(구 다함께)’ 산하 노동자연대 청년학생그룹은 지난 11일 성명을 내고 “고려대, 명지대, 부산대, 서울대, 서울시립대, 연세대, 한국외대, 홍익대 등에 이스라엘을 규탄하고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성명서를 붙였다”고 밝혔다.

이들은 성명과 대자보를 통해 “10월 7일 팔레스타인 전사들이 고조돼 오던 이스라엘의 폭력과 식민 점령에 맞서 공격에 나섰다”며 “이스라엘의 공격·학살에 맞선 정당한 저항”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들을 대대적으로 학살·추방하는 인종청소를 통해 1948년 건국됐다”며 “미국은 중동 패권을 지키기 위해 이스라엘에 막대한 지원을 제공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은 미국을 등에 업고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중동 대중을 짓밟았다. 하마스의 공격은 최근 더 심화되던 이스라엘의 만행에 대한 대응”이라며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든 팔레스타인인들의 정당한 권리”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윤석열 정부도 재빨리 성명을 발표해 죄 없는 사람들을 짓밟아 온 깡패국가 이스라엘을 편들고 나섰다”, “한국 청년학생들도 팔레스타인에 연대와 지지를 보내자“며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도 빠뜨리지 않았다.

대학생들 “테러 지지하나”, “뜯으면 안 되나”

이런 노동자 연대 청년학생그룹의 주장이 담긴 대자보를 본 각 학교 재학생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각 대학의 익명 게시판 ‘에브리타임’에는 “민간인, 여자, 아기 할 것 없이 모두 무참히 사살하는데 정당한 저항이라 지지하고 모든 행위에 연대하자는 게 상식적이냐”라거나 “테러를 지지하는 대자보”라는 의견이 올라왔다.

대학생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게재된 팔레스타인 지지 성명서 비판글. | 연합뉴스

일부 학생은 “저런 건 뜯으면 안 되는 거냐”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연세대에서는 보다 적극적인 반박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세계일보’는 지난 12일 연세대 중앙도서관 출입구 근처에 ‘하마스 지지’에 반대하는 대자보가 붙었다고 전했다.

이 대자보에는 “반미친북 적당히 하라”며 노동자 연대 청년학생그룹을 비판했다. 여기에 누군가는 하마스에 납치당한 30세 여성 타투이스트 ‘샤니 루크’의 무사를 기원하는 쪽지와 “하마스의 행태를 진정 독립운동으로 보느냐”는 쪽지도 붙어 있었다고 신문은 전했다.

노동자 연대 “하마스 민간학살 뉴스는 가짜”

각 대학에 대자보를 붙인 청년학생그룹의 상위 단체 노동자연대는 민간인 학살과 납치를 비판하는 여론은 외면한 채 하마스를 지지하고 있다.

이들은 오는 15일 또 ‘하마스 지지 시위’를 열 계획이며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 ‘크파르 아자(Kfar Aza)’에 있는 키부츠에서 저지른 영·유아와 어린이, 여성들을 학살한 것을 완전히 거짓으로 치부했다.

노동자 연대는 “이스라엘과 미국은 전시 프로파간다를 동원해 팔레스타인 저항을 비난하고 나섰다. ‘무장 테러리스트 집단의 영유아·민간인 학살’이 그것”이라며 “부끄럽지도 않은지 한국 주류 언론들은 전시 프로파간다를 사실인 양 받아 적고 있다. 그러나 BBC를 비롯한 세계적인 언론과 여러 언론인들은 영유아 참수가 ‘확인된 바 없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틱톡과 X(구 트위터)에 퍼졌던, 하마스가 시신을 불태운 사진이나 영아용 카시트의 목과 가슴 부분이 피가 흥건히 묻어 있는 사진 등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 접경지역의 집단농장 곳곳을 공격한 가운데, 이스라엘 군인들이 10일(현지시간) 하마스 공격으로 파괴된 크파르아자 키부츠의 한 주택 안에서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이런 노동자 연대와 노동자 연대 청년학생그룹은 지난해 3월에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해 미국 등 서방국가가 제재에 나서자 이에 반대하는 시위를 국내에서 열었다.

지난해 3월 6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노동자 연대 등이 참가한 ‘한국과 서방 진영의 러시아 제재 반대’ 시위가 열렸다.

당시 한 노동자 연대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서방의 (러시아) 제재는 전쟁 위협을 키우는 일”이라며 “문재인 정권은 서방(의 러시아) 제재에 참여하고 군수품 지원까지 검토하고 있는데 이는 서방 강대국 전쟁놀이에 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팔레스타인 지지와 하마스 테러 옹호 구분해야”

노동자 연대와 노동자 연대 청년학생그룹의 이 같은 행태에 국내에서는 공식적으로 어떤 반대나 제재가 없다.

반면, 미국 등에서는 하마스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대학 등에 대해 불이익을 주겠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하버드대 동문들이다.

지난 7일 하버드대 내 34개 학생단체가 이스라엘을 비난하고 하마스를 지지하는 공동 성명을 내놓자 헤지펀드 ‘퍼싱 스퀘어 캐피털’의 회장 빌 애크먼은 하버드대 동문들에게 “성명에 서명한 학생들을 받지 말자”며 블랙리스트 작성을 제안했고, 여기에 로펌, 식품업체, 유통업체 등 대기업들이 동참할 뜻을 밝혔다. 그러자 곧 최소 5개 이상의 학생단체가 하마스 지지를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의 ‘블랙리스트’는 하버드대뿐만 아니라 다른 대학까지 대상을 넓히고 있다.

SBS에 따르면 “이번 전쟁의 인명 손실 책임은 이스라엘에 있다”고 주장한 뉴욕대 로스쿨 학생회장이 입사 예정된 로펌으로부터 채용 취소 통보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하버드대가 있는 보스턴 시내에는 전광판 트럭이 돌아다니며 하마스 지지 서명을 한 학생 이름을 공개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자연대 인스타그램 | 인스타그램 화면 캡처

좌파 성향 인사가 많다는 미국 유대인 사회가 이처럼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하마스의 전쟁 범죄 때문이다. 심지어 팔레스타인 출신까지도 하마스의 전쟁 범죄를 비판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팔레스타인 출신 모델 ‘지지 하디드’는 지난 10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정당화할 수 없는 비극에 피해를 입은 모든 이들을 생각한다. 매일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고 있고 그중 어린이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면서 “무고한 사람들을 테러하는 것은 ‘자유 팔레스타인 운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디드는 본인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것은 맞는다면서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희망과 꿈을 갖고 있지만, 유대인을 해치는 사람까지 포함하지는 않는다”며 ‘친팔레스타인=반유대주의’라는 잘못된 생각만 심어줄 뿐이라고 하마스의 전쟁 범죄를 비판했다.

이처럼 과거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분쟁 시 이스라엘 편을 들 수 없었던 여론은 이제 변하고 있다. 하마스가 민간인 학살·납치를 넘어 여성과 영·유아 참수, 시신 소각과 같은 반인류 범죄를 저지른 것이 가장 큰 영향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