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 지부작족 그리고 토사구팽…홍콩 고관 생일 파티 후폭풍

최창근
2022년 1월 10일
업데이트: 2022년 1월 10일

오미크론 변이 확산 속 고위관리, 정치인 대규모 생일파티
홍콩정부 장·차관급 인사 13명, 입법회 의원 20명 참석
엄격한 시민 통제 속 파티… 내로남불 비판 들끓어
캐리 람 행정장관 연임에도 적신호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13번째 변이인 오미크론 확산세가 일파만파이다. 본토와 마찬가지로 확진자를 0명으로 만드는 이른바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중국령 홍콩특별행정구도 예외는 아니다.

홍콩 정부는 오미크론 변이 확산으로 인하여 해외 유입 환자와 밀접접촉자들이 하루 40∼50명씩 격리시설로 보내지고 있어 8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격리시설이 곧 포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환자 수용 시설 포화 상태 속에서 2주간 유흥시설을 폐쇄하고 오후 6시 이후 식당 내 식사를 금지하는 등 고강도 방역 정책을 시행 중이다.

1월 5일, 캐리 람 행정장관은 1월 8일부터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등 8개국 출발 여객기 입국을 전면 금지하고, 오미크론 변이 환자가 다녀간 장소에 출입한 모든 이들에 대해 코로나19 3∼4회 검사를 명령했다.

지난달 말 해외 비행을 마치고 홍콩으로 돌아온 캐세이퍼시픽 항공 승무원 1명이 오미크론 변이에 감염된 채 자택 격리 규정을 위반하고 외부의 식당에 갔다가 다른 이가 감염됐다. 이어 이달 2일 또 다른 캐세이퍼시픽 항공 승무원 1명의 어머니가 오미크론 변이에 감염된 상태에서 댄스동호회와 식당 등을 돌아다녀 바이러스를 전파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캐리 람 행정장관은 캐세이퍼시픽 경영진을 불러 “조직을 이끄는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고 질책하기도 했다.

이 속에서 지난 홍콩 고위층의 노 마스크 파티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1월 3일, 홍콩 완자이(灣仔·Causeway)에 자리한 코즈웨이센터(Causeway Centre·灣景中心大廈)의 한 스페인 음식점에서 200여명이 참석한 대규모 생일 파티가 열렸다. 파티 주인공은 위트먼 헝(洪為民) 전국인민대표대회 홍콩특별행정구 대표였다. 성공한 IT사업가 출신으로 2008년 ‘홍콩 10대 걸출청년’으로 선정되기도 한 인물이다. 중국 광둥(広東)성 선전(深圳)시와 홍콩이 합작・개발하는 첸하이 경제특구 홍콩연락사무소 대표도 겸하고 있다.

주최자의 성이 ‘헝(洪·홍)’씨인 점에 착안하여 언론에서는 ‘홍문연(洪門宴)’이라 이름 붙인 이날 파티에는 전·현직 홍콩정부 고관, 홍콩 입법회 의원, 재계·언론계 거물들이 대거 참석했다. 확인된 정부 현직 관리만 17명, 입법회 의원은 20명이다. 연회 참석자 중 2명이 양성판정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 고위직 13명, 의원 20명을 포함해 참석자 전원은 한 때 란타우섬(大嶼山) 페니즈베이(竹篙灣)의 검역센터에 격리되기도 했다.

주관방화


‘주관방화(州官放火)’는 주(州)의 관리가 불을 놓는다는 뜻으로 육유(陸游)의 ‘노학암필기(老學庵筆記)’에서 유래했다. 송(宋) 대 주관(州官:지방장관)이었던 전등(田登)은 백성들이 자신의 이름과 발음이 같은 ‘등(燈)’ 자를 입에 올리지 못하게 했다. 상원절(上元節:정월 대보름) 밤 방화등(放花燈)을 켜는 공고문에도 ‘등불 켠다(放燈)’ 대신 ‘불을 놓는다(放火)’라 쓰게 했다. 이후 사람들은 “주관의 방화만 허용되고 백성들이 등불을 켜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只許州官放火 不許百姓點燈)”라며 비꼬았다. ‘내로남불’의 중국어 버전인 셈이다.

일반 시민들은 코로나 19 통제정책으로 고통받는 속에서 고관대작들의 노 마스크 파티는 비판을 피해가기 힘들다. 홍콩 정부 수뇌부가 참석한 파티에서 확진자가 발생했고, 고관들이 정부 격리 시설에 수용된 것은 한 편의 블랙 코미디이다. 특히, 내무부 장관에 해당하는 민정사무국장, 경찰 책임자인 경무처장, 반부패 수사기구 염정공서(廉政公署, ICAC) 책임자 염정전원(廉政專員·서장 해당) 등 평소 홍콩 시민들에게 ‘엄정한 법 집행’을 강조해온 부처 책임자들이기에 홍콩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이 와중에 친중파 입법회 의원, 친중 언론들은 홍콩 내 오미크론 변이 최초 감염자가 캐세이퍼시픽항공 직원인 점을 들어 캐세이퍼시픽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문제의 생일파티가 방역 규정을 어기지 않았고 참석자들은 문제가 없다면서 오미크론 변이 지역감염을 촉발한 캐세이퍼시픽이 책임을 져야 한다 주장하고 있다.

지부작족


캐리 람 행정장관은 믿는 도끼에 제대로 발등을 찍힌 셈이다. 캐리 람은 이번 일을 두고 “깊은 실망”을 표시했다.

특히 캐리 람을 실망시킨 장본인은 캐서퍼 추이(徐英偉) 민정사무국장이다. 1977년생으로 일약 40대 중반에 내무부 장관에 해당하는 민정사무국장이 됐다. 캐나다·영국 명문대 유학파 출신으로 2008년 민정사무국장 정무보좌관(政治助理)으로 홍콩 정부에 입성한 후 10년 동안 재직했다. 2017년 노동복리국(勞工及福利局) 부국장을 거쳐 2020년 행정장관의 건의와 중국 국무원의 추인 절차를 거쳐 민생을 책임지는 민정사무국장으로 승진 임명됐다. 전임 국장 레이 라우(Ray Lau·劉江華)가 1957년생이었음을 감안하면 스무 살 차이 나는 캐스퍼 추이의 기용은 ‘파격’ 이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의 신임을 상징한다. 결과적으로 격리 시설에 수용된 캐스퍼 추이는 징계 절차를 거쳐 불명예 퇴진이 예고됐다.

홍콩 정부는 1월 7일 발표한 성명을 통하여 “격리시설에 수용된 최고위 관료 13명의 업무는 즉각 중지된다”며 “이들이 법과 방역 규정을 위반했는지 조사해 징계하겠다”고 밝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 정부 소식통을 인용, “중국 정부가 캐리 람(林鄭月娥) 홍콩 행정장관에게, 대규모 모임을 자제하라는 당국의 경고를 무시한 관료들을 신속히 조치할 것을 주문했다”고 1월 10일 보도했다. 한 익명의 전문가는 “중국 본토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면 해당 관리들은 즉시 면직됐을 것”이라고도 했다.

라우시우카이(劉兆佳) 중국 홍콩마카오연구협회 부회장은 대중의 불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문제의 참석자들에게는 강등, 감봉은 물론 해고까지 검토해야 한다면서 “캐리 람 정부가 이번 사태에 엉성하게 대처한다면 홍콩특별행정구 정부의 신뢰도에 큰 타격이 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토사구팽


민생·치안·사정(司正)·출입국 책임자가 모두 격리된 와중에 캐리 람 행정장관의 ‘지휘 책임’도 피해갈 수 없다. 참석 고위 관리들이 방역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결론 나면 람 장관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2월 입법회 선거에서 전체 90명 중 89명이 친중파로 채워지며 이른바 ‘애국자치항(愛國者治港·애국자가 홍콩을 다스린다)’ 시대가 열렸다. 결과를 두고 시진핑 국가주석은 캐리 람 행정장관을 ‘특급칭찬’했다. 다만, 올해 6월 30일 5년 임기 만료를 앞둔 행정장관 연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캐리 람은 시진핑을 만난 뒤 기자회견에서 베이징을 방문한 목적은 업무 보고일 뿐이고 자신의 미래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고 말했다.

이 속에서 터진 홍콩 고위 공직자들의 ‘내로남불’ 파티는 캐리 람의 정치 생명에 직접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임기 내내 친중 행보로 홍콩 시민의 반발을 샀지만 베이징의 신임은 얻었던 캐리 람이 토사구팽당할 위기에 몰린 것이다.

1448명 선거위원회가 간접 선거로 선출하는 차기 행정장관 선거는 3월 27일로 예정돼 있다. 지난 행정장관 선거를 돌아보면 이르면 6개월 전에서 3개월 전부터 후보가 결정되고 선거운동이 펼쳐졌다. 직전인 2017년 선거 때도 전년도 12월 존창(曾俊華)  당시 재무사장(政務司長·경제 부총리 해당)이 출마 선언을 했고, 이어 캐리 람 당시 정무사장(政務司長·정무 부총리 해당)도 월 12일 사임하고 바로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다만 이번 선거는 1월 10일 현재 아무도 출마 선언을 하지 않았고 선거 절차에 대한 공식 지침도 아직 발표되지 않은 상황이다. 연임을 노릴 것으로 보이는 캐리 람 장관도 묵묵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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