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난 자본주의와 ESG…그들의 커다란 거짓말

사회적 정의, 그레이트 리셋 그리고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제임스 고리
2022년 10월 9일 오후 7:28 업데이트: 2022년 10월 12일 오전 10:11

사물에는 양면이 있다. 한국에서는 ESG의 긍정적인 면이 주로 전해지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논란이 뜨겁다. 한국 독자의 폭넓은 이해를 위해 비판적 칼럼을 소개한다. – 편집부

미국의 ‘깨어난(woke) 좌파’가 자유시장 자본주의와 투자의 열렬한 팬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적어도 <슬레이트>(자유주의 성향 온라인 매거진)에 실린 앤드류 페티옹(덴버대 스텀 법과대 겸임교수)의 기고문을 읽으면 더욱 그렇게 믿게 된다.

그러나 그의 기고문 <‘깨어난 자본주의’에 대한 공화당의 전쟁은 자본주의에 대한 전쟁일 뿐>을 포함해 깨어난 좌파가 자본주의의 팬이라는 주장은 그럴듯한 거짓말일 뿐이다.

우선 ‘깨어난 자본주의’를 비롯해 몇 가지 용어를 짚고 넘어가자.

영국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깨어난 자본주의’는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해 호소하는 공공 캠페인 등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밀레니얼 세대는 이전 세대에 비해 자유시장 자본주의에 관해 아는 것이 적고 ‘사회자유주의(socially liberal)’에 대해서는 친숙하다.

‘사회자유주의’는 자유주의에 사회주의 요소를 도입하자는 주장이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소수자·사회적 약자의 권리와 이익을 키우고 복지를 늘리며 빈부격차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깨어난 자본주의’는 종종 ‘ESG 투자’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ESG는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한다.

ESG 투자는 기업에 투자할 때 재무적 요소 외에 ESG를 고려하자는 의미다. 그 밖에도 여러 의미로 쓰이지만 어떤 기업이나 투자자가 깨어났는지(woke) 아닌지를 나누는 매우 모호한 기준이다.

현재 미국에서 ESG는 ‘깨어난 자본주의’의 척도가 되고 있다. ESG의 주요 개념에는 기후 변화, 지속 가능성, 녹색 기술, 사회적 정의(노동자의 권리, 노동 환경, 사회 규범의 변화, 소수자에 대한 착취 등) 등이 들어간다. 또한 정부의 감독이나 홍보 등의 측면도 있다.

최근에는 어떠한 기업 등에 대해 투자를 결정할 때 ESG 지표를 고려한다. 따라서 기업의 ESG 지표는 투자 배제 혹은 거부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파시즘

깨어난 자본주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라는 개념을 받아들인다. 이는 ‘주주(Shareholder)’뿐만 아니라 고객, 근로자, 거래 기업, 지역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혹은 영향을 받는 사람)가 비즈니스에서 이익을 얻어야 한다는 뜻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주주를 포함해 고객, 근로자 등 모든 이해관계자와 이익을 나누어야 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모든 이해관계자를 주주처럼 존중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뤄야 한다는 우아한 문구로도 표현된다.

ESG(경영)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와 같은 것이냐는 물음도 제기된다. 주주 대신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후자와 환경·사회 등을 중시해야 한다는 전자 모두 개념상 통한다.

글로벌 조직들은 이 둘을 이미 하나로 묶어서 다루고 있다. 미국 내 200대 대기업 협의체인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RT)과 세계경제포럼(WEF)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채택하고 동시에 기업들에 ESG 노선을 따를 것을 요구한다.

이제 기업은 개인 주주들은 뒷전이다. 선출되지 않은 사람들과 그들이 내세우는 ‘깨어난 사회주의’ 기준을 준수해야 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이 기준에는 결과의 평등, 고용 기준, 다양성 요구, 소득의 평등 등이 포함된다.

당신이나 나 같은 개인 주주들은 이러한 기준과 그 기준을 달성하기 위한 계획에 고려되지 않는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왼쪽)가 2022년 5월 26일(현지시간)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에서 클라우스 슈밥 WEF 창립자 겸 집행위원장 옆에서 연설하고 있다. | Fabrice Cofrini/AFP via Getty Images/연합뉴스

ESG는 기업의 활동을 주주의 이익이 아닌 정부의 정책과 결합하려 한다. 이는 적색(급진)좌파, 녹색(환경보호주의)좌파들의 이념적 특징이며, 우리는 그것을 파시즘이라고 부른다.

‘깨어난 자본주의’가 하는 거짓말

국제사회로 눈을 돌리면, ESG는 정치적 올바름(PC)과 밀접하다. ESG 단체들은 PC나 ESG 기준에 맞지 않는 국가와 거래하는 기업·투자자를 조사해 등급을 매긴다. ESG 등급이 낮으면 월가나 중산층 투자자들에 의해 보이콧당하거나 매각 대상이 된다.

페티용은 ESG 또는 깨어난 자본주의는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한 측면이며, 어느 정도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재무 분석에 ESG 지표를 도입하던 초기, 이 지표가 투자자와 주주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이행하는 데 보완적 역할을 할 것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ESG 지표가 이 주장은 사실일까.

어떤 경우에는 그렇다. 예를 들어 어떤 투자자들은 술, 담배 또는 총기를 만드는 회사에 투자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 투자자들이 이런 회사에 투자하지 않는 것은 그의 자유다.

하지만, 주주에 대한 회사의 책임에 좌파적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자유시장 자본주의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것은 선출되지 않은 사람이 주주의 이익과 무관하게 회사에 부과한 의무다.

물론, 기업은 준수해야 할 법률과 제도가 있다. 이러한 법률과 제도는 주 또는 연방 등 관할구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하지만 ESG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좌파들에게 ESG, 깨어난 자본주의는 ‘도덕적인 자본주의’다. 그들은 깨어난 군중(mob)이 옳다고 결정한 것을 기업이 실행하고 생산하고 투자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를 따르지 않는 기업을 처벌하려 하고 가능하면 폐업시키려 한다.

ESG의 유행과 그 정치적 영향력이 진보하면서, 모든 상장기업과 비상장기업에 대한 실질적·정치적 통제력이 강해지고 있다. 이는 깨어난 자본주의의 최종 목표다.

오웰식 말장난은 좌파적 상투적 방식

정치권에서는 자기 진영에 유리한 프레임을 짜기 위해 실상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정치적 수사법을 동원한다. 바로 ‘오웰식 말장난(Orwellian Wordplay)’ 혹은 ‘오웰식 언어’다.

‘깨어난’ 아젠다를 추진하는 이들은 ‘자본주의’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그 실체는 자본주의와 완전히 무관하다. 이는 부족한 타당성을 채워넣기 위한 수식어일 뿐이다.

페티용은 자유시장이 상장기업, 심지어 비상장기업에까지 ESG 요구사항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기업에 ESG 준수를 요구하는 것에 반대하면 자유시장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ESG가 자유시장에서 출발했다는 주장에는 한 가지 큰 문제점이 존재한다. 이 용어는 2005년 10월 프레시필즈 보고서의 ‘유엔환경계획(UNEP) 이니셔티브’를 통해 처음 만들어졌다. 자유시장이 아니었다.

이들의 가장 영리했던 부분은 ESG를 ‘착한 목표’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그것을 실현할 것인지가 아니라 실현할 수 있도록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가 논의의 초점이 된다.

이러한 ‘지원’에는 ESG를 미국 기업이 준수해야 할 지침으로 설정하는 것과 함께 이를 지키지 않는 기업을 공개적으로 망신주는 조직적 활동이 포함된다.

그 조직적 활동은 좌파 정치인, 언론, 학술기관, 글로벌 금융기관 등이 참여한다. 주류 언론, 좌파 성향의 명문대와 노골적인 좌파인사·시민단체가 동맹을 결성해 ‘깨어난’ 아젠다를 풀뿌리 활동이자 자유시장의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처럼 몰아붙인다.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그려진 영국 소설과 조지 오웰의 벽화. “자유는 사람들이 듣고 싶지 않은 것을 말할 권리”라는 그의 발언이 적혀 있다. 2018.5.8 | Oliver Bunic/AFP via Getty Images/연합뉴스

주주가 아닌 이해관계자를 위한 자본주의

한 마디로 ‘ESG 투자’는 초국가적 기구인 유엔과 WEF가 상장·비상장기업에 강요하는 아젠다이다. 미국의 법이 아니라 ‘깨어난’ 기준을 따르라는 억지다.

기업의 정책, 운영, 사업파트너, 이사회 구성 그리고 조직 내에서 어떠한 정치적, 사회적 아젠다를 추진해야 할 것인지를 그들이 결정하겠다는 의도다.

이처럼 자유시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대의명분을 위해 정치적으로 복종할 것을 기업에 요구하려는 생각이 대부분의 좌파적 사고를 관통하고 있다.

강조하지만, 깨어난 자본주의는 진정한 자유시장이나 진정한 자본주의가 아니다.

페티용과 소위 ‘깨어난’ 사람들, ‘그레이트 리셋’은 이를 알고 있으나 시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들이 자의적으로 세운 기준에 따르도록 요구함으로써 본색을 드러낼 것이다.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ESG는 사기다. 그것은 가짜 사회적 정의(social justice) 전사들의 무기가 됐다.”

머스크의 말이 옳다. ESG는 실제로 미국인의 자유, 전통적인 미국의 자본주의 경제 그리고 수백만 개의 크고 작은 기업을 공격하는 무기로 쓰이고 있다. ESG는 파괴돼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파괴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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