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당국, 외국금융·주요기업 불러 “여건 개선” 약속
시장은 ‘약속 이번 위기 넘기면 또 압박할 것’…학습 효과
지난 1년 반 사이 250조 원의 외국 자본이 중국에서 빠져나간 가운데, 중국 금융당국이 해외 금융사와 기업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18일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과 외환 규제당국은 JP모건, HSBC, 도이치뱅크, 테슬라 관계자와 간담회를 갖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회의에서 판궁성 인민은행 총재는 “정책을 개선하고 시장지향적이며 국제적인 수준의 비즈니스 환경을 만들겠다”고 밝히고 “금융 서비스의 품질과 효율성을 지속적으로 개선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좋아질 것이니 중국을 떠나지 말아 달라는 의미다.
앞서 8월에는 행정부 격인 중국 국무원이 “외국인 투자 환경을 개선해 외자 유치를 확대하겠다”며 지적재산권 보호, 외국인 투자 채널 다변화, 서부 내륙지역으로의 투자 유도 방침을 밝혔다. 한 정부 관계자는 “외자기업에 중국기업과 동등한 대우를 보장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이러한 중국 당국의 연이은 ‘공약’은 급격한 외자 이탈이 그 배경이다. 중국은 올해 초 코로나19에서 벗어나 이전 수준으로 경제를 회복할 것이라고 자신했지만, 부진한 해외 수요와 부동산 시장 위축 등으로 더딘 회복세를 보였고 그사이 투자자들은 위험 관리에 나섰다.
블룸버그통신은 인민은행 최신 데이터를 바탕으로 2021년 12월부터 올해 6월 말까지 중국 내 주식과 채권에 대한 외국인 투자금이 1880억 달러(약 249조 7900억원)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지난 한 달간 중국 증시에서 빠져나간 자금은 사상 최대인 120억 달러(약 15조 9400억원)를 기록했다. 유출 속도가 갈수록 더 빨라진다는 신호다.
글로벌 금융사인 BNP파리바의 아시아 신흥시장 부문 책임자 즈카이 천은 복싱 경기에서 코치가 수건을 던지는 일에 비유하며 “외국인들이 중국 시장을 포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 이유로는 중국 부동산 시장의 불안정, 중국 소비자들의 지출 감소를 들었다.
일본 닛케이 아시아 신문은 미국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조사 보고서를 인용해 펀드 매니저들 사이에서 향후 12개월간 중국 경제가 나아질 것으로 전망한 비율이 0%를 나타냈다며 “중국을 피하라”가 투자자들의 원칙이 됐다고 지난 13일 전했다.
외자 이탈은 홍콩 증시도 예외가 아니다. 글로벌 금융허브였던 홍콩은 사회구조 전반에서 중국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외국인 자금 유입도 급감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홍콩 증시의 외국인 자금 유입은 2020년 말 이후 3분의 1 이상 감소했다.
문제는 현재로서 중국 경제의 유일한 탈출로가 외자 유치뿐이라는 점이다. 중국 경제성장의 30%를 뒷받침하던 부동산 시장은 헝다그룹의 파산 보호신청에 이어, 매출 규모 최대인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의 채무불이행 위기로 번지면서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혔다.
위축된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당장 불 꺼진 부동산 수요부터 되살려야 하지만, 일각에서는 시진핑 정부가 부동산 거품을 줄이고 부동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제 구조를 조정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베이징의 한 소식통을 인용해 “중국 정부가 한정된 재원을 중점사업에 우선 배정하고 있다”며 “민간 영역에 대해서는 ‘더는 압박도 안 하지만 지원도 안 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이를 종합하면, 중국 정부는 부동산 구제보다는 반도체 등 중점사업에 남은 자금을 집중하고 있으며, 침체한 경제는 외자 유치를 통해 해결한다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의 전략이 먹혀들지는 확실치 않다. 민간기업에 투자했다가 중국 당국의 민간기업 규제로 손해를 입은 시장에서는 ‘이번 위기만 넘기면, 공산당 지도부가 다시 민간기업을 압박할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어서다.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 디리스킹(위험완화)에 동참하는 유럽 국가들이 늘어나는 것도 외자 유치 전략의 전망을 어둡게 만드는 요인이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채드 본 선임연구원은 월스트리트저널에 글로벌 기업들은 미중 갈등이 계속될 것으로 생각하며 위험 제거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과거엔 중국에 대한 투자의 이익이 위험을 능가했지만 현재는 위험이 더 커졌다는 이야기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 금융 시장이 다른 세계 시장과 분리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