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학술단체, 논문 300여편 한꺼번에 철회…전원 중국인 저자

강우찬
2022년 05월 14일 오후 6:03 업데이트: 2022년 05월 14일 오후 7:27

중국 지하 논문공장서 ‘짝퉁 논문’ 양산, 암거래
학술대회에서 무더기 발표…학술대회도 엉터리
“전 세계 모든 위조논문 합쳐도 중국産보다 적어”

‘논문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돼 세계적 학술기관에서 한꺼번에 철회된 300여 편의 논문 저자가 모두 중국인으로 드러났다.

중국 공산당이 과학기술 강국 건설을 강조하는 가운데 중국 연구자들의 무책임한 연구윤리가 국제 학술계에서 도마에 올랐다. 특히 논문 저자 중에는 ‘쌍일류’ 대학 출신들도 포함됐다. 쌍일류는 중국 정부의 세계적 수준의 대학 육성 프로젝트다.

논문 표절·철회 감시 사이트인 ‘리트랙션 와치’에 따르면, 전산학 분야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기관인 ‘미국컴퓨터학회(ACM)’는 최근 정보기술(IT) 관련 논문 323편을 등록 철회했다. 공교롭게도 모두 중국인 저자들의 논문이었다. (https://dl.acm.org/action/showFmPdf?doi=10.1145%2F3465631)

철회된 논문들은 작년 8월 인도네시아에서 개최된 제6차 ‘정보관리·기술국제학술대회(ICIMTech)’에서 발표됐다. 그러나 다른 학술대회에서 이미 발표했던 논문을 미발표 논문처럼 꾸며 제출하는 등 미심쩍은 정황이 포착돼 ACM이 조사에 나섰다.

그 결과 해당 논문들은 모두 중국의 ‘지하 논문공장’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됐다. 논문 심사 과정과 ICIMTech 학술대회 역시 신뢰성이 의심됐다.

ACM은 이전에도 비슷한 일을 겪은 바 있다. 몇 개월 전에 ACM은 2018년 정보은닉·이미지처리(IHIP) 기술 관련 논문 26편을 철회한 적이 있었다.

익명의 제보자가 IHIP 학술대회에 발표된 논문 1편이 컴퓨터를 이용해 기존 논문을 교묘하게 짜깁기한 ‘짝퉁 논문’이라고 알렸고, ACM 조사 결과 사실로 확인됐다. 해당 학술대회 주최 측은 실제 논문 심사는 베이징의 한 회사가 담당했다고 해명했고, ACM이 이 회사를 수소문해 얻어낸 심사 자료는 검토 결과 조작된 것으로 판명됐다.

이후 ACM은 수개월의 조사를 통해 26편의 의심 논문을 찾아냈다. 논문 저자로 등록된 이들은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결국 ACM는 이 26편을 ACM 온라인 라이브러리에서 삭제했다.

ACM은 전 세계 컴퓨터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전문 학술 기관이다. ACM이 매년 수여하는 튜링상(Turing Award)은 컴퓨터 분야의 노벨상으로 꼽힌다.

이번에 ACM이 등록을 철회한 323편의 논문 저자는 모두 중국 출신이었으며, 소속 대학에는 화둥이공대학, 중국농업대학, 청두이공대학 등이 포함됐다.

도쿄대 의학박사 출신의 중국 평론가 정제(鄭傑)는 “중국의 논문 조작은 이미 국제 학술계서 악명이 높다”며 “컴퓨터 분야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다. 여러 분야에서 만연해 있는데 급여와 승진, 성과급에 논문 실적이 반영되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정제는 “논문 실적을 성과급 등에 반영하는 것은 어느 국가나 비슷하지만, 중국에서는 선을 넘는 수준이다. 반칙과 거짓말로 승승장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정직하면 어리석은 사람 취급을 받는다. 개인의 일탈로만 보기 어려운 사회적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사회주의 정부의 경직된 정책도 문제”라며 “예를 들어 베이징시 위생국은 전문의에서 부과장으로 승진하려면 권위 있는 의학저널에 최소 2편의 논문을 제1저자로 등록해야 하며, 과장급은 3편이라고 규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대부분 의사들은 진료에 바쁘고 연구해서 논문 쓸 여력이 없다. 권위 있는 저널에 논문을 낸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러다보니 승진을 위해 논문을 사고파는 암거래가 성행한다. 윤리가 땅에 떨어진 중국 의료계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의 논문 암거래는 세계적 권위의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에서도 지적한 문제다. 2013년 11월 <사이언스>에 실린 ‘중국 논문 시장(China’s Publication Bazaar)’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논문이 1600~2만6300달러에 거래됐다. ‘고가’의 논문은 중국 부교수 1년 치 급여보다 비쌌다.

이 보고서의 저자들은 5개월간 현지 조사를 통해 사례를 수집했다. 논문을 사려는 대학원생이나 학자로 위장해 암거래 시장이 성행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전문적인 대행업체도 존재했다. 한 업체는 암과 관련한 의학논문에 공동 제1저자로 추가해주는 대가로 1만4800달러(약 1900만원)를 제시했다. 여기에 교신저자 1명을 추가하면 비용은 2만6300달러(약 3300만원)가 됐다.

중국 현지 매체들도 비슷한 보도를 낸 적이 있다. 2010년 장강일보(長江日報)는 전년 중국 위조논문 시장 규모를 가장 낮춰 잡아도 10억 위안(약 188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리트랙션 와치’는 2010년 각국 학자들의 연구 윤리를 감시하기 위해 설립됐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논문 표절·철회 감시 사이트로 자리잡았다. 한국에서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조모씨의 논문 철회를 보도해 주목받기도 했다.

이 사이트에 따르면, 논문 조작은 전 세계 모든 학술 분야에서 돌출되고 있는 문제다. 하지만, 표절과 조작으로 철회된 중국 논문은 다른 모든 국가에서 철회된 논문보다 많은 실정이다.

학술지 <네이처>는 작년 3월 보고서에서 중국 지하 논문공장들이 위조된 논문을 양산하면서 중국 의학계의 논문 조작이 지난 20년간 50배 급증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