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서적은 태우고, 신자들은 감옥행…공산주의 중국의 사상 통제

조슬린 네오
2021년 4월 7일
업데이트: 2021년 4월 7일

수년 전, 홀로코스트 참상은 세계인권선언의 길을 열었지만, 종교나 믿음의 자유에 대한 우리의 기본권은 전체주의 정권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여전히 짓밟히고 있다.

공산주의 중국에서는 특정 종교를 믿거나, 종교 서적을 발행하고 읽는 이들에게는 징역형을 선고하거나 폭행을 휘둘렀다. 중국 공산당(중공)은 기독교나 불교, 위구르 무슬림 혹은 파룬궁 수련자와 같은 중국의 종교 신자들을 잔혹하게 탄압하거나 강제 노동을 시킬 뿐만 아니라 그들의 종교 서적을 불태우거나 폐기했다.

이러한 강압적인 정책은 종교 신자들이 무신론과 마르크스주의에 근거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따르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악마의 행동이었다.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중공은 압박을 단계적으로 높이고 있다. 결국, 그들의 목적은 종교적 믿음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었다.”
— 중국의 한 삼자교회 전도사

종교 서적 출판 금지

중국의 종교·인권 실태를 다루는 일간 뉴스 ‘비터윈터‘에 따르면, 지난해 7월 창산현 관할 구역에 있는 한 마을의 삼자교회가 철거됐다.

군 관계자는 신도들에게 “정부기관과 너무 가까운 교회는 모두 파괴해야 한다”며 “정부 청사보다 보기 좋은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매체에 따르면, 중공에 대한 믿음만이 국가가 허용할 수 있는 유일한 종교였다.

해당 매체는 또한 같은 달 중국의 장쑤성 지역에서 한국의 기쁜소식선교회 내부 신자용 종교간행물 발행에 연루된 26명이 ‘불법 영업’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고 보도했다.

책임자와 선교사 2명은 무거운 벌금형과 함께 각각 3년 10개월과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인쇄소 관계자들은 1만5000달러(약 168만원)의 벌금형과 징역 3년, 집행유예 3~5년을 선고받았다.

2018년 8월 우한의 한 교회에서 여성신도가 성경을 읽고 있다. | NICOLAS ASFOURI/AFP via Getty Images

중국에서는 우편과 택배 서비스 분야에도 사생활이 허용되지 않는다. 허난성 뤄양시의 한 택배회사 직원은 ‘비터윈터’와의 인터뷰에서 “2020년에 중공은 우편물을 엄격하게 관리했다”고 했다.

이 직원은 “정부가 승인한 서적만 발송할 수 있었다. 종교를 포함한 ‘유해한 정보’가 있는 책은 모두 발송을 허용하지 않았다”며 “중공이 이러한 규정 위반 사실을 적발하면 회사는 과태료 처분을 받는 동시에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터윈터는 허난성 지위안시 출신의 한 기독교 신자가 2020년 6월에 우체국을 방문해 해외에 거주하는 딸에게 복음 서적을 발송하려 했으나, 중공은 해당 서적을 ‘불법적인 물건’이라고 간주했다고 보도했다(관련 기사).

해당 신자는 “가연성 물체나 약물, 총, 탄약 등을 보내는 것은 불법으로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종교 서적까지 불법으로 처리할 줄 몰랐다”고 했다.

중공이 종교 서적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인쇄업 종사자들은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졌다. 허난성 뤄양시의 한 인쇄업체 사장은 지난해 9월 ‘비터윈터’와의 인터뷰에서 “종교 서적, 특히 기독교와 관련된 인쇄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종교 서적) 인쇄를 한 사람은 누구든지 법을 어긴 것이므로, 감옥에 갇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절대 넘을 수 없는 선”이라고 덧붙였다.

당국은 또한 인쇄업들이 규정을 제대로 준수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철저히 점검하고 있다.

같은 도시에 있는 또 다른 인쇄업체 사장은 “그들은 내 사무실에 있는 창고도 확인하고, 모든 기록물을 꼼꼼하게 살폈다. 심지어 바닥에 깔아 놓은 종이 시트까지 들여다봤다”고 했다.

그는 또 “종교와 관련된 내용이 발견되면 벌금을 물게 될 것이고, 최악의 경우에는 폐업해야 한다. 어떤 종교적인 내용이든 이를 종교가 아닌 정치적인 내용으로 간주했다”며 “거리에 걸려 있는 현수막에는 ‘종교적 신앙을 허용한다’고 적혀 있지만, 사실 우리가 자유롭게 믿을 수 있는 신앙은 공산당뿐이다”라고 했다.

2017년 9월 중국 허난성 난지마을의 한 인쇄공장에서 작업 중인 근로자.| GREG BAKER/AFP via Getty Images

‘비터윈터’는 지난 2019년에도 공산당이 기독교 신자들에게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 이념에 입각한 가르침을 해석하도록 강요하는 등 ‘성경의 중국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관련 기사).

한 삼자교회 전도사는 언론에 “이는 기독교 신앙을 왜곡하는 것이다. 그것은 악마의 행동이다”라며 “상황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중공은 단계적으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결국 그들의 목표는 종교적인 믿음을 완전히 없애는 것”이라고 했다.

 

종교 서적 폐기 및 소각

중국 당국은 종교 서적 출판을 금지할 뿐만 아니라 공식적으로 승인되지 않은 종교 서적을 모두 압수한다.

지난해 3월 지방 당국은 지닝시 위타이현에 있는 한 삼자교회를 ‘불법건축물’이란 이유로 철거 조치를 내렸다.

한 신도는 ‘비터윈터’에 “공무원들은 우리가 소지품들을 다 챙기기도 전에 우리 교회에 난입했다”며 “그들은 주예수과 관련된 모든 성경과 그림들을 찢어버렸다”고 했다.

국제기독연대(ICC)는 2020년 10월 보고서에서, 저장성 타우저우시에서 기독교 온라인 서점을 운영하는 천위가 지난해 10월 ‘대만과 미국 등에서 수입한 미승인 종교 출판물을 판매했다’는 이유로 징역 7년과 벌금형 20만 위안(약 3400만원)을 선고받았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당국은 천위의 서점에 있는 1만 2864권의 기독교 서적을 폐기할 계획도 세웠다.

중공이 권위주의 통치를 진전시키기 위해 종교 서적을 폐기하고 예배 장소를 철거하는 등 종교 신앙자들을 완전히 통제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무신론과 유물론에 뿌리를 둔 중공은 1949년 집권한 이래 끊임없이 종교 집단을 탄압해 왔다.

1966년부터 10년간 진행된 문화대혁명 당시 사찰들은 약탈당했고, 두루마리와 책, 유물 심지어 불상까지 불에 탔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이어진 문화대혁명 시기에서 불상들이 파괴됐다.| Pat B/CC BY-SA 2.0

이로부터 몇십 년 후인 1999년 7월, 당시 국가주석이었던 장쩌민은 ‘진(眞)·선(善)·인(忍)’의 원리에 기공을 결합한 고대 수련법 ‘파룬궁’을 근절하라고 명령했다.

파룬궁 정보센터에 따르면, 당국은 파룬궁과 관련된 홍보물이나 서적, 사진 등의 출판·전시·배포를 금지하는 공식 문서를 발행했다.

미국의 파룬궁 박해 기록 전문 사이트인 ‘밍후이(Minghui.org)’에 따르면, 중공은 수백만 개의 파룬궁 발행물, 즉 책과 비디오테이프 등을 파쇄기에 집어 넣거나 불태웠다(관련 자료).

1999년 8월 중국 산둥성 동부 저우광시에서 파룬궁 관련 출판물 등이 불 타고 있다. | STR/XINHUA/AFP via Getty Images

그 이후 수많은 파룬궁 수련자가 체포돼 감옥에 갇히거나 고문을 당했다. 심지어 일부는 장기 적출을 당하기도 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신앙 포기를 거부하거나 책을 소지한 혐의로 체포됐다.

밍후이는 ‘서적·비디오테이프 공개 폐기’에 관한 보고서에서 외신 기자, 중국 관영매체, 목격자, 파룬궁 수행자들이 밝힌 여러 사례를 인용해 ‘대량 폐기’ 활동 과정에서 수백만 권의 발행물이 폐기되고, 전소되고, 찢어졌음을 확인했다.

비록 불교는 중국에서 인정받는 종교 중 하나이지만, 불교 사원과 신도들은 여전히 당국의 표적이 되고 있다.

중국 공산당 당국이 1999년 파룬궁 관련 출판물과 영상물 등을 도로공사장비로 깔아뭉개어 파손하고 있다. | Minghui.org/CC0 1.0)

‘비터윈터’는 지난 2020년 10월 산시성 공무원들이 그 지역에 있는 사찰 펑치사에서 882파운드(약 400kg)가량의 종교 서적과 CD를 압수했다고 보도했다(기사 링크).

같은 달, 장시성 간저우시에 살고 있는 일부 가난한 사람들은 사찰 포구앙사에 있는 불교 서적을 불태우라는 명령을 받았다. 공무원들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생계 수단이 끊길 수 있다고 협박했다.

2020년 봄을 맞아 중국 내몽골 우란차부시의 관음산 사찰에서 종교서적과 CD 등이 불에 탄 것으로 알려졌다.

한 불교 신자는 당시 참상을 회상하며 “서적과 CD들은 향로에서 3~4일 동안 불탔고, 나머지 발행물들은 트럭에 가득 실려 갔다. CD만 해도 무게가 300~400kg 나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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