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전사 vs. 조자룡…대만 부총통 후보 이력도 초미 관심

70년대생 여성 정치인 내세운 민진당 70대 스타 방송인으로 응수한 국민당

최창근
2023년 12월 6일 오후 9:19 업데이트: 2023년 12월 16일 오후 9:54

40일도 채 남지 않은 내년 1월 13일 대만 총통‧입법원 동시 선거를 두고 각 정당 선거 유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라이칭더 민진당 후보의 1강(强)과 허우유이 국민당 후보와 커원저 민중당 후보의 2중(中) 체제로 치러질 것으로 예상됐던 선거는 대만 독립 성향의 민진당과 중국 정체성의 국민당 양강(兩强) 구도로 바뀐 양상이다. 선거 레이스 초기 지지율에서 허우유이 국민당 후보를 앞섰던 커원저 민중당 후보의 지지율 이탈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 속에서 총통 후보의 러닝메이트로서 ‘보완재’ 역할을 하는 부총통 후보의 이력과 활동도 화제이다. 민진당은 70년대생 여성 정치인 샤오메이친(蕭美琴) 전 주미국 대표를, 국민당은 70대 백전노장 전 중국라디오공사(中國廣播公司‧BCC) 회장을 택했다.

샤오메이친은 이국적인 외모부터 눈길을 끄는 정치인이다. 대만인 아버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1971년 일본 효고현 고베시에서 태어났다. 개신교 선교사였던 부모님을 따라 대만 남부 타이난으로 이주하여 유년 시절을 보냈고 고등학교 시절 도미(渡美)하여 오벌린대와 컬럼비아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대만 민주화 운동의 대모(代母)로 불리는 뤼슈롄 전 부총통 비서로 정계에 입문하여 천수이볜 총통의 국제비서 겸 영어 통역관을 담당했다. 민진당 국제사무부 주임, 총통부 고문 등을 거쳐 2002년 입법위원에 당선되어 4선을 기록했다. 이후 2020년부터 2023년 11월까지 주미국 타이베이경제문화대표부 대표를 지냈다.

중국어(베이징어), 대만어(민남어), 영어, 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샤오메이친은 민진당의 차세대 주자이자 대표적인 ‘국제통’이다. 정치 경력 대부분을 국제 관계 분야에서 활동해 오며 ‘대만 외교관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주미국 대표에 여성 최초로 임명됐다.

샤오메이친의 별칭은 ‘전묘(戰猫‧고양이 전사) 외교관’이다. 힘을 내세워 대상국에 강압적인 태도로 일관해 무리를 일으키고 있는 중국의 전랑(戰狼‧늑대 전사) 외교에 빗댄 표현이다. 주미국 대표 시절 일본 지지(時事)통신은 “샤오메이친 대표는 중국의 전랑 외교에 맞서는 전묘외교로 미국 정가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묘외교는 인권 존중, 자유 민주주의 가치를 내세워 극심한 외교적 고립 속에서 국제사회의 우군(友軍)을 늘려 나가려는 대만의 외교정책을 의미한다. 2020년 7월, 차이잉원 총통이 샤오메이친을 주미국 대표를 임명하면서 “유연한 ‘고양이 전사’의 자질이 있다.”고 소개한 데서 유래했다. 이에 샤오메이친 대표는 “대만 외교는 팽팽한 밧줄 위를 경쾌하고 유연하게 걷는 고양이와 같다. 중국의 오만하고 무례한 외교와는 다르다.”고 강조한 것에서 유래했다. 실제 차이잉원 총통과 샤오메이친 부총통 후보는 소문난 고양이 애호가이다.

대만인의 피와 미국인의 피가 함께 흐르는 샤오메이친은 미국 수도 워싱턴D.C에서 ‘대만 대사’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대만 외교의 활로를 개척하는 데 앞장섰다. 이런 그를 두고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는 ‘워싱턴 정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대사 중 한 사람’으로 꼽기도 했다. 신문은 “샤오메이친 대표가 민주당‧공화당을 가리지 않고 정기적으로 주요 상‧하원 의원, 전‧현직 미국 관리들과 교제하며 친분을 다지고 있다. 대만은 어느 나라보다 워싱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외교 대표를 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70년대 생 여성, 다선 입법위원, 국제 전문가’인 샤오메이친은 국민대회 대표, 입법위원, 민선 타이난(臺南) 시장, 행정원장, 부총통으로 국내 정치에서 관록을 쌓아온 라이칭더 총통 후보의 ‘보완재’로서 역할을 해 내고 있다는 평가이다. 부총통 후보 공식 지명 시 라이칭더는 “샤오메이친은 대만 외교에서 보기 드문 인재이다. 남은 50여 일 동안 샤오메이친과 함께 민의와 모든 세력을 통합해 선거에서 이길 것으로 확신한다.”고 언급했다.

서로 다른 성장 배경, 정치 이력을 가졌지만 ‘미국 유학파’ 출신으로 친미 성향에 현 차이잉원 총통보다 강한 대만 독립 성향을 보인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지녔다. 이에 중국은 강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중국 정부는 샤오메이친을 ‘대만 독립 분자’로 지목하여 가족까지 중국(홍콩, 마카오 포함) 입국 금지, 중국 내 자산 동결 등 영구 제재 조치를 취했다. 올해 11월, 부총통 후보 공식 지명 후 중국 CCTV는 ‘라이칭더·샤오메이친 두 독립 조합(雙獨組合)은 대만을 재앙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것’ 제하의 논평에서 “가장 위험한 조합”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서 대만 정계에서는 중국 당국이 라이칭더·샤오메이친 후보를 두려워하는 방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만 제1야당 국민당은 부총통 후보로 자오사오캉(趙少康) BCC 최고경영자(CEO) 회장을 지명했다. 11월 30일, 공식 지명 후 자오사오캉은 중국 고전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비유를 들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비를 위해서라면 옆구리가 칼에 찔리는 위험도 무릅쓰는 조자룡이 되겠다.”

민진당에서는 연상의 노정객 자오사오캉이 연하이자 정치 경력이 짧은 허우유이 총통 후보를 ‘꼭두각시’로 만들고자 한다며 혹평했다. 민진당은 허우유이를 가리켜 ‘일으켜 세울 수 없는 아두(扶不起的阿斗)’라고도 했다. 아두(阿斗)는 삼국지연의의 주인공 유비의 아들이자 촉한(蜀漢) 2대 황제 유선(劉襌)의 아명이다. 중국에서 아두는 무능한 군주 혹은 바보를 의미한다. 실각하여 수인(囚人) 신세가 된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중국 공산당위원회 서기도 현 시진핑 국가 주석을 무능하다고 폄하하며 ‘아두’라고 지칭했다.

1950년생인 자오사오캉은 정치인 출신 스타 방송인이다. 황푸군관학교를 졸업한 국민혁명군 장교의 아들로 태어나 국립대만대학에서 농학 학위를, 미국 클렘슨대학에서 기계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테크노크라트이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국민당 청소년 조직에서 활동하였고 미국 유학 시절 ‘중화민국 반공애국동맹’ 핵심 멤버로 활동한 강성 국민당 성향이다. 쑹추위(宋楚瑜) 친민당 주석, 첸푸(錢復) 전 감찰원장, 마잉주(馬英九) 전 총통 등과 더불어 국민당 2세대 엘리트였다.

1981년 31세로 타이베이 시의원에 당선되어 재선에 성공했고 1987년 입법위원에 당선돼 연임했다. 입법위원 재임 중 행정원 환경보호서장(환경부 장관)으로 입각했다. 국민당 소장파 대표 주자로서 ‘정치신동(政治金童)’ 별칭을 얻었다. 대만 정계의 샛별이었던 셈이다.

1988년 장징궈(蔣經國) 총통 사후 부총통으로서 총통직을 계승했던 리덩후이 집권 후 국민당 내 노선 경쟁이 격화했다. 본성인(대만인) 출신 리덩후이는 국민당의 본토화(대만화)를 추진했다. 양안정책에 있어 ‘중국과 다른 대만’ 정체성을 강조하는 리덩후이 등 당내 주류파와 하오보춘(郝柏村) 전 행정원장, 위무밍(郁慕明) 입법위원 등 본토파(중국 출신) 보수파와 갈등이 격화했다.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는 국민당 내 본토파 비주류는 선명한 국민당 노선을 주창하는 당내 정치 결사체 신국민당연선(新國民黨連線)을 결성했고 이후 1993년 이를 중심으로 신당(新黨)을 창당했다. 신국민당연선 회원이었던 자오사오캉도 탈당하여 신당에 합류했다.

1994년 자오사오캉은 신당 공천으로 수도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선전했으나 천수이볜 전 총통에게 패배했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민영방송 UFO 라디오(飛碟聯播網)를 창립하여 경영자 겸 방송 진행자로 명성을 얻었고 2006년 국민당 당영 라디오 방송사 BCC를 인수하여 최고경영자 회장이 됐다. 스타 정치인에서 방송인 겸 경영자로 변신한 자오사오캉은 BCC 외 다수 TV, 라디오 방송 진행자로 명성을 얻었다. 2021년 부터는 국민당에 복당하여 ‘파이팅 블루(戰鬥藍)’ 운동을 전개하며 국민당 지지자 집결에 주력해왔다.

자오사오캉이 부총통 후보로 지명되자 홍콩 시사주간지 ‘아주주간(亞洲週刊)’은 이를 ‘소강중흥(少康中興)’이라고 표현했다. 소강중흥은 중국 고대 하(夏)나라 6대 군주 소강(少康)이 즉위하고 나서야 비로소 국가가 안정돼 국력이 점차 회복됐다는 뜻이다. 어려운 처지에 처한 국민당에는 유능한 장수가 필요할 때 백전노장 자오사오캉이 전투력을 보강하여 유권자 지지를 결집시키는 현상이 ‘소강중흥’을 연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날 정치신동 ‘자오사오캉 효과’는 각종 여론조사에도 반영됐다. 친중 성향 ‘중국시보’ 최신 여론조사에 따르면 허우유이 후보는 지지율 28.2%로, 민진당 후보 라이칭더(28.3%)를 0.1%포인트 차로 오차 범위 내에서 따라붙었다. 대만 갤럽 여론조사에서도 허우유이 후보 지지율은 30.94%를 기록하여 라이칭더(31.01%)와 0.7% 포인트 차밖에 나지 않는 등 초접전 대결 양상을 띠었다. 국민당 유권자 지지도도 반등하고 있다. 11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허우유이‧자오사오캉 조합은 국민당 성향 유권자의 허우유이 지지율을 종전 64.4%에서 82.6%로 끌어올렸다.

이를 두고 장쥔하오(張峻豪) 대만 둥하이대(東海大) 교수는 BBC 중문판에 “오랫동안 정치 논평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자오사오캉의 연설 스타일이 말주변이 없는 허우유이 후보에게 보완적이다.”라고 평가했다. 다만 “이러한 단기 호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