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원훈석 교체, 윤석열 정부에서 ‘신영복체’ 사라지나?

김태영 인턴기자
2022년 06월 24일 오후 5:14 업데이트: 2022년 06월 28일 오후 5:50

롯데칠성 소주 브랜드 ‘처음처럼’ 글씨체로 알려진 신영복 전 성공회대 교수의 서체 ‘어깨동무체(신영복체)’가 윤석열 정부에서는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6월 24일 국가정보원(국정원)이 새 원훈으로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 전신)의 부훈인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를 복원하기로 했다. 원훈석은 그간 국정원이 국가기록물로 보관해오던 옛 원훈석을 재사용하기로 했다. 

이날 오전 김규현 국가정보원 원장은 직원들에게 “ 원훈을 다시 쓰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아니라 초심으로 돌아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정보기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자는 의미라며 이 원훈을 마음에 새기고 흐트러짐 없이 업무에 매진할 것을 당부했다.

국정원은 2021년 6 창설 60주년을 맞아 설치한 ‘신영복체’ 원훈석(院訓石)이 정보기관 정체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에 최근 내부 직원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결과 국가정보원 창설 당시에 지어졌던 원훈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으로 원훈석을 교체하자는 여론이 다수를 차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원훈은 1961년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 창설 당시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김종필  국무총리가 지은 부훈으로 이후 1998년 김대중 정부 초기까지 37년간 사용됐다

문재인(왼쪽) 전 대통령과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2021년 6월 4일 ‘신영복 글씨체’ 국가정보원 원훈석 제막식을 가졌다. | 청와대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신영복체는 정부 부처 홍보물에 널리 사용됐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평소 존경하는 사상가로 신영복 전 교수를 꼽아온 것을 주된 원인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입수하여 공개한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신영복체는 경찰청 공식 행사에서도 여러 번 사용됐다. 경찰청은▲2020년 7월23일 제21대 경찰청장 이임식 ▲2020년 7월24일 제22대 경찰청장 취임식 ▲2020년 8월7일 제36대 서울경찰청장 취임식 ▲2021년 1월4일 2021년도 경찰청 시무식▲2021년 7월9일 제37대 서울경찰청장 취임식 등 총 다섯 차례 신영복체로 써진 현수막을 공개 행사에 사용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신영복체 사용으로 가장 많은 논란을 야기한 것은 국가정보원 원훈석이다. 신영복체는 2021년 6월 4일 국가정보원 창설 60주년을 맞아 세운 원훈석(院訓石)에 사용됐다. 당시 새 원훈석 제막 행사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도 참석했다. 이날 국가정보원은 2016년부터 5년간 사용한 원훈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를 ‘국가와 국민을 위한 한없는 충성과 헌신’으로 변경했다.

신영복체 원훈석 교체 후 국가정보원 전직 직원 모임 ‘양지회’는 2021년 6월부터 황윤덕 전 국가안보통일연구원장 주도로 무기한 1인 릴레이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장종한 전 양지회 사무총장은 “원훈석은 국정원의 상징과 같다.”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복역한 사람의 필체를 대북정보 활동을 하는 국정원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공개 비판했다.

6월 10일 민경우 미래대안행동 상임대표가 국정원 앞에서 원훈석 철거 1인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 미래대안행동

주사파 출신 시민운동가 민경우 미래대안행동 상임대표도 ‘신영복체’ 원훈석 철거를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민경우 상임대표는 주사파 거물로서 1987년 6월 항쟁 시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으로 시위를 주동했다. 이후 친북 단체 통일연대 사무처장,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 등을 역임했다.

민경우 대표는 에포크타임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신영복체로 써진 원훈석이 철거돼야 하는 이유에 대해 “신영복 전 교수는 단순 간첩이 아니라 북한을 추종하는 지하혁명조직인 통일혁명당 조직원 중에서도 매우 비중 있고 상징적인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민경우 대표는 2021년 6월 신영복 글씨체가 사용된 국정원 원훈석이 세워진 과정에도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이른바 국정원 개혁을 추진하면서 정권 말기 ‘피날레 행사’로 원훈석을 교체했다.”며 “원훈석에 신영복체를 사용한 것은 우연히 아니라 의도된 것이다.”고 주장했다.

‘신영복의 사상과 글씨체는 분리해서 접근해야 한다.’는 반문에 대해서 민경우 대표는 “신영복 전 교수는 스스로 글씨체(시서화)를 통해 자신의 사상과 노선을 대변한다고 이야기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신영복의 사상과 글씨체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신영복 글씨체가 모든 곳에서 다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민경우 대표는 “신영복씨가 교수로 재임했던 성공회대에 그를 기념하는 조형물이 있다면 문제 삼을 생각이 없다. 다만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특별기관인 국가정보원에 통일혁명당 출신 신영복체로 만들어진 원훈석이 세워진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며 국정원·경찰청·대통령실 등의 국가기관은 고유의 특수성이 있는 만큼 국가 정체성을 어지럽히는 상징성을 지닌 물건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1968년 중앙정보부는 ‘임자도 간첩단’과 남한 내 지하 혁명 조직 통일혁명당(사진) 조직원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 연합뉴스

민경우 대표가 언급한 통일혁명당 사건은 박정희 대통령 재임기인 1968년 8월 24일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지하혁명당 사건이다. 158명이 검거되고 50명이 구속된 1960년대 최대 공안 사건으로 김종태를 비롯한 주범들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육군사관학교 교관으로 재직 중이던 신영복은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1심과 2심에서 사형,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후 1988년 사상 전향을 하여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했다. 다만 실제 신영복 전 교수는 전향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월간 ‘말’과의 인터뷰에서 신영복은 “전향서는 썼지만 사상을 바꾸거나 동지를 배신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며 “통일혁명당에 가담한 것은 양심의 명령 때문이었다. 앞으로도 양심에 따라 활동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