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중국 특색 사회주의 종교 이론’ 홍콩천주교회에 전파 시도 파문

최창근
2022년 1월 4일
업데이트: 2022년 1월 4일

국가종교사무국-천주교애국회 주교-중련판-홍콩교구 지도부 비밀회동
홍콩 천주교 성직자 “중국 정부가 홍콩교구에 영향력 행사 하려는 적극적 시도”
예수회 중국관구장 출신 스티븐 차우 홍콩교구장 임명

1997년 7월 1일, 홍콩 주권 반환 후 ‘홍콩의 본토화(중국화)’는 가속도를 내고 있다. 종교계도 예외는 아니다.

이 속에서 지난해 10월, 중국의 종교 전담 부처인 국무원 종교사무국 관리, 중앙인민정부 주홍콩연락판공실(中央人民政府駐香港聯絡辦公室·중련판) 관계자, 중국천주교애국회(中國天主教愛國會) 소속 주교, 스티븐 차우(Stephen Chow Sau-Yan·周守仁) 교구장을 비롯한 천주교 홍콩 교구 지도자들이 비밀 회동을 가진 사실이 드러나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중련판이 주최한 회의에서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중국 특색 사회주의 종교이론’을 홍콩 교구 고위 성직자들에게 브리핑한 것으로 알려졌다.

12월 30일, 영국 로이터는 ‘역사적인 콘클라베 : 중국 주교와 성직자들이 홍콩 성직자들에게 시진핑 주석의 종교적 견해를 브리핑하다’라는 제목의 해설 기사에서 해당 사실을 폭로했다.

로이터는 천주교 홍콩교구 소속 성직자 4인의 발언을 빌려 “회의에 참석했던 성직자들은 베이징 정부가 홍콩교구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 중 가장 적극적인 조치다” “홍콩 천주교 지도자들이 지난날 중국 본토 천주교 지도자들을 개별적으로 만난 적이 있지만, 양측이 공식적으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중국 본토 종교 관계자(국가종교사무국 관리)들이 이러한 회담을 주선한 것도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국가종교사무국 관계자, 중련판 소속 인사, 중국천주교애국회 소속 ‘유력’ 주교 3명,  홍콩교구 고위 성직자 15명이 참석한 회의를 베이징 정부는 줌(Zoom) 프로그램을 통해 모니터링했다고 보도했다.

홍콩교구 측에서는 당시 홍콩 교구장 지명자였던 스티븐 차우 신부가 회의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는 중국 측 3인의 주교를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궈진차이(郭金才) 청더(承德)교구장, 양샤오팅(楊曉亭) 시안(西安)교구장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다. 두 주교는 모두 중국 관방에 의해 임명돼 관변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인물이다. 궈진차이 주교는 제11차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중국천주교주교단 비서장으로 임명됐고, 양샤오팅 주교는 산시(陝西)성 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회 민족종교화교외사공작위원회 부주임을 맡고 있다.

회의에서는 시진핑과 베이징 정부의 ‘중국화’ 정책이 교황청이 추구하는 천주교 현지화 정책과 어떤 면에서 일치하는지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진핑이 ‘중국 특색’이라 부르는 중국의 종교 정책에는 종교와 중국 공산당·정부 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종교를 중국 문화·애국심과 연결하고 중국공산당·중화인민공화국의 목표와 밀접하게 연결하여 ‘중국몽’을 달성하는 것이 포함된다고 로이터는 참석자의 말을 빌려 보도했다.

문제는 회의 시점이다. 국가종교사무국-천주교애국회-중련판-홍콩교구 4자 회동은 차우 신임 교구장 착좌(공식 취임) 직전에 이뤄졌다. 2021년 5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스티븐 차우 신부를 신임 홍콩 교구장으로 임명했다. 교황은 임명 담화에서 반정부 시위로 분열된 천주교 공동체를 통합해 줄 것을 촉구했다. 2019년 1월 마이클 융(Michael Yeung·楊鳴章) 주교 선종 이후, 홍콩교구장은 2년 이상 공석이었다. 전임 교구장이던 통혼(John Tong Hon·湯漢) 추기경이 대리교구장으로서 사목(司牧)하던 형편이었다.

전체 신자 62만 1000명 선인 홍콩의 천주교 교세는 크지 않지만, 대신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홍콩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강력하다. 교구는 317개 학교·유치원을 운영 중이며 재학생은 2만 명 이상이다. 홍콩 내 친중파들은 이들 학교를 반중파의 거점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대중국 정책을 둘러싸고 전·현직 홍콩교구 지도자들 간 온도 차도 분명하다. 2002~09년 교구장이었던 조지프 젠(Joseph Zen Ze-kiun·陳日君) 추기경은 중국 정부에 대해서 강경한 목소리를 내 왔다. 2018년 교황청이 중국 내 주교 임명권을 베이징 정부에 사실상 양보하자 “합의는 교황을 따르는 신자들을 배신한 것” “교황청이 교회를 중국에 팔아 넘긴다”라며 날을 세웠다. 2020년 홍콩국가보안법이 시행되자 “홍콩에서 신앙의 자유는 지켜지지 않을 것이며 언제든 국가보안법에 의해 체포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인권, 정치·종교 자유 문제를 중심으로 중국 공산당을 공개 비판해 온 조지프 젠은 2006년 ‘중국인’ 최초로 교황 다음가는 고위직인 추기경에 서임됐다.

후임자인 마이클 융 주교는  중국 정부에 유화적인 태도를 취했다.  중국 정부가  개신교회 외벽 십자가를 철거하는 등 종교 탄압 정책을 펼 때도 용인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의 기본 입장은 “교회도 중국 법률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두고 마시모 인트로비네(Massimo Introvigne) 이탈리아 세계신종교연구소장은  “신학적으로 보수적이면서도 친공(親共)적일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증명한다”고 평가했다. 융 주교는 천주교 신자인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과도 각별한 사이로 알려졌다.

마이클 융 주교 선종 후 교구장 대리를 맡은 통혼 추기경은  2020년 ‘교구장 사목서한’을 통해서 홍콩교구 사제·부제들에게 “증오를 담거나 불러일으키거나 사회 불안을 자아내는 비방, 모욕적인 표현들은 그리스도인 정신에 어긋나며 미사 전례에 절대 적합하지 않다”고 훈시하며 사제들이 미사 강론 중 중국 정부나 홍콩특별행정구를 비방하지 못하게 했다. 천주교회 내부에서 각 교구를 책임지는 교구장 사목서한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실제 홍콩교구는 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준비하고 있던 민주화운동 지지 기도회 계획을 취소시키기도 했다. 정의평화위원회는 홍콩국가안전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보석으로 풀려난  빈과일보(蘋果日報) 사주 지미 라이(Jimmy Lai) 지지 광고를 내기 위한 기부금을 모으고 있었다. 광고에는 홍콩의 민주주의 보전을 위한 기도가 담길 예정이었다. 이에 대하여 홍콩 민주인사들은 ‘홍콩 민주화의 보루’인 천주교회마저 중국 정부에 순응한다며 비판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이 속에서 차기 홍콩교구장 임명은 지연됐다. 이를 두고 AP 등 당시 외신들은 “교황청이 후임자 인선 절차에 들어갔으나 홍콩 민주화 시위라는 변수 속에서 선임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보도했다. 관례대로 라면 요셉 하(Joseph Ha Chi-shing·夏志誠) 보좌주교가 후임자가 됐겠지만, 2019년 시작된 홍콩 민주 시위를 공개 지지하고 중국을 비판한 뒤로 교황청은 그를 신임 교구장 후보에서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 보좌주교는 민주화를 위한 철야 기도회와 항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석하여 “시위가 얼마나 이어지는지 상관없이 자신은 늘 동참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친중 성향 주교를 후임자로 임명하면 민주주의 진영으로부터 비난을 받을 소지가 있었다. 반면 친민주파 주교는 친중파는 물론 베이징 정부와도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존재했다. 다른 요인은 교황청-베이징 간 합의로 2018년부터 자국 내 주교 임명권을 사실상 베이징 정부가 행사 하고 있다는 점이다. 베이징 정부가 주교를 임명하면 교황청은 추인(追認)하는 방식이다. 이를 두고 국내 천주교 매체는 “교황청이 1국가 2체제인 홍콩 행정권을 아예 접수하겠다고 위협해 온 중국 공산체제가 받아들일 만한 후보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라며 인선 지연 배경을 분석하기도 했다.

중국과 교황청 간 암묵적 합의 속에서 신임 홍콩교구장으로 임명된 스티븐 차우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속한 수도회인 예수회(Societas Iesu) 중국관구장(管區長·중국 본토, 대만, 홍콩, 마카오 포함) 겸 홍콩 예수회 총장 출신이다.

차우 신부의 교구장 임명을 두고 천주교 관련 매체들은 “주교(교구장)직 물망에 오른 이들은 중국 정부와 밀착돼 있거나 반정부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차우 신임 주교는 현지 천주교회와 중국 정부가 모두 수긍할 만한 중립적 인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면서도 중국 본토와 어느 정도 소통할 수 있는 중도 성향의 성직자다”라고 평가했다. 교황청 아시아 선교 전문 매체 아시아 뉴스(AsiaNews)도 스티븐 차우 신부의 주교 지명 소식을 전하며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입장과 친중파 사이의 다리가 되어줄 수 있는 ‘솔로몬과 같은 선택’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차우 신부는 교구장 지명 후 기자회견에서 2019년 민주주의 시위 이후 갈라진 홍콩 교구의 향방에 대해 “큰 계획은 없다”면서도 “일치란 획일성과 같지 않다. 내가 최근 학교에서 계속해서 언급했던 것은 다양성 가운데서의 일치”라며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수회 사제 시절,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건 희생자 추모 집회에 자주 참석했던 스티븐 차우 홍콩교구장이 중국 정부와 교황청을 잇는 다리가 될지, 그가 언급한 ‘다양성 속 일치’가 중국 공산당 정부와 관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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