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역사 결의’ 전문 공개…“黨은 틀린 적이 없다” 주장 되풀이

김윤호
2021년 11월 19일
업데이트: 2021년 11월 20일

시진핑, 3연임 위해 “黨은 틀린 적이 없다” 주장에 의존
마오쩌둥-덩샤오핑에 이어 개인숭배 지속…黨은 권력 독점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6중전회가 끝난 지 닷새 만인 16일에야 문화대혁명· 톈안먼 사태·대만 문제 등을 포함해 세 번째 역사결의(당의 100년 분투의 중대한 성취와 역사 경험에 관한 결의) 전문을 발표했다.

1981년 ‘당과 국가, 각 민족에서 심각한 재앙을 가져온 내란’으로 규정했던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마오쩌둥의 죄과를 덜어준 평가가 눈길을 끈다. 발표가 늦어진 것은 치열한 내부논란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3만6천자 분량의 결의문은 절반 이상인 1만9천자를 시진핑 직권 이후의 이른바 ‘업적’을 설명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나머지 분량에는 발표한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와 덩샤오핑(鄧小平) 시대에 대한 평가 등이 포함됐다.

마오쩌둥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계급투쟁에 관한 이론과 실천에서 착오가 갈수록 심해졌으며 당중앙은 이를 바로 잡지 못했다고 했다. 수천만 명을 굶어 죽게 한 대약진 운동, 인민공사 설립, 문화대혁명, 반우파 투쟁이 언급됐다.

문화대혁명은 “마오쩌둥이 완전히 빗나간 정세예측으로 일으키고 지도한 오류”라면서도 “린뱌오(林彪)와 장칭(江靑) 두 반혁명 집단은 마오쩌둥의 착오를 이용해 나라에 해를 끼치고 백성에게 해를 끼치는 악행을 많이 저질러 10년 내란을 초래했다”며 마오쩌둥의 책임을 경감했다.

이는 올 상반기 공식 출간된 2021년판 ‘중국공산당 간사(簡史)’와도 일치하는 대목이다. 이 책에서는 문화대혁명을 내란으로 규정하며 “지도자 착오적 발동”을 강조했지만, 마찬가지로 “반혁명 집단에 이용당했다”는 표현으로 마오쩌둥을 일정 부분 두둔했다.

종합적으로는 마오쩌둥 시대를 경제·정치·국방·외교의 발전시기로 재평가하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마오쩌둥은 1940년대, 덩샤오핑은 80년대 각각 역사결의를 통해 당내 절대적인 지위를 구축했다. 따라서 시진핑이 세 번째 역사결의로 3연임 목표를 이루려 한다는 점에는 분명하다.

다만, 앞선 두 번의 역사결의를 어떻게 평가하고 넘어가느냐의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역사결의는 모두 앞선 중국 공산당의 노선을 부정하는 데에서 출발했다.

1945년 6기 7중전회에서 마오쩌둥은 ‘약간의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를 통해 소련이 지령만 받들던 당 지도부의 노선을 부정했다.

덩샤오핑은 1981년 6중전회를 열고 당시 중앙위원회 주석 화궈펑을 비롯해 경쟁 세력을 물리친 뒤 ‘건국 이래 당의 약사의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를 통해 문화대혁명과 마오쩌둥의 노선을 부정했다.

그러나 시진핑은 앞선 두 차례와 달리 자신의 세 번째 역사결의에서 전임 지도자들의 노선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긍정 평가했다.

이에 대해 대만정치대학 국가발전연구소 이유담 교수는 “중국 공산당의 3차 역사결의는 고도의 정치적 책략”이라며 “당의 위대한 영광만을 강조하는 공산당의 일관된 기조를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지도부가 교체하더라도 공산당의 유전자는 계승된다. 공산당은 하나의 체계이자 지도부라는 세포를 교체하며 계속 생존하는 하나의 유기체로 보면 이해하기 쉽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산당은 당이 저지른 어떤 잘못도 인정하지 않는다. 덩샤오핑 시절에는 문화대혁명의 극심한 폐해를 모두가 직접 겪었고, 살떨리는 듯한 공포감을 맛봤기에 그것을 부정해야 한다는 공감대 형성이 가능했다”고 했다.

이어 “마오쩌둥이 부정한 것은 실제로는 공산당이 아니라 소련의 지령만 따르는 지도부였기에 실제로 당이 잘못했다는 반성에서 출발한 결의가 아니었다”며 “덩샤오핑의 문혁 부정은 특수한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시진핑의 역사결의는 중국 공산당의 위대함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게 이 교수의 관측이다.

그는 “이는 두 가지를 시사한다. 하나는 공산당의 권력 독점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마오쩌둥, 덩샤오핑, 시진핑으로 이어지는 개인숭배가 지속된다는 점이다”라고 덧붙였다.

즉 공산당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는 참극인 문화대혁명은 반혁명 세력의 교란으로 당과 인민에 입힌 피해가 컸다는 식으로 무마하고, 당은 여전히 위대하며 당의 지도 즉, 권력의 독점은 계속된다는 게 이번 세번째 역사결의가 깔고 있는 역사인식이라고 이 교수는 분석했다.

1966년 5월 16일 시작된 문화대혁명은 마오쩌둥 당시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주석과 중앙문화혁명소조가 무지함에서 출발하는 값어치 낮은 용맹함으로 무장한 수천만명의 홍위병(紅衛兵)을 동원해 중국 전국에서 벌인 문화 쇄신 운동이다.

그러나 그 실체는 공산당에서 장려한 상호비판·자아비판·약탈·밀고 등의 행위를 일삼은 맹목적 추종세력들이 중국 전통문화와 윤리, 사회규범을 모조리 망가뜨려, 중국을 공산당과 마오쩌둥 외에는 따를 것이 없는 비틀린 사회로 전락시키는 문화 파괴 운동이었다.

10년간 이어진 파괴와 약탈행위로 수천년간 이어진 중국 문명은 그 명맥을 거의 상실하고 중국 대륙에는 오늘날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기괴한 사건이 꼬리를 무는 공산당 사회가 들어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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