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人] 매튜 모리, 성경에서 바닷길을 발견하다

김연진
2023년 05월 12일 오후 8:46 업데이트: 2024년 01월 19일 오후 5:27

15세기말부터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등에 의해 대항해시대가 열렸지만, 여전히 인류에게 바다는 미지와 공포의 영역이었다.

돛을 달아 바람을 타고 이동하는 범선(帆船)이 주를 이뤘기 때문에 풍향에 따라 항로가 뒤바뀌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는 동선을 낭비해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다수의 범선이 서로 항로가 겹쳐 충돌하는 안전사고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해양학(海洋學)이 처음 등장했다.

초기 해양학은 해류, 즉 바닷물의 흐름에 주목했다. 바닷물이 일정한 패턴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이걸 ‘바다의 길’이라고 불렀다.

해류를 발견함으로써 선박들은 더 효율적이고 안전한 항해를 할 수 있게 됐으며, 이는 국제 해상무역의 발달로 이어졌다.

이 같은 성취의 배경에는 해류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한 ‘해양학의 아버지’가 있었으니, 미국 해양학자 매튜 모리(Matthew Fontaine Maury)가 그 주인공이다.

해군 제독을 꿈꾼 소년

1806년 미국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난 모리는 어린 시절부터 바다를 항해하는 꿈을 꿨다.

미 해군이었던 친형의 영향이 컸다. 모리는 형을 본받아 해군에 입대해 제독이 되고 싶었다.

매튜 모리가 제작한 최초의 수심측량 지도 | Public Domain

1825년, 그는 꿈에 그리던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가 군함을 타고 항법(航法)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탄대로를 달릴 줄 알았던 모리에게 위기가 찾아온 건 1839년이었다. 당시 마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불의의 사고를 당해 다리를 크게 다쳤다.

그 후유증으로 다리에 장애가 생기고 말았다.

결국 함정근무 부적합 판정을 받은 모리는 미 해군 수로국의 전신인 해도측기국(海圖測器局)으로 보직을 옮겼다.

비록 군함을 탈 수는 없었지만 바다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해양 연구’에 돌입했다.

성경에서 바닷길을 발견하다

미 해군연구소에서 발간한 서적 ‘해류의 발견자: 매튜 모리’에는 모리와 성경에 얽힌 놀라운 일화가 실려 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그는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우연히 영감을 얻게 됐다.

시편 8편 8절에는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라”라고 쓰여 있었다. 이 말씀에서 모리는 해로(海路)에 주목했고, 실제로도 ‘바다의 길’이 존재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우선 모리는 해군의 항해일지 등 관련 자료를 수집,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대서양의 풍향, 풍속의 특징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위대한 미국인 명예의 전당에 세워진 매튜 모리 흉상 | Public Domain

더 나아가 해류의 원인과 패턴을 분석했다. 당시만 해도 뱃사람들은 해류의 존재를 경험으로 알아챌 뿐이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다.

모리는 바람에 의해 발생하는 취송류(吹送流), 관성력에 의해 유지되는 관성류(慣性流), 바닷물의 밀도 차에 의한 밀도류(密度流) 등 해류의 원인과 종류를 파악했다.

이를 토대로 효율적이면서도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최초의 항적도를 1847년에 펴냈다.

해양학의 아버지

1853년, 모리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최초의 국제해양회의에 미국 대표로 참가했다.

여기에서 그는 선박들이 다닐 수 있는 뱃길을 처음으로 제시함으로써 항해 안전과 항정(航程) 단축에 공헌했다.

또한 모리의 해양 연구는 인류 해양탐사의 과학적 기초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해군 퇴역 후 버지니아 육군대학의 기상학 교수를 지냈고, 1873년 강연하기 위해 이동하던 길에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했다.

모리는 해양학을 개척한 공로를 인정받아 ‘해양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그의 묘비에는 ‘바닷길을 발견한 사람’이라는 문구가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