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싱궈 낙마에 영향력 행사한 4명의 상무위원들

리쓰위안(李思緣) 기자
2016년 09월 19일 오전 10:14 업데이트: 2024년 02월 19일 오후 3:26

9월 10일, 황싱궈(黃興國) 톈진시 당 대리서기 겸 시장이 ‘기율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이로써 그는 18차 전국대표대회 이후 처음으로 낙마한 직할시 시장으로 기록됐다. 공개 자료에 따르면 시진핑, 왕치산(王岐山), 리커창(李克強), 위정성(俞正聲) 등 최소 4명의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그의 낙마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작년 톈진 대폭발 사건 외에도 갖가지 문제를 일으켰던 황싱궈는 낙마 전 두 번이나 ‘시허신(習核心·시진핑이 당의 핵심)을 외쳐 스스로를 보호하려 했지만 9월 위정성이 톈진을 시찰한 후 결국 낙마했다.

위정성의 톈진 시찰 4일 만에 낙마

황싱궈가 낙마하기 4일 전인 이달 5, 6일, 위정성 상무위원은 톈진시의 로펌, 종교활동 장소 등을 찾아 시찰을 진행했다. 시찰 과정에서 위정성은 충화(崇化) 중학교에서 신장 출신 고등학생들을 만났고, 톈진의 사찰을 방문해 종교 활동 전개 상황에 대해 알아보기도 했다. 위정성은 ‘전국종교공작회의 정신을 착실히 관철해 시행할 것’을 강조했다.

이번에 위정성 상무위원이 시찰한 로펌, 종교 활동 장소는 모두 민감한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

2015년 7월 9일부터 중국공산당은 인권변호사들을 대규모 체포했고 이에 베이징, 광둥성, 광시(廣西) 등 25개 지역의 300명에 육박하는 변호사, 로펌 직원, 인권운동가 및 그의 가족들이 소환, 연금, 거주지 감시, 형사구속 혹은 실종됐다. 이 사건은 ‘7.09 사건’이라고 불린다.

2016년 초, ‘7.09 사건 인권변호사’ 중 15명에게 체포령이 내려졌으며 14명은 톈진시에 수감됐다. 이렇게 체포된 변호사 중 일부는 파룬궁 수련자를 위해 무죄 변호를 진행한 적이 있다.

올해 4월 22일과 23일, 시진핑 주석은 5명의 상무위원과 함께 전국종교공작회의에 참여했고 ‘법에 따라 종교 관련 사무를 처리할 것’, ‘종교 공작의 수준을 전면적으로 제고할 것’, ‘종교를 믿는 신도들의 역량을 더욱 한데 모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와중에 종교의 자유도 강조했다. 이 같은 조치는 장쩌민 집권 시기 종교 탄압 정책에 대해 부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4월에 열린 전국종교회의는 시기적으로 많은 주목을 끌었다. 왜냐하면 파룬궁 수련자의 반(反)박해 ‘4.25 청원’(파룬궁 수련자 1만 명이 베이징에서 당국에 평화적으로 청원한 시위) 기간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황싱궈 서기는 위정성 상무위원이 톈진 시찰을 마친 후인 6일 밤 시위원회 상무위원회 확대회의를 열어 위정성의 강화와 시진핑의 통일전선 공작에 대한 연설 정신을 학습하겠다는 뜻을 표명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위정성이 톈진을 떠난 4일 후 파룬궁 탄압이 심한 톈진시 당국의 최고지도자가 낙마했다는 점이다.

최근 중국중앙판공청에서 최신 기밀문서를 하달해 파룬궁 수련자와 그 친족이 17년간 받아왔던 불공정한 대우에 대해 언급했다.

톈진 당국, 우창순 체포 후에도 파룬궁 심하게 탄압

톈진시는 파룬궁 탄압이 심한 도시 중 하나로 꼽히며, ‘4.25’사건의 도화선이 된 곳이다. 최근 수년 간에도 톈진시 고위층은 파룬궁 탄압을 멈추지 않았다.

2014년 7월 20일, 파룬궁 박해에 적극 가담한 우창순(武長順) 전 공안국장이 조사 받은 지 4일이 지난 후, 당시 후베이성 우한시 공안국장을 역임하던 자오페이(趙飛)가 ‘북상(北上)’해 톈진시 공안국장에 취임했다.

해외 파룬궁 사이트 밍후이왕(明慧網)에서는 2015년 중국공산당 양회가 열리기 전 자오페이 등의 지시 하에 3월 2일에서 4일까지 중국 전역 8개 지역의 파룬궁 수련자 37명 및 그 친족이 납치, 가택 수색 및 자택 침입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공안부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최소 60~70명이 체포됐다.

2015년 5월 1일, 베이징 최고법원이 ‘유안필립’(有案必立·법률 조건을 갖춘 사건은 반드시 접수), ‘유소필응’(有訴案應·고소장이 접수되면 반드시 응대) 방침을 발표한 후 국내외에서 장쩌민 전 총서기를 고발하는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파룬궁 수련자 20만 명 및 각계 민중이 이에 적극 참여했다.

수천 명에 달하는 톈진시 파룬궁 수련자들이 작년 5월 말부터 중국공산당 최고검찰원, 최고인민법원에 장쩌민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해 그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장가오리(張高麗) 상무위원과 톈진시 정법위원회 및 자오페이의 주도로, ‘610’, 공안부 산하 국내 보위국 및 100여 개 파출소 경찰들이 장쩌민을 고소한 파룬궁 수련자와 친족들을 대규모 체포하고 심지어 실형을 내리기도 했다.

2016년, 장쩌민을 상대로 고소장을 제출한 파룬궁 수련자 3명이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리커창의 주장에 따라 황싱궈 조사

올해 신년 초두에 중국 각 성과 시 서기들이 잇따라 ‘시허신(習核心)’을 외쳤다.

1월 8일, 톈진시 상무위원회의에서 황싱궈는 시진핑을 향해 ‘칸치(看齊·정렬)’하고, ‘시허신’을 수호하겠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리고 1월 11일, 황싱궈는 톈진에서 열린 한 회의에서도 또 한 번 ‘시허신’을 언급했다.

홍콩 언론 3월 보도에 따르면 황싱궈가 ‘시허신’을 크게 외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현 자리를 보존하고 ‘8.12’ 톈진 대폭발 사건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올해 2월 5일, ‘8.12’ 사건 조사 보고서가 발표됐다. 홍콩 언론은 국무원 조사팀이 보고서를 리커창 총리에게 보냈고 이를 확인한 총리는 ‘톈진 시위원회, 시정부가 당중앙, 국무원에 대해 심도 있는 반성문을 쓸 것’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베이징 고위관료들은 이에 대해 ‘황싱궈가 이후 정식 서기가 될 가능성이 없으며 시장 직위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콩 명보(明報)는 작년 1월 말 소식통을 인용해 리커창 총리의 비서실장인 양징(楊晶)이 톈진시 당서기로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으나 이후 소식은 전하지 않았다.

올해 초, 다른 베이징 소식통이 리커창이 톈진시 시장인 황싱궈의 ‘처벌’을 주장했고, 황싱궈에게 톈진 대폭발 사고에 대한 직무유기 책임을 지게 할 것이라고 전했다.

톈진 사고 부실 대처로 황싱궈 비난 고조

황싱궈 서기의 재임 기간 동안 가장 큰 사건이라고 하면 단연 세계를 경악케 했던 톈진 ‘8.12 폭발사고’다. 공식 집계에 따르면 이 사고로 165명이 사망했고 8명 실종, 79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전해지지만, 이는 해외 언론이 집계한 수치에 한참 못 미친다. 지금껏 톈진에 이렇게 치명적인 사고가 발생한 적은 처음이다.

2015년 8월 12일 23시 30분, 톈진 빈하이(濱海)신구 개발지역에서 갑자기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폭발 위력은 TNT 24톤 수준이었으며 두 차례 폭발사고는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53발의 위력과 동일했다.

폭발사고 발생 후 1주일 동안 누구도 이 사고의 최고 책임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황싱궈 서기는 사고 발생 8일이 지난 2015년 8월 19일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기자 간담회를 열어, “최고 책임자로서 사고 지원에 온 힘을 다하겠다. 오늘에서야 모습을 보여드려 죄송하다”라고 언급하며 “면할 길 없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라며 책임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웨이신 모멘트에는 직접적으로 톈진시를 겨냥하는 ‘톈진, 뉴스가 없는 도시’라는 문장이 공유됐으며 ‘언론도 기자도, 심지어 뉴스도 없는 도시’, ‘직할시라는 타이틀과 발달한 경제에 전혀 걸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오갔다.

인민일보 해외판 산하의 공식 웨이신 계정 ‘협객도(俠客島)’는 9월 10일, ‘겉모습 배후에는 정치적, 사회적 문제가 더 깊게 얽혀 있을 것이다. 이러한 톈진시 언론에 대해 외부에서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톈진시의 관직 사회가 아주 경직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렇듯 ‘톈진에는 뉴스가 없다’라고 비난하는 이유는 톈진 현지 언론이 부패 사건을 은폐하고 보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외지 언론에서 관련 보도가 나왔더라도 재빨리 삭제됐기 때문이다. 톈진 폭발사고 피해자들의 민원도 모두 엄격히 감시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톈진이 고위 관료들에게는 베이징 입성 직전의 일종 ‘발판’과도 같은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언론의 힘을 빌려 여론을 통제하고 ‘좋은 평판’을 얻어 베이징으로 입성한다.

올해 열린 중국 양회에서 황싱궈 서기는 내외 기자들에게, “이번 폭발 사건은 어떻게 해야 나쁜 일을 좋은 일로 바꿀 수 있을지 진지하게 반성하게 되는 계기”라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겼다.

이 같은 발언에 ‘협객도’는 ‘하지만 누구나 다 알다시피, 어떤 나쁜 일은 좋은 일로 바뀔 수 없다’라고 평했다.

황싱궈가 안고 있는 다른 문제

톈진 폭발사건 이외에도 황싱궈의 재임 시절에는 각종 문제가 있었다.

올해 7월, 해외 중국어 사이트에는 중국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중앙순시조, 최고인민검찰원에 대한 고발문이 올라왔다. 그 첫머리에 이렇게 쓰여 있다. “톈진에서는 2007년부터 ‘금융혁신’을 추진해 왔는데 그 과정에서 사기 행위가 빈발했지만 그 진상은 아주 철저히 은폐됐다. 무수한 피해자가 존재하지만 이를 호소할 길이 없다.”

하지만 톈진 당국은 이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지도, 조사를 진행하지도, 바로 잡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각지 공안의 입건 및 조사를 금지해 그 피해는 더욱 확산됐다.

뿐만 아니라 톈진시는 정경유착 현상이 심각한 도시로 특히 도시 부동산 건설업에서 부패가 심각하다. 항간에서는 황싱궈의 남동생이 도시 행정 프로젝트에 개입해 관료와 재계 간의 ‘브로커’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으로 황싱궈는 오랫 동안 정식 시장으로 취임되지 못했고 부정부패 혐의로 조사를 받는다는 소문까지 전해졌다.

저장성의 한 소식통이 펑파이뉴스(澎湃新聞)에 전한 소식에 따르면 샹산(象山·황신궈의 고향)에서는 건설업이 주력 산업이고 기반이 탄탄하기에 항상 톈진에서 많은 수주를 받는 편이라고 한다. 또 황싱궈 시장이 자신과 친분 관계에 있는 건축상에게 많은 프로젝트를 맡겼으며, 그가 저장성에서 톈진으로 오자 일부 건축상들이 그를 따라 톈진으로 이동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황싱궈 서기는 톈진 재임기간 동안 1년 넘게 부패 스캔들에 휘말렸던 전 톈진시 시장 다이샹룽(戴相龍)과 전 톈진시 위원회 서기이자 현 정치국 상무위원인 장가오리와도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왔다.

최근 이 세 사람과 친한 관계에 있던 톈진시 부시장이자 시 정법위원회 부서기인 인하이린(尹海林)이 낙마했다. 토지 부패, 빈하이신구 등 문제로 인해서였다. 그리고 이전에 낙마한 몇 명의 성급 관리, 톈진공안국의 전 국장 우장순, 톈진에서 근무하다가 국가안전감독 총국 국장을 역임한 양둥량을 포함해 톈진 관료사회에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톈진에 대한 중기위의 ‘2차 순시’

황싱궈의 이번 낙마 사건은 톈진시에 대해 중앙 제3순시조가 2차 감찰을 진행한지 12일 후 발생했다.

중국공산당 18대 이후 중앙 순시조는 톈진에 두 차례나 진주했다. 2014년 3월 순시조는 톈진시에 1차 순시를 진행했고 올해 6월 29일부터 8월 29일까지 제3순시조가 톈진시에서 ‘2차 순시’를 진행했다.

2차 순시 동원회의에서 순시조장 예칭춘(葉靑純)과 왕치산의 비서 리샤오홍(黎曉宏)은 일곱 차례 ‘정치순시’를 언급했다. 리샤오홍은 톈진시 위원회에, ‘시 위원회는 주체 책임을 확실하게 이행하고 톈진시 정치 생태계 및 간부들의 건전한 발전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8월 22일, ‘2차 순시’의 마무리를 7일 남겨두고 톈진시 부시장 인하이린이 먼저 조사 받고 낙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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